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859 views

‘복합안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21세기 안보의 특징 중 하나는 안보의 영역이 군사 안보와 같은 전통 안보에서 경제와 기술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면서 전방위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추세는 오래전에 발생했고 따라서 포괄적 안보의 개념이 등장한 지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1 하지만 최근 미국과 중국 사이 강대국 경쟁이 심화하면서 군사 경쟁 외에도 경제와 기술 경쟁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전통 안보 영역과 비 안보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복합안보 위기의 시대를 맞아 한미동맹이 글로벌 차원의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미 양국은 이미 2009년 포괄적 전략 동맹 개념에 합의했고 점진적으로 다양한 의제로 협력을 확장해 오고 있었다. 최근에는 의제뿐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더 적극적인 협력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2022년 12월 윤석열 정부가 선보인 인도·태평양 전략은 동맹의 협력 확장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동맹들 사이에 연계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의 아태동맹은 서진하고 있고 나토 동맹은 동진하며 연대를 도모하고 있고, 한미 미일 동맹은 새로운 한미일 동북아 협의체를 발족시켰다. 한미일 협의체는 동북아뿐 아니라 인도·태평양 나아가 전 세계의 안정과 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다. 동맹 협력의 영역·지역·파트너 등이 확장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임에는 분명하지만, 동맹 협력이 확장되면서 다양한 문제도 발생할 수도 있다.

“집단 복원력”은 경제안보 영역으로의 협력 확장·강화를 도모하기 위한 정책 기제로서, 특정 주변국의 경제 및 외교적 보복에 동맹국 및 우방국들이 공동 대응함으로써 개별 국가들의 피해를 복구하거나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글은 우선 동맹 협력의 확장이 초래할 문제를 살펴보고, 그러한 문제에 대한 대응 기제로서의 집단 복원력 논의를 추적해 본다. 한국은 현재 이러한 집단 복원력 기제 참가에 소극적인데, 집단 복원력 확보에 앞장설 필요는 없더라도 집단 복원력 플랫폼 참여를 회피할 이유도 없다.

 

최근 한미동맹 협력 확장의 현황

 
한미동맹을 지구적 차원의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자는 주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 냉전이 종식된 후 전통 안보 외에도 비전통 안보와 인간안보의 중요성이 부각하기 시작했고, 9·11테러 이후에는 미국의 국제 안보 인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자주외교 노선을 표방했던 진보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미동맹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는데,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을 “미래지향적 동맹” “전략적 동맹”으로 발전시키자는 담론을 제시했다. 2008년 한미 양국은 이명박-부시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을 “21세기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이러한 합의를 2009년 이명박-오바마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Joint vision for the Alliance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에 보다 구체화하였다. 10개 항으로 구성된 공동비전에는 한미동맹을 군사동맹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포괄 동맹으로,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시키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대표적인 글로벌 이슈로는 국제·테러·기후변화·인권·에너지 안보 등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존의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해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에서 한미동맹이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모두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역할에 과도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미국 또한 테러와의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었고, 뒤늦게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했지만, 포괄적 동맹 발전에 매진하기는 쉽지 않았던 상황으로 보인다.

포괄적 동맹을 위한 양국의 노력은 문재인·바이든 행정부 하에서도 계속되었다. 2021년 5월 미국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안보 외에도 경제, 기술, 보건, 기후, 원자력, 우주 등 매우 다양한 영역으로 동맹 협력을 확장하기로 합의했다. 2021년 문-바이든 정상회담 선언문은 역대 한미 정상 선언문 중 가장 다양한 영역의 협력에 대한 합의가 명기되었다. 한미 정상 선언문 중 최초로 양국의 대통령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 북한에 대한 종전선언 외교에 함몰되면서, 정상 선언문에서 합의한 한미동맹의 포괄적 동맹 발전을 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비로소 한미동맹이 글로벌 차원의 본격적인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동맹 협력 확장에 따르는 문제점

