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1,464 views

2023년에 들어서도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순항미사일 및 탄도미사일 발사 횟수는 9월 13일까지 23회에 이르고, 3차례에 걸친 수중드론(핵어뢰) 발사도 이루어졌으며, 2차례에 걸친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도도 있었다. 4월에는 고체형 연료를 도입한 ICBM ‘화성-18형’과 신형 핵탄두 ‘화산-31’ 등 신무기체계를 선보였다. 이를 통해 북한은 국제제재가 그들의 핵능력 건설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보여주려 했고, 자신들의 정권 및 체제가 안정적이라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하려 했다. 4월 27일(미국 현지시각 기준) ‘워싱턴선언’이 발표되었지만 북한은 김여정 담화를 통해 “더욱 강력한 힘의 실체에 직면할 것”이고 공언하였다. 8월 18일 한-미-일 3국이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 정상회의에서 북한 핵위협에 대한 3국 공조를 다짐하자, 8월 31일에는 한국의 주요 거점들을 대상으로 한 ‘전술핵’ 타격훈련을 실시했으며, 10월 4일에는 미국의 북한 대량살상무기(WMD) 대응 전략에 대해 “압도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을 다짐하기도 했다.1

금년 9월까지 나타난 북한의 행보는 평양의 핵집착이 더욱 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묘한 불안 징후 역시 노출되고 있다. 2022년 하반기부터 불거진 식량부족설은 2023년에 들어서는 개성 등 일부 대도시에서의 아사자 발생설로 이어지면서 북한이 경제면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이 암시되었다. 북한은 2022년 12월 말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에서 2023년 6월의 8차 전원회의까지 6개월 동안 세 차례의 전원회의를 거치면서 경제건설에 대한 당 및 정부 사업 일꾼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등 목표 대비 실적이 신통치 않음을 우회적으로 토로하기도 하였다. 정치 부분에서도 딸 김주애의 공식석상 동반을 통해 새로운 상징조작을 시도했는데, 이는 4대 세습의 준비과정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30대 후반(1984년생)이라는 김정은의 연령을 고려하면 권력 불안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8차 전원회의에서의 김영철(前 통일전선부장), 오영일(前 당 경제부장) 복귀에서 드러나는 북한판 회전문 인사 역시 신뢰할 만한 인물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핵 및 미사일 능력을 과시했지만, 이를 검증할 만한 핵실험 등이 없었고 공언했던 군사정찰위성 발사도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드러난 징후로 북한이 단기간 내에 정권이나 체제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은 적지만, 북한이 다른 대안을 고려하지 않고 핵개발에만 매달리는 경로종속성(Path Dependency)과 선택지의 제한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현재 평양이 가고 있는 길이 철저히 계산적이고 나름의 체제 내구력에 대한 자신감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하지만, 정책의 융통성이 제한된다는 것은 여건 변화에 따른 적응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이를 고려하여 당분간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여건을 선별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힘쓸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9월의 북러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미북 및 남북 협상의 재개에 매달리기보다는 북-중-러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데 매진할 것이고, 이를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 하려 할 것이다. 대내적으로도 정치 및 경제분야의 불안을 타개하기 위한 상징조작 및 주민통제의 강화에 매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고려할 때, 우리의 대북정책 역시 강력한 억제태세 구축과 인권 문제 제기 등 대북 압력성 조치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즉, 북한 도발에 대한 대비태세의 과시를 통해 도발 의지를 사전 봉쇄하는 한편, 북한 인권문제 적극 제기를 통한 불안요인 공략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대화의 길을 열어놓기는 하지만, 한미 및 한-미-일 차원의 공조를 통해 북한이 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을 조성하는 한편, 억제를 바탕으로 한 북한 변화 기조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세 가지 징후들의 이중성

