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4년 들어 북한의 대남 도발 실태를 분석·평가하고, 하반기 도발 가능성을 전망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상반기 중 북한의 도발은 2단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5월 27일~6월 2일 사이의 도발은 군사정찰위성 발사로 시작해, 오물 풍선 살포와 GPS 전파 교란 공격으로 이어졌으며, 초대형 방사포 무더기 발사도 병행된 하이브리드 도발이었다. 이 기간의 대남 서프라이즈는 당 정치국 회의(5.24) 결정에 따라 남한을 위축시키기 위해 계획된 도발이었다. 반면에 6월 6일~7월 18일 기간 한국 탈북민단체의 전단 살포에 대응한 북한의 오물 풍선 추가 살포는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맞대응(tit for tat) 성격이라는 점에서 이전 시기 도발과 차이가 있다. 북한은 7월 18일 현재 오물 풍선 재살포와 함께 ‘ 하반기 북한의 도발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다.
하반기 북한의 도발 계기는 8월 한미연합연습(Ulchi Freedom Shield, UFS) 무렵, 9월로 추정되는 최고인민회의에서의 헌법개정을 통한 ‘해상국경선’ 공표 시점과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전후를 상정할 수 있다. 하반기 북한의 도발 목표는 우리의 대북정책 변화보다는 대러 밀착과 북중러 연대 등 ‘유리한’ 주변 정세를 틈타 국제사회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 전환 여론을 조성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으로 판단된다. 하반기 북한의 도발은 한국에 대한 재래식 도발에서 시작해 핵 인질 위협으로 발전하면서 ‘추가 핵실험 + ICBM/SLBM 발사‘ 형태로 악화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대남 적대보다 단절에 주력하면서 대중러 연대와 함께 트럼프 2기와의 대화 재개를 모색하고, 내부적으로도 대적교양‧지방공업발전‧국방경제 진흥 등 많은 과제를 벌려 놓고 있다는 점에서 예년보다 도발 유인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지만, 회색지대 도발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북한은 ‘민족‧통일 지우기’에 여념이 없으나, 그럴수록 한국은 북한을 민족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정책, 특히 북한 엘리트와 일반주민의 마음을 사는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한국 대북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냉‧온탕 반복, 일관성 부족에 있다. 대북정책의 국내 정치화를 탈피해 분단 100년을 넘기지 않는다는 장기적 포석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1. 상반기 미사일 시험발사
대남 도발(provocation)은 북한이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전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한정된 군사적·비군사적 위협과 물리적 행동으로 남한의 정치·사회·경제에 부정적 파급 영향을 초래하는 전술의 한 형태다.1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나는 문제 행위는 ‘공격’이지 도발이 아니며 , 도발은 문제 유발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전술 환경으로 이용하는 전략적 사고를 포함한다.2 도발은 또 상대에 대한 구체적인 위협과 물리적 행동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대남 선전·선동에 의한 심리전과 구분되며, 한정적인 위해(危害)에 그친다는 점에서 전면전쟁과 구분된다.3
올해 상반기 북한의 대남 태도를 보면, 전술핵 훈련을 하면서 각종 신무기 개발을 과시하는 패턴은 지난해와 유사하나 연초에 ‘대사변 준비’ 운운했던 것과는 달리 대남 도발 강도가 다소 약해진 가운데 남북 관계 단절과 내부 ‘민족 지우기’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북한의 대남 도발을 핵‧미사일 위협, DMZ‧NLL 인근의 군사적 도발, GPS 교란‧오물 풍선 살포 등 비군사적 도발로 구분할 수 있다. 2024년 들어 대남 도발 실태를 살펴보면, 우선 미사일 시험발사가 지속되었으나 지난해에는 북한이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미사일 위협 능력을 과시하는 데 주안을 둔 것과는 달리4 올해는 무더기 발사가 줄어들고, 신무기 개발을 위한 시험발사가 빈번했다. ‘세일즈용’ 미사일 도발이라는 평가도 있다.5
[표 1] 2024년 1월~7월 북한의 미사일(로켓) 시험발사
올해 들어 DMZ‧NLL 도발은 북한이 대남 차폐시설 설치 혹은 지뢰 매설을 위한 MDL 침범이 있는 정도이며, 한국군이 서북 도서 인근에서 해상 포사격 훈련(6.26) 및 최전방에서의 자주포 발사훈련(7.2)을 6년 만에 재개했지만, 북한은 김여정의 담화(7.8)로 ‘자살적 객기’라고 반발하면서도 물리적 대응을 하진 않았다. 반면에 북한은 남측 탈북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해 지난 5월 28일부터 7월 18일까지 8차례에 걸쳐 2,000개가 넘는 ‘오물 풍선’을 대남 살포한 바 있으며, 7월 16일에는 탈북민단체의 추가 대북 전단 살포에 김여정이 담화에서 “처참하고 기막힌 대가를 각오하라”고 한 만큼 새로운 방식의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2. 상반기 대남 도발 전개과정
김정은은 지난 12월 당 전원회의와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두 개의 적대 국가’ 관계로 규정하면서 ‘남반부 전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를 주장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드러난 북한의 대남 동향은 연초의 적대 의지와는 달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제외하고는 큰 대남 도발 없이 잠잠하다가 지난 5월 말부터 도발을 이어갔다.