 
한미동맹이 글로벌 차원의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진화 발전하는 것은 복합안보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맹 협력의 영역과 지역이 확장되면서 동맹 간 갈등의 소지 역시 커질 수 있다.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는 대체로 동맹 협력의 확장 영역 및 지역에 대체로 합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향후 동맹 협력이 어느 영역으로 더 확장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확장된 영역에서의 협력은 어떻게 이뤄내야 하는지에 관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즉, 안보 위기가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동맹이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인식을 같이하지만, 포괄적 전략 동맹의 협력 분야가 넓어진다는 것은 분야별로 동맹 사이에 시각차가 발생할 수 있고, 그만큼 갈등의 소지도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괄적 전략 동맹은 기회이지만 위기 요인으로도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원자력 동맹, 우주 동맹, 기술 동맹, 칩4 반도체 동맹 등 최근에는 동맹이라는 용어가 남발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정치학에서 동맹(alliance)은 매우 협의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동맹은 상호방위조약과 같은 안보 협정으로 맺어진 국가 관계다. 국가들은 공동의 적이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동맹을 체결하는데, 동맹국이 침공받으면 참전해 같이 싸우겠다는 ‘전쟁 공동체(war community)’의 관계가 동맹의 핵심이다. 한 동맹국이 적국으로부터 공격받으면 다른 동맹국이 함께 싸우겠다는 집단방어(collective defense) 기제가 동맹의 핵심 개념이다.2 같은 편을 먹고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겠다는 협정이니 동맹은 국가가 맺을 수 있는 협정 중 가장 중요한 협정이다. 동맹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안보적인 이유로 체결한다.

물론 경제와 안보가 불가분의 관계가 돼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중 경쟁, 코로나19 전염병, 우크라이나 전쟁 등 다양한 이유로 글로벌공급망(GVC)이 교란되고 있고,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적성 국가에 의존할 때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핵심 산업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은 구조적인 요인으로 발생하고 있고 다분히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지만 미국의 정책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EPN)’라는 전면적인 디커플링 정책을 추진하려 한 적이 있다. 국제사회가 호응하지 않자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망 복원력 정책(Supply Chain Resilience)’을 대신 들고나왔다. 최근에는 미국의 대중 경제 안보 정책의 목표가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이라는 점 또한 분명히 했다. 디커플링이 아니고 디리스킹이라고 하더라도 반도체와 같은 핵심 산업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이 믿을 수 있는 국가, 즉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 중심으로 핵심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의도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미국의 공급망 정책은 한국에게 적지 않은 도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급망 정책이 미국 우선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공급망 강화를 위해 도입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 및 과학법 (CHIPS and Science Act)에 한국과 같은 동맹국의 기업에 차별적인 독소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경제정책이 완연히 일방주의 및 보호주의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산업정책 역시 열린 시장주의 국제경제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 보호주의가 횡행하고 세계 공급망이 대부분 분절될 경우, 자급자족의 경제로 살아남을 수 있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경제를 통상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국가는 무역정책과 공급망 정책에 있어서 미국과 입장이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국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의 정책 선택지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 모로 교수에 의하면 대칭적인 동맹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약한 동맹국은 강한 동맹국으로부터 안보 보장을 받는 대신 정책의 자율권을 침해받는 ‘상충 관계(tradeoff)’에 직면하게 된다.3 따라서 자율적으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안보 보장을 확실히 받으려면 해야 할 때가 있다. 추진하고 싶은 정책도 하지 못할 경우도 있다.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약한 동맹국은 강한 동맹국이 안보 공약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방기(放棄)’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방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강한 동맹국의 요구를 수용하다 보면 원치 않는 분쟁에 ‘연루(連累)’될 수 있는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 핵으로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이 한국을 공격했을 때 과연 미국은 “서울을 구하기 위해 뉴욕의 핵 타격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방기에 대한 우려, 이러한 방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한미동맹의 방위 범위를 인도·태평양으로 확장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미국이 대만을 놓고 중국과 전쟁을 벌일 때 한국이 연루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등은 이러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동맹 이론이 잘 정리된 것은 국가 관계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무력 사용 여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맹 이론과 동맹의 기본 작동 원칙이 동맹의 확장된 협력 영역에도 작동하는지는 적잖은 학문적 정책적 함의가 있다.

