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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출장 중이다. 이곳 전문가들과 한·미 동맹에 대해 폭넓게 토의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지적사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제일주의 정책이 동맹국에 부담을 주고 있고, 문재인 정부의 북한 중심적 사고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도 같은 결과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논의를 하면 할수록 커지는 걱정이 하나 있다. 한국의 방위 분담(defense burden sharing)에 대한 미측의 기대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공화당이나 민주당 성향을 불문하고 모든 전문가가 한국이 역량에 부합하는 기여를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보다 폭넓은 방위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방위 분담은 동맹국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비태세를 함께 구축하고 서로의 역할을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본질적인 방위 분담에는 익숙하지 않다. 미국과 공동의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북한의 위협 억제를 위해 미측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지원하는 ‘방위비분담특별협정’에 따른 대미 지원 금액을 방위 분담으로 국한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최근 미국이 제안한 것으로 보도된 한미연합사령부의 위기관리 대응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에서 ‘한반도·미국 유사시’로 확대하는 방안도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방어 한 방향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요구를 거절할 명분이 있느냐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지역에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무력공격의 대상에 차이를 둬선 안 되며, 이를 한미연합사의 위기관리 대응 범위에 포함시켜 달라는 요구는 정당하다. 이 원칙을 거부하며 우리만 보호해 달라고 한다면 이는 상호방위조약이 아니라 군사보호조약이다.

물론 미국이 관여된 다양한 분쟁에 한국이 불필요하게 연루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따라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 대안은 정확히 조약에서 규정한 바대로 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군이 공격을 받고 우리가 파병을 검토하는 문제를 동맹조약 상의 의무로 해석하는 건 잘못된 접근이다. 공간적으로 조약이 규정한 ‘태평양지역에서의 무력공격’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병을 하더라도 세계 평화를 위한 한국의 자발적 기여나, 우리의 해상 수송로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행동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미연합사는 상호방위조약에 기반해 설치된 조직으로, 태평양지역을 벗어난 군사작전에는 운용될 수 없다. 그렇다면 태평양지역에서 미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동남아 국가들의 군사력을 고려할 때 이들이 미국을 공격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결국, 미·중 간 전쟁 가능성만 있다. 하지만 미·중 경쟁이 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만 피해갈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동맹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수행하되 더 확실한 대북 억제력 제공과 한국의 대미(對美) 기여에 대한 보상을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비용을 우리가 분담하는 것처럼, 우리의 대미 방어 기여도 미국이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당당히 말해야 한다. 그래야 존중받는 동맹 파트너가 될 수 있다.

 

* 본 글은 10월 31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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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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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