 
1. 식량부족설 對 경제적 내구력 지속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미북회담에서의 ‘노딜’로 인한 국제제재의 지속, 2020년 시작된 ‘COVID-19’ 국면 등으로 인해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고, 이는 2021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3차년도를 맞이하고 있는 국가경제발전5개년계획에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금년 상반기 제기된 ‘식량부족설’이다. 우리 정부 통계에 의하면 북한의 2022년 식량생산은 총 451만 톤으로, 2021년도 469만 톤보다 18만 톤(3.8%)이 감소한 수치였고,2 2023년 1월 최근 미국의 북한 분석 사이트 ‘38 North’는 북한 내에 심각한 식량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하였다.3 ‘38 North’는 FAO/WFP(유엔식량농업기구/세계식량계획)와 USDA(미 농무부) 데이터를 종합하여 북한의 식량공급량을 추정하였는데, 2020/21년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인간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최소 수준을 50만여 톤 가량 밑돌았고, 이는 1996-9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객관적 데이터와 정황상 증거를 바탕으로 볼 때 ‘38 North’ 등의 주장은 주목할 만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겪고 있는 식량부족은 전적으로 국경폐쇄와 내부 이동 제한이라는 정책적 결정으로 인해 야기된 결과이다. 북한은 중국에서 식량뿐만 아니라 비료도 수입하는데, 국경폐쇄로 인해 식량생산이 감소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추정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식량부족이 대량 아사자를 초래할 수준이라고 속단하기에는 이른 것 역시 사실이다. 북한은 지금 ‘제2 고난의 행군’을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의 곡물생산량 440만톤~470만톤은 북한이 ‘고난의 행군’(1996~1998년)기간 동안 생산한 곡물생산량 평균인 약 369만톤에 비하면 상당히 호전된 것이다. 또한, 중국은 2022년중 부분적이지만 북한-중국 간 주요 교역통로인 단둥-신의주 철도를 재개하였고, Voice of America는 2022년 11월자 기사를 통해 중국으로부터의 대북 식량 지원 정황을 보도하기도 하였다.4 2023년 6월에서 8월 사이 북한은 ‘COVID-19’로 인해 2020년 1월 폐쇄했던 북중 국경 및 북러 국경을 다시 개방하는 조치를 취했고, 이는 북한의 식량난에 숨통을 터주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내 식량난을 보는 시각은 여전히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는 북한이 이미 인민군에 대한 식량배급을 감축하고, 일부 지역에서 실제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예사롭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고,5 다른 하나는 북한의 식량난은 만성적일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체제 위기를 촉발할 만큼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6 다만, 북한 내 국지적·산발적 영양부족 상태가 발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됨으로써 북한 식량사정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이는 김정은 정권의 중기적 불안요인이 될 것이다. 1990년대와 같이 전국적인 규모의 식량부족이나 아사사태 등은 발발하지 않았지만 국지적으로는 이미 일부 지역에서 심각한 식량부족이 일어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특히 식량 등 필수물자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접경지대인 함경도와 강원도, 자강도 등지에서는 실제 아사자가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2023년 초반 나돌았던 개성에서의 아사설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북한 경제문제를 추정케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생산성 이외에도 도로망 등 사회간접자본의 부족에 의해서도 악화되었다. 평양 등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로망이 부실해서 유통이 원활치 않은 혜산 등지에서의 상대적으로 높은 곡물가격은 북한의 유통능력 한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개성은 북한 내 대표적인 식량생산 지역인 황해북도에 속해있고, 도로망 역시 여타 다른 지역에 대해 상대적으로 발달된 편이다. 이런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관료의 부패로 인한 분배의 문제를 의심케 하는 대목으로 북한의 경제문제가 조기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2022년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무조건 관철”이라는 용어는 현재 북한 정권이 경제건설과 관련하여 가지고 있는 강박관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후이다. 2023년 6월 19일 개최된 제8기 8차 전원회의 보고에서는 “상반년도 경제사업에서 인민경제계획을 무조건 수행하는 엄격한 규률을 확립하지 못하고…일련의 폐단들이 엄정히 분석되었다”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7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북한이 2023년 상반기중 경제실적 목표에 미달하였다는 점과 이를 관철하기 위해 ‘무조건’ 이행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개정된 『조선노동당 규약』은 “당 중앙위원회는 전원회의를 1년에 한번 이상 소집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6개월 동안 세 차례의 전원회의를 개최했다고 해서 꼭 위급하거나 필수적 결정사항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반기(2월, 6월)중 두 차례의 전원회의를 소집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난국 탈피를 위한 당 기강이나 기율의 확립이 시급한 과제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고, 경제건설에 있어 당 일꾼들의 사상무장을 강화하고 과업완수를 강조하는 분위기 다잡기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2023년 상반기 허위·과장보고 철폐 등이 강조된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 모두가 북한 경제운용이 김정은이나 북한 정권엘리트들이 당초 예상하거나 의도하였던 것보다 부진함을 암시한다. 김정은이 8월 21일 수해를 입은 평안남도 안석간석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덕훈 내각 총리를 비롯한 경제관료들의 자세를 “건달뱅이들이 무책임한 일본새로 국가경제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8

일부 분석가들은 북한이 막대한 가상화폐 해킹(1억달러 이상)으로 제재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한계가 있다. 아직 국가급 행위자가 가상화폐를 통하여 국가 운영에 필요한 기본자산을 전적으로 조달한 예가 없고, 북한이 당면한 국제제재는 금융, 무역, 투자 전면에 걸친 것으로 돈만 있다고 해서 경제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상화폐를 실제 화폐로 세탁(Money laundering)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요구된다. 김정은이 북한의 경제난을 시인한 2020년부터만 계산하더라도 4년 이상을 심각한 경제적 곤궁 하에서 생활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정치적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이를 적정 수위에서 통제해야만 하는 김정은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정치적 불안정 對 김정은 건재론
 