경제 동맹의 예를 보자. 한국은 미국의 공급망 복원력 정책에 동조해야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관리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동맹 이론은 일단 한국이 처한 딜레마를 잘 설명해 준다. 한국보다 강한 동맹국인 미국의 요구에 정책 자율권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연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초 미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이 참여하는 반도체 협의체에 한국이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적이 있다. 그때 한국의 언론은 이러한 4국의 반도체 연합을 ‘칩(chip) 4 동맹’이라고 부르곤 했다.4 사실 한국이 ‘칩4’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지만, 칩 4 동맹이라는 호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이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칩 4가 진정한 의미의 동맹으로 작동하려면 한국이 가입하고 만약에 중국으로부터 보복당할 때 나머지 3개국, 즉 미국·일본·대만이 ‘참전’해서 ‘경제 전쟁’을 한국과 함께 중국을 상대로 치러줘야 한다. 미국이 이러한 대응에 앞장서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집단방위(Collective Defense)’가 경제 안보 영역에서의 동맹 협력에서도 작동해야 칩4를 칩4 동맹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경제 영역에서의 동맹 협력 역시 “경제 동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게는 사드(THAAD) 배치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에 미국이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사실 중국의 경제 보복에 당한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중국은 국제경제에서 자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이용해 다양한 국가를 대상으로 “경제적 강압 정책(policy of economic coercion)”을 사용해 왔다. CSIS는 한국, 일본, 호주, 캐나다, 리투아니아, 노르웨이, 필리핀, 몽골 등 8개국을 상대로 한 중국의 경제적 강압 정책을 조사했는데, 수출입 통제는 물론 관광객 통제 등 실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상대 국가를 괴롭힌 것으로 나타났다.5 2020년 호주는 코로나19 책임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설전을 벌일 때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중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 후 중국은 호주의 포도주와 랍스터 수입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고 석탄 수입은 아예 금지하는 조처를 했다. 2018년 화웨이의 멍완저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체포한 캐나다에 중국은 카놀라유 수입 금지로 응수했다. 2022년 당시 미국 하원 의장 낸시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했을 때, 중국은 바로 대만의 파인애플 등의 과일과 수산물 수입을 중단하는 조처를 했다. 물론 공식적인 이유는 팬데믹 방역과 해충 방제(pest control)였다. TSMC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희토류 수출을 금지했는데, 이러한 결정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유를 내놓지도 않았다. 궁극적으로 중국은 대만의 대중국 식품 수출 품목 3,000여 개 중 2,000여 개의 품목의 수입 중단 결정을 내렸는데, 대만과 미국은 이에 실효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6

 

집단 복원력(Collective Resilience)과 집단행동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

 
복합안보 위기 시대에 미국과 중국은 전방위에서 강대국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울러 한미동맹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은 이런 추세에 맞춰 글로벌 차원의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가 다양한 영역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자 중국은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 정책으로 이들 국가를 괴롭히고 있다.7 개별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는 각각 따로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고, 미국 역시 사사건건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사후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는 일이다. 최근에는 동맹 협력이 확장된 영역에서 집단방어와 상당히 유사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 복원력(collective resilience) 기제를 작동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8

