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국방백서’가 지난주에 공개됐다. 문재인 정권의 국방백서는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를 과대 포장하며 북한의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국군의 대적관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 출간된 국방백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임을 분명하게 명시했다. 북핵 위협에 대응할 한국형 3축 체계를 부활시켰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포함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했다. 새 백서는 우리 국방이 정상화하고 있다는 신호탄이다.
국방은 정상화하는데 북핵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8일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차량 15대 이상을 동원해 대대적인 대미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한·미 양국의 반응이 별로 없자, 열병식 열흘 만에 ICBM을 기습 발사했다. 한미동맹은 미국의 B-1B 폭격기와 한국의 F-35 스텔스전투기가 한 팀으로 비행하면서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그러자 북한은 다음 날 아침에 KN-25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했다. 이 방사포에 전술핵탄두를 장착해 한·미 연합의 공군 기지들을 초토화하겠다는 협박도 덧붙였다.
그런데 북한의 협박 내용은 공허하다. 열병식에 10대 이상 동원했던 화성-17형은 간데없고 낮은 성능의 화성-15형을 동원했다. 김정은의 명령에 따라 기습 발사했다는데 9시간여 뒤에 이뤄졌다. 전문가들이 기술적 한계를 지적하자 김여정은 발작 같은 반응을 보였다. 방사포탄에 핵탄두를 장착하겠다는데, 정작 KN-23에 장착할 핵탄두도 못 만들었다.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협박만 남발하는 북한 모습에서 김정은의 초조함을 읽을 수 있다.
최악의 식량난에도 민생 챙기기보다는 성대한 열병식을 중요시하는 게 북한이다. 군사적 성과 외엔 인민들에게 보여줄 게 없기 때문이다. 잔혹함이 미덕인 독재자의 자리를 딸이 물려받을 가능성은 작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북한이 왕정국가로 후대를 이어 계속 핵과 미사일을 부여잡고 우리를 압박할 것이란 사실이 중요하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핵과 미사일만큼은 내려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강한 의지는 언젠가는 현실로 바뀌게 마련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생 핵을 이고 살아야 하는 미래를 후대에 물려줄 순 없다. 북핵을 없애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핵 협박에 대한민국의 존망이 좌우돼선 안 된다. 우리에겐 한미동맹이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 그중에서도 핵우산이 중요하다. 문제는, 미국의 핵전력이 여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의 전술핵 사용을 억제할 미국의 전술핵은 여유로운 편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의 확장억제를 우려하는 것이고, 일본이 반격 능력을 보유하게 된 것도 확장억제에 대한 우려가 그 배경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 좀 더 전향적인 국방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 한국형 3축 체계를 넘어, 북핵 위협에 근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의 핵공유 단계까지 제안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전력을 달라는 게 아니라, 미국 핵전략의 한 축으로 들어가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외교적 노력과 예산 준비 사항 등을 철저히 계산해 둬야 한다. 독자적인 핵무장을 얘기해도 더는 미국이 냉소하지 않을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평화를 원한다면 핵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 본 글은 2월 22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