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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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7일 북한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2차 전원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번 회의에서는 2016년 5월 6일~9일 개최된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새로 구성된 중앙위원회1 위원 중 일부를 개ㆍ보선하고, 정치국, 정무국(舊비서국), 당중앙군사위원회, 도당위원회 등 주요 권력기구의 성원도 일부 교체하였다. 또한,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는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정책 관철”이 결의됨으로써 김정은의 ‘핵 강국’ 지향이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라는 점을 재다짐하였다.

많은 분석가들이 이번 전원회의의 특징으로 ‘대대적 물갈이’나 ‘세대교체’, 그리고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과 빨치산세대 가문인 최룡해의 약진을 꼽고 있으며, 이번 회의를 통해 조선노동당이 명실상부하게 ‘김정은 당’으로 변화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외형상 정치국 정위원 5명, 후보위원 4명이 보선(補選)되었으며, 당 중앙위원회 위원 16명, 후보외원 28명이 새로 선출되었다는 점에서 20% 내외의 인력교체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비교적 큰 폭의 물갈이로 비춰질 수 있다. 또한, 김정은의 1인 권력자로서의 위상(당 중앙위원위원장 겸 당 중앙군사위원장) 역시 당내에서 여전히 탄탄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병진노선’ 역시 내부적 추진동력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결국 단기적인 측면에서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을 이번 전원회의에서도 재확인되었다. 다만,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김정은 체제가 그 이전에 비해 더 튼튼해졌다든지, 김정은의 권력엘리트풀이 더 내실화된 것은 아니다. 또한 김정은 체제 하에서 북한의 정책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당 중앙위원회 인사개편 및 정책: 외형과 실제

(1) ‘세대교체’와 김여정 착시효과

무엇보다 대폭적인 물갈이와 세대교체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한 번 살펴보자.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북한 매체에서는 인사개편과 관련하여 주로 보선되거나 신규 임명된 인물들을 내세웠을 뿐, 구체적인 개편 이후의 조직도나 전체 명단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즉, 누가 교체되고 누가 그 자리를 차지했는지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 노동당의 인사개편에서 전체 정치국 위원이나 중앙위원회 위원의 정족수가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이들이 단순히 신규(추가)선출되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숙청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은 인물을 포함하여 계산한 정치국 위원들은 별로 ‘젊어지지’ 않았다. 물론, 이는 구체적으로 정치국 정위원이나 후보위원에서 탈락한 인사들이 밝혀지지 않아서 일부 노령인사들의 탈락이 반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이 진입한 인물들의 연령대가 기존 정치국 정위원이나 후보위원의 평균 연령대와 비슷한 점을 고려할 때, 이 편차는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보자. 정치국 정위원에 신규 진입한 인물들, 즉 박태성(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리용호(외무상), 박광호, 태종수, 안정수(당 중앙위 부위원장) 중 연령이 불명확한 박광호를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의 평균연령은 68세에 이른다. 후보위원들 역시 김여정을 제외하면 평균연령상 기존 인물들에 비해 결코 파격적으로 젊다고 할 수 없다. 2 

연령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이들의 경력이다. 박광호 태종수, 그리고 최휘의 등장을 일종의 파격인사로 분석할 수도 있지만, 이중 경력이 확인되고 경제분야의 중책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는 태종수의 경우 1970년 함경북도 당비서, 1980년 당 중앙위 후보위원(제6차 당대회) 등 무게감있는 경력을 지녔으며, 최휘 역시 1994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부위원장을 역임했다는 점(이 직위는 40대 이상이 되어야 달성이 가능하다)에서 결코 권력 외곽에서 맴돌던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광호의 경우 그 이력이 베일에 쌓여있지만, 이는 김정일 등장 당시의 김두남(金斗南, 인민군 대장)의 경우를 상기하면 설명이 어렵지 않다. 당시 경력이 일천한 것으로 추정된 김두남의 경우 후에 북한 관련 정보가 쌓임에 따라 충분히 권력핵심부 진입이 가능한 인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새로이 떠오른 대부분의 인물들은 김정은 등장 당시에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했을 뿐, 북한 권력의 동심원에 이미 접근했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권력엘리트’나 파격적 ‘발탁인사’라기보다는 오히려 북한판 ‘회전문인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30세에 불과한 것으로(87년생~89년생 등 다양한 추정이 존재) 알려지는 김여정의 후보위원 진입이 전체적으로 정치국이나 권력핵심부가 젊어졌다는 착시효과를 유도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정치국 이외에 정무국이나 기타 위원회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다. 다만, 당 중앙위원회 전체 성원의 경우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권력 최상층부에 한해서 ‘세대교체’는 분명히 과장된 측면이 있다.

