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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여전히 혼전 중이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초 러시아의 침공을 기적처럼 격퇴하고 영토를 회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전쟁 2년 차에 접어들자, 전선이 정체되면서 초기의 기동전과 하이브리드전 양상은 사라지고, 화력전과 참호전의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올해 2월 러시아는 치열한 동계 공세로 돈바스 전선의 요충지인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했다.

 
군수지원  능력이  승패를 가르는 전쟁
 
초기의 전쟁은 기동전 중심이었다. 러시아는 전차, 장갑차, 지원 차량 등 120~140여 대와 800여 명의 병력으로 구성된 대대전술단을 무려 100여 개 이상 동원해 파죽지세로 진격을 시작했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군은 매복과 급습으로 기동전에 필수인 탄약과 물자 그리고 유류의 보급선을 차단하면서 적의 군수 지원망을 마비시켰다. 키이우를 향한 초기 공세는 그렇게 돈좌(頓挫)됐다. 이후 전쟁이 화력전 양상으로 변화하면서 누가 더욱 많은 포탄을 가지느냐가 전장의 우위를 가르는 수단처럼 여겨졌다. 양측이 충돌하는 전선의 길이만 해도 1000㎞를 넘으며, 치열한 전투라면 우크라이나군은 1만 발 이상의 포탄을 소모했다. 하루 평균 약 6000발 내외의 포탄이 소모된 것으로 가정하면, 1년간 200만 발 이상이 사용되었다는 추산도 있다.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나서서 포탄을 공급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한국에까지 손을 뻗었다. 한국은 2022년 말에 10만 발 그리고 이듬해에 30여만 발(추정)을 미국으로 보냈다고 알려진다. 다만 살상무기 제공 금지라는 우리 정부의 원칙에 따라, 미국은 주한 미군이 보유한 포탄을 우크라이나로 보내고 한국 구매분으로 채워 넣는 방식으로 우회 지원에 나섰다.

포탄이 부족한 것은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우크라이나 군 정보부의 추산에 따르면 2023년 한 해에 러시아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탄종인 122㎜와 152㎜를 합쳐 200만 발 이상을 생산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간 1000만 발 이상을 사용하는 러시아군은 결국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북한으로부터 122㎜와 152㎜ 포탄을 도입했다. 러시아의 북한 포탄 도입이 이슈화된 것은 2022년 9월이었지만,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 장관은 이미 4월부터 비밀리에 중국, 이란, 북한 등을 돌면서 군수 지원을 요청했다고 알려진다. 중국은 물자 제공은 하되 무기 제공에는 선을 그었지만, 이란과 북한은 무기 판매에 나섰다. 2023년 7월 쇼이구가 북한 열병식에 참석하고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이뤄진 직후에는, 이제 북한은 공공연히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해관계가 일치한  북·러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미국을 뺨치는 해외 원정 작전 역량을 과시했다. 전략폭격기와 군함에서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며 정밀 타격을 실시하는 한편, 쿠즈네초프 항모까지 동원하며 기동력을 자랑했다. 특수부대를 적진 깊숙이 투입시켜 항폭유도를 실시했고, 다양한 장거리 전술기를 동원하며 종심 정밀 타격 능력까지 선보였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러시아도 미국 같은 압도적인 첨단 전력을 활용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존재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이 아니었다. 미국처럼 철저한 항공 전역을 기획하기는커녕, 공지 합동작전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공군력을 ‘하늘의 포병’으로 취급하면서 낭비함에 따라 전략적 표적을 무력화하지 못했고, 정밀 타격 무기의 재고는 개전 초에 거의 바닥나 버렸다. 서구의 금수 조치로 인하여 첨단 미사일의 양산이 어려워지자, 러시아는 이란제 자폭 드론인 샤헤드-136을 공격 수단으로 채택했고, 심지어 자국 내에서 면허생산까지 했다. 러시아에 이란보다도 더욱 매력적인 거래 대상은 북한이었다. 2차 한국전쟁을 언제나 준비하는 북한은 구소련의 표준에 따라 만들어진 전시 비축탄 수백만 발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는 북한을 극진히 대접했다. 북한이 소중한 전시 비축 탄약을 기꺼이 공급할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하기 위해, 러시아는 2023년 7월 말 전쟁으로 바쁜 쇼이구 국방 장관을 무려 3일 동안 북한으로 보냈고, 9월 초에는 김정은을 러시아로 불러 극진히 대접했다. 김정은의 방러 이후 북한은 빗장을 활짝 열어 각종 탄약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나진항으로 바쁘게 화물선들을 보냈고, 이런 화물선 중 한 척은 무기 거래를 세탁하기 위하여 나진항에 하적한 이후 부산에 들렀다가 다시 나진항에 들러 무기를 싣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리하여 올해 2월 말까지 북한이 러시아로 보낸 컨테이너는 무려 6700여 개에 이른다.

