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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자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2월 16일)을 맞아 개최된 체육행사에 “사랑하는 자제분(김주애)”과 함께 참석했음을 보도했다. 작년 11월 18일 ‘화성-17형’ 발사 현장에 김주애가 첫선을 보인 이후 벌써 여섯 번째 등장이다. 김정은이 공식 행사에 김주애를 동반하는 일이 늘어남에 따라 북한이 김주애를 후계자로 ‘4대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북한 매체들이 김주애를 “존귀한 자제분” 등으로 표현하고, 2월 8일의 ‘건군절’ 열병식에서 주석단에 앉았다는 것 등이 이런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백두혈통’ 수령에 의한 통치를 강조하는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감안하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다른 시각도 가능한데 이는 김주애가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세습을 통해 권력을 계승한 많은 전체주의와 권위주의 국가의 사례를 돌아볼 때 만 19세 나이로 아이티 권좌에 올랐던 장 클로드 뒤발리에도 김주애보다는 위였다. 행사에서 주석단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그 자리는 김주애를 존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인 김정은의 옆자리로 해석됨이 아직은 더 설득력이 있다. ‘존귀한’ 혹은 ‘사랑하는’ 수식어는 백두혈통 전체에 대한 것일 뿐 김주애에 대한 전용어라고 보기는 힘들다. ‘경애하는 지도자’(김정일)나 ‘숭고한 인민지도자’(김정은)와 같은 명칭이 김주애에게 붙는다면 그때는 김주애로의 세습설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주애의 등장은 북한 권력 엘리트와 주민들에게 백두혈통의 가계는 건재하고 대를 이어 지속될 것이므로, 앞으로도 수령에 대해 변함없는 충성과 지지를 보내야 한다는 메시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핵 강성대국’은 세대를 이어 전해져야 할, 타협 불가능한 목표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즉 김주애의 등장은 미래의 계승 준비가 아닌 현재의 불가침성과 숭고함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주시해야 할 점은 북한이 왜 지금 어린아이를 등장시키면서까지 새로운 상징 조작에 몰입하는가이다. 작년 말의 제8기 6차 노동당 전원회의나 금년 초의 최고인민회의 경제실적 보고를 통해 북한은 외형상 무리 없이 경제 성장을 하고 있다고 공언했지만, ‘예산수입계획’(세입)이나 ‘이득금’의 납부실적 미달 등을 볼 때 경제 분야에서의 생산력 회복이 시급하다는 징후를 드러냈다. 이대로라면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2016~2021)에 이어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연간 450만t 내외에 달하는 식량 생산량이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 생산량(평균 370만t 내외)에 비해선 사정이 나은 편임에도 개성 등 대도시에서 식량 부족설이 나돌고 있는 상황은 북한 내 생산, 분배, 관리가 관료 부패 등으로 인해 모두 난항에 빠져 있음을 암시한다.

김주애의 등장은 바로 이런 시점과 맞물려 일어났다. 경제적 난국으로 인한 주민들의 좌절과 불만 증폭, 외형적 충성 경쟁 속의 복지부동과 정보 왜곡, 핵무기를 비롯한 군사력 발전을 제외하면 내세울 것이 없는 업적 등은 김정은으로 하여금 새로운 체제 결속 수단을 강구하도록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핵보유국 지위라도 확보하지 못하면 돌파구가 없다는 절박함에서 변함없는 핵 개발을 부각하기 위해 김주애를 현장에 동반했을 가능성도 있다. 불안의 징후가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북한, 과거에 비해 더욱 높아진 김정은의 핵 집착, 그리고 어린아이까지도 상징을 위해 동원하는 비정상성은 한반도의 더 큰 안보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면밀히 주시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점들이다.

 
* 본 글은 2월 20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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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