올해 북한의 대남 도발은 5월 24일 정치국 회의 및 5월 26일 국방성 부상 담화로 예고되었고, 5월 27일 밤 군사 정찰위성 발사로 시작됐다. 이튿날부터 남한지역으로 ‘오물 풍선’을 살포했으며, 5월 29일부터는 서해를 항해하는 우리 선박을 대상으로 GPS 전파 교란 공격을 시작했고, 5월 30일에는 초대형 방사포 18발을 무더기로 발사했다. 6월 2일이 돼서야 ‘오물 풍선 살포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6월 4일 ‘9.19 남북군사합의 전면 무효화’를 선언했다. 6월 이후는 남한 탈북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응하여 대남 오물 풍선을 살포했다.
1) 도발 예고: 정치국 회의(5.24) 및 국방성 부상 담화(5.26)
5월 말 이래 북한의 대남 도발은 5월 24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5월 25일 노동신문은 정치국 회의에서 “최근 조성되고 있는 군사 정세에 관한 군 총참모부의 종합적인 보고를 청취“했고 “국가의 주권과 안전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공화국 무력의 ‘당면한 군사 활동 과업’이 제시”되었다고 보도했다.6 당면한 ‘군사 과업’이 무엇인지는 다음날 국방성 담화가 다음과 같은 남한의 ‘주권 침해행위’를 지적함으로써 드러났다.7
먼저 “한미 공군은 전시상황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공중 정탐행위를 감행”했다고 했다. 그다음 한국 해군의 기동 순찰로 북한의 ‘해상국경선’ 침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며 “해상주권이 계속 침해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으며 어느 순간에서 수상에서든 수중에서든 자위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정식 경고”한다고 했다. 그리고 끝으로, “국경 지역에서의 빈번한 삐라와 오물 살포 행위에 대해 맞대응할 것”이며 “수많은 휴지장과 오물짝들이 곧 한국 국경 지역과 종심지역에 살포될 것이며 이를 수거하는 데 얼마나 공력이 드는가는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 당 정치국 회의에서 군사 정찰위성 발사 날짜를 5월 27일로 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한국의 반발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위성 발사에 이은 일련의 대남 도발 계획도 정치국 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판단된다. 한미연합군, 한국 해군과 해경의 대북 경계 강화와 국내 탈북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북한의 심각한 도발과 북한 주민 억압에 대한 대응 활동이다.
예고대로 북한은 ‘공중 정탐행위’에 대해서는 ‘초대형방사포 위력사격’으로, 대북 전단 투하에 대해서는 ‘오물 풍선’ 살포로 맞대응했다. ‘해상주권 침해’에 대해서는 서해 GPS 전파 교란 공격을 했으나 “수상 혹은 수중에서의 자위력 행사”를 예고했다는 점에서 전파 교란은 예고편이며 앞으로 헌법개정으로 ‘해상국경선’을 공표한 이후 강도 높은 해상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 담화 주체로 격이 높지 않은 ‘국방성 부상’을 내세운 것도 다음에 위협 수위 제고를 위한 예고편일 수 있다.
2) 외무성 담화, 정찰위성 발사(5.27) 및 방사포 무더기 발사(5.30)
북한은 5월 27일 당일부터 6월 4일 사이에 인공위성을 실은 로켓을 발사하겠다고 국제기구에 통보했다. 북한의 ‘위성’ 발사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일체의 발사를 금지한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불법행위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예고한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국제법이 금지하는 도발 행위인 만큼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면 공중전력에 의한 폭격 훈련을 시행해 대북 억제태세를 보여준다는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위성 발사를 예고한 5월 27일은 서울에서 한일중 정상회의가 열린 날이다. 당일 3국은 4년여 만에 열린 정상회담 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안정‧번영이 공동이익이자 공동책임이라는 것을 재확인”하면서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8 한일중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시간쯤 지난 5월 27일 18시께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외무성 담화를 발표해 공동선언문의 ‘비핵화’ 언급을 “난폭한 내정간섭”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누구든지 우리에게 비핵화를 설교하면서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의 헌법적 지위를 부정하면 주권 침해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지역의 새로운 역학 구도를 구축하는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 대러 밀착을 예고했다.
외무성 담화는 남한에 대한 비난 형태를 빌어 중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점이 특징이다. 중국이 참가한 3국 정상회의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가 거론된 데 대해 반발했다. 김정은은 평소 북한과의 교류 협력 확대와 북중러 공동연대에 소극적인 시진핑 주석의 행태를 내심 못마땅해하다가 시진핑이 총리를 한일중 회담에 보내자 불만을 드러냈다. 그 근거로 북한이 중국이 참석한 회의를 이례적으로 공개 비난한 점, “누구든지”라는 표현으로 ‘비핵화’가 거론된 것에 불쾌감을 드러낸 점, 또 “지역의 새 역학 구도 구축 노력”을 다시 거론해 북중러 연대를 촉구한 점을 들 수 있다.
