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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6일, 한일 간 최대 난관이었던 강제징용 문제 해법이 발표되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2018년 10월과 11월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3건(일본제철 1건, 미쓰비시중공업 2건)의 14명(피해자 15명, 원고 및 유족포함 30여 명)에 대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에 의한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것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생존 피해자 3명은 수령 반대 의사를 밝혔고, 여론도 긍정적이지 않다. 피고 기업이 빠진 해법에 대해 많은 이해와 지지를 얻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왜 이러한 결단을 내렸으며,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2018년 10월30일, 한국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며 “일본 정부가 청구권협정 협상 과정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한 이상 피해자들의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2018 대법원 판결: 한일 양국이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법적 문제

이와 같은 판결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의 법적 성격과 한일기본조약의 청구권협정 범위와 직결되는 사항으로,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양국이 매듭짓지 못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주지하듯,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의 법적 성격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합의될 수 없었고, 결국 이는 서로의 이해가 다름을 인정한 채로(agree to disagree) 마무리되었다. 14년여에 걸친 협상에도 끝내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일본에서는 합법으로, 한국에서는 불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식민지배의 불법성 및 기업 행위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대법원 판결은 처음부터 양국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사항도, 시간이 더 지난다 해서 달라질 수 있는 사항도 아니었다. 결국 대법원 판결의 이행을 위해서는, 자산압류(현금화) 혹은 다른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문제는 자산압류의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일부 원고는 판결금 수령을 희망하고 있음에도, 국내에 압류할 피고 기업의 자산이 없다는 데 있다.

결국 ‘당사자 이익’과 ‘피해자 구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당사자의 정당한 권리를 실현시킬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정부의 해법은 사법의 결정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내린 정치적 결단이자, 한일 갈등을 우리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볼 수 있다.

여론은 부정적이다. 어떠한 설명에도 피고 기업이 빠진 해법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고, 현실성을 고려한 불가피한 결정이었음에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에서 한일 관계는 가장 다루기 어려운 주제 중 하나다. 특히, 역사 문제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 여론 위에 가치와 실리, 감정과 이성이 충돌하고,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 대립이 난무하며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양국 간 갈등 해결이 필요하면서도 좀처럼 다루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데는 한일 관계 개선과 대법원 판결과 관련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일 갈등의 민감성: 부정적 여론 속 가려진 원고들의 다양한 목소리

여론은 부정적이지만, 비난을 감수하면서라도 언젠가 한 번은 넘어야 할 고비다. 문제는 판결금 수령을 희망하는 원고들의 목소리는 반대 여론에 묻혀 나오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돼 가고 있으며, 다음 세대에게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그들의 진의도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목소리와 그들의 정당한 권리 실현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갈라치기’ ‘굴욕외교’라는 프레임에 갇히고 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오랜 시간 고통의 시간 속에 살아온 조용한 당사자들에게 다시 고통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해결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며, 당사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해결책에 찬성하는 당사자(원고)들의 목소리 또한 그만큼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2018년 대법원 판결과 관련된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한일 관계는 새로운 기로에 들어섰다. 양국 정부는 앞으로의 한일 관계를 위해 한걸음 다가섰지만, 여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반대하는 원고들이 현금화 절차 등 법정 소송을 이어갈 것을 예고한 가운데, 한일 관계는 오히려 더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정부의 결정에 동의하고 지지하는 의견들도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한일 관계를 차분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더욱이 미·중 경쟁의 심화, 우크라이나 사태, 북한의 도발 등 엄중한 국제정세 속에서 국익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자,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였다. 그 안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등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의 협력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정부는 장기간 지속돼온 한일 갈등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반드시 실현시켜 건설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를 위한 우선 과제로 정부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분들뿐만 아니라, 그 외에 수천, 수만 명의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본은 한국 정부의 대승적 결단에 반드시 의미 있는 호응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지난 정부의 담화를 계승하는 수준을 넘어 좀 더 구체적인 언어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보여야 할 것이며, 일본 피고 기업은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한일 관계 발전과 도약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 본 글은 3월 10일자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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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 등이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