집단 복원력이라는 개념은 2020년 Japan Times의 칼럼에 처음 등장했다.9 칼럼은 “일본과 미국 그리고 다른 입장 유사국들(Tokyo, Washington and like-minded governments)”이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 복원력 전략(strategy of collective resilience)”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칼럼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전략을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개별 국가가 중국의 강압에 대응하기 어렵고 확장된 영역에서의 동맹 협력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대응 기제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집단 복원력 전략이라는 개념에 담아 제시했다. 보니 글레이저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WTO를 활용하는 집단 복원력 전략을 제시했다.10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빅터 차는 2022년 Foreign Affairs 기고문을 통해 중국의 경제적 강압 정책의 심각성을 다시 환기했고 그 대응 방식으로 집단 복원력 전략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11 보다 구체적으로 빅터 차는 2023년 International Security 기고문에서 집단 강화 전략은 “중국이 경제 강압 정책을 시도할 경우, 중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부과할 것이라는 위협”을 사용한다고 정의했다.12 그는 억지(deterrence) 전략과 마찬가지로 집단 복원력 전략 역시 “불사용(不使用)의 영역(realm of non-action)”에서 주로 작동한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을 “처벌(punish)”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경제 강압에는 반드시 후과(後果)가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signal)”를 발신해 중국의 경제 강압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13 억지가 작동하려면 충분한 “능력(capabilities)”을 구비해야 하고 그러한 능력을 사용할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를 갖추어야 한다. 억지와 마찬가지로 집단 복원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능력과 정치적 의지를 모두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억지’할 수 있다.

경제적 상호 의존 관계는 사실 양날의 칼이다. 밀접한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는 중국이 경제적 강압 정책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강압 정책의 대상국 역시 대중국 연합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면 상응하는 경제적 피해를 중국에도 끼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수단으로 중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지난 몇 년 동안 여실히 보여줬다. 문제는 미국이 미국의 개별 동맹국이나 파트너 국가가 중국의 경제 강압 정책에 희생되거나 강압 정책의 협박을 받을 경우, 대응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있느냐이다. 이러한 질문은 미국의 확장억제에도 제기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둘째, 미국이 능력과 정치적 의지를 모두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미국 혼자 중국의 강압 정책에 대응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결국은 미국과 동맹국이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을 하며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하는데, 여기서 ‘집단행동 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가 발생한다. 1965년 맨서 올슨은 《집단행동의 논리》(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에서 중앙집권화된 권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공통 이익의 발생이 명확한 집단행동조차 조직화하기 어렵다고 설파했다.14 빅터 차 등 미국 학자의 집단 복원력 전략 논의에는 이러한 집단행동 문제가 간과되어 있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는 국제경제 체제에서 모두 중요한 노드(node)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연합전선을 구축한다면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해 상당히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국가가 이러한 집단행동을 조직화할 수 있을까? 역시 미국이 준(準: quasi) 중앙권력으로 행동하여 집단행동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미국이 집단행동을 조직화할 수 있는 능력과 정치적 의지가 있을까?

 

중국 강압 정책 대응 플랫폼

 
미국과 미국의 동맹 및 파트너 국가는 최근 중국의 경제적 강압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체 창설을 도모하고 있는듯하다. 2023년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한 G7 정상회의에서 G7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경제적 강압에 대한 평가·준비·억제 및 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조정 플랫폼을 출범할 것”이고“[이를 위해] G7을 넘어 파트너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천명했다.15 중국이 경제적 강압의 주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플랫폼이 중국을 겨냥했다는 것은 자명했다. G7 이외의 파트너에는 한국이나 호주와 같이 중국의 강압 정책의 대상이었던 G7과 입장 유사국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역시 비교적 분명해 보였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의 피해국이었던 한국으로서는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는 플랫폼 출범 노력을 반겼어야 하는데, 한국 정부의 반응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다수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대통령실은 G7이 히로시마 회의 정상 공동선언문에서 제안한 경제적 강압 대응 플랫폼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KBS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가 “중국을 포함한 특정 국가의 경제적 강압이나 보복 조치에 대비해, 특정 국가들이 협의체를 만들 것이냐는 논의에, 현재 한국이 가담한 사례는 없고 앞으로도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는 것이다. G7 공동선언문은 “‘회원국들만의 결과 문서’라며, 한국이 이에 서명하거나 동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16

