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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30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덴마크(페로 제도) 3개국은 노르웨이-아이슬란드, 노르웨이-덴마크(페로 제도), 아이슬란드-덴마크(페로 제도) 간 총 세 개의 해양경계획정 양자협정을 동시에 체결했다. 노르웨이해(海) 내에서 소위 ‘바나나 홀’(Banana Hole)이라 부르는 해역의 개발을 국제법적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바나나 홀 개발을 위한 3개국의 노력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바나나 홀은 노르웨이해 내 남쪽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먼저 노르웨이해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면 노르웨이해는 노르웨이 본토, 노르웨이의 ‘얀 마옌’(Jan Mayen) 섬, 아이슬란드 본토, (덴마크의) 페로 제도(Faroe Islands) 등으로 둘러싸인 대서양 북쪽 해역을 가리킨다. 노르웨이해에는 난류의 영향으로 풍부한 어족 자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는 상당 수 유전이 존재하고 있다.

바나나 홀이 북위 약 65~75도 사이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풍부한 천연자원의 존재 가능성으로 인해 노르웨이를 포함한 인근 국가들은 이 해역을 탐사하고 개발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었었다. 하지만 유엔해양법협약 제76조 제8항이 “… 대륙붕한계위원회는 대륙붕의 외측한계 설정에 관련된 사항에 관하여 연안국에 권고를 행한다. 이러한 권고를 기초로 연안국이 확정한 대륙붕의 한계는 최종적이며 구속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덴마크 3개국은 각각 200해리를 넘는 대륙붕에 대한 권원, 즉 3개국 각각의 영해기선으로부터 200해리를 넘는 곳까지 자연적으로 연장되어 있는지를 공식적으로 확인받기 위해 우선 대륙붕한계위원회의 ‘권고’가 필요했다. 그리고 대륙붕한계위원회로부터 권고를 받는다 하더라도 복수 국가들 간 200해리를 넘는 대륙붕이 서로 중첩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해양경계획정 문제도 해결해야만 했다.

이와 같은 복잡한 법적 현실에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덴마크 3개국은 역발상적인 합의를 이루어내었다. 즉, 2006년 9월 20일 3개국은 대륙붕한계위원회의 권고를 통해 3개국 각각의 200해리를 넘는 대륙붕에 대한 권원이 존재하고 그 권원이 중첩하는지를 확인받기 전에 먼저 (법적 구속력 없는) ‘합의의사록’
(Agreed Minutes)을 만들었다. 3개국 모두 대륙붕한계위원회에 바나나 홀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기 전에 ‘미리’ 3개국 모두 자신의 영해기선으로부터 200해리를 넘어 바나나 홀까지 대륙붕이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잠정적인’ 해양경계획정을 수행했던 것이다. 물론 이 해양경계획정은 3개국 모두 자신의 영해기선으로부터 200해리를 넘어 바나나 홀까지 대륙붕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대륙붕한계위원회로부터 확인받을 예정이라는 조건을 전제로 수행되었다.

합의의사록이 만들어진 이후인 2006년 11월 27일 노르웨이는 바나나 홀을 포함한 세 개의 해역에 대하여 유엔해양법협약 제76조 제8항에 따라 대륙붕한계위원회에 정보를 제출했고, 2009년 3월 27일 대륙붕한계위원회는 바나나 홀과 관련하여 노르웨이의 200해리를 넘는 대륙붕에 대한 권원의 존재를 확인하는 권고를 채택했다. 이어서 2009년 4월 29일 아이슬란드는 바나나 홀의 남쪽 부분에 위치한 (자신의 영해기선으로부터 200해리를 넘는) ‘Ægir Basin’을 포함한 두 개의 해역에 대하여 대륙붕한계위원회에 정보를 제출했고, 2016년 3월 10일 대륙붕한계위원회는 ‘Ægir Basin’과 관련하여 아이슬란드의 200해리를 넘는 대륙붕에 대한 권원의 존재를 확인하는 권고를 승인했다. 덴마크 역시 2009년 4월 29일 페로 제도로부터 200해리를 넘어 위치한 바나나 홀의 남쪽 부분에서의 대륙붕에 대한 권원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대륙붕한계위원회에 관련 정보를 제출했다. 그리고 2014년 3월 12일 대륙붕한계위원회는 바나나 홀과 관련하여 덴마크의 200해리를 넘는 대륙붕에 대한 권원의 존재를 확인하는 권고를 채택했다.

2016년까지 3개국 모두 대륙붕한계위원회로부터 권고를 획득했고, 그 이후 이미 만들어져 있었던 2006년 합의의사록에 기초하여 본격적인 해양경계획정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019년 10월 30일 드디어 총 세 개의 해양경계획정 양자협정이 동시에 체결된 것이다.

노르웨이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세 개의 해양경계획정 양자협정은 2006년 합의의사록에 포함된 것과 동일한 해양경계선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비록 법적 구속력이 없을지라도 2006년 합의의사록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동시에 이 합의의사록의 내용을 변경할 정도로 각국이 내세울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새로운 주장은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6년까지 3개국 모두 대륙붕한계위원회로부터 권고를 획득한 이후 진행된 협상은 사실상 2006년 합의의사록의 내용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세 개의 해양경계획정 양자협정을 통해 3개국 간 해양경계획정이 완료된 만큼 체결된 세 개의 해양경계획정 양자협정이 발효하면 바나나 홀 내에서 천연자원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만약 ‘해양경계선에 걸쳐 존재하는’ 유전 등이 발견될 경우 세 개의 해양경계획정 양자협정 내에 포함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문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의 공동개발구역, 즉 제7광구의 개발을 놓고 일본과 상당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한국과 일본 양국이 먼저 합의의사록 등을 통해 잠정적인 해양경계획정을 추진하고 대륙붕한계위원회로부터 권고를 받은 이후 최종적으로 이 합의의사록의 내용을 검토하는 절차를 고려해 본다면 이번 북유럽 3개국 간 세 개의 해양경계획정 양자협정은 하나의 영감을 제공하는 분쟁당사국들 간 분쟁해결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본 글은 2020년 1월호 해군지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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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