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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0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미·중 양측 모두에 재앙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4월 27일에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 분절화)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 위험회피)과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 경제관계를 전면적으로 분리해 내자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나 인공지능(AI) 등 민감한 군사안보 관련 핵심분야를 좁게 한정하여 그 분야에서 미국의 핵심 기술이나 제품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핵심 원자재의 공급을 중국 한 나라에만 집중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다변화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디리스킹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3월 30일 먼저 주장했다. 이러한 EU의 입장을 바이든 행정부가 수용한 뒤, G7 정상회의에서 공식 추인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바이든 행정부 대외경제정책의 변화 기류는 미·중 관계가 지나치게 악화하는 것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을 다소 안도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미·중 관계는 앞으로 크게 개선될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럴 전망은 크지 않다. 최근 대만해협, 남중국해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일들이 현재 미·중 관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주고 있다.

지난 6월 3일 미 해군 구축함 청훈(Chung-Hoon)함과 캐나다 해군함정 HMCS 몬트리올함이 공해상의 ‘항행의 자유’ 작전 수행차 대만해협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중국의 미사일장착 구축함이 좌측 전방에서 미국 전함 쪽으로 돌진해 왔다. 미국 전함이 속도를 늦추면서 137m 간격으로 간신히 충돌을 피했다. 이보다 1주일 전 5월 27일에는 중국 전투기가 미국 공군 정찰기 앞으로 파고드는 근접 비행을 했다. 이러한 일들이 남중국해와 대만 근해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사건들은 언제든지 사고를 유발해, 통제되지 못한 채 큰 무력충돌로 번져 나갈 수 있다. 그래서 현재의 위험한 미·중 관계를 국제정치학자들은 마치 몽유병자들이 꿈속에서 걷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잠자며 걷기(sleepwalking)’란 표현을 쓰며 경고한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프란츠 페르디난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를 저격한 사건이 군인 850만 명, 민간인 13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차대전으로 번져 나갔다. 헨리 키신저 박사는 지금이 그때와 비슷하게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우발적인 사고가 이처럼 번져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이 정치가와 외교관들의 역할이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간에는 일종의 룰이 있었다. 그런데 현재 미·중 간에는 그런 룰이 없다. 미국은 중국 측에 당국자들 간의 대화를 갖고 이러한 불상사를 회피하기 위한 룰을 만들자고 제안해왔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대화를 하려거든 미국 측이 먼저 상호존중의 정신에 입각해 성의를 보이며 분위기를 조성하라고 요구한다. 예를 들어 현 중국 국방부장 리샹푸는 2018년 중앙군사위 장비발전부장 재직 시 러시아 전투기를 구매했다. 트럼프행정부는 이것이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자에 포함시켰다. 이것을 바이든 행정부가 풀어 주라는 것인데 미국 측은 부정적이다.

또한 미국은 남중국해와 인도태평양에서 국제법이 지켜지고, 미국의 동맹국들이 어떤 대국의 위협이나 협박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리샹푸 국방부장은 최근 샹그릴라대화에서 어떤 특정 외부 세력이 (미국을 지칭) 항행의 자유가 아니라 도발 목적으로 중국영토에 접근하고 있고 그 나라는 자국의 패권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연설했다.

그렇다면 중국 측은 왜 룰을 만들자는 미국의 대화 요구를 거부할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중국이 이에 응하면 미국의 해공군이 중국의 영토, 영해, 영공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합법화해 주는 결과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미국이 아시아 지역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국가이고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혼란만을 야기할 뿐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중 관계의 본질이 있다. 상승대국 중국의 세력 팽창 욕구와 그것을 억제하고자 하는 기존대국 미국의 욕구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은 또 다른 수정주의 세력이자 권위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연합하면서 미국의 영향력과 미국이 주도해 만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을 일본, 호주, 필리핀, 한국, 나토, 서태평양 국가 등을 동원하여 압박하고 있다. 이 같은 두 거대세력 간의 패권경쟁은 미국이 경제전략을 다소 조정하는 정도로는 해소되기 힘들 것이다.

하버드대 그램 앨리슨 교수는 지난 500년간 16번의 상승대국과 기존대국 간의 갈등 사례를 분석한 후, 그중 4번만 평화롭게 해결되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평화 확률 25%의 시대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 본 글은 6월 11일자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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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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