한국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의 대표 피해국 중 하나고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집단 복원력이 절실한 나라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G7이 제안한 플랫폼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대통령실의 반응은 상당히 의외다. 추측건대 대통령실은 G7이 제안한 집단 복원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제대로 작동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렇다면 플랫폼에 참여한다고 했을 경우 바로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의 속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G7이 제안한 집단 복원력(collective resilience) 플랫폼은 동맹의 집단방위(collective defense) 공약만큼 강력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임승차 문제, 즉 집단행동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장된 동맹 협력 영역의 집단행동 문제는 글로벌 차원의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의 진화에 하나의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정책제언

 
2023년으로 체결 7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의 전망은 일단 ‘맑음’이다. 동맹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이라고 평가받는 한미동맹에도 위기는 있었다. 동맹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동맹국 간 공통 위협에 대한 인식이 수렴되어야 한다. 2000년대 초 한국과 미국 사이에 공통 위협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 벌어졌다. 미국이 북한과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하는 정도에 비해 북한과 중국에 대한 한국의 위협 인식은 상당히 완화된 상황이었다. 당시 한미동맹이 사사건건 마찰음을 내고 있었던 핵심 이유다. 한미동맹의 장래가 밝은 것은 양국의 위협 인식이 대체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맹의 운영도 어차피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맹 관리를 위한 외교적 노력도 중요하다.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 노력은 지금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정부의 공식 채널을 통한 외교뿐 아니라 민간 부문도 참여해 진행하는 공공 외교 역시 중요하다. 한미동맹은 현재 안보·경제 분야 외에 민간 부문의 협력 또한 도드라진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류와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 때문인지 미국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양국 국민의 동맹에 대한 지지 여론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의 지지 여론은 거의 90%에 육박하고 있다. 양국 국민 모두 연령대가 낮을수록 동맹에 대한 지지가 강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한미동맹의 미래에 청신호다.

