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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이란 군대를 정렬시켜 훈련 상태나 사기를 검열하는 일을 가리킨다. 인간이 아니라 기계처럼 오와 열을 맞춰 적과 싸워나가는 것은 핵심적인 전투 능력이었다. 열병이란 행위는 원래는 싸움에 앞서 병력의 상태를 점검하고 전투태세를 다잡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열병식이라고 부르는 행사의 정확한 명칭은 관병식(觀兵式)이다. 지휘관이 군대를 사열하는 의식이라는 뜻이다. 관병식의 종류로는 열병식과 분열식이다. 열병식은 도열한 부대를 지휘관이 움직이면서 하나하나 검열하는 것이고, 분열식이란 열병을 마친 부대가 대형을 갖춰 도보나 차량 탑승으로 행진하면서 임석 상관에게 부대의 세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통상 열병식을 먼저 한 후에 분열식을 진행한다.

 

北 선군정치와 13회의 열병식

열병식이 정치적 퍼포먼스로 가치를 갖게 된 것은 제국주의 시대부터였다. 자국의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국민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어 줄 뿐만 아니라 해외에는 경고의 뜻을 보낼 수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군국주의로 국가를 통제하던 나치 독일이 나치당원부터 무장 친위대나 군대까지 동원한 다양한 열병 행사를 개최했다. 극적 연출에 집착했던 나치는 1934년 뉘른베르크 당 대회를 열면서 대공 조명을 쏘아 올린 ‘빛의 대성당’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독재자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군국적이고도 독재적인 또 다른 국가인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후에 열병식을 정치적 퍼포먼스로 선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의 주역이자 사열관인 주코프 장군이 직접 하얀 종마를 타고 제병부대를 사열하는 사이, 병사들은 나치 독일로부터 빼앗은 군기들을 레닌의 묘소 앞에 헌납했다. 전승 열병식은 강대국 소련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도 2017년 전승 70주년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하며 크림반도 합병 이후 더욱 강력해진 러시아의 군사력을 자랑하며 자신의 치적을 기렸다.

북한도 이러한 서사를 차용했다. 1948년 2월 8일 북한은 조선인민군 창건과 함께 최초의 열병식을 실시했다. 열병식의 VIP 좌석을 차지한 김일성은 자신이 북한 권력의 정점에 있음을 열병식을 통해 알렸다. 6·25전쟁에 패배한 이후에는 8·15 해방절(광복절)을 기념하여 열병식을 열었다. 항일투쟁이라도 차용해야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김일성은 집권 46년간 모두 13회의 열병식을 실시했다.

김일성보다 더욱 가혹한 조건 속에서 집권했던 김정일은 18년 동안 집권하는 사이 13회의 열병식을 실시했다. 33만여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시기였지만, 선군정치로 나라를 한데 모으던 김정일에게 대규모 열병식은 필수 불가결했다. 그리고 김정은은 현재 집권 12년 차를 맞이했다. 그리고 얄궂게도 김정은 또한 2월 8일까지 13회의 열병식을 실시했다.

 

딸까지 끌고 나온 국가적 대축전

2월 8일은 건군절, 즉 북한의 군대창설일이다. 작년 4월 25일 열병식은 조선인민혁명군 90주년이었지만, 올해 2월 8일은 조선인민군 75주년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김일성이 1932년 항일투쟁을 위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조직으로 조선인민군(북한군)의 뿌리란다. 망상적인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 무엇이건 간에 북한은 이렇게 날짜를 자꾸 늘려가면서 열병식의 기회를 만들고 있다.

