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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의 갈등과 충돌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봉쇄 위협으로 이어지곤 한다. 특히 지난 2020년 1월 3일 이란 군부 실세인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은 다시 한 번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았다. 이번 호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법적 지위와 통항 문제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灣)과 오만만(灣) 및 아라비아해(海)를 연결하고 있는 해협으로 길이는 약 90해리, 폭은 약 21해리에서 52해리에 이르는 해협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해협 연안국’(States bordering the strait)이라 할 수 있는 이란과 오만 양국은 모두 12해리에 이르는 영해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 중 그 폭이 가장 좁은 곳은 약 21해리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곳은 공해 통과항로 또는 배타적 경제수역 통과항로가 존재하지 않는 이란과 오만 양국의 12해리에 이르는 영해 내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에 유엔해양법협약이 적용될 수 있다면 호르무즈 해협은 유엔해양법협약 제3부 내 관련 규칙이 적용될 수 있는 ‘국제항행을 위해 이용되는 해협’ (strait used for international navigation)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호르무즈 해협의 해협 연안국이라 할 수 있는 이란과 오만 중 오로지 오만만 유엔해양법협약의 당사국이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즉, 이란은 유엔해양법협약에 서명을 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국내 절차에 따라 비준하지 않고 있으므로 유엔해양법협약이 이란을 구속할 수는 없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에 유엔해양법협약 제3부가 적용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엔해양법협약이 채택되기 이전에는 1958년 ‘영해 및 접속수역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Territorial Sea and Contiguous Zone)이 해협의 통항 문제에 관한 규칙을 포함하고 있었다. (1958년 영해 및 접속수역에 관한 협약의 당사국이 유엔해양법협약의 당사국이 아닌 경우 1958년 영해 및 접속수역에 관한 협약은 여전히 그러한 국가를 구속한다.) 1958년 영해 및 접속수역에 관한 협약 제16조 제4항은 (호르무즈 해협 같이) 공해의 한 부분과 공해의 다른 부분 간의 국제항행을 위해 이용되는 해협을 통한 외국 선박의 ‘무해통항’(innocent passage)은 정지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란이 1958년 영해 및 접속수역에 관한 협약에 대하여도 서명만 했지 자신의 국내 절차에 따라 비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란이 해협의 통항 문제를 규율하고 있는 그 어떤 조약에도 구속받지 않고 있는 법적 현실은 호르무즈 해협의 법적 지위와 통항 문제에 대한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조약과 함께 국제법의 연원(淵源)으로 인정받고 있는 ‘국제관습법’(customary international law)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호르무즈 해협의 법적 지위와 통항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1949년 4월 9일 판결이 내려진 Corfu Channel 사건을 통해 해협 관련 문제를 다룬 적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국제사법재판소는 ‘국제항행을 위해 이용되는 해협’을 공해의 두 부분을 연결하고 있다는 지리적 요소와 국제항행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는 기능적 요소를 결합하여 정의했었다. 이어서 국제사법재판소는 이 사건에서 평시에는 군함조차 국제항행을 위해 이용되는 해협에서 무해통항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국제관습법’이라고 결론지었었다. 더구나 해협 연안국은 평시에 이러한 무해통항을 막을 수 없다는 언급도 덧붙였다.

따라서 이란이 유엔해양법협약의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유엔해양법협약 제3부가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없을지라도 국제관습법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과 같이 국제항행을 위해 이용되는 해협에서는 군함은 물론 상선의 무해통항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이러한 무해통항에 심각하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국제법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에 대하여 미국 주도로 2019년 11월 7일 지휘통제부가 창설된 ‘호르무즈 호위연합체’[국제해양안보구상 또는 IMSC(International Maritime Security Construct)]의 무력사용 문제에 대하여도 잠시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단 호르무즈 호위연합체의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그 어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호르무즈 호위연합체가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는지에 따라 호르무즈 호위연합체의 운용이 국제법적으로 적법한지가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호르무즈 호위연합체에 속하는 군함이 단순히 몇몇 상선을 호위(즉, 에스코트)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이는 1949년 Corfu Channel 사건에 의하여도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1949년 Corfu Channel 사건에 의하면 평시에는 군함조차 호르무즈 해협과 같이 국제항행을 위해 이용되는 해협에서 무해통항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국제관습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면 이는 오히려 이란이 무력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하다. 하지만 봉쇄 자체가 무력사용(use of force)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무력공격(armed attack)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 하더라도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호르무즈 호위연합체가 상선을 호위하는 조치 이상의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 정부가 정교한 국제법적 고찰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항하는 한국 국적 선박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 본 글은 2020년 2월호 해군지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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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