외무성 담화 직후인 5월 27일 밤(5.27 22:44) 북한은 군사정찰위성을 재발사했다. 지난해 11월 발사한 지 6개월 한국은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지 2분 뒤 북측 해상에서 다수 파편이 탐지되어 폭발한 것으로 보았다. 북한도 ‘실패’를 인정했으며,9 러시아와의 새 기술협력 과정에서 실패했을 수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10
김정은은 5월 28일 국방과학원을 방문해서 그럴 수도 있다며 ‘발사 실패’를 격려하면서 북한의 로켓 발사에 억제 태세를 보여준 남한을 비난했다. 그는 “실패로 위축될 게 아니라 더 분발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한에 대해 “정찰위성발사를 도발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공격편대군 비행 및 타격 훈련이라는 무력시위”를 벌렸다면서 “단호한 행동으로써 자위권”을 보여주겠다고 했다.11 김정은이 국방과학원에서 위성 발사 실패를 격려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자신의 무리한 발사강행 지시로 실패했기 때문일 수 있다. 신형 엔진의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사 예고 첫날 서둘러 정찰위성을 발사해 한일중 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으나 오히려 국제적 망신만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12
한편 북한은 5월 30일 아침 김정은 지도하에 이른바 ‘600mm 초대형 방사포 위력시위사격’을 진행했다. 북한은 이번 발사가 “대한민국 깡패 정권과 괴뢰군대를 정조준”했다며 대남 대응 성격임을 분명히 했다.13 한국군의 공군 편대 비행은 27일 밤인데 시위 사격은 3일이나 지체됐다. 초대형 방사포 무더기 발사는 정찰위성 발사 실패로 인한 체면 손상을 만회하려는 분풀이 의도로 여겨진다. 만약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했다면, 초대형 방사포 18발 발사가 아닌 오물 풍선 살포와 GPS 교란 등 저강도의 회색지대 도발에 그쳤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3) ‘오물 풍선’ 살포와 GPS 전파 교란(5.28~6.2)
북한은 5월 28~29일, 6월 1~2일 사이에 남한 비무장지대 및 수도권 지역에 담배꽁초, 폐종이, 비닐 등 오물과 쓰레기가 담긴 , 이른바 ‘오물 풍선’ 1000여 개를 살포했다. 북한은 3500여 개를 살포했다고 주장했으나, 우리 군은 1천여 개만을 확인한 점에서 3분의 1만 남한으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된다.14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는 지난 5월 10일 탈북민단체가 강화도에서 대형풍선 20여 개를 북한으로 살포한 데 따른 것이나,15 단순한 ‘맞대응’ 성격의 도발이 아니라 앞에서 거론한 국방성 부상 담화처럼 한국 정부를 강압하기 위한 복합 도발의 일환이었다.
김여정은 5월 29일 담화로 ‘오물 풍선 살포가 북한 주민의 표현의 자유’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김여정은 남한이 대북 전단 살포로 북한의 사상과 제도를 헐뜯는 “정치 선동 오물인 삐라장들과 시궁창에서 돋아난 잡사상을 유포하려 했다”면서 북한 “인민을 우롱 모독한 만큼 한국 것들도 당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남 삐라 살포는 북한 “인민의 표현의 자유이며 한국 국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면서 “한국 것들은…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성의의 선물’로 여기고 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고 조롱했다.16
오물 풍선 살포로 차량 유리가 파괴되는 등 남측 재산피해가 이어졌고, 북한의 화생방전 의심으로 한국 사회 내 불안 심리가 확산되었다. 이 무렵에 북한은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6월 2일 밤 북한 국방성 부상 담화는 “한국 것들에게 널려진 휴지장을 주워 담는 노릇이 얼마나 기분이 더럽고 많은 공력이 소비되는지 충분한 체험을 시켰다”라고 하면서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하겠지만 “다시 삐라를 보내면 백배로 오물 풍선을 살포하겠다”고 협박했다.17 한국이 확성기 방송 재개로 대응할 가능성이 거론된 시점이었다.
북한은 2016~2017년에 연중 1천 개가량의 풍선을 살포했으나 , 이번에는 과거 1년 치 오물 풍선을 일주일 만에 뿌렸다. 2020년 6월에 실행하려다 중단했던 총참모부의 ‘풍선 살포 작전’을 실행에 옮긴 듯했다. 남한의 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예민한 반응은 연초 ‘통일 지우기’ 착수와 함께 강화하고 있는 ‘대적 교양’의 한계로 대남 동경심 차단이 쉽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 그 대응 방편으로 ‘오물 풍선’ 살포는 북한 당국의 저급한 수준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웃음거리 소재가 되었다.
한편 북한의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공격은 5월 29일 아침부터 6월 2일까지 이어져 누적 공격 건수가 1천 500건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해도 강령과 옹진이 발신지로 추정되는 전파 교란 신호가 연평‧인천‧강화‧파주의 과기정통부 전파감시시스템에 유입·중단을 반복하다가 6월 3일부터 감지되지 않았다.18 북한의 GPS 전파 교란 공격이 남한에 대해 실제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교란 전파가 산과 같은 지형지물을 넘기 힘들어 수도권 국민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칫 인천 해상을 오가는 여객선과 어선의 내비게이션 오작동으로 인한 해상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4) ‘오물 풍선’ 살포 재개와 ‘새로운 대응’ 위협(6.8~7.18)
탈북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재개됨에 따라 북한의 대응이 다시 이어졌다. 일부 탈북민단체가 6월 6~7일 대북 전단 20만 장이 담긴 대형풍선 20개를 북한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6월 8~9일 사이 북한은 다시 남한으로 ‘오물 풍선’을 살포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다시 대북 전단이 온다면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살포하겠다고 주장한 데 따른 것이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가 재개되자 한국 정부는 8년 만인 6월 9일 저녁 2시간가량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6월 9일 늦은 밤 김여정은 “한국이 삐라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병행하면 새로운 대응을 목격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는 “우리의 대응은 9일 중으로 종료될 계획이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리고 “서울이 더 이상 대결 위기를 불러오는 위험한 짓을 당장 중지하고 자숙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19 김여정은 담화에서 도발 수위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으나 ‘새로운 도발’ 없이 9일 밤부터 10일 아침까지 오물 풍선을 추가로 살포하는 데 그쳤다.