열병식에 북한이 쏟아붓는 노력은 눈물겹다. 통상 1만 명 이상의 병력이 2~3개월 전부터 평양 미림비행장에 모여 피나는 연습을 반복한다. 새롭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평상시에 들지 않는 최신무기와 평시 잘 입지 않는 신형 군복으로 광을 낸다. 최대 500여 대까지 차량을 동원해서 규모를 만들기도 했다. 현란한 조명과 축포, 수십여 대의 카메라와 드론을 동원한 다양한 영상, 화려하지만 위험스러운 축하비행으로 장식되는 야간에어쇼 등 볼거리를 모두 담았기에, 열병식은 북한 최대의 정치군사대축전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2020년부터는 열병식이 야간으로 바뀌었다. 이전 정권에서 대통령의 홍보를 맡았던 어떤 공연기획자는 자신이 북한에 야간열병식을 조언했다고 한다. 공산당이라면 이를 갈던 나치의 ‘빛의 대성당’ 퍼포먼스를 친북 정권에서 제안하고 사상 최악의 공산 정권이 받아들였다면,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필자처럼 적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분석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적행위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북한은 무슨 돈으로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고 이렇게 성대한 축제를 해야만 할까이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김정은 세습 권력의 유지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핵을 개발해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왔는데, 할아버지 김일성을 닮은 모습에 인민은 김정은에게 기대를 해왔던 모양이다. 그러나 경제는 핵처럼 ‘폭망’했고 남은 건 핵뿐이다. 핵이라도 남았으니 그 성과라도 자랑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이 되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갈 길은 핵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핵 타령마저 한계가 생겼는지 열 살 먹은 딸까지 동반했다. 인민의 마음이라도 잡으려면 열 살짜리 철부지 딸을 내세워 이미지 메이킹이라도 해야 할 만큼 김정은 정권은 절박한 것이 아닐까 한다.

 

열병식 메시지는 ‘ICBM’

이번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연설을 하지 않았다. 작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단순무식한 수준의 핵 선제공격 메시지를 던지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세상에 어떤 형태의 전쟁에서라도 전술핵을 쓰겠다는 무식한 발상은 오직 북한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김정은은 연설을 하지 않았다. 메시지에 집착하는 북한이기에 김정은의 연설이 아니라면 열병식 행사 자체에서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다는 말이다.

북한은 열병식마다 새로운 무기체계를 공개해왔다. 이 정도로 국가의 대표브랜드 행사로 만들어놨으니 무엇이라도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올해 열병식의 차량 열병 행렬은 그 어느 해보다도 초라했다. 전차 6대, 포병 차량 18대, 미사일 발사 차량 31대로, 현용 차량은 65대가 전부였다. 북한군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T-34 전차 등의 구형 장비 36대가 있었으니, 이를 합쳐도 전체 101대에 불과하다. 작년 열병식에 차량 170여 대가 동원된 것을 생각하면 단출하다. 그러나 숫자가 전부는 아니다. 동원한 현용 차량 65대 가운데 미사일 발사 차량이 31대, 즉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라는 것이 포인트다.

실제 메시지는 미사일 발사 차량에 있었다. 이번 열병식에서 북한은 무려 15대의 ICBM 발사 차량과 함께 무려 11대나 공개되었다. 그 뒤를 이어 차세대 ICBM으로 추정되는 고체연료 ICBM의 발사 차량 4대가 등장했다. 여태까지 북한이 열병식에 ICBM을 들고나오는 경우 통상 4대에서 8대 사이였다. 그러나 이번 열병식에서는 무려 15대를 동원하여 통상의 두 배수를 동원한 것이다.

그러면 ICBM을 잔뜩 들고나온 북한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ICBM이란 말 그대로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무기체계다. 즉 북한은 이렇게 10기 이상의 ICBM을 양산하고 언제든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고 협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메시지는 잘 전달되었을까. 그럴 리 없다. 애초에 화성-17은 ICBM으로 완성된 바 없으며, 이동식 발사 차량에서 쏘기에 적당하지도 않은 크기다. 열병식이 끝난 지 열흘 뒤 북한은 자신들이 언제든 불시에 ICBM을 쏠 수 있다며 화성-15를 발사했다. 그런데 김정은 명령에서 발사까지 걸린 시간은 9시간 22분이었고, 발사된 것도 화성-17이 아닌 화성-15였다. 딱 여기까지가 북한의 현재 실력이다. 물론 실력이란 갈고닦으면 늘어나는 것이니 방심은 금물이다.

 

 

* 본 글은 03월 06일자 이코노미조선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양욱
양욱

외교안보센터

양욱 박사는 군사전략과 무기체계 전문가로서 20여년간 방산업계와 민간군사기업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군사기업 중 하나였던 인텔엣지주식회사를 창립하여 운용했다. 회사를 떠난 이후에는 TV와 방송을 통해 다양한 군사이슈와 국제분쟁 등을 해설해왔으며, 무기체계와 군사사에 관한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연구위원이자 WMD 센터장으로 북한의 군사전략과 WMD 무기체계를 분석해왔고,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국방부, 합참, 방사청, 육/해/공군 등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군사혁신론과 현대전쟁연구 등을 강의하며 각 군과 정부에 자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