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지난 해 미국 대선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메가 FTA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이하 ‘TPP’)을 포함해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이하 ‘NAFTA’), 한미 FTA 등 기존 FTA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처럼 자유무역을 극도로 반대하는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TPP에 서명했던 국가들, NAFTA의 당사국인 캐나다와 멕시코, 한미 FTA의 당사국인 대한민국 모두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가 그토록 비판해왔던 한미 FTA에 대해서는 당연히 재협상을 통한 미국의 한미 FTA 개정 시도 또는 일방적인 한미 FTA 종료(termination) 통보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입장에서 한미 FTA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한미 FTA는 상품 수지 기준으로 상당한 대미 (對美) 흑자를 안겨 주고 있는 통상 체제이자 굳건한 한미관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미 FTA에 대한 트럼프의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트럼프는 한미 FTA를 ‘미국 내 일자리를 없애는 FTA’라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특히 2016년 6월 28일 유세 시 한미 FTA로 인해 약 10만개의 미국 내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주장한 것에서 잘 알 수 있다.1 한미 FTA가 일자리를 없애는 FTA라는 트럼프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트럼프는 한미 FTA 종료도 얼마든지 감수할 것이다. 역으로 만약 트럼프가 한미 FTA를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하는 FTA’라고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면 상당한 대한(對韓) 상품 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트럼프는 현재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임에도 지지율이 약 44%에 불과할 정도로 비교적 녹록치 않은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이 아직까지 트럼프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대한민국은 트럼프가 미국 내 일자리 창출 문제를 놓고 다급하다는 것을 이용해야 한다. 즉, 대한민국 정부는 한미 FTA로 인해 대한민국 기업들이 미국 내 공장을 만드는 것과 같은 대미 ‘직접’ 투자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트럼프가 자신의 입을 통해 한미 FTA를 일자리를 창출하는 ‘위대한 협정(great agreement)’이라 평가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트럼프의 통상압력을 완화시키거나 피하는 것은 물론 현재의 상당한 대미 (對美) 흑자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2.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한미 FTA의 부정적 측면은 무엇인가?
트럼프를 포함하여 많은 미국인들은 왜 한미 FTA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가? 무엇보다 상품 무역을 기준으로 미국의 10대 교역국 중 오로지 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대한민국만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과 달리 미국은 주요 교역 상대방 국가와 FTA를 잘 체결하지 않는 국가이다. 즉, 캐나다 및 멕시코와 체결한 NAFTA 그리고 대한민국과 체결한 한미 FTA가 바로 미국이 현재 주요 교역 상대방 국가와 체결하고 있는 대표적인 FTA이다.
미국의 FTA 현황2
미국의 상품 수지 현황을 검토해보면 미국이 FTA 체제에 대하여 호감을 갖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 NAFTA가 발효되기 직전인 1993년 미국은 캐나다에 대하여 약 107억 7천만 달러의 상품 수지 적자를 기록했고, 이러한 적자폭은 2005년에 약 784억 8천만 달러까지 늘었다. 1993년 미국은 멕시코에 대하여 약 16억 6천만 달러의 상품 수지 흑자를 기록했으나, 2015년에는 약 606억 6천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미국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한미 FTA가 발효되기 이전인 2000년대 중반 연평균 약 130억 달러 수준의 상품 수지 적자를 기록했으나 2015년에는 약 283억 1천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 미국은 NAFTA와 한미 FTA로 인해 상당한 상품 수지 적자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FTA 체제에 대한 미국 내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대(對)한국 상품 수지
그러나 트럼프는 한미 FTA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미국의 상품 수지 적자폭 자체에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은 중국에 대하여 약 3천 671억 달러가 넘는 상품 수지 적자를 냈는데, 이는 한미 FTA로 인한 미국의 상품 수지 적자의 약 10배 이상에 달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미국의 상품 수지 적자폭만 개선하고자 한다면 대한민국보다 중국에 대하여 통상압력을 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에게 한미 FTA는 미국 내 일자리를 없애는 FTA로 각인되어 있다. 즉, 트럼프는 한미 FTA로 인해 겪고 있는 미국의 상품 수지 적자폭보다 일자리 감소에 더 민감하다. 그러므로 한미 FTA와 일자리 감소는 무관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한미 FTA에 관한 트럼프의 부정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길이 된다.