북한이 늦은 밤 서둘러 발표된 담화를 통해 풍선 살포를 “9일 중 종료할 계획”임을 밝히면서 남한에도 “자숙할 것”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의외로 수세적 태도를 보여 사태의 확산을 원치 않음을 드러냈다. 북한지도부 차원에서 확성기 방송에 대한 대응 방침 결정이 지체되었거나, 풍선 살포 등 맞대응에 북한 말대로 많은 ‘공력’이 소요되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푸틴 방북(6.19)을 앞두고 영접 분위기 훼손을 원치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또 한국 정부가 확성기 방송을 2시간 만에 중단하는 등 유연하게 대응한 점도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는 푸틴 방북(6.19) 전후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6월 하순 들어 탈북민단체의 전단 살포, 김여정 담화에 이은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재개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북한은 6월 21일 김여정의 담화로 “하지 않아도 될 일거리 생길 것”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6월 24일부터 사흘간 오물 풍선 살포를 재개해, 5월 28일~6월 26일 한 달 사이에 총 7차례 2천여 개의 오물 풍선을 살포했다.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지속되자 북한은 7월 16일 “삐라가 또 발견”되었다며 “다시금 경고한다. 처참하고 기막힌 대가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고,20 7월 18일에는 여덟 번째의 오물 풍선 살포가 이어졌다.
[표 2] 2024.5.24~7.18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등 대남도발 일지
5) 상반기 대남 도발의 특징
첫째, 지난해와 비교할 때 북한의 대남 도발 강도는 다소 약화되었다. 핵미사일 도발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는 전술핵 공격 훈련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투발 수단개발과 다양한 장소 발사로 한국에 대한 핵 위협 능력을 집중적으로 과시했으나, 올해는 초대형 방사포 무더기 발사가 있었으나 신무기 개발에 주력하는 경향을 보였다. 여타 수단을 통한 대남 도발도 상반기 중 한 차례(5.27~6.2) 공세적 도발을 시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둘째, 5월 말 이후 북한의 도발은 형태와 배경에 비추어 볼 때 두 부류로 구분된다. 5월 27일~6월 2일 사이 한국에 대한 강압을 목표로 기획한 일주일간의 대남 복합 도발, 6월 6일~7월 18일 사이 한국의 전단 살포에 대응해 오물을 투하한 풍선 공방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부류 모두 풍선 살포를 매개로 한 ‘풍선 전쟁’이라는 같으나, 전자는 군사·비군사 수단을 함께 동원한 의도적·계획적인 일주일간의 대남 서프라이즈이나, 후자는 6월 6일~7월 18일 한 달 동안의 오물 풍선 살포는 남한 민간 단체의 전단 살포에 대응한 맞대응(tit for tat) 성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로서는 5월 말 계획적 도발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월 말 이후 일주일간서프라이즈는 군사‧비군사 수단이 뒤섞인 하이브리드(hybrid) 도발로서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전후로 보여준 3주간의 대남 도발보다는 단축되었으나, 한국의 대북 조치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복합 도발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같다.21 다른 점은 2020년 6월의 대남 도발은 미국 대신 남한에 분풀이한 측면이 있으나, 이번 도발은 하반기 강화된 대남 도발의 예고편일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
셋째, 상반기 도발은 희색 지대 도발인 ‘오물 풍선’ 살포가 주류를 이루었다. GPS 전파 교란, 오물 풍선 살포는 전형적인 북한의 회색지대 전술이다. 회색지대란 전쟁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화가 유지되는 것도 아닌 상태를 말하며, 도발의 주체나 원점이 불확실 경우를 가리킨다. 회색지대 도발은 무인기 침투, 사이버 해킹, 가짜뉴스 유포,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 유무형의 작은 공격으로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얼핏 북한의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보다 덜 심각해 보이나, 이번 ‘오물 풍선’ 살포를 통해 드러났듯이 국민의 심리와 군의 사기에 미치는 악영향은 클 수 있다.
