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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영화 ‘명량’을 봤다. 이순신 장군의 애국심에 감동하면서도 나라를 위태한 지경에 빠뜨린 국가 지도자들의 무책임, 그리고 우리의 숙명적인 지정학적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明)을 정복하겠다며 조선을 통과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하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현재 우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또 무슨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모르는 형편이다.

필자는 2012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일본은 우리와의 외교를 공작적으로 하고 있으며 중국은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성의 없이 다루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중국이 역사를 선별적으로 기억하는 것 역시 큰 문제다.

2005년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우리 국회에서 연설하는 것을 들으면서 중국이 안겨줄 외교적 부담을 예감했다. 당시 후 주석은 “우리는 반도 문제가 최종적으로 남북 양측의 대화와 협상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생각한다”면서 “올해는 세계 반파쇼 전쟁 승리와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광복 60주년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와 표현들이었다. 주변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지만, 우리가 한미동맹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요즘 미국에서는 군사력을 축소하고 국내 문제에 전념해야 한다는 신고립주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유명 싱크탱크는 미국 안보에 무임승차하는 한국을 ‘복지여왕(welfare queen)’이라 부르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미국은 지금 중동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시리아 내전, 이란의 핵개발, 이라크 내전, 그리고 러시아와의 ‘신냉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리는 주한미군 감축은 극구 반대하면서 한국군 규모의 축소는 당연시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에는 속수무책이면서 미군과 연계된 미사일 방어망 구축은 중국의 눈치를 본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상호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일방적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는 역사적, 문화적 공감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만 명의 미군이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나라에서 피를 흘린 이유는 공산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이상주의, 일본을 지켜야 한다는 전략적인 판단, 그리고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충만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 외교의 이상주의 시대가 저문 것은 오래전이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국에 도전하기 시작하자 일본은 발 빠르게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눈에 비치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로 중국에 기울고 있다고 미국이 느낀다면 미국은 한미동맹을 오히려 부담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미국은 일본과만 손잡으면 한국 없이도 중국을 상대로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지 않을까?

한 이스라엘 장군은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은 정신이 썩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외국 군대를 이용해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돈도 안 쓰고 우리만 살면 된다는 계산은 너무 얄팍해 보인다. 한미동맹 강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하든 미국은 우리를 도울 것이라는 생각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하겠다는 배짱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

중국과 미국에는 우리의 목표가 북핵 폐기와 자유통일임을 분명히 말하는 가운데 정부는 국민들에게 우리가 처한 안보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가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동맹도 스스로 무너지는 나라를 지킬 수는 없다.

 

* 본 글은 2014년 8월 18일자 동아일보에 기고된 글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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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정몽준

명예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