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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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6월 16일, 개성공단에 있던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해체했다. 6월 13일, 북한의 노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이하 김여정)이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라고 규정하며,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될 것”이라고 단언한 지 사흘만의 일이다.1 이미 북한 당국이 김여정이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음을 확인한 만큼(6월 6일 북한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 그녀의 담화는 당분간 남북관계의 공식적인 단절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여정은 담화를 통해 “다음번 대적(對敵)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공언하였다. 이로써 2018년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다시 활기를 띄게 된 남북대화와 교류ㆍ협력은 2년여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북한은 6월 13일 담화 이전에도 6월 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모든 남북통신연락선(청와대-노동당 본부청사 직통통신 포함)의 차단을 선언
하였고, 6월 12일에는 장금철 통일전선부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우리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면서 “흘러가는 시간들은 남조선당국에 있어서 참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이라는 위협성 발언을 했다. 최소한 단기적인 측면에서는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다시 고조될 우려가 커지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
는 북한의 잇단 강경발언이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인한 것이며, 오히려 북한이 대화를 간절히 원하는 반증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북한이 선전매체를 통해 우리 정치지도자에 대한 고강도의 모욕성 발언까지를 내어놓은 타이밍은 정부가 대북전단 문제의 해결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시기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 정부의 정책과는 무관하게 남북관계를 ‘대적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제 현 시점에서 우리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한다: (1) 북한의 남북관계 단절에 담긴 계산은 무엇일까? (2) 왜 지금 그런 대안을 선택했을까? (3) 앞으로 북한이 취할 행동들은 어떤 것일까?

 

북한의 대남강경노선 전환의 배경

 

1) 대남 우월성에 대한 자신감과 과시

북한이 남북관계의 일방적 단절을 선언한 배경에는 평양이 가진 대남 우월감과 자신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7년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최소한 전략능력에 관한 한 (한ㆍ미 동맹변수
를 제외하면) 한국을 압도하고 있다는, 주관적인 자기 확신이 김정은 위원장(이하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권력엘리트들에게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이후의 남북협력 추진과정에서 북한의 주기적인 합의정신 훼손 행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지적하고 항의하거나 북한의 이행을 촉구하지 못했다. 금년 3월 이루어진 북한의 잇단 단거리발사체 발사에도 ‘유감 표명’ 정도에 그쳤을 뿐이다. 이는 북한 지도층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했을 수 있다. 남북한 관계의 주도권은 자신들이 쥐고 있으며, 일시적으로 단절되었다고 해도 평양이 원하면 언제든 복원할 수 있다는 인식을 초래한 것이다. 이미 북한은 이러한 인식의 일단을 지난 11월의 김정은 금강산 관광지구 지도방문에서도 드러낸 바 있다. 그가 관광지구내 우리 시설의 철거를 지시한 것은 이제 남북한 간의 경협도 우리의 지원이 아닌, 자신들의 ‘호의’와 ‘시혜’이며, 북한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한국의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2) 대남 불신과 가치 평가절하

김여정은 6월 13일의 담화를 통해 “2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당장에 해낼 능력과 배짱이 있는 것들이라면 북남관계가 여적 이 모양이겠는가”라고 우리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김여정의 이런 태도는 2018년 2월의 대남특사 방문 당시와는 판이하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이미 금년 3월(3월 3일자)의 첫 번째 담화
에서부터 드러났다. 당시 김여정은 북한의 단거리발사체 발사에 대한 우리의 유감 표명에 대해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겁먹은 개”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2 6월 4일
에도 대북전단 문제와 관련, “스스로 화를 청하지 말라”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로동신문』 같은 일자로 보도) “남조선 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금년 들어 발표된 김여정의 세 차례 담화는 처음에는 특정 사건(발사체 유감표명, 대북전단)에 특정한 불만을 표시하다가, 6월 13일에 이르러서는 우리의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공격으로 확대되었다.