<표1> 북한 정치국 위원 연령 분포 변화

[이슈브리프] 북한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_표1

 

(2) 최룡해의 재부상과 ‘공포정치’의 순화

오히려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김여정의 부상보다는 최룡해의 입지가 다시 강화된 점이다.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최룡해는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과 당 중앙위원회 부장이라는 두 가지의 자리를 추가함으로써 총 8개에 달하는 당과 정부의 직위를 획득하였다. 또한, 관할 분야의 전문성 면에서 당ㆍ정ㆍ군을 아우름으로써 기존의 2인자 그룹 동료들로 여겨지던 황병서와 김원홍(숙청 추정) 등을 압도하게 되었다. 그동안 직위 하락과 ‘혁명화교육’등을 겪으면서 2인자그룹 내에서의 위치조차 불확실하다고 여겨지던 최룡해가 확실한 그룹 내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최룡해의 재약진은 어쩌면 그의 출신성분과 경력에 비추어서는 예정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2012년 김정은 시대의 개막 당시 2인자 그룹을 형성했던 리영호(인민군 총참모장), 장성택(당 행정부장)에 비해 최룡해의 과오는 ‘수령’의 권위를 정조준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더욱이, ‘백두혈통’을 제외하면 조작된 신화(神話)의 면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정통성의 부각이 쉬운 ‘빨치산세대’의 후예(최현의 아들)라는 배경 역시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기반 강화를 위해 최룡해를 내칠 수 없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5년여에 걸친 연이은 숙청과 ‘공포정치’는 결국 2인자 그룹 전체의 취약성을 낳았고, 이는 김정은의 1인 권력기반 강화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최룡해의 재등장은 2016년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연착륙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015년의 현영철에 대한 충격적 숙청(총살) 이후 김정은의 권력엘리트들에 대한 숙청은 유지되었으나, 2016년에 들어서는 기존과 같은 엽기적 퇴출방식이 동원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에 비해 김여정의 전면등장은 여전히 실질적 권력강화라기보다는 상징성의 측면이 더 강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김여정의 당 후보위원 진입으로 인해 그녀의 지위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며, 경우에 따라 김정은을 백업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등장한다. 그러나 북한 내에서 ‘수령’이 지니는 절대자로서의 의미와 북한 사회 내에 여전히 잔존하는 가부장적 문화를 고려할 때, 이것의 현실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오히려 김여정의 중용(重用)은 금년 2월 이복형 김정남의 피살로 인해 제기되는 골육(骨肉)간의 권력투쟁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같은 생모를 둔 혈육이라는 점으로부터 오는 기본적 신뢰감 이외에도 김여정에게는 ‘백두혈통’간의 우애와 단결이라는 상징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여정의 젊은 나이와 여성엘리트라는 특성 역시 ‘후대사랑’을 수시로 강조해 온 김정은의 노선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점에서 김여정은 ‘백두혈통의 젊은 아이콘’일 수는 있으되, 수령의 대체재 혹은 보완재로서는 여전히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

 