 
북한의 대러 방산 수출, 대응책이 절실
 
나진항에서 출발한 북한 탄약은 우선 러시아의 보스토치니 항과 두나이 군항에서 하역된다. 이후 철도로 환적을 마친 탄약은 바이칼-아무르 철도를 따라 러시아를 관통하여, 캅카스 지역의 티호레츠크 탄약창과 모즈도크 탄약창에 도달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수행을 위한 핵심 보급 기지다. 북한이 러시아로 보낸 컨테이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대략환산해 보면 152㎜ 포탄이면 300만 발 이상, 122㎜ 방사포탄이면 50만 발을 넘는 엄청난 분량이다. 물동량으로 추정하건대, 외환 보유액이 부족한 북한이 전시 비축 물자까지 러시아로 팔아넘겼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북한이 전쟁을 거론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오히려 이렇게 취약해진 전쟁 대비 태세를 감추려는 의도가 일부 포함되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저가의 포탄만을 판매하 지 않을 터였다. 러시아는 미사일 부족으로 이란으로부터 자폭 드론까지 구입했기에,  북한이 개발한 화성-11가(KN-23)와 화성- 11나(KN-24) 등 차세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도 당연히 구매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023년 7월 26일, 김정은은 열병식 하루 전에 도착한 쇼이구 장관을 곧바로 무기 전시장으로 불러, 그간 개발해 온 다양한 최신 무기 체계들을 자랑했다.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증거는 곧 전장에서 드러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공격하면서 북한제 SRBM을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다. 우크라이나 측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12월 30일 이후 최소한 24발의 북한제 SRBM이 발사되었으나 오직 2발만이 명중했으며, 공격으로 최소한 14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한다. 12발 쏘면 1발이 적중하는 꼴이니 다소 낮은 명중률이지만, 우크라이나군의 방공망에 요격된 것까지 감안하면 실제 명중률은 더 높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신형 SRBM이 실전을 통한 검증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문제다. 지금까지는 시험 운용 단계로 50여 발 정도가 팔린 것으로 보이지만, 유효한 전력이라고 판단되면 판매량은 급증할 수 있다. 북한은 올해 초부터 ‘화살’ 계열 순항미사일을 집중적으로 발사하면서 긴장감을 높였다. 지상 발사 차량과 잠수함 등에서 다양한 발사를 통해 북한은 순항미사일의 실전 배치를 자랑했다. 이러한 발사는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대남 도발이기도 하지만, 순항미사일이 부족한 러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판촉 활동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K방산’ 열풍의 기폭제가 되었듯이, 북한도 대러 무기 수출로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실익뿐만 아니라 북한 대량 살상 무기의 실전 평가와 개량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강력한 정부의 대응이 요청된다.

 
* 본 글은 이코노미조선 531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양욱
양욱

외교안보센터

양욱 박사는 군사전략과 무기체계 전문가로서 20여년간 방산업계와 민간군사기업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군사기업 중 하나였던 인텔엣지주식회사를 창립하여 운용했다. 회사를 떠난 이후에는 TV와 방송을 통해 다양한 군사이슈와 국제분쟁 등을 해설해왔으며, 무기체계와 군사사에 관한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연구위원이자 WMD 센터장으로 북한의 군사전략과 WMD 무기체계를 분석해왔고,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국방부, 합참, 방사청, 육/해/공군 등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군사혁신론과 현대전쟁연구 등을 강의하며 각 군과 정부에 자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