김정은은 2022년 말부터 첫째 딸 김주애를 동반하고 공식석상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2022년 11월 18일 ‘화성-17’형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 김주애로 추정되는 여자아이를 동반한 이후, 2023년 1월 1일 『조선중앙 TV』가 공개한 영상에서도 ‘화성-12’형 생산시설과 이동식 발사대(TEL)을 함께 시찰하는 영상이 공개되었고,9 이후 2023년 4월까지만 총 11차례의 김주애 동반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김주애를 수식하는 용어 역시 “존귀하신 자제분”에서 “사랑하는 자제분”으로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10 5월 16일 김정은이 ‘군사정찰위성 발사준비위원회’를 방문할 때 다시 김정은과 동반했던 김주애는 이후 100여일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8월 27일 김정은의 해군사령부 방문시 다시 나타났고, 9월 9일의 북한 정권창건일 행사에는 주석단에 배치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김주애 동반을 ‘4대 세습’의 징후로 해석하기도 하고, 북한의 정치이데올로기 상 ‘백두혈통’인 김주애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지만, 이에는 여전히 설명력에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1984년생인 김정은이 아직 30대 후반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부터 후계자 수업을 시작해야 할 급박한 사유를 설명할 수 없다. 아직 10살 남짓으로 추정되는 김주애에게 권력을 계승하거나 이를 준비한다는 것은 김정은이 통치의 자신감을 심각하게 상실했거나, 건강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8월 27일의 해군사령부 방문시 지휘관들의 인사를 받는 김주애의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바로 선 자세를 취했던 데 비해 김주애는 해군 지휘관들과 함께 허리를 숙여 맞존대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수령’의 후계자로서의 풍모라고 보기는 힘들다. 주요 행사에서의 주석단 착석 역시 현재로서는 최고지도자인 그의 아버지에 대한 동반자로서의 의미가 강할 뿐, 권력엘리트 내에서의 서열을 반영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북한 내에서 다른 권력엘리트에 비해 초월적 위치에 있는 ‘백두혈통’ 내의 서열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김주애 후계설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북한 내에서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는 인물은 결국 ‘백두혈통’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같은 가계 내에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인물이 동시에 부각되는 것은 권력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데, 최근 김주애의 등장 못지않게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대남정책 뿐만 아니라 대외정책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고, 이는 김정은이 자신감의 부족이나 통치력의 약화 상태에 빠졌을 때 권력암투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과거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역시 자신의 삼촌인 김영주의 2선 퇴진이 이루어진 이후에야 후계자의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김주애 동반의 이유를 독재자들이 흔히 만들려고 하는 ‘자애로운 지도자 상’의 구축에서 찾을 수도 있다. 과거 김정일이 ‘광폭정치’, ‘인덕통치’를 강조했으며, 김정은도 ‘후대사랑’과 영유아에 대한 사업의 확충을 강조해 왔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심어줌으로써 그가 제시하는 통치 비전의 신뢰성을 부각하려 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백두혈통’에 대한 일반 주민들의 친근감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볼 수 있는데, 김정은도 한 가정의 가장이며 그의 자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갖고있는 점을 부각하면서도, ‘백두혈통’에 대한 존중심을 함께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를 이은 핵무력 건설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김주애를 등장시켰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주애는 김정은 시대 본격 개막(2012년)을 전후한 시기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정책노선을 가장 잘 상징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의 핵개발이 본격화되고, 핵무력 증강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김주애의 성장 자체가 김정은 시대 북한의 발전과 핵무력의 증강을 잘 대변해 준다고 김정은이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주애는 ‘김정은의 딸’보다는 ‘김정은 시대의 정책’ 그리고, ‘다음 세대’를 상징한다. 즉, 김정은이 현재의 정책노선에 대해 상당한 확신과 애정을 가지고 있고, 이를 앞으로도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발송하는 효과가 있다. 즉,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핵개발 노선이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고,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핵집착의 제스처로서의 성격도 띄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해석을 채택하더라도 이는 내면적인 불안과 연결된다. 그동안 사용하였던 일반적인 상징조작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을 수 있고, 김주애를 상징조작을 위해 등장시킨 것 자체가 핵무력을 위해 경제적 궁핍과 정치적 통제를 감내해야 하는 북한주민들의 불만 누적의 결과일 수 있는 것이다. 일반 북한주민들의 생활상과는 어울리는 않는 김주애의 옷차림에 반감이 표출되자 김정은이 김주애 동반을 멈춘 것이 아니라 의상만을 바꾼 채 동반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북한 내의 새로운 상징조작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노동당 제8기 8차 전원회의에서 이루어진 일부 인사교체 역시 북한의 불안정성을 암시한다. 김영철의 재등장을 놓고 더욱 강력한 대외 및 대남정책을 위한 인사라든지 오영일의 복귀를 놓고 새로운 경제적 처방에의 기대라든지 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김영철 이전에도 이미 북한이 한국 및 미국과의 대화 거부 및 대남도발을 지속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전임자들이 특별히 온건한 정책을 표방했다고 보기 힘들고 오영일 재임시에 특별히 주목할 만한 북한의 성장이 이루어졌던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김영철과 오영일의 복귀는 현실적으로 기대 대비 성과가 미흡하고 신뢰할 만한 권력엘리트 풀(Pool)이 풍부하지 않은 김정은이 선택한 북한판 회전문 인사라고 볼 수 있다. 이 역시 중기적으로는 정치적 불안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불안은 관료체제의 무능이나 불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북한은 노동당 제8기 8차 전원회의에서 각급 인민위원회 일꾼들(지방 행정조직)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것을 과업의 하나로 설정했는데, 이는 각급 조직 사업에 대한 행정지도 강화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주요 정책집행을 위한 투쟁”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당료 및 관료들에 대한 분위기 다잡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평가된다.