3. 미국인들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 기업들을 ‘협박’하는 트럼프
2017년 1월 9일 트럼프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만났다. 마윈은 미국 상품이 알리바바 플랫폼을 통해 중국 소비자에게 팔릴 수 있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100만에 이르는 일자리가 창출되는데 기여할 것을 약속했다.3
마윈이 트럼프 앞에서 사실상 항복선언을 한 이유는 지난 2016년 12월 미국 무역대표부가 알리바바가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언급을 했을 뿐 아니라 알리바바가 미국 당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당할 가능성도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마윈으로부터 자신이 목표로 했던 ‘일자리 창출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마윈과의 만남이 ‘훌륭한 만남(great meeting)’이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에게 있어 알리바바의 지적재산권 침해라든가 세법 위반 등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외에도 트럼프는 멕시코에 자동차 생산 공장을 짓기를 원하는 도요타에 대해서도 ‘협박’을 했다. 2017년 1월 6일 오전 3시 14분에 트위터를 이용한 트럼프의 협박은 “(멕시코에 공장을 짓는 것) 절대 안 돼! 미국에 만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국경세를 물게 될 꺼야.[NO WAY! Build plant in U.S. or pay big border tax.]”였다.4 이 또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도요타는 트럼프의 강경한 태도에 굴복하고, 향후 5년 동안 미국에 1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5 미국 기업인 포드조차 멕시코에 공장을 짓는 것을 포기한 상황에서 도요타는 더 이상 트럼프의 공세에 대하여 버틸 힘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트럼프의 협박은 곧 대한민국 기업들 또는 대한민국 정부를 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만약 대한민국 기업들이 현재 한미 FTA로 인해 얻고 있는 상품 수지 흑자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액수의 대미(對美) 직접 투자 의사만 밝힌다 해도 대한민국 기업들도 ‘위대한 기업’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 문제는 트럼프에게 있어 매우 절박한 문제이다. 이러한 트럼프의 상황을 이용하여 대한민국 기업들은 현재 누리고 있는 상품 수지 흑자의 일부를 다시 미국에 직접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 미국 내에 일자리만 창출된다면 트럼프는 한미 FTA로 인해 증가된 상품 수지 적자폭을 얼마든지 감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4. 대한민국의 대미(對美) 직접 투자 현황 속 부각될 수 있는 문제
지난 2012년 한미 FTA가 발효한 이후 대한민국 대미(對美) 직접 투자액은 투자금액 기준으로 2012년 약 56억 6천 3백만 달러, 2015년 약 56억 5천 6백만 달러 등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6 그런데 제조업 분야에 대한 대미(對美) 직접 투자액은 2012년 약 9억 3백만 달러에서 2015년 약 7억 5천 5백만 달러로 줄었다. 이에 반해, 부동산업 및 임대업에 대한 대미(對美) 직접 투자액은 2012년 약 1억 5천 3백만 달러에서 2015년 12억 4천 6백만 달러로 급증했다.7
대한민국의 대미(對美) 직접 투자 현황 (단위: 천 달러)
이러한 대한민국의 대미(對美) 직접 투자 현황은 트럼프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조업 등에 대한 대미(對美) 직접 투자가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2015년 기준으로 약 283억 1천만 달러의 상품 수지 흑자를 내면서도 제조업 분야에 대한 대미(對美) 직접 투자액이 약 7억 5천 5백만 달러에 불과한 대한민국을 트럼프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관련이 없는 부동산업 및 임대업에 대한 대미(對美) 직접 투자액이 전체 대미(對美) 직접 투자액의 약 30% 정도를 차지하는 것은 만약 트럼프가 한미 FTA가 미국에 어떤 이익을 주었는지를 검토한다면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트럼프가 한미 FTA를 일자리를 창출하는 FTA라고만 인식하게 된다면 이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5. 과연 미국은 대한민국의 한미 FTA 이행 미흡을 지적할 것인가?
