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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이 과거 일본제국군의 ‘욱일기’를 본뜬 깃발을 게양한 채 부산의 해군작전기지를 방문하면서 국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자위함기가 ‘전범기(戰犯旗)’인 욱일기와 다를 바 없으며, 이의 입항 허용은 과거 일본의 침략행위에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우리와 일본 간의 과거사를 고려할 때 일본 해상자위대기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나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다음 세 가지는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첫째, 욱일기 혹은 이와 유사한 깃발을 전범기로 볼 수 있는가이다. 논쟁의 여지가 많은 ‘전범국가’나 ‘전범기’라는 개념을 적용한다고 해도 국제관례나 여론상 욱일기를 전범기로 보기는 힘들다. 국제적 시각에서 일본 내 전범들이 저지른 행위는 태평양전쟁(1941~1945년), 더 확장해도 그 이전의 동남아 및 태평양 도서 침공이나 중국 침략까지이고, 금지될 상징 역시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전용(專用)으로 창시한 것에 국한된다. 독일의 나치 청산 과정에서도 갈고리십자가(스와스티카)나 번개 모양의 친위대 상징, 나치식 경례 등이 금지됐지만 철십자 문양이나 독일군 계급장 등은 예외였다. 그 기원이 프로이센이라는 근대화 시절까지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욱일기 역시 그 기원은 1870년대의 것이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들만의 전유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둘째, 상대방의 반성이나 입장 변화 가능성 여부인데, 욱일기는 일본의 시각에서는 근대성의 상징 중 하나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일본의 근대화 자체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桎梏) 상당 부분이 이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방의 근대화 과정이나 정체성 자체를 부인하고 적대시하는 자세로는 국제 여론뿐만 아니라 일본 내 여론도 움직이기 힘들다. 중국도 자위함기를 게양한 일본 함정의 기항을 허용한 선례가 있다.

셋째, 특정 상징이 사용되는 맥락과 시점을 돌아봐야 한다. 이번에도 그렇지만 일본 자위함의 입항이나 공동훈련 참가는 국제적 친선, 핵무기 등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차단과 위협 억제의 일환으로 이루어져 왔다. 독도 등의 갈등 지역에 일본 자위함이 깃발을 휘날리며 등장한다면 이를 국가적 자존심 측면에서 대응해야 하겠지만, 북한 핵 위협이라는 심각한 안보상의 도전을 함께 극복하자는 의지로 입항한 일본 함정에 대해 전범기 운운하는 것이 과연 현명하고 합리적인 접근일까?

일본의 해상자위대 함정의 깃발이 참아 넘기기 어려운 것이라면 한·일 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축적됐을 때 대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 욱일기를 감정 쓰레기통쯤으로 사용하려는 우리 사회 일부의 자세로는 그런 계기를 결코 만들 수 없다.

 
* 본 글은 6월 7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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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