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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서부터 2020년에 이르는 기간은 김정은 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간 K-M-T 정상외교의 시대였는데, 오늘날 우리 머리 위로는 핵탄두를 탑재한 북한 미사일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인 밥 우드워드가 2020년에 쓴 『격노』(Rage)라는 책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주고받은 27통의 편지가 소개되어서 빙산의 일각이나마 미북 정상외교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게 되었는데, 우리는 K-M-T 정상외교가 심어준 신기루를 돌아보고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 기간 동안 한미동맹은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은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라는 점을 무시했고, 동맹을 이익과 비용의 거래관계로 보는 것 같았다. 6.25전쟁 직후인 195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였는데, 동맹을 거래관계로 생각했다면 미국은 이렇게 가난한 나라와 동맹을 맺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2017년 11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건설비의 90%에 해당하는 97억불을 제공하여 건설한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를 둘러보고 헬리콥터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중 트럼프 대통령은 “고층빌딩들을 봐. 고속도로를 봐, 저 기차를 봐. 이 모든 것을 봐. 우리가 모든 것을 지불하고 있어. 한국이 모든 것을 지불해야 해”라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군인들은 항상 NATO와 한국과의 동맹은 미국이 한 가장 좋은 거래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틀렸어 … 동맹은 끔찍한 거래(horrible bargain)다”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말 한국에 대해 연간 방위비 분담액을 50억불로 다섯배나 올리라고 요구했는데, 이를 두고 존 햄리 CSIS 소장은 “주한미군은 돈을 받고 한국을 지키는 용병이 아니다 … 미국은 자신의 국익을 위하여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고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보다는 김정은과의 회담을 통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고 자화자찬(self-grandiosity)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정책 자문관이었던 에반 메데로스(Evan Medeiros)는 “김정은은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을 농락했고, 이제 트럼프 대통령을 농락하고 있다“라고 평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칭찬했는데, 2018년 7월말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1953년의 정전협정은 단지 적대행위를 중단한 것이므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종전을 선언하면 왜 아직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느냐는 문제가 당장 불거질 수 있고,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나올 수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K-M-T 정상외교 기간 동안 한국은 북한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정찰능력도 미흡하고, 요격미사일, 정밀 타격무기 등의 능력도 확보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을 무리하게 전환하려고 했다. 2018년 9월 뉴욕에서 문 대통령은 미국외교협회(CFR) 행사에 참석하여 “김정은은 젊고, 매우 솔직하며, 공손하고, 웃어른을 공경한다”고 하고 “나는 김정은이 진실되고 경제개발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는데, 블룸버그통신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고 비판했다.

2018년 3월 대북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김정은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같은 동포인데 어떻게 핵무기를 쓰겠습니까”라고 했다는데, 이런 말을 믿었다면 우리는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어 범인을 변호하는 비이성적인 심리현상”인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것이다. 핵무기는 군사적 무기이면서 정치 심리적 무기인데, 김정은은 이를 잘 이용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업적을 보여줘야 하는데, 내세울 만한 것은 없고 북한주민들은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 김정은에게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존재가 정치적 위협이므로 핵무기를 통해 적화통일을 이루면 정권이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이 비핵화를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킬 것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미간의 호흡은 어느 때보다도 잘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다시 가동하는 것에 한미간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이제는 한미간 협의기구를 NATO와 같은 ‘핵기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 NPG)으로 발전시키고, 1991년 우리나라에서 철수했던 전술핵의 일부를 한국에 재배치하고, ‘핵공유’(Nuclear Sharing)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 본 글은 4월 25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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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