6월 12일 북한의 외무상 리선권은 담화를 통해 “우리 공화국의 변함없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밝히고, “지금까지는 현 (미국)행정부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정치적 치적 쌓기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3 즉, 북한은 현재의 미ㆍ북대화 경색의 이유를 미국의 무성의에서 찾고 있으며, 자신들의 기존 노선(일부 핵시설의 해체를 제외한 추가적인 조기 비핵화조치의 거부)을 수정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노선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려면 대북제재의 조기 완화ㆍ해제, 對한국 방위공약 약화 등 미국의 양보가 필수적이다. 북한은 2018년 이후 한국 정부와 남북대화의 가장 큰 효용을 이 면에서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결국 충족되지 못했다는 것이 평양의 가장 큰 불만일 것이다. 2018년 중 한국 정부의 대미 레버리지는 작동하지 않았고, 2019년 6월 30일의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 결국, 2019년 연말을 넘기면서 북한은 한국의 ‘중재자ㆍ촉진자’ 역할에 대한 불신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미국에 의한 국제제재의 해제가 어렵다면 한국이라도 대북제재로부터 이탈함으로써 대북제재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것이 북한이 추구하는 또 다른 목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희망적 사고’마저도 실현되지 않았다.

북한은 4월 한국에서의 총선 결과를 보고 잠시 한국 정부가 과연 저 두 가지의 기대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
를 평가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한국 정부가 제시한 것은 개인차원의 대북관광 재개 검토, 남북 보건ㆍ의료 협력, 남북 도로ㆍ철도 연결 준비 등이었고 이는 평양이 만족할 있는 대안이 아니었을 것이다. 즉, 2018년 이후 북한이 한국에 대해 기대하였던 것은 현실적으로는 실현되기 힘든 것이었으며, 이러한 과잉기대가 결국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맥락은 대북전단이 결정적인 계기보다는 북한에게 대남 강경의사 전달의 명분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3) 내부문제에 주력할 시간 벌기

북한의 내부적 사정 역시 남북대화 단절을 결정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16년부터 김정은이 추진해 온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은 금년이 종료년도(2016~2020)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5개년 계획은 전례 없던 고강도 대북제재 기간 동안 이루어졌다.4 북한이 2018년 이후 유난히 ‘자력갱생’을 강조해온 것 역시 이로 인한 어려움을 감안한 조치였을 것이다. 2020년에 들어서는 여기에 ‘코로나19’ 변수가 추가되었다. 평양으로서는 일단 별 효용 없는 남북대화에 집중하기보다는 내부 경제의 발전에 정치력ㆍ행정력을 쏟을 필요가 있다는 고려를 했을 수 있다. 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북한 주민들에게 비쳐지는 김정은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2018년의 싱가포르 미ㆍ북 정상회담 이후 미ㆍ북 대화 과정은 김정은 최대 치적으로 선전되어 왔고, 2019년의 하노이 2차 미ㆍ북 정상회담 출발과 관련해서 『로동신문』은 이를 “애국헌신의 대장정”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미 북한 사회에도 외부정보의 유입이 시작된 만큼 대북제재의 해제와 경제사정의 개선에 대한 기대도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2019년 이후의 실망스러운 성과는 김정은이라는 ‘수령’의 지도력에 대한 북한 권력엘리트들과 주민들의 의문을 불러일으킬 위험을 지닌다. 북한으로서는 현재 상황이 책임이 김정은 탓이 아니라 다른 어떤 대상 때문임을 강조하고 주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평양은 그 희생양을 한국에게서 찾고 싶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김여정의 6월 4일 담화 이후 북한의 대외선전매체들이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발전정책을 ‘달나라 타령’이라고 꼬집으면서 한국 정부에 대해 ‘사상최악의 무지무능한 정권’이라고 폄훼한 것도 이러한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5