(3) ‘병진 정책’에 대한 권력엘리트들의 마음 다잡기

회의 주기 면에서 이번 제7기2차 전원회의가 최근 상황을 감안하여 급조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대체적으로 연 2회(상반기 및 하반기) 개최되어 왔으며, 오히려 이번 주기를 넘겼을 경우 2016년의 1차 전원회의 이후의 간격이 지나치게 길어질 수도 있었다(이번 전원회의 역시 17개월 만에 개최된 것이다). 다만, 전원회의에서의 논의 내용은 다분히 2017년 한 해의 여건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병진정책’의 변함없는 추진을 결의한 것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정은은 ‘핵 능력의 완성’을 위해 거침없는 폭주기관차와 같이 달려왔다. 2월 12일의 ‘북극성-2형’ 발사실험을 시작으로 북한은 9월 15일까지 총 15차례의 미사일 발사실험을 실시하였고, 9월 3일에는 6차 핵실험을 통해 전례 없이 큰 폭발력을 시현하였다. 그러나 이는 과거와는 다른 미국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에 직면해야 했다. 2017년에만 UN 안보리 제재결의안 3건(2356, 2371, 2375)이 통과되었고, 이 모두는 이제 북한 정권의 ‘돈줄’을 직접 겨냥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2016년 11월 30일의 결의안 2371호에 명시된 석탄 및 주요 광물 수출 금지ㆍ통제에 이어 2017년 9월 12일의 결의안 2375를 통해서는 북한의 두 번째 외화획득품목이라고 할 수 있는 섬유류 수출 길이 막혔다. 뿐만 아니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미국의 대북 강경책 역시 과거와는 달리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 접어들게 되었다.

김정은으로서는 이미 북한 경제운용의 중요한 일부분이 된 시장의 불안심리를 차단하고, 자칫 흔들릴 수 있는 권력엘리트들의 마음을 다잡을 강력한 상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결국 이번 7기2차 전원회의에서의 ‘병진정책’ 재다짐은 북한이 최소한 명목상으로는 핵/미사일 능력 발전의 폭주기관차를 멈추지 않을 것임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시대는 과연 탄탄할 것인가?

이번 전원회의가 단기적 측면에서 김정은 정권의 공고화를 재확인한 것을 부인할 여지는 없다. 그것이 발탁인사든 회전문인사든 간에 김정은은 자신이 원하는 인물을 당의 권력핵심부에 진입시킬 능력과 권능을 보여주었고, 그를 제외한 2인자 그룹의 선두주자 최룡해 역시 ‘수령’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부침(浮沈)을 반복할 수 있다. 비록 ‘백두혈통’이 권력정통성의 최대근원인 북한사회라고는 하지만, 경력과 경험이 일천한 자신의 여동생을 임의대로 당 서열 30위권에 앉힐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그만큼 탄탄하다는 점을 반증한다. ‘공포정치’를 연착륙시킴으로써 점진적 세대교체의 여지도 마련했다.

그러나, 중ㆍ장기적 측면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번 전원회의가 본격적 김정은 시대 출범의 시금석은 아니다. 2013년의 장성택 숙청과 2015년의 현영철 처형, 그를 전후한 군부 재편을 기점으로 이미 김정은 시대는 개막되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이번 권력재편과 ‘병진정책’ 재천명을 통해 남긴 중ㆍ장기적 불안의 여지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미묘하게 나타난다.