김정은은 지난 9월 푸틴과의 북러 정상회담에서 리병철(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박정천(군정지도부장), 최선희(외무상), 김여정 등의 고위급 권력엘리트들을 대거 대동하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러시아에서 보냈는데, 이는 권력장악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단기적으로 북한 내의 정치적 불안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분야의 빈약한 실적과 관료의 복지부동(伏地不動), ‘백두혈통’ 내부의 서열 조정의 혼선, 주민 불만의 지속 누적 등이 함께 일어난다면 김정은의 정치적 장악력이 유지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3. 빠진 퍼즐 조각 對 지속되는 핵무력 시위
 
북한이 2023년에 들어서도 핵무력 시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관련해서도 빈틈이 엿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화산-31’의 공개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신형 탄도미사일에 적용 가능한 소형탄두를 핵실험 없이 완성했다는 것 자체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화성-18형’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의 경우에도 비거리 면에서 여전히 충분한 출력을 확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2021년 김정은이 지시한 ‘무기개발 5개년 계획’의 스케줄에 맞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무리를 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2022년부터 징후가 노출된 핵실험이 계속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7차 혹은 그 이상의 추가 핵실험에 대해서도 한국과 미국이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경우 다음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고민이 있다. 그렇기에 핵실험을 통해 적절한 폭발력, 이를 탑재할 수 있는 재진입 가능한 ICBM, 핵탄두탑재 SLBM 운용이 가능한 신형 잠수함 등이 동시에 선보일 필요가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아직 준비가 되지 못했다는 판단 하에 핵실험을 유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다음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김정은은 2021년 그가 지시한 전략무기 분야 5대 핵심사업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데 주력하였지만, 모두 작전배치가 가능한 수준인지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극초음속 미사일, 고체연료 ICBM, 수중 전략핵무기(핵어뢰), 사정거리 1만 5천km 탄도미사일 등은 모두 외형상 실현되었으나 실제 성능은 미지수이고, 초대형 핵탄두, 핵추진잠수함은 목표연도인 2016년까지 완성 여부 자체가 불투명하다. 북한은 지난 9월 8일 전술핵 공격이 가능한 신형 잠수함 ‘김군옥 영웅함’을 진수했다고 발표했다. 이 잠수함은 외형상 서로 다른 구경의 SLBM 10기를 발사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기본 선체는 舊소련의 로미오급 잠수함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잠수함 함교 옆에 발사관을 수평으로 설치한 이러한 구조로 잠수함의 생명인 정숙운항이 보장될 수 있고, 발사압을 견딜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이 신형잠수함의 진수는 북한이 당장은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여력이 없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전략무기 개발 5개년 계획안에 핵잠수함을 건조할 능력이 없다면 그 대체재라도 보여줘야 북한 주민들에게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표 1. 김정은이 제시한 전략무기 분야 5대과업과 그 실현 현황

표1
 

결국, 북한은 핵무기가 지니는 정치적이고 심리적인 효과를 활용하여 한국을 압박하는 인지전(認知戰 Cognitive Warfare)을 활발하게 구사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수단의 확보에는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11 북한 내 내부 허위·과장 보고의 가능성 역시 추정할 수 있는데, 김정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가혹한 징벌이나 숙청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내 내부 정책결정체제가 김정은이 선호하는 정보만을 제공하고 허위보고를 걸러내지 못할 경우 김정은이 북한 핵능력에 대한 실제 이상의 과대평가를 내리는 착시현상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노동당 8기 8차 전원회의를 통해 5월 31일 실패로 끝난 군사 정찰위성 발사에 대해 엄중한 질타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다음 위성 발사가 필히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다짐이자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실적 압박과 허위 보고에 대한 경고로도 볼 수 있다.12

 

북한, 가중되는 경로종속성의 딜레마

 
앞서 제기된 불안징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나름의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 난국의 경우 북한체제는 이미 오랜 경제적 문제에 봉착해왔고, 나름대로 내핍(耐乏)에 의한 생존 기법 역시 발전시켜왔다.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도 상징조작을 통한 주민통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론적인 가설(假說)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구체적 징후로 나타나지는 않은 단계이다. 권력엘리트 이반의 징후 역시 외부로는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핵능력 건설에 있어서도 미국까지를 위협할 만한 전력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에 대해 핵협박을 가할 능력은 이미 확보했다고 보아야 한다.