4) 미국에 대한 주위 환기

동시에 남북관계 단절 선언은 대남 메시지인 동시에 대미 메시지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10월 스톡홀름에서의 미ㆍ북 실무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연말에서 2020년 초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양보를 촉구했고 ‘성탄절 선물’, ‘새로운 전략무기’ 등을 언급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
은 변하지 않았다. 더욱이 2020년에 들어 미국 역시 ‘코로나19’의 영향권 내에 들고, 미국 대선전이 시작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점점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 하에서 미국에게 먼저 유화적인 자세로 전환하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명분 면에서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대안이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18일(현지시각) 김정은으로부터 ‘좋은 편지’(nice note)를 받았다고 기자 브리핑에서 밝힌 직후 북한 외무성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한 것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미ㆍ북간의 기싸움의 일단을 보여준다.6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의 존재를 미국측에 각인시키는 것이 현 단계에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 내거나, 혹은 최소한 11월의 미국 대선 이후 미국 행정부(트럼프 행정부든 새로운 민주당 행정부든 간에)를 상대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북한의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권정근이 6월 13일자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우리는 2년 전과도 많이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으며, 계속 무섭게 변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한국 이상으로 워싱턴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7

5) 대북 전단에 대한 북한 측의 달라진 시각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대북전단이 북한의 남북관계 단절의 결정적 요인으로 보기는 힘들다. 김여정이 담화를 통해 ‘최고존엄’인 김정은에 대한 불경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대북전단의 발송은 이미 김정은 집권 초기부터 이루어져 온 일이었다. 또한, 김정은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표현 면에서는 오히려 장성택 숙청(2013년)~공포정치(2015년)의 대북전단 내용이 더 자극적이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대북전단을 문제 삼은 것은 단순한 핑계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대북전단이 주는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 북한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다. 과거에 비해 김정은의 능력에 대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회의가 점증하는 시점이라면 비슷한 내용의 대북전단이라도 더 큰 파괴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북전단의 발송 수단이 변경되어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전단을 접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도 반발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금년 4월에는 한 탈북민 단체가 경기 파주에서 평양 시내까지 소영 무인기(드론)를 보내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데 성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를 시행한 해당 탈북민 단체에 따르면 드론은 평양 시내까지 정상적으로 비행한 후 현지에 낙하하였다고 한다.8

 

왜 지금일까?

 

북한의 남북관계 단절이 다중적인 계산에 따른 것이라면, 그 시기가 왜 ‘지금’인가의 의문도 제기된다. 이미 북한은 2019년 8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 언급된 ‘평화경제’ 구상과 관련,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仰天大笑)할 노릇”이라고 평가하고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고 단언했다.9 또한, 10월 23일 김정은의 금강산 관광지구내 우리 시설의 철거 지시 역시 남북협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의 효용이 별로 없다고 평가한 것은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당시에는 이것이 실질적인 단절 선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미ㆍ북 핵협상의 여지가 남아있는 만큼, 남북관계를 급격히 경색시킬 필요는 없다는 평양의 판단이 개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ㆍ북 협상 타결 가능성이 낮아지고, ‘새로운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2019년 연말의 시한이 지나면서 북한은 남북관계에서도 강경기조로의 급격한 선회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코로나19’의 확산이 또 다른 변수가 되었을 것이다. 일단 공식적 함구에도 불구하고, 북한 자체가 코로나의 영향권에 들게 된 만큼 이를 ‘방역사업’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더욱이 남북관계의 단절이 대미/대외 메시지의 성격도 지니는 만큼, ‘코로나’ 문제로 미국 및 세계의 이목이 온통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별 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 북한은 이미 3월 3일의 김여정 담화를 통해 남북관계에 집착하고 있지 않음을 암시한 바 있다.