첫째, 어느 정도의 미세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김정은 체제의 권력구도는 여전히 전형적인 ‘노인통치’(gerontocracy)의 전형을 보여준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평균연령이 70세를 넘나든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정치체제에서는 보기 힘든 인사적체라 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은이 새롭게 정치ㆍ경제ㆍ사회 정책을 일신할 만한 엘리트군을 아직 충분히 육성하지는 못했음을 암시한다. 과연 현재의 권력엘리트 진용으로 변화무쌍한 대내외 환경을 중ㆍ장기적으로도 돌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둘째, 권력엘리트의 충성도(loyalty)와 결집성은 과거에 비해 오히려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새롭게 충원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은 대부분 30대인 김정은에 비해 3세대 정도가 차이가 나며,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에 비해서도 편차가 심하다. 실질적인 ‘김정은판’ 엘리트가 없는 것이다. 북한은 ‘파벌(faction) 정치’가 ‘종파주의’로 죄악시되어 온 체제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는 중국 및 러시아와도 차이가 있으며, 김일성파 김정일파 김정은파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인물들을 권력전면에 포진시켰다고 해서 그 충성도가 갑자기 증가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권력과 경제적 이익을 매개로 한 충성의 거래는 취약성을 지니기 쉽다. 과거 김일성에게는 빨치산 활동을 같이 한 심정적 결속력이, 김정일 시대에는 그와 권력투쟁을 같이 겪은 동지적 단결력이 존재하였다. 이제 김정은은 전혀 새로운 충성심을 가진 엘리트들과 함께 그의 권력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셋째, 최룡해의 재도약은 김정은의 권력장악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불가피한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즉, 할아버지나 아버지에 비해 카리스마 면에서 한계를 지닌 그로서는 ‘백두혈통’과 일반 권력엘리트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메울 정치적 자원에 한계가 있었으며, 이것이 ‘빨치산혈통’과의 연합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은의 중요한 정책 실패나 외부적 압력의 증대, 주민의 기대와 정권의 충족능력 사이의 괴리와 같은 변곡점이 발생할 경우, 2인자 그룹 내의 미묘한 움직임(집단적 반발 등)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든다.

넷째, 오랫동안 북한의 정치사찰기구로서 수령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해 온 ‘국가안전보위성’의 재편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금년 초 김원홍의 강등과 국가안전보위상 해임이 알려진 이후 국가안전보위성은 그 기관의 위상과 지휘부에 대한 문책 면에서도 적지 않은 파란을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새롭게 선출된 정경택이 김원홍의 후임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그가 얼마만큼 상처받은 국가안전보위성의 위상을 회복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가안전보위성의 불투명한 위상 역시 조기에 해결(이미 해결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되지 않을 경우, 수령을 정점으로 한 통치체제 전반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섯째,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재천명된 ‘병진정책’ 역시 그 자체의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시현에 이어 발 빠르게 제재가 따라붙는 양상이 된 현재의 시점에서 이제는 평양 역시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김정은과 평양이 과거 ‘고난의 행군’을 반복하고자 한다면 견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젊은 ‘수령’은 ‘병진’을 약속했다. 즉, 근근이 국제적 제재에 버티는 수준이 아니라 외부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찬란하게 비상하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완성을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북한 경제가 화수분이 되기 어려운 여건 하에서 말이다. 이 역시 어느 시점에서는 하나의 선택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의 희망대로 핵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경제 자체를 방기하거나 말이다.