북한은 6월 9일에 이어 7월 16일 김여정의 담화로 오물 풍선 살포 외에 ‘새로운 대응’을 예고했다. 남북 간의 ‘풍선’ 공방이 남한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 북한 ‘오물 풍선’ 대남 살포 → 남한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이어지면서 북한은 ‘새로운 대응’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과거 방식대로 확성기 조준 사격, 확성기 설치 인근 지역에서의 무력시위 가능성과 함께 무인기 도발, 강력한 GPS 교란 전파 공격, 화생방 위해 물질이 담긴 풍선 살포 등 남한 사회 민심 교란을 노린 회색 지대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3. 하반기 대남 도발 전망
1) 대남 도발 동기
하반기는 상반기보다 북한의 도발 유혹을 자극하는 정세 조작 유혹 요인이 많다. 북한은 당장 남한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지속에 따른 ‘새로운 방식’의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풍선’ 공방에 대북 확성기 방송과 북한의 ‘새로운 대응’이 가세하면 한반도 긴장은 증대될 것이다. 8월 한미연합연습(UFS) 계기, 9월로 예상되는 헌법개정을 위한 최고인민회의 소집 직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무렵에 북한은 강도 높은 도발 유혹을 느낄 것이다.
북한은 오는 8월 진행될 한미연합훈련 UFS에 대응하는 군사훈련을 할 것이다. 지난해 8월 UFS(8.21~) 때 북한은 ‘남반부 전 영토 평정’을 목표한 ‘전군 지휘훈련’(8.28)과 전술핵 공격 훈련을 재개(8.30, 9.2)했다. 오는 8월 UFS에서는 북한의 핵 공격을 가상한 군사적 조치 등 핵 작전 연습을 처음으로 시행할 예정이라서, 북한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22 북한은 이미 조선중앙통신 논평(5.17)으로 8월의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핵공격 연습’으로 규정하고 “재앙적 후과를 먼저 숙고하라”고 위협했으며,23 한미 정상회담(7.11)을 통한 ‘핵작전 공동지침’ 채택에 대해서는 국방성 대변인 담화(7.13)를 통해 “도발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위험한 행동”이라면서 “경고를 무시하면 치르게 될 대가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라고 위협했다.24 북한은 이번에도 각종 무기체계 과시 및 미사일 도발로 위협 능력을 과시할 것이다.
북한이 헌법에 ‘해상국경선’을 규정‧발표하면 NLL 해역에서의 대남 도발이 불가피해 보인다. 앞에서 거론한 대로 북한은 이미 “수상 혹은 수중에서의 자위력 행사”를 예고한 상태다. 연초에 김정은이 지시한 ‘국경선’ 명기 등을 위한 헌법개정은 6개월이 흘렀으나 아직 공표 조짐이 없다. 김정은은 지난 6월 당 전원회의(6.28~7.1)에서 ‘사회주의헌법을 개정하며 국가의 존위를 제고할 것’을 주문했다는 점에서 예년처럼 9월에 최고인민회의 회의가 소집되어 헌법개정 내용을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북한의 ‘해상국경선’은 NLL 이남에 그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북한이 트럼프 당선을 도우려 ‘10월 서프라이즈’를 준비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으나,25 트럼프와 바이든 대선 후보의 토론회 직후 고령의 바이든 사퇴론이 제기되고 트럼프가 유세 도중 피격받은(7.14) 이후 지지세를 타면서 북한이 트럼프를 도울 일은 없어져 가는 추세이다. 트럼프가 집권 1기와는 달리 대북 관여가 아닌 압박에 치중하면 김정은이 반발하는 도발을 감행할 수 있으나 그 가능성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측의 대북정책이 여전히 ‘비핵화’에 머물러 있으면 핵 군축 회담으로 전환하기 위해 핵미사일 도발로 시위효과를 도모할 것이다.
2) 도발 수위 및 유형
현재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은 남한을 길들이기보다 국제사회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대북정책 전환 여론을 조성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판단된다. 중러는 대미 관계나 우크라전에 매몰돼 북한 비핵화 문제와 멀어져 가는 등 정세가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과 푸틴은 작년 3월 모스크바 회동에 이어 올해 5월 베이징 회동 공동성명에서 ‘쌍중단’과 ‘쌍궤병행’을 거론하지 않는 대신 ‘북한의 정당한 안보 우려에 대한 이해’를 강조했고,26 푸틴은 지난 6월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북러 관계를 동맹관계로 격상시키는 등 중러의 뒷배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북한은 북중러 연대 강화, 미국의 지도자 교체 가능성 등 국제정세 변화를 틈타 ‘ 핵보유국’ 공인을 받기 위한 정세 조작을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차제에 미국 내 ‘북한 비핵화’가 아닌 ‘북한 관리(핵 동결)’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조성되도록 강한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능력은 한계가 있으므로 한국을 핵 인질로 삼아 간접적으로 위협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도발 계기와 노림수로 볼 때 하반기 북한의 도발은 한국을 위협하는 도발부터 시작해 미국 등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핵미사일 도발로 발전할 것이다. 하반기 북한의 도발 최대치(maximum)는 한국 사회에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강력한 프레임을 걸고, 한국뿐만 아니리 미국 조야에도 영향을 미치는 도발을 시도할 것이다.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대적 관계로 전환하고 ‘대사변 준비’를 공언했다는 점에서 위협 수위는 남한 사회 내에 전쟁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미국 사회에도 북한을 달래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도록 ‘위협적’일 것이다.27
