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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팔레스타인 최대 이슈는
이스라엘 아니라 지도부 부패
불신과 박탈감 유발의 정치
독립국가 건설 걸림돌로
 
요즘 팔레스타인 주민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슈는 지도부의 부패와 무능이 초래한 내부 문제다. 2021년 12월 팔레스타인정책조사연구소가 서안 및 가자지구 성인 남녀 1270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에게 당면 과제는 부패(26%), 빈곤과 실업(22%), 가자지구 봉쇄(20%), 이스라엘의 점령(16%), 서안 및 가자지구의 분열(12%) 순이었다. 이스라엘과의 대결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점령’이란 응답은 3년 전보다 14%포인트 떨어진 반면 ‘서안 및 가자지구의 분열’이란 응답은 8%포인트 올라갔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뒤로한 채 2020년 아랍 4개국이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한 ‘아브라함 협정’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절반 이상(53%)이 자신의 지도부에 책임이 있다고 봤다. 아브라함 협정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건설 없이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은 없다는 아랍세계의 오랜 금기를 깨뜨린 놀라운 사건이다. 정치 불신과 박탈감에 희망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은 독립국가 건설의 걸림돌을 자신의 지도층이라고 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서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과 1994년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립은 새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 후 25년이 넘도록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불법 정착촌을 건설했고 가자지구 봉쇄와 시위 강경 진압을 이어갔다. 양측은 충돌했고, 특히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희생은 커져만 갔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이스라엘에 맞서 힘과 지혜를 모으는 대신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정치조직 파타흐와 가자지구를 지배하는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하마스로 분열해 자신의 세력 기반을 다지는 데 연연했다.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파타흐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둘의 다툼은 유혈사태로 번졌다. 2007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로 두 조직은 가까스로 통합정부를 구성했으나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원조를 중단하자 재정위기가 불거졌다. 곧 파타흐의 우두머리 마무드 아바스 수반은 새로운 총리를 독단적으로 임명했고 이에 반발한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무력으로 장악했다. 이후 양분된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정쟁에 돌입하면서 선거는 무기한 연기됐고 2010년 이후 의회는 공석으로 남아 있다.

파타흐와 하마스는 첨예하게 대립했고 그들의 군경과 보안기구는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서안지구의 정보국은 시위 진압에 앞장섰다. 2021년 파타흐의 부패를 비판하던 인권운동가가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 사망하기도 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시위를 원천봉쇄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하마스는 2010년대 중반 이래 적법한 절차 없이 반역죄 명목으로 사형을 숱하게 집행해왔다. 어느 곳에도 민생정치는 없었다.

지쳐버린 팔레스타인 주민과 마찬가지로 아랍 형제국들도 더 이상 이스라엘만을 탓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지난달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을 찾아 아브라함 협정 지지를 다시 밝혔다. 다음날 이스라엘이 주최한 안보협력대화에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 이집트 외무장관이 함께 모였다. 관계 정상화를 이룬 이스라엘과 아랍의 외교수장들이 모인 자리에 블링컨 장관도 참석했다. 이를 두고 파타흐는 이스라엘의 점령을 비판했고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연대라며 맹비난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주장은 별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이달 초부터 이슬람의 성스러운 달 라마단이 시작됐다. 가지지구에서는 하마스가 군사 퍼레이드로 그 시작을 알렸다. 서안지구에서는 이곳 출신이 이스라엘 도심에서 총기난사를 벌인 후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시작됐다. 팔레스타인 주민이 희망을 품고 맞이할 넉넉한 라마단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 본 글은 4월 13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