 

표 2. 2020년 이후 북한 대남/대외정책 SWOT 분석

표2

출처: 이 표는 차두현,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와 북핵 협상,” 김흥규 외 『미국 바이든 행정부 시대 미중 전략 경쟁과 한국의 선택 연구』(세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1. 7), p.308의 표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임.

 

북한이 직면한 문제는 체제 위기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정책의 경로가 탄력적이지 못하고 갈수록 한 방향으로의 ‘경로종속성(Path Dependency)’을 띠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13 위의 표는 2020년 이후 2021년 초반까지 북한의 대남 및 대외정책 방향에 대한 SWOT 분석을 행한 결과이다. 2020년 당시 북한은 핵전력 발전, 김정은 권력기반의 유지, 단기적인 측면에서의 경제내구력이라는 강점을 가진 반면, 핵전력 발전 하에서 재래전력에도 일부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부담, 경제발전에 대한 압박, 1인 통치자(수령)에 대한 책임부담을 가중시키는 통치이데올로기를 약점으로 가지고 있었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COVID-19’로 인한 각자도생의 국제정치 속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상대적 무관심, 대중러 관계의 재강화 등이 기회로 작용한 반면,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다양한 국제문제 속에서 대북정책 우선순위의 하락, 대북제재 효과의 누적이라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020년 당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공세적 성과추구’(SO, 강점과 기회를 결합)였다. 발전된 핵능력을 바탕으로 상징적으로 ‘비핵화’에는 동의하지만, 이미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받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는 것이다. 즉,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공격 능력의 상당 부분 감소’ 선에서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은 한국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공세적 성과추구’ 전략이 제대로 먹히지 않을 경우, 북한이 다른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회적 접근전략’(강점과 도전 결합, ST)이 되며, 이는 경우에 따라 언제든 SO로 회귀할 발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강한 의지로 인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대북제재를 상당부분 해제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에도 초반부터 완전한 비핵화 로드맵과 검증수단, 주요 핵시설의 전면 폐기 약속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이 북한의 목표였을 것이다. 즉, ‘단계적·동시적’ 원칙의 관철을 통해 사실상 “핵 능력은 보유하지만 그 이전에 주요한 대북 제재는 해제되는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이다. ‘우회적 접근전략’ 역시 여의치 않으면 북한은 부득이하게 백기투항을 막기 위한 ‘명분 있는 후퇴 전략’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약점과 기회의 결합, WO)이다. 비핵화를 받아들이되 데이터와 인력은 유지하는 수준으로 ‘비핵화’의 수준을 제한함으로써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대신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에 해당하는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다. 또한,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각 국면마다 북한의 이익이 반영될 수 있는 여지를 탐색하게 될 것이다.14

2020년 당시 북한은 백기투항(WT)를 회피하는 선에서 ‘공세적 성과추구’를 최선으로, ‘우회적 접근’을 차선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또한, 상황이 북한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 ‘명분 있는 후퇴’를 통해 정권이나 체제 생존의 보장을 추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내외적 여건도 그리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타결’(grand bargain)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도 아닌, 탄력적이고 실용적인 대북정책을 구사하겠다고 공언했고, 정상회담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북한에 대해 대화의 문이 열려있음을 알렸다. 임기 말 ’종전선언‘에 집착하고 있었던 문재인 정부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비핵화 조건을 미국에 제시하고 한미공조를 약화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경제발전에 대한 압박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당시로서는 평양도 ’COVID-19’ 국면이 3년 이상 장기화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 3년이 흐르는 동안 북한의 대남/대외 정책에 대한 SWOT 요소들의 변화는 결코 북한에게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들이었다. 일부에서 ‘민주주의 對 권위주의’의 대결국면이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과 러시아라는 전통적 우호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한 생존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지적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고 자신들의 경제적 내구력이 급격이 약화된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의 전략경쟁에 몰입하고 있는 중국이 북한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기존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줄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비핵·평화·번영의 기치 아래 원칙에 충실한 대북정책을 추구하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였고, 김정은 자신이 수차례 토로하였듯이 대북제재의 타격 역시 더욱 누적되고 있다. ‘COVID-19’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이 택한 대외적 절연(insulation)과 차단은 북한이 기존에 축적한 그나마의 경제적 자산을 갉아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김정은은 2021년 실패를 자인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상쇄하는 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성공시켜야 할 부담을 안고 있다.