만약 북한이 도발을 통해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최대치 도발을 한다면, 저강도에서 고강도로 발전하는 점증형 복합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풍선 살포 공방, 확성기 방송 재개가 MDL 충돌로 비화하거나, ‘해상국경선’ 공표 이후 북한이 예고한 대로 ‘수상 혹은 수중에서의 자위력 행사’(5.26 국방성 부상 담화)로 NLL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하반기에 NLL·MDL 충돌이나 천안함 폭침 유사 도발에서 2015년 8월 북한의 ‘준전시 상태’ 선포 상황으로, 2017년의 빈번한 핵미사일 도발 위협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과거와 같은 단발성 도발로는 한미에 ‘전쟁 대 평화’ 프레임을 걸기가 어려움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북한의 최대치 도발 가능성을 상정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도발 최대치는 ‘MDL/NLL 총·포격 도발 → 준전시상태 선포 + 대미 ‘괌 포위사격’ 위협 → 추가 핵실험 + ICBM/SLBM 발사‘ 형태가 되거나, 상황에 따라 이들 도발 순서를 조절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7차 핵실험 가능성도 있다. 화산-31 비롯한 전술핵을 다종의 투발 수단에 최적의 조건으로 장착하려면 수차례 핵실험으로 성능과 기술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28
3) 도발 자제 요인
북한이 욕심을 내지 않고 유리하게 전개되는 주변 환경을 관리하기 위해 도발을 자제할 수도 있다(도발 minimum 요인). 북한이 8월 한미 UFS에 맞대응하는 수준의 도발에 그치고 대남 위협 수위를 낮추고 정세를 관망할 수 있다. 추세 면에서, 김정은이 연초에 대남 ‘적대적 국가 관계’ 규정에 따라 대남 위협 수위를 크게 높일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난 상반기 대남 도발·위협 추세를 보면 예년보다 다소 낮춘 경향을 보였다는 점도 도발 자제의 근거이다.
특히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주변 정세의 흐름을 불필요한 도발로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할 것이다. 지난 6월 정상회담을 통한 포괄적 협력 확대로 북러 간 주고 받을 일이 많아졌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필요한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긴장을 확대 ·생산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 트럼프가 여전히 ‘김정은과의 좋은 케미스트리’를 거론하고 있으니, 더 유리한 미북 대화 국면을 유도하기 위한 도발 감행 시 오히려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등장할 경우, 김정은에게는 현재의 바이든 행정부보다는 대미 접근이 쉬운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 북한은 미북 대화의 재개를 고려하며 도발 수위를 조절할 것인데, 한국에 대한 회색지대 도발은 지속하지만, 미국을 겨냥한 고강도 도발은 자제할 것이다.
북한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했다는 점도 도발이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김정은의 연초 ‘두 개 적대 국가론’을 주장하면서 ‘남조선 평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를 위협한 것과는 달리 상반기 동안 북한이 대남 조치보다는 내부 조치에 치중하면서 ‘지방공업발전’ 등 주민 불만 무마에 공을 들이는 동향을 보였다. 특히 당 창건 80돌이 있는 내년 하반기, 9차 당 대회가 예정된 2026년 1월로 넘어가면 북한 내부 행사로 도발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 북한의 정세조작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북한을 효율적으로 압박한다면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4. 결론 및 정책 시사점
올해 들어 내외정책 방향이 요동치고 일부 정책은 극단으로 흐르는 등 북한정세의 유동성이 현저해졌다. 정책의 핵심 이슈가 연초 두 개 적대 국가론에서 북중러 연대론과 지방공업발전론을 강조하다가, 5월 말 이후 다시 대남 적대론으로 회귀했다. 6월 말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대남‧대외문제 공개 거론 없이 ‘생산 계획 결사 관철’을 주문했으나, 8월 들어 대적 관계론이 다시 부상할 것이다. 이 같은 북한정세의 유동성은 유리하게 전개되는 대외정세의 이점을 활용하여 악화일로의 내부모순을 봉합하려는 시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반기에도 여러 차례 대남 도발 계기가 예상되나, 김정은이 과거처럼 무모하게 강도 높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북한 당국이 연초부터 많은 내외 과제를 쏟아내 대남 도발은 부차적일 수 있다는 인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북한은 헌법개정, 통일 지우기, 대적 교양, 12개 중요고지 점령, 지방공업 발전 등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대러 밀착, 북중러 연대, 미국의 압박 완화, ‘핵보유국’ 공인 등의 대외과제도 9차 당대회 이전에 일정한 성과 거두어야 하는 것이 김정은 정권의 입장일 것이다. 대남 도발은 이들 내외문제 해결에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도 북한은 남북 관계 ‘적대’ 주장과는 달리 ‘단절’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발 자제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한국의 대북정책은 상반기 중에 북한이 예년과 다른 정세를 보인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여전히 도발할 가능성과 단절에 치중하면서 도발을 자제할 가능성을 모두 상정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해상국경선’ 공표 과정 및 한미 UFS 훈련을 일정한 수준의 도발은 불가피할 것이나, 그 도발의 성격이 남북 관계 단절이나 맞대응 수준에 그치는지, 아니면 현상 변경을 위한 공세적인 도발인지를 따져보면 김정은의 대남정책 전환의 의도가 좀 더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이웃하고 있는 적대적인 정권이 도발을 위협한다면 ‘전쟁할 결심’으로 위협을 차단해야 하나, 때로는 ‘대화할 결심’으로 갈등을 완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초에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 국가’로 규정하고 지난 5월 말 계획적인 복합 도발을 감행한 만큼 ‘9.19 군사합의 전면 무효화’ 조치(6.4)는 북한이 자초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미 북한의 빈번한 위반으로 합의 의미를 상실하고 한국군의 군사적 대응만을 속박하는 합의 무효화는, 북한이 도발하면 전쟁할 결심으로 단호한 대응을 의지를 밝힌 불가피한 조치로 평가된다. 이어 북한의 반복되는 오물 풍선 살포에 한국군이 확성기 방송으로 대응하면서도 송출 시간을 조정한 조치는 북한의 맞대응 강도를 낮추게 만든 유연한 대응이었다.