여러 긍정적인 신호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을 위협하는 요인도 도사리고 있다. 21세기에는 안보의 영역이 군사 안보와 같은 전통 안보에서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며 전방위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복합안보 위기의 시대를 맞아 한미동맹이 글로벌 차원의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올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동맹 협력의 영역과 지역이 확장되면서 동맹 간 갈등의 소지 역시 커질 수 있다. 동맹 협력의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는 데는 한미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 전선이 형성되고 있는지, 또 어디까지가 전선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미묘한 인식의 차이는 동맹의 결속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이다. 확장된 영역에서의 협력은 어떻게 이뤄내야 하는지에 관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한미 양국은 경제 안보 영역으로의 동맹 협력 확장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지만 경제 안보 협력을 하면서 불협화음을 낸 적이 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확장된 동맹의 협력 영역에서 동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 안보’와 같은 기제가 작동할 수 있느냐이다. 중국은 자국이 국제 경제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이용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 경제적 강압 정책으로 미국의 동맹국을 괴롭혀 왔다. 이러한 경제적 강압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기제로 ‘집단 복원력’이 제시되었는데, 정작 G7이 공동성명에서 집단 복원력 플랫폼을 제안했을 때, 한국은 거리를 두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집단 복원력이 조직화 되어 제대로 작동하려면 중앙 집권화된 권력이 집단행동에 수반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준(準) 중앙권력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굳이 집단 복원력 플랫폼 조직화의 선봉에 설 필요는 없다. 모난 돌이 정을 먼저 맞을 수 있기 때문에, 플랫폼 구축이 본격화될 즈음에 참여해도 된다. 하지만 유사-입장국의 집단 복원력 플랫폼 구축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언행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유사-입장국과 함께 집단 복원력 플랫폼에 참여해 단일 대오를 형성하며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공동 대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이홍기 “포괄안보시대 융합적 안보시스템 구축의 필요성과 추진방향” 한국국가안보·국민안전학회지 2015, vol., no.1, pp. 97-120.
  • 2. Kenneth Waltz,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1979).
  • 3. James Morrow, “Alliances and Asymmetry: An Alternative to the Capability Aggregation Model of Alliances,”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 35, No. 4 (Nov., 1991), pp. 904-933.
  • 4. 우정엽은 칩4 동맹은 한국 언론에서만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팹4(Fab 4)가 더 올바른 표현이라고 하지만 미국의 언론에도 Chip4 Alliance라는 표현은 자주 등장하곤 했다. [세종논평] No. 2022-05 (2022.8.10.).
  • 5. Matthew Reynolds and Matthew P. Goodman, “Deny, Deflect, Deter: Countering China’s Economic Coercion,” March 21, 2023, https://www.csis.org/analysis/deny-deflect-deter-countering- chinas-economic-coercion.
  • 6. See Amy Chang Chien, “First Pineapples, Now Fish: To Pressure Taiwan, China Flexes Ecoꠓnomic Muscle,” New York Times, June 22, 2022, https://www.nytimes.com/2022/06/22/business/china-taiwan-grouper-ban.html.
  • 7. “경제적 강압”은 경제력을 무기로 활용해 “경제 제재(economic sanction)”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부담을 상대 국가에 부과하여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책 행위를 일컫는다. 최근에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 정책이 부각하고 있지만, 미국도 활용해 온 정책 수단이다. 경제적 강압에 대한 논의는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Daniel Drezner, “The Hidden Hand of Economic Coercion,”  International Organization, Vol. 57, No. 3 (Summer, 2003), pp. 643-659.
  • 8. Resilience라는 영어 단어는 한국말로 번역해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충격이나 부상 등에서의 회복력 또는 복원력을 뜻하고 경제학에서는 회복탄력성으로 주로 통용된다. 한국 언론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Supply Chain Resilience 정책을 공급망 복원력 정책으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다. 이 글에서
    도 편의를 위해 collective resilience를 집단 복원력으로 의역해 사용한다.
  • 9. Eric Sayers and Brad Glosserman, “‘Collective Resilience’ Is the Way to Address China Challenge,” Japan Times, August 14, 2020, https://www.japantimes.co.jp/opinion/2020/08/14/commentary/world-commentary/collective-resilienceꠓway-address-china-challenge/
  • 10. Bonnie S. Glaser, “Time for Collective Pushback against China’s Economic Coerꠓcion,” Global Forecast 2021 essay serie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January 13, 2021, https://www.csis.org/analysis/time-collective-pushback-against-chinas-economic-coercion.
  • 11. Victor Cha, “How to Stop Chinese Coercion: The Case for Collective Resilience,” Foreign Affairs January/February 2023, https://www.foreignaffairs.com/world/how-stop-china-coercion-collective-resilience-victor-cha.
  • 12. “Collective resilience uses the threat of punishment with trade retaliation to impose significant and unacceptable costs on China if it attempts to coerce others economically.” Victor Cha, “Collective Resilience: Deterring China‘s Weaponization of Economic Interdependence,”
    International Security (2023) 48 (1): 91–124.
  • 13. 빅터 차는 자신이 제안한 집단 강화 전략을 억지 이론을 동원해 설명하고 있다. Victor Cha, ibid.,
    1. 106.
  • 14. Mancur Olson, Logic of 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Public Goods and the Theory of Groups
    1965.
  • 15. G7, 中겨냥 “경제 강압 대응 플랫폼”… 中, 美마이크론 제재, 동아일보 2023 5 2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498638?sid=100.
  • 16. 대통령실 “G7 중국 견제 공급망에 참여 계획 없어”…오늘 한미일 정상회담, KBS 2023 5 2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6/0011489114?sid=100 대통령실 “G7 창설 경제안보협의체에 참여 계획 없어” News1 2023 05 2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6819010?sid=100.

About Experts

김재천
김재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김재천 교수는 예일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고, 2003년부터 서강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현재 서강대 국제대학원 원장을 맡고 있다. 아울러 국가안보실, 국방부, 통일부의 정책자문위원과 통일미래기획위원회의 국제협력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전에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와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서강대 국제지역연구소장, 조지워싱턴대 시거(Sigur) 아시아 연구소의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덴버대학교 국제대학원 방문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미국외교정책, 미중관계, 동북아국제질서, 남북관계 등을 연구하고 있고 관련해서 다수의 연구물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