SWOT 환경이 자신들에게 크게 유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오히려 ‘공세적 성과추구’에 집착하는 경로종속성을 보였고, 이는 특히 2022년 하반기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 북한은 대화나 협상을 거부한 채 핵과 미사일 능력 시위에 주력했고, 핵전력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권력엘리트들은 현재의 국면에서 섣불리 ‘우회적 접근’이나 ‘명분 있는 후퇴’를 선택할 경우 그나마 ‘핵 억제력’의 건설을 최대의 치적으로 내세워온 김정은의 통치 기반이 급격히 흔들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미북대화나 남북대화의 재개가 북한의 굴욕적인 양보의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 역시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북한은 2022년의 『핵무력정책법』을 공포하고 2023년 9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9차 회의에서의 개헌을 통해 헌법상 핵무력의 고도화를 명문화했다. 자기의 행동을 스스로 속박하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을 통해 핵개발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노선을 강화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당분간 평양은 미북협상이나 남북대화의 재개보다는 자신들의 핵 능력 시위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미북협상의 경우 2024년 미국 대선의 결과가 확인되기 이전까지는 기다려본다는 복안이 서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결과 트럼프 전대통령의 귀환이 이루어진다면 2018년 싱가포르에서의 미북협상 분위기를 다시 복원해보려 할 것이다. 오히려 대외정책의 측면에서는 러시아 및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더욱 주력하여 자신들의 기회요인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2022년부터 현재의 국제정세를 ‘신냉전’으로 규정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정책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였다. 북한은 민주주의 연대에 대항하는 권위주의 체제간 협력의 동아시아 축으로서 자신들의 가치를 부각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워싱턴선언’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서도 잘 나타난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워싱턴선언’을 자체적으로 비난하는 한편, 이를 비판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응에 대해서도 소개함으로써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정세인식이 일치하고 있음을 과시하였다.15 북한은 9월의 김정은-푸틴 간의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 이외의 또 다른 후원자를 확보하였음을 대내외에 과시하였으며, 특히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에게 연장된 인내를 강요할 명분을 확보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 전장에 대한 군수지원과 러시아의 핵무기 및 미사일 관련 기술을 상호 거래하는 북러협력, 중국의 경쟁심을 자극하여 대규모 경제지원을 유도하기 위한 북중협력은 2023년 하반기에 더욱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북한이 ‘공세적 성과추구’ 전략을 이행하기에 충분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가이다. 2023년에도 만족할 만한 경제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2번째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도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고, 장기간의 경제적 고립으로 인한 여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국 등과의 무역정상화가 시급한 과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핵전력의 건설에 몰입하기에는 경제적·기술적 부담이 만만치 않고, 중국으로부터의 지원을 핵전력 건설에 투입할 경우 이는 심각한 주민불만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의 측면에서도 앞에서 제시한 북한 과학기술자들의 심리적 압박과 임기응변식 성과 과시가 부담이다. 한미 양국이 ‘워싱턴선언’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강화를 추진하는 것 역시 북한에게는 타격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거듭된 한미동맹 이간 시도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에 관한 한미 정상 간의 공감대가 충분하다는 것을 과시했고, 북한 핵위협의 본질에 대해서도 한국과 미국이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핵화 목표에 대한 한미간 이견을 공략한다는 기존의 시도가 먹히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로, 김여정은 4월 29일 『조선중앙통신』과 『로동신문』이 보도한 성명을 통해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워싱턴선언’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집약화된 산물”이며 “적들이 핵전쟁 연습에 광분할수록, 조선반도 지역에 더 많은 핵 전략자산을 전개할수록 우리의 자위권 행사도 그에 정비례해 증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여정은 핵무기 사용시 북한 정권의 종말을 거론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늙은이의 망언”이라고 공격하였고, “미국으로부터 빈껍데기 선언을 ‘배려’받고도 감지덕지해하는 그 못난 인간”이라고 폄훼하는 등의 감정적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적대시 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이것이 명목상의 선언일 뿐이라는 모순적 평가를 내린 것 자체가 북한 지도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받은 심리적 충격이 크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16

김정은 역시 이러한 경로종속성이 지니는 잠재적 위험을 이미 감지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이 금년 7월 무단 월북한 트래비스 킹 미군 이등병을 추방한다는 방침을 9월 27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밝힌 것은 북한 스스로 변화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준비 수순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미북 협상이 현실화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북한이 협상의 복원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핵활동 동결이라는 최소한의 보장이 없을 경우 대화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평양의 입장에서 일시적인 핵동결은 과거에는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었지만, 이미 핵능력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한 현재에는 더 많은 논리적 모순을 감수해야 하고, 주민들을 설득할 논리도 박약하다.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김정은이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피력해온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 역시 김정은의 권위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이 지난 3년간 보여온 경로종속성은 이제 김정은의 선택을 제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대응방향