이를 고려할 때, 6월이라는 타이밍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세 가지를 고려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금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한 번 미ㆍ북 협상타결을 시도하려면 하반기에 남북관계 단절을 선택
하기에는 부담이 있다.10 남북관계의 경색이 한반도 긴장과 연결되는 만큼, 협상 상대인 미국이 북한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대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둘째, 경제제재가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2021년의 경제상황을 낙관하기 어렵기에 가능한 조기에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즉, 당분간 제재를 버틸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쯤은 대북제재에 대한 강한 저항감을 보여줘야 2020년 말이나 2021년 초 제재 완화ㆍ해제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려면 한국을 초조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11 설사 향후 북한이 먼저 대화를 필요로 해도 이는 언제든 재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셋째, 만약 북한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도발까지를 선택한다고 해도 ‘명분’이 있어야 중ㆍ러 등 주변국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5~6월은 서해안에서의 꽃게 조업이 성어기(成魚期)에 달하는 기간이고, 6월~8월에는 한국 혹은 한ㆍ미 차원의 연습ㆍ훈련(규모가 조정되기는 했지만)이 다시 시작된다. 이를 긴장조성행위로 규정하여 북한의 능력을 시현할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향후의 북한 행태 전망과 우리의 대응방향

 

김여정은 남북관계의 단절을 선언한 6월 13일 담화에서 “세상이 깨여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장을 보자고 들고일어난 전체 인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 “말귀가 무딘것들이 혹여 《협박용》이라고 오산”, “련속적인 행동으로 보복”과 같은 말들을 쏟아내었다. 그동안 북한의 ‘벼랑끝 전술’의 핵심은 어떠한 방침을 단순히 선언하는 것에서 벗어나 가끔씩 실행에 옮긴다는 점이었다. 즉, 행동이 뒷받침된 선언을 통해 자신들의 발표가 공언(空言)이 아님을 보여주는 한편, 이를 매번 시행하지는 않음으로써 상대방의 예측 가능성을 차단해왔다. 단순 위협을 넘어 도발 자체도 마다하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선언한 조치중 남북한 간의 통신연락선 차단과 남북연락사무소 폭파ㆍ해체는 이미 시현되었다. 앞으로 남은 것은 북한이 당분간 우리와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더욱 강력히 보여주는 조치들이다. 우선 평양이 고려할 수 있는 것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정리하는 일이다. 북한은 2008년 금강산 사업이 중단되면서 관광지구내 우리 자산을 동결ㆍ몰수하였다. 개성공단의 경우 2016년 2월 우리 측이 가동중단을 선언하였을 때 자산 동결 및 군사통제 구역 지정을 선포하였다. 이번에는 개성에 위치한 남북연락사무소 자체를 파괴하였다. 따라서 기존의 행태 상 가장 우려되는 것이 개성공단에 위치한 우리 시설ㆍ자산의 몰수 조치이다. 그 다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지역에 위치한 우리 시설의 해체이며, 이는 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평양이 자신의 말을 실제적인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효과를 배가시킨다. 특히, 이미 김정은이 철거를 지시한 금강산 지역 내 우리 시설이 대상이 될 수 있다.

