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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 민주당이 주도하는 탄핵 조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면서 워싱턴 정가가 혼란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가 매일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분석해보면 탄핵 가능성은 한 달 전에 비해 현저히 증가했다. 지난 9월 말 이후 탄핵지지율 변화 추이는 공화당 지지자의 경우 +3%포인트(8%→11%)이고, 민주당은 +13%포인트(71%→84%), 무소속은 +11%포인트(34%→45%)이다. 공화당의 여론 변화 정도는 민주당 지지층이나 무당파에 비해 낮지만, 변화 조짐은 뚜렷하다. 10월 말 워싱턴포스트와 ABC가 공동 진행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화당 지지율은 역사상 최하인 74%였다. 9월에 같은 기관이 발표한 82%보다 8%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실제 탄핵이 이뤄질 가능성은 아직 희박하다. 우선, 공화당 지도부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켄터키주)는 “탄핵은 실패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공화당)은 “민주당원들이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핵심 지지층에 변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여론조사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 지지율은 9월과 변함없이 64%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경합주 여론은 유동성이 높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가 진행한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위스콘신, 노스캐롤라이나와 애리조나 여론조사(10월 13∼20일)에 의하면 탄핵조사(찬성 50% 대 반대 45%)는 지지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 탄핵(반대 53% 대 찬성 43%)엔 회의적이다. 민주당 지도층은 중도성향 유권자들이 탄핵절차와 조사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과반이 하원의 탄핵조사를 지지했고 무소속 유권자들도 51% 대 43%로 탄핵조사에 찬성표를 던졌다. 탄핵 찬성층의 상당수가 소수 인종(흑인 또는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이라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패배 원인 중 하나가 소수인종 유권자들의 낮은 참여율이었다. 탄핵 정국으로 인해 소수 인종 유권자들의 투표참여율이 높아지면 2020년 대선 판도도 바뀔 수 있다. 그리고 메인주의 수전 콜린스와 애리조나주의 마사 맥샐리, 콜로라도주의 코리 가드너,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톰 틸리스 의원 등 경합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향배도 큰 변수다.

마지막으로, 이번 탄핵 정국이 미국의 보수 주류에게 주는 함의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임기 500일 당시 공화당 지지율은 77%였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 지지율은 87%다. 탄핵조사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화당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데이터를 보면, 미국의 보수당인 공화당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최근 워싱턴에서 만난 워싱턴포스트의 보수성향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미국의 보수주의는 ‘제한된 정부(limited government)’와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트럼프 시대에 그런 가치가 상실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공화당 출신 첫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링컨은 공화당의 가치와 원칙에 따라 개인적 자유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런 신념에 입각해 노예제 폐지를 이끌었으며 경제개혁도 주도했다. 창당 165년 뒤 공화당은 더 이상 이러한 가치들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복지국가지만 미 정부의 채무는 16조 달러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인 20조 달러의 80%를 차지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의 자유와 제한된 정부보다 위대한 정부를 개인의 도구로 삼아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탄핵 정국 속에서 치러지는 2020년 대선이 미국 민주주의와 공화당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트럼프 시대 미국 보수주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지향하는가.

한국의 보수 세력은 3년 전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제로 고민에 휩싸였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보수 주류층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국 보수의 ‘가치 고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한국 보수처럼 길을 잃고 헤맬지, 아니면 오랜 전통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지 불분명하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고민을 바라보며 한국 보수는 과연 어떠한 가치와 원칙으로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미국 보수에겐 내년 11월 대선이 국가 미래를 좌우할 관건적 선거이듯, 한국의 보수에겐 내년 4월 총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북한이나 한반도에만 매몰되지 말고 전 세계적 관점에서 보수의 초심을 재발견하며 미래를 열어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 본 글은 11월 06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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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James Kim
J. James Kim

지역연구센터

J. James Kim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며 Columbia University 국제대학원 겸임 강사이다. Cornell University에서 노사관계 학사와 석사학위를 마치고 Columbia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California State Polytechnic University, Pomona의 조교수(2008-12)와 랜드연구소의 Summer 연구원(2003-2004)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주요연구 분야는 비교민주주의 제도, 무역, 방법론, 공공정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