 
위의 경로종속성을 고려할 때 당분간 북한의 대남정책은 호전성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되고, 2023년 하반기 남북한 관계에서도 대화의 기회보다는 도발의 위험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북한이 가지고 있는 경로종속성의 딜레마를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의 대응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공세적 성과추구’를 위한 최대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는 핵능력이 실제로는 별다른 효용성이 없음을 인식시키는 한편, 북한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는 대결적인 정책이라기보다는 한반도 안보를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남북한 간의 긴장과 대치를 확대할수록 오히려 자신들의 내구력과 생존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북한에게 인식시켜야 그들의 정책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음과 같은 대응방향을 추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

 
1. 확장억제 조치의 조기 강화 추구
 
우선, 가능한 조기에 ‘워싱턴선언’에 포함된 조치들이 가시화되도록 대미 협조를 강화해 나가야 하며, 그래야 북한이 한미동맹의 틈새를 노릴 여지가 줄어들 것이다. 북한은 이미 ‘워싱턴선언’ 발표 이후 확장억제 강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New York Times의 기사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는 확장억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의구심을 증폭하기 위한 포석이라 할 수 있다.17 앞으로도 북한은 외신의 논평에 이어 확장억제 효과의 제한성을 지적하는 한국 국내의 논의와 비판론을 적극 활용하려 할 것이다. 즉, 한국 국내에서도 ‘워싱턴선언’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있음을 소개함으로써 ‘워싱턴선언’에 대한 평가절하를 부추기는 한편, 한국 사회 내의 남남갈등을 증폭하는 효과를 유도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워싱턴선언’에 입각한 전략자산의 정례적 전개, NCG 조기 가동, 한미 간 관련 훈련의 강화 등의 조치가 가시화되는 한편, 전술핵 재배치 등 더욱 강화된 조치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또한,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한미 정상 혹은 한미 고위급 인사 차원에서의 강력한 경고의사 표명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2. 대핵(對核) 능력 조기 확보
 
우리의 대핵 능력(counter-nuclear force capability) 발전을 병행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하여 확실한 대응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북한이 혹시라도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이 봉쇄되며, 이는 북한의 성실한 비핵화를 보장하는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가가 효과에 비해 훨씬 가혹할 것이라고 인식토록 만들기 위해서는 거부적 억제(Deterrence by denial)와 함께 응징적 억제(Deterrence by Punishment)가 작동해야 함을 유념해야 한다. 즉, 북한의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공격을 사전 탐지하고, 이를 무력화하거나 요격하는 체계, 필요할 경우 긴급억제타격(Preemptive strike)을 가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북한의 실제 대량살상무기 사용시 대량보복 및 지도부 제거가 가능한 태세가 고루 확보되어야 한다. 이러한 확장억제 및 대핵능력 강화는 결국 김정은의 군사력 건설 우선정책의 실패 인상을 강하게 각인시키는 것으로 북한 변화의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북한 체제불안 요인들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자각 유도
 
북한 내부가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북한 권력엘리트들과 북한 주민들이 자각하게 만드는 것 역시 필요하다. 김정은의 핵집착 때문에 내핍을 강요당해야 한다는 북한 주민들의 불만, 김정은으로 인해 체제가 궤멸되어 모두가 함께 파멸되는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는 권력엘리트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하는 것은 김정은에게 중요한 부담을 안겨주어 결국 현재와 같은 비타협적 정책을 수정하게 만드는 주요한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공격시 “즉각적, 결정적, 압도적 보복”이라는 ‘워싱턴선언’의 원칙을 향후 한국과 미국의 주요 인사들이 주기적·반복적으로 표명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북한의 도발 지속시 시행할 대북 심리전 증강대책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선별적 재개, 대북 방송 확대 개편,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의 규정 무력화를 통해 북한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 대북 심리전시 북한내 기성세대와는 의식 및 체제 충성도가 상이할 가능성이 큰 북한판 ‘MZ세대’를 공략하는 컨텐츠 역시 집중 개발해야 할 것이다.