6월 북한이 내놓은 잇단 담화는 그들이 남북한 간에 이미 체결된 합의들을 지킬 뜻이 없다고 선언한 것
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중 『판문점선언』과 『평양 공동선언』 중 남북 교류ㆍ협력 부분은 사실상 진전된 것이 없으므로, 앞으로도 북한이 이행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이행단계에 들어섰던 합의가 파기되어 감을 보여주는 것이 북한의 입장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대남 압박수단일 것이다. 『9.19 군사분야 합의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이 공략할 주요 대상이 될 것이다. 이 합의서와 관련해서는 비무장지대
내 경비초소(GP) 철수 시범 사업,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이 이미 실시된 바 있기 때문
이다. 이와 관련,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공개보도’ 형식으로 발표된 입장문을 통해 “북남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가 다시 진출하여 전선을 요새화”하며, 대남 전단살포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함축하는 바가 적지 않다.12 여기에서 ‘비무장화된 지대’들은 북한이 남북협력사업을 위해 배치되었던 부대를 이동한 개성ㆍ금강산 지역일 것이고, 이는 앞의 사업 정리 부분과 연결된다. 향후 북한은 이로부터 점차 군사적 행동의 강도 역시 격상시켜 나갈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예상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JSA 재무장: 2018년 10월 1일부로 철수하였던 화기 및 탄약 재반입과 북한 측 경비인력의 무장 강화
② NLL 의도적 월선(越線): 서해안의 조업기간을 이용, 중국 어선이나 북한 어선 통제 명목으로 NLL을 월선한 후 월선 이유자체를 우리에게는 밝히지 않을 가능성이 큼. 우리의 NLL 이북 복귀 여부를 무시하고 체류하는 행위를 반복
③ 비무장지대 GP 철거지역에 임시 가설물 설치: 2018년 하반기 실시되었던 시범철거 사업에 따라 각 11개(남북 총 22개)가 철거되었던 북한 측 GP 지역에 다시 임시 가설물을 건설하고 무장인력 상주와 정찰활동 재개
④ 군사분계선(MDL) 및 NLL 인근 전력의 대폭 증강: 개성ㆍ금강산 지역의 병력 재증강 수준이 아니라, MDL과 NLL 인근의 북한 군부대 전반에 대한 무기 및 인력 증강
⑤ 군사합의 금지 내용 적극적 위반: 『9.19 군사분야 합의서』에 의해 금지된 군사분계선(MDL) 5km 이내 포사격 및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훈련 재개.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ㆍ포신 덮개 제거, 포문(砲門) 재개방 등
⑥ 우리 측에 직접적 파급영향이 미치는 군사행동 실시: MDL 및 NLL 지역 포 사격 훈련, 대북전단에 대한 사격을 빙자하여 그 탄두나 잔해가 우리 지역에 떨어지도록 유도하는 행위, 우리 GP에 대한 사격 등
⑦ 우리에 대한 명백한 도발: NLL 우리 지역의 선박이나 영토에 대한 포격, 어뢰를 이용한 선박 공격, 우리 민간 선박 나포 등

위의 행동 중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 긴장조성의 첫 단계로 볼 수 있는 저강도의 조치들에 속하지만, 세 번째에서 다섯 번째는 유사시 우리의 대응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중강도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두 유형의 조치들은 전통적인 도발로서, 북한이 이를 실행할 경우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의 급격한 고조는 불가피하다. 물론, 북한은 이와 함께 기존과 같은 단거리발사체의 발사, 잠수함 발사 미사일(SLBM) 실험과 이를 탑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의 공개 등을 병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은 우리가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대미/대북정책 방향을 추구할 때까지 압박하거나, 혹은 미국의 대북정책 목표(비핵화)를 바꾸려 할 것이다. 다만, 중ㆍ장거리 미사일 실험이나 핵실험 재개와 같은 조치는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 한 11월의 미국 대선까지는 유보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를 넘어 강경기조를 급격히 확대할 경우, 자칫 선거를 앞둔 미국 행정부의 강경대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남북관계 단절 선언 이후에도 “남북이 함께 돌파구를 찾자”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모두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원론은 맞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화와 협력의 강조만을 넘어선 의지의 과시가 필요하다.

첫째, 현 단계에서는 북한의 대남인식과 대남정책 전반에 대한 재평가와 점검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의 남북한 관계에서 북한의 예상 의도나 행태를 너무 선의(善意) 위주로만 읽은 것은 없는지, 김정은의 ‘전략적 결단’에 대해 우리가 바라는 대로의 자의적 해석을 한 것은 아닌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북한이 우리에 대해 지나친 ‘희망적 사고’를 가지도록 남북한 간에 의사소통상의 오해가 있었는지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단기적인 측면에서는 대화와 교류ㆍ협력 지속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북한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의 자의적 해석이 원인이었든 오해에 의한 것이든 간에, 최근 북한의 담화
에서 암시되는 사실은 “우리가 북한이 바란다고 생각한 것”이 “북한이 실제로 원했던 것”과는 상당한 괴리
가 있었다는 점이다. 평양이 남북한 관계에 대한 심각한 불만을 표시하는 현 시점에서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기가 사실상 어려우면서도 우리 중심의 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기만(欺滿)으로 비추어질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 도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일부에서 이야기되는 대북 특사 파견이나 ‘원포인트 정상회담’은 평양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엇박자이다.

