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말 중국은 ‘국가기밀보호법(保守國家秘密法)’ 개정안을 채택했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 법에 비해 ‘국가 기밀’의 범위가 확대되고, 첨단기술산업에도 적용하고, 군사시설 인근 지역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첨단과학기술 정보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특히 미-중 전략경쟁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 상대방으로의 기술 유출 위험을 경계하는 만큼, 이런 중국의 움직임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역시 각종 법안과 정부정책을 통해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0년대 초반부터 중국 기업들에 의한 기술 유출 및 절취 위험을 지적해왔고,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이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고 강력 대응하기 시작했다. 2019년 1월 미 법무부는 중국 기업인 화웨이를 영업기밀 탈취 등의 혐의로 기소했고, 2020년 2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중국의 기술 절도 사건에 관해서 1,000여 건의 사건을 조사하여, 2019년도에 24명을, 2020년도에 19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국가기밀보호법’은 미국의 對중국 견제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응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문제는 중국의 ‘국가기밀보호법’이 ‘기밀’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여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밀보호법 부칙 제64조는 “업무 과정에서 취득한 비밀에 대해서도 그것이 비록 국가 기밀이 아니더라도 유출될 경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사항이라면 업무 비밀 관리 규정을 적용해 필요한 보호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무엇이 ‘업무기밀’인가의 기준이 매우 모호하여 중국 당국의 자의적인 법 적용이 우려된다.
중국은 자의적 법 적용으로 인해 국제적 문제를 일으킨 전례가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4월 개정된 ‘반간첩법(反間諜法)’으로, 중국은 이 법에 따라 국가 기밀 및 정보 외에도 ‘국가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 데이터, 자료, 물품을 절취, 정탐, 수매, 불법제공하는 경우를 ‘간첩 활동’으로 규정하고 단속해왔다. 이후 중국 경찰은 민츠 그룹(Mintz Group), 베인 앤 컴퍼니(Bain & Company) 등 다수의 미국 경영컨설팅 회사를 중국 내부 정보 수집 혐의로 압수 수색했고, 일본 제약회사 직원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기도 했다. 중국 관영 CCTV 앵커였던 중국계 호주 언론인, 캐나다인 대북사업가 역시 간첩 혐의로 장기 구금되었고, 이런 연유에서인지 일본, 캐나다, 호주사람들은 중국 방문을 꺼려 한다고 한다.
2020년 중국은 국가 분열, 정권 전복, 테러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의 4가지 범죄의 경우 최고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 “홍콩국가보안법”을 도입했는데, 비공식적인 입법회 예비선거를 실시한 것을 정권 전복으로 간주하여 현재 47명의 정치인, 학자, 시민운동가들을 구속 혹은 기소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기밀보호법’은 자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 한편, 중국의 가치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국가들에게 외교적 압력을 가하고 그들의 국민을 인질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일방주의 행동을 취하는 것은 자신들의 업적을 선전하고 통제를 강화하여 1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폐쇄적인 국가운영이 시 주석과 공산당에게 좋은 것일까?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3천명 대의원의 간접선거를 통해 국가 최고지도자인 주석을 선출하는데,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간접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시 주석은 3천명 대의원의 100% 찬성으로 선출되었다고 하는데, 대의원 투표가 형식적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간접선거를 통해 국가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쿠바나 캄보디아의 경우도 미미하지만 반대표는 있었다. 중국은 언론의 자유는 제약되고 있지만 쿠바나 캄보디아보다 더 개방되고 발전된 나라이다. 2022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1만3천달러에 달했고, 2023년에는 8천7백만명의 중국인이 해외여행을 했다. 이런 중국에서 100% 찬성이 나오는 선거제도는 오히려 체제의 권위와 정통성에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아무리 화목한 가정이라도 가족들간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가장(家長)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다른 의견을 무시한다면 가장의 권위에 도움 되는 일이 아니다.
조작된 선거라는 비판은 있지만 러시아는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고 푸틴의 득표율은 87%가 되어 나름대로 민의를 반영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체제의 권위와 정통성을 생각해서 중국이 직접선거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역사는 권력을 독점하여 영구집권을 추구했던 독재자들의 종말이 어떠 했는지를 보여주는데 행복한 종말을 맞이한 독재자는 없고, 항상 불안해하고 아무도 믿지 못하며 체제의 몰락만 불러올 뿐이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났을 때, “잠을 자면 돌팔매 당하는 꿈을 꾼다. 첫 번째가 미국 사람, 두 번째가 남한, 세 번째가 북한 주민들이 돌을 던지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 주석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중국의 일방주의는 더욱 거세어질 수 있고, 중국은 법률을 활용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 대한 압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할 때, 우리도 이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정부 및 민간 보안체계를 다시 점검해야 하고, 중국이 ‘기밀보호법’이나 ‘반간첩법’을 이용하여 보복할 경우에 대비하여 우리 관광객이나 기업인, 현지 유학생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기밀보호법을 비롯한 중국 내의 법규가 국제적 기준과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에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형성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중국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각종 법규의 개정이 중국의 국제적 신망과 위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국제적 연대를 통해 부각해 나가야 한다. 권력자들이 권력에 집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전하는 사람들을 숙청하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여 궁극적으로 권력자의 몰락을 불러온다는 “독재자의 함정(the dictator trap)”을 시 주석은 어떻게 생각할까?
* 본 글은 3월 20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