 
4. 북한 인권 문제의 부각과 국제적 제재 이행장치의 강화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공조 하에 북한의 약점인 인권 문제를 직접 부각함으로써 북한 정권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 역시 전개해야 한다. 또한, 제재 이행장치의 강화를 통해 기존의 제재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한미 혹은 한미일을 중심으로 EU국가들까지 아우르는 국제적 제재감시망의 강화를 가속화해야 한다. 특히, 최근 북한의 주요 수입원인 가상화폐 해킹과 돈세탁을 차단하는 방법에 대해 국제적 공조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한, 제재에 미온적인 국가나 기업들에 가동할 2차 제재(secondary boycott)에 대해서도 더욱 적극적 행보를 취하도록 미국 및 일본, EU국가들에게 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대북제재 효과에 있어서도 우리 정부 차원에서 제재의 효과가 분명히 발휘되고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여 한국 및 미국 내의 무력감을 불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5. 대화, 제의보다는 압력성 촉구로
 
대북 압력성 조치만으로는 우리 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고른 지지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주기적인 대화 의지의 표명을 통해 현재 한반도 긴장의 책임이 북한에게 있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주지시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남북한 간 『9.19 평양 공동선언』에 명시된 남북 생태협력, 남북 보건협력, 이산가족 등 인도적 협력 등 북한이 약속한 대화 채널을 적극적 가동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대화를 추구할 경우에도 대화가 단순한 대북 유화책이 아니라, 대화 촉구를 통해 북한에 압력을 가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함께 유념해야 할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한미공조를 약화시키고, 한-미-일 3각협력을 조기 이간하기 위해 미북 접촉이나 북일 관계 정상화 교섭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트래비스 킹의 사실상 송환은 북한의 이러한 책략의 준비작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 일본에 대해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지속 강조하면서 남북한 관계와 미북 및 북일 관계의 균형적 운용, 대북 접촉에 대한 정보 및 전략의 공유를 수시로 강조해야 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 대변인 담화,” 『조선중앙통신』(2023.10.4.).
  • 2. “올해 북한 식량작물 451만 톤 생산, 전년 대비 18만 톤 감소,” 농업진흥청 보도자료(2022. 12. 15).
  • 3. Lucas Regifo-Keller, “Lucas Regifo-Keller, rth Korea Is at Its Worst Since the 1990s Famine,”t38 North (January 19, 2023) https://www.38north.org/2023/01/food-insecurity-in-north-korea-is-at-its-worst-since-the-1990s-
    famine/ (최초 검색일: 2023.03.03.). 일부 고위급 탈북자들은 북한 소식통을 인용하여, 북한이 2022년 하반기 중국으로부터의 식량지원을 통해 한숨을 돌렸으며, 11월 이후 북한의 대남 성명이 과격해진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4. 骪북한 항구에 식량 포대 추정 물체 포착…중국서 포대 8천만 개 수입하기도,” VOA (2022. 11. 25).
  • 5. “다시 주목받는 북한 식량난… 군인 배급량 마저 ‘뚝’,” 『조선일보』(2023. 6. 30); “North Korea: Residents tell BBC of neighbours starving to death,” BBC (14 June, 2023).
  • 6. 김일한, “북한은 식량난을 겪고 있을까?,” 『시사 IN』, 829호(2023. 8. 12).
  • 7. 耀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8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 『로동신문』(2023.06.19.).
  • 8. 김김정은 원수님께서 평안남도 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 안석간석지 피해복구현장을 현지지도,”『로동신문』(2023. 8.22).
  • 9. 동반사실 보도는 12월 27일자 『로동신문』에서 이루어졌다.
  • 10. 이영종, “‘존귀하신 자제분’에서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톤다운 된 김정은 딸,” 『시사저널』, 1750호(2023. 04).
  • 11. 양욱, “북한의 최신 핵무기 개발 현황: 핵그림자를 드리우는 북한의 인지전 시도,”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June 29, 2023).
  • 12. 북한은 8월 24일의 2차 정찰위성 발사에도 실패했고, 3차 발사를 10월  으로 예고했다. 북한의 성과 강박관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13. 원래 어떤 한 경로에 익숙해지면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에 집착하는 경향을 뜻하는 ‘Path Dependency’는 우리 말로는 ‘경로의존성’으로 자주 번역된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기존 경로는 벗어나는 것이 현재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고착되었다는 점에서 ‘종속성’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이다. Path Dependency에 대해서는 Martin Stack and Myles P. Gartland, “Path Creation, Path Dependence and Alternative Theories of the Firm,” Journal of Economic Issues, Vol. 37, No. 2 (Jun., 2003), pp. 487-494 참조.
  • 14. 이에 대해서는 차두현,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와 북핵 협상,” 김흥규 외 『미국 바이든 행정부 시대 미중 전략경쟁과 한국의 선택 연구』(세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1. 7), pp. 305-312 참조.
  • 15. “고조되는 비난과 조소, 심각한 우려를 몰아온 괴뢰역도의 구걸행각(1~4),” 『조선중앙통신』(2023.05.01.~05.04).
  • 16.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조선통앙통신사를 통한 입장 발표,” 『조선중앙통신』(2022.04.29.).
  • 17. “고조되는 비난과 조소, 심각한 우려를 몰아온 괴뢰역도의 구걸행각(2),” 『조선중앙통신』(2023.05.02).

About Experts

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