북한이 남한을 적대관계로 규정한 마당에 한국 정부가 대화할 결심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불필요한 자극으로 갈등을 키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북한은 남한과 ‘동족’이기를 부정했으나, 그럴수록 우리는 북한을 민족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정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한 정권의 행위 주체를 지도자, 엘리트, 일반주민으로 구분할 때 특히, 엘리트와 일반주민의 마음을 사는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한국 대북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냉‧온탕 반복에 있다. 대북정책의 국내 정치화를 탈피해 분단 100년을 넘기지 않는다는 장기적 포석의 대북정책을 구사해야 민족의 미래가 있다.
폐쇄된 북한 사회에 객관적인 사실을 알리는 일은 필요하나, 감정적으로 체제를 비방 중상하는 전단을 살포하는 행위가 바람직한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헌법재판소가 대북전단금지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만큼 정부가 민간 단체에 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나, 헌재의 결정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 과잉 금지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이지, 북한의 맞대응으로 피해가 예상될 때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한 경고까지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북한을 향한 단호한 결기 못지않게 위기를 지혜롭게 관리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끝으로 올해 8월 UFS 때 ‘핵 작전 시나리오’를 포함하기로 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화생방 위협에 대응하는 민간 대피 훈련을 보다 내실 있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민들에게 주변 국가의 사례를 들어 우리 사회가 지나친 전쟁 불감증에 빠져있다는 점과 대피 훈련이 불필요한 위기 조성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북한의 풍선을 통한 화학·세균 유포 가능성과 전술핵 도발 위협, 한국군의 대응능력과 한계, 그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 지역별 대피 장소 지정, 유사시 준비물 등의 교육·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가 주도해 아파트 지하 주차장 등 세대별로 대피 장소를 지정하고 유사시를 대비해 사전 준비할 물품을 알려 주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 국민이 정부와 함께 전쟁에 임할 각오가 되어 있을 때 어떠한 북한의 도발도 막을 수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우리 군은 ‘국지도발’의 개념을 “북한이 침투하는 행위 또는 일정 지역에서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한민국 국민과 국가영역에서 가하는 일체의 위해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합동국지도발대비작전』 교범, 2017, pp. 1~8. 이영규, “북한의 대남 국지도발 행태 변화에 관한 연구”(대전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21.8), p. 2에서 재인용.
- 2. 도발은 ‘전략적 문제 유발 행위’라는 해석도 있다. 문순보, 『북한의 도발 환경 비교 분석』, 세종정책연구 2012-13, p. 8.
- 3. 한기범, “북한 대남전략 변동 및 도발 양상과 한국의 대책”. 김진하 외, 『김정은 정권 대남전략 전환분석』(서울: 통일연구원, 2024), pp. 117~118.
- 4. 2023년 상반기 북한의 전술핵 훈련 및 미사일 발사의 특징은 ▲이동발사대(TEL)는 물론 열차, 산속 및 물속 등 어디서든 발사할 능력, ▲화성 계열을 포함 순항미사일(화살), 핵 어뢰정(해일) 등 다양한 투발 수단을 개발하면서 소형화‧규격화된 핵탄두(화산-31)를 갈아 끼울 수 있는 능력, ▲고체연료 기반 ICBM 발사로 한미의 탐지‧요격도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했다.
- 5. “북 ‘세일즈용’ 미사일 도발…대북 국제제재 더 촘촘히 이행해야,” 『서울경제』, 2024.04.22.
- 6.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0차 정치국회의 진행”, 『노동신문』, 2024.5.25.
- 7. 5월 26일 김강일 국방성 부상 담화는 한미의 공중정찰 활동과 해군‧해경의 해양 순찰, 그리고 탈북 단체의 전단 살포에 반발하면서 상응하는 위협을 예고했다. 담화는 “지난 5월 24일 군사 최고지도부가 적들의 도발적 행동에 공세적 대응을 가하라고 지적했다”면서 “국가 주권과 안전 이익이 침해당할
때 즉시 행동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 한미 공중정찰‧해군 해양순찰에 예민한 반응…‘공세적 대응할 것’”, 『연합뉴스』, 2024.5.26. - 8. 3국은 ‘북한 비핵화를 공동으로 촉구하자’는 의견 수렴이 불발되자 각자의 의견을 담는 형식을 취했다. 한국은 ‘비핵화’를, 일본은 납치문제를 담았고, 중국은 ‘역내 평화와 안정’과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거론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했다. “[전문]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선언문”, 『연합뉴스』, 2024.5.27.