셋째, 근본적인 원인은 그동안 미국과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낡은 셈법’을 바꾸라고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은 전혀 변하지 않은 북한의 의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대화와 교류ㆍ
협력도 자신들이 원한다고 해서 언제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남북 관계의 현상이 답답하더라도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혹시라도 대북정책과 관련된 한ㆍ미 공조나 국제공조의 와해를 막을 수 있다. 또한, 북한의 도발이 상당부분 우려
되는 만큼, 평양에 발송하는 메시지에는 대화와 협력 제스추어 이상으로 단호한 대응의지가 담겨야 한다. 우리의 대화와 협력의 추구 의지는 분명하지만 만약 북한의 긴장조성 행위나 도발이 있을 경우, 이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태세를 구비하고 있으며, 이를 강화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대북
정책은 북한이라는 청중 못지않게 우리 국민들도 안심시켜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대북정책에 대한 국론의 분열도 피하기 어렵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김여정의 담화는 6월 14일자 『로동신문』에 발표되었다.
  • 2. “북한 김여정 ”화력전투훈련, 자위적 행동…청와대 사고에 경악,“ 『연합뉴스』, 2020년 3월 4일자.
  • 3. “北, 리선권 담화…[美 맞서 힘키울 것…트럼프에 치적선전 보따리 안줘,” 『조선일보』, 2020년 6월 12일자.
  • 4. UN안보리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북한의 제재 우회/회피 수단을 지적하였지만, 오히려 이는 2016년 UN안보리결의안 2270호 이후의 대북제재 관련 감시체제가 그만큼 정교해졌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만큼, 북한으로서는 수출입에 상당한 제약이 가해진 것이다. 보고서 내용에 대해서는 “北, 남포항에서 정유제품 ‘직구’…中항구서 버젓이 석탄 환적,” 『연합뉴스』, 2020년 4월 18일자.
  • 5. ‘달나라 타령’ 비난은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무지무능한 정권’ 규정은 ‘메아리’를 통해 이루어졌다. “북한 “평양시민 앞 연설 환대에도…남한, 관계개선 능력 없어,” 『연합뉴스』, 2020년 6월 7일자.
  • 6. “North Korea Denies Sending a ‘Nice Note’ to Trump,” New York Times, April 19 2020.
  • 7. 북 외무성 “남한, 비핵화 소리 집어치워야…낄 틈 없다,” 『연합뉴스』, 2020년 6월 13일자. 권정근은 11일에도 북한의 남북 통신선 차단에 유감을 표명한 미국 국무부의 입장에 대해 “입을 다물고 제집안 정돈부터” 잘 하는 것이 “대통령선거를 ‘무난히’ 치르는데도 유익할 것”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北 외무성 [美, 남북관계 시비질할 권리 없다…집안 정돈이나 잘하라],” 『조선일보』, 2020년 6월 11일자.
  • 8. “탈북단체 [드론 띄워 평양에 전단 1만장 살포],” 『문화일보』, 2020년 4월 24일자. 물론 이러한 설명은 어디까지나 기존과는 다른 대북전단의 효율적 배포 수단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북한의 내부정국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불안하다는 전제 하에서 성립된다.
  • 9. 北, 트럼프 믿고 대놓고 대남 조롱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 『중앙일보』, 2019년 8월 16일자.
  • 10.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시작되든 새로운 행정부 출범이 준비되든 간에 미국 측에서도 미ㆍ북 관계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 11. 2018년 판문점 선언(4월 27일) 2주년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보여주지 못 한 만큼, 『9.19 평양공동선언』 2주년에서도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된다면 한국 정부도 대북정책 성과에 못 말라 할 것이고, 기존에는 선택하지 못 했던 대안(국제제재의 완화ㆍ해제 요구, 국제적 제재공조로부터의 이탈 등)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12. 이에 대해서는 “북한군 [합의로 비무장했던 지역에 軍 진출]…개성·금강산 영향,” 『연합뉴스』, 2020년 6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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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