위기관리 이론에서 흔히 인용되는 것 중에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이 있다. 위기는 한 순간에 일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적지 않은 사전 징후를 노출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제7기 2차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외형상 김정은 체제의 지속 가능한 공고화를 향한 시금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는 하인리히 법칙의 초기 징후가 시현되는 단초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향후 대북정책에 있어서의 시사점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대북정책 면에서도 몇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을 시사한다. 북한정권이나 체제가 갑자기 급속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책 없는 ‘북한 급변론’이나 ‘북한 위기 필연론’이 우리의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를 강화하여 대북정책을 왜곡시켰던 과거의 경험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우리 정부는 인위적으로 북한 정권의 위기를 조장하거나 흡수통일을 시도할 의사가 없음을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천명한 바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다만, 북한 체제가 외형적인 공고함 이면에 여전히 불안한 징후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 평양정권의 체제 내구력 뿐만 아니라 정책변동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상대방이 지니고 있는 정책추진력의 한계가 감지된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공략함으로써 평양의 태도변화를 유발하는 것은 오히려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관계의 중ㆍ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선택이 될 것이다. 특히,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병진정책’, 보다 정확히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완결에 대한 집착이 현재의 한반도 긴장의 핵심원인이라는 점에서 그 약점을 착실히 공략해 나가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제7기2차 전원회의에서 드러난 대북정책상의 시사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정은이 현재의 ‘병진정책’을 수정하지 않는 이상, 즉 핵/미사일 능력 확장ㆍ심화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김정은과 북한 권력엘리트, 최소한 북한의 최상층 권력엘리트와 중ㆍ하층 엘리트들의 ‘공동운명체’ 인식을 바꾸어나가는 정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즉, 핵개발과 호전적인 대남정책, 북한 사회 내 인권유린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인물들에 대한 규명과 국제적 제재는 향후에도 지속하되, 일반 권력엘리트들에 대해서는 차별화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더욱 세련화되어야 한다. 북한 주민이나 권력엘리트들에 대해 反김정은 행동을 촉구하거나 선동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김정은 개인의 행위와 북한 정권/체제 차원의 행위, 북한 정권 내 일부 엘리트들의 행태와 북한 권력엘리트 전체의 평판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015년에 설치된 ‘북한인권사무소’와의 협력을 통한 북한 정권 특정 엘리트들의 비행에 대한 구체적 근거의 수집과 국제적 제재대상 명단의 정정교화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둘째, 김정은과 그 권력엘리트들이 ‘병진정책’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핵 능력의 확보가 의미 없게 되는 상황을 만들거나, 현재와 같은 여건 내에서는 실질적 ‘경제발전’이 불가능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우선 ‘국제제재’의 꾸준하고 변함없는 이행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대북제재 결의안 2321호 이후의 조치들이  북한 정권의 돈줄과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직접 겨냥하게 된 점을 고려, 향후 있을 수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시도에 상응하여 제재가 거의 실시간대로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평양의 권력엘리트들에게는 적지 않은 압박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에 대해 제재의 최종적 목적지가 북한 정권의 위기가 아닌 ‘태도변화’라는 점을 계속 납득시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레드라인’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탈피하여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완결하더라도 한반도의 전략균형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중요하다. 즉,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 자체와 한ㆍ미 연합 차원의 능력은 향후에도 지속 증강될 것이며,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공약의 신뢰성 역시 강화될 것이라는 인상을 대내외적으로 주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제는 ‘확장억제’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모든 대안을 열린 상태에서 검토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다만, 이것이 ‘전술핵 재배치’와 같은 특정 조치에 대한 강변, 그것도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미국의 ‘확장억제’를 기본개념으로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북한의 핵공격에 대한 보복계획의 수립, 연합/공동 연습ㆍ훈련을 통한 검증 및 보완 등의 조치들이 선행된 이후 최선의 대안이 무엇인지를 공동으로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과 평화 구현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만 10차례의 미사일 발사와 추가 핵실험을 감행한 평양이 우리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 하에서 우리의 선제적 양보나 일방적 구애를 검토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제한된 대북카드와 협상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평양의 핵/미사일 능력시현은 10월을 기점으로 일종의 ‘공세종말점’(culminating point)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시간 싸움은 결코 한국에 불리한 것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는 향후 북한의 태도 변화 여지가 있을 경우, 어떤 조건들을 대화의 진입요건(모라토리엄, 동결/불능화, 국제적 검증 등)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 자체의 대안을 정립하는 것이 1차적이다. 또한, 일정 시점에서는 수령제하의 김정은이 대화에 복귀할 ‘체면치레’(face-saving)의 조치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간 싸움 속에서 가지는 나름의 중심과 여유이다. 이것이 있어야 실제로 평양이 멈추고 싶을 때 적절한 ‘체면치레’를 갖추어주면서 평양을 진정한 협상장에 끌어들일 수 있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제7기 1차 전원회의는 당대회 마지막 날인 5월 9일 개최되었었다.
    • 2. 제시된 인물들의 연령 및 경력은 통일부, 『2017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7)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About Experts

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