- 9. 북한도 사고 1시간 30여 분이 지난 5월 28일 새벽 0시 22분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 사고 발생” 보도로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신형 위성 운반 로켓이 “1단 비행 중 공중 폭발해 발사가 실패했다“라고 자인하면서 “새로 개발한 액체산소+석유발동기(엔진)의 동작 믿음성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밝혔다.
- 10. 북한은 이번 로켓엔진의 추진체를 종래 ’다이메틸 하이드라진(UDMH) 연로 + 적연질산 산화제‘ 조합에서 ’케로신(석유) 연료 + 액체산호‘ 조합으로 바꾸었다. 케로신과 액체산소 조합 분야의 선진국은 러시아다. 나로호도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으로 이 추진제를 사용했다. 북한이 6개월 사이에 새 엔진을 적용했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이다. 러시아가 새 엔진을 통째로 넘겨주지 않은 이상 무모했다는 평가다. “북한 ‘정찰위성 발사 사고발생…신형로켓 1단 비행중 폭발”, 『연합뉴스』, 2024.5.28.
- 1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국방과학원을 축하방문하시여 하신 연설”. 『노동신문』, 2024.5.29.
- 12. 김정은은 국방과학원에서 “무장장비개발에서 요행수와 투기는 곧 반당적행위이며 교조와 모방, 수입병은 반혁명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 주장은 자력으로의 무기 연구개발을 강조한 것이나, 이번 발사가 러시아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했거나, 러시아제 엔진을 직접 대체한 결과 실패했음을 시사한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위성발사 실패’를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13. 북한이 공개한 발사 사진에는 일렬로 늘어선 이동식 발사대(TEL) 18대가 각기 1발씩 초대형 방사포를 일제히 쏘아 올리는 장면이 담겼다. “600mm 초대형 방사포병 구분대들이 위력시위사격을 진행한 데 대한 보도”. 『노동신문』, 2024.5.31.
- 14. 6월 2일 밤 북한 국방성 부상은 대남 살포 ‘잠정 중단’을 발표하면서 “지난 5월 28일 밤부터 6월 2일 새벽까지 우리는 인간쓰레기들이 만지작질하기 좋아하는 휴지쓰레기 15t을 각종 기구 3천 500여개로 한국 국경부근과 수도권 지역에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2024.6.2.
- 15. 풍선에는 전단 30만 장, K-POP/트로트 등 저장 USB 2천 개 등이 담겼다.
- 16. 김여정 담화 제목은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의 표현의 자유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이다. “김여정, 대남 오물풍선에 ‘성의의 선물…계속 주워담아야 할 것”, 『연합뉴스』, 2024.5.29.
- 17. “북한 ‘쓰레기 살포 잠정 중단…삐라 발견시 다시 잡중 살포”, 『연합뉴스』, 2024.6.2.
- 18. “북 GPS 교란공격 누적 1천500건 육박…일상 피해는 미미”, 『연합뉴스』, 2024.6.3.
- 19. “김여정 ‘삐라·확성기 도발 병행하면 새로운 대응 목격할 것’”, 『연합뉴스』, 2024.6.9.
- 20. “김여정 ‘삐라 또 발견…처참하고 기막힌 대가 각오해야 할 것” 『연합뉴스』, 2024.7.16.
- 21. 북한은 2020년 6월에 남한 탈북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3주간의 대남 보복 행동을 위협했다. 김여정의 전단 살포 비난 담화(6.4)를 시작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6.16), 총참모부의 ‘금강산·개성공단 군사 요새화 및 대규모 삐라 살포’ 위협(6.17), 통전부의 남북 합의 ‘휴짓장’ 주장 담화(6.21) 등으로 이어지다가 남한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자 ‘대남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했다(6.24).
- 22. 한미는 지난해 12월 2차 핵협의그룹(NCG) 회의에서 올해 8월 UFS 때 북한의 핵 공격을 가상한 군사적 조치 등 핵 작전 연습을 처음으로 시행하기로 했고, 6월 10일 3차 핵협의그룹 회의를 통해 북한의 핵공격 감행 시 한국의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핵전력을 통합해 대응하는 가이드라인이 담긴 공동
지침 작성을 완료한 데 이어, 7월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해 한미동맹을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시켰다. - 23. “북, 핵작전 담은 8월 UFS연습에 ‘재앙적 후과 먼저 숙고하라”,『연합뉴스』, 2024.5.17.
- 24. “북한, 한미 핵작전지침에 ‘대가 상상하기 힘들 것’ 위협,” 『연합뉴스』, 2024.07.13.
- 25. “북, 트럼프 당선 도우려 ‘10월 서프라이즈’ 준비 중?”, 『조선일보』, 2024.6.4.
- 26. 주재우, “수교 75주년 북중 빨라지는 외교시계”, 『아주경제』, 2024.6.5.
- 27. 한기범, “북한 대남전략 변동 및 도발 양상과 한국의 대책”. 김진하 외, 『김정은 정권 대남전략 전환 분석』, p. 120.
- 28. 2024년 4월 22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북한의 7차 핵실험 전망과 대응방안’ 주제 NK 포럼 참조. “북한의 7차 핵실험 시기는…‘미대선 전 가능성’ vs ‘더 미룰 것’”, 『연합뉴스』, 2024.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