2016년 3월 미국 상원 재무위원장은 한미 FTA가 잘 이행되고 있지 않다는 예로 다섯 가지를 지적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도 이와 비슷한 시각을 드러낸 적이 있다. 다섯 가지 예는 ①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투명성, ② 대한민국 정부 기관의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사용, ③ 금융정보 해외이전, ④ 법률시장 개방, ⑤ 의약품 가격 결정 과정 등이다.8
하지만 이 다섯 가지 예가 트럼프 입장에서는 한미 FTA의 개정 또는 종료를 시도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 법률시장을 미국의 의도에 부합하게 개방하는 문제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 특히 일반적인 미국 노동자들의 구직과 별로 관련이 없는 문제이다. 미국이 대한민국 정부 기관의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사용 문제를 제기한다 해도 대한민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어떤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도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는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할 뿐 아니라, 사실 이러한 주장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기업의 주장을 미국 의회 또는 행정부가 대신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트럼프는 한미 FTA가 잘 이행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로 제시되고 있는 다섯 가지 예를 논리적인 근거와 함께 제시하기보다 일단 한미 FTA 자체가 ‘재앙’이라는 식의 레토릭을 선제적으로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레토릭에 대한 응답으로 어떤 특정 대한민국 기업이 미국 내 공장 신설과 같은 발표를 하면 한미 FTA를 ‘위대한 협정’이라 추켜세울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마윈에게 했던 방식과 같은 것이다. 즉, 레토릭을 통해 협박하고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여 합의 내용을 추켜세우는 트럼프식 협상 패턴을 이해해야 한다.
6. 트럼프 행정부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정부 및 기업들의 과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우선 한미 FTA와 같은 특정 프레임 자체를 거부하면서 논란을 만드는 트럼프식 레토릭을 이해한다면 이를 역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즉, 대한민국에게 역사상 가장 큰 대미(對美) 상품 수지 흑자를 안겨주고 있는 한미 FTA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 및 기업들은 먼저 트럼프의 입을 통해 한미 FTA는 ‘위대한 협정’이라는 평가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미 FTA를 통해 미국 내 일자리가 어느 정도 창출되었는지를 자료를 통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 기관이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같은 주장은 트럼프의 이목을 끄는 주장이 아니다. 대한민국 기업들이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숫자를 이용하여 주장해야 한다.
대한민국 기업들 입장에서도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미(對美) 직접 투자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아자동차는 2016년 9월 7일 멕시코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이미 지어진 공장을 포기할 수는 없으나 기아자동차 입장에서는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기존 공장에 대하여 트럼프가 레토릭 차원에서라도 만족할 수 있는 투자 계획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이러한 투자 계획 발표 필요성이 언론을 통해 언급되고 있다.9 그리고 투자 계획 발표와 함께 이러한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한미 FTA’ 때문이라는 레토릭을 구사해야 한다.
트럼프의 인식 속에 한미 FTA 때문에 대한민국 기업들의 대미(對美) 직접 투자가 원할해졌다는 인식만 생긴다면 트럼프는 한미 FTA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주장했던 자신의 슬로건에 부합하는 통상 협정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만 만들 수 있다면 한미 FTA 체제는 문제 없이 순항할 것이며, 대한민국도 상당한 상품 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7. 나가며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미국 주도의 통상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만이 통상정책 수립의 기준이 된다. 이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러스트벨트에 대한 보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일자리 창출 필요성에 대한 트럼프의 다급함을 이용해야 한다. 즉,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한민국 기업들은 레토릭 차원에서라도 제조업에 대한 대미(對美) 직접 투자를 발표하고, 대신 한미 FTA 체제를 유지하면서 지금과 같이 높은 수준의 상품 수지 흑자를 유지하면 된다. 이는 트럼프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통상압력을 회피하여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럼프 스스로 대미(對美) 직접 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만든 한미 FTA를 위대한 협정이라 평가하게 해야 한다. 이는 한미 FTA 유지를 통한 한미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한 번 트럼프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이 ‘위대한’ 국가, ‘위대한’ 우방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오히려 오바마 행정부 시절보다 한미관계는 공고하게 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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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ull Transcript: Donald Trump’s Jobs Plan Speech”, http://www.politico.com/story/2016/06/full-transcript-trump-job-plan-speech-224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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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ttps://www.census.gov/foreign-trade/Press-Release/current_press_release/exh4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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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ttp://www.wsj.com/articles/trumps-meeting-with-jack-ma-comes-as-u-s-keeps-eye-on-alibaba-148405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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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국수출입은행 해외투자통계, http://211.171.208.92/odisa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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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 · 미 FTA 3년의 이행 현황과 쟁점』,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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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http://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3/globalBbsDataView.do?setIdx=242&dataIdx=149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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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현대차도 미국 투자 발표하나 … 잇따른 ‘백기투항’에 고민 깊어져”,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0/20170110031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