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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공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의외로 대한민국은 차분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상당 부분 진전된 북한의 기술력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감추고 상대방의 공포와 긴장을 높이기 위한 인지전 성격이 강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친북 유화적인 정치 리더십으로 인하여 이런 인지전에 대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응은 확실히 달라졌다.

 
북한의 생존법
 
1970년대 이후 북한은 대한민국에 전략적 우위를 점한 적이 거의 없었다. 북한이 추구하던 군사력 우위는 주한 미군으로 상쇄됐고,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약진하면서 국가 역량 자체가 비교 불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냉전 종식으로 소련의 지원을 잃게 된 이후 북한은 재래식 전력을 현대화할 수 없었다. 북한에 정권 유지를 위한 유일한 탈출구는 핵 개발이었다. 북한은 핵 개발의 본심을 드러내며 1차 북핵 위기(1994)를 일으켰다가 미국의 압박으로 제네바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협상과 합의는 거짓이었고 핵 개발은 여전히 지속됐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압박이 시작되자 북한은 핵 개발을 인정하고 2차 북핵 위기(2003)를 일으켰다. 국제적 압박이 희미하게 시작되는 가운데 6자 회담의 프레임워크가 만들어졌다. 회담에 초대된 중국은 북핵 저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북한에 소중한 핵 개발의 시간을 벌어줬다.

그 결과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을 실시했고, ‘무수단’ 미사일을 공개했다. 김정일의 건강 이상으로 급변사태론이 퍼지자 북한은 2차 핵실험으로 주위를 환기하고 ‘화성-13’이라는 ICBM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수단은 실패한 미사일이었고, 화성-13은 모크업(모형)에 불과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핵실험과 신형 미사일 발사를 반복하면서 ‘핵 공갈’을 ‘핵 능력’으로 바꾸는 데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정권 교체와 북한의 전술핵 압박
 
그리고 2017년이 되자 북한은 그간의 성과를 마음껏 과시했다. 6차 핵실험으로 수소탄 능력을 과시하는 한편, ‘화성-15’의 시험발사로 ICBM으로 미국에 대한 공격 능력도 과시했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은 친북 유화적인 당시 한국 정권을 활용해 2018년부터 미국과 직접 협상에 나섰다. 물론 대미 협상에서 성과를 거둘 수 없었지만, 남북의 대결에서 북한은 짜릿한 승리를 맛보았다. 이렇게 핵 협박이 통한다면 언제든 한국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북한 지도부는 느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2022년 대통령 선거는 북한에 중요한 티핑포인트였다. 북한은 친북 유화적인 정권이 지속하길 바랐지만, 전혀 반대 성격의 정권이 등장하는 경우도 대비해야만 할 터였다. 결국 한반도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핵전력이 필요했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전술핵이다.

전술핵이란 군사 표적의 공격에 특화된 핵무기다. 전략핵은 수백 킬로톤(kt)에서 수 메가톤(Mt)의 파괴력을 가지는 데 반해, 전술핵은 200kt 이하의 파괴력을 가진다. 파괴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되므로 낙진 등으로 인한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는 가운데 적의 주요 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 북한은 전략핵으로 미국 본토를, 전술핵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하는 방안을 결심했다. 북한은 2021년 8차 당대회를 통해 전술핵 확보를 차후 5년 내의 주요한 국방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2022년 1월부터 북한은 전술핵 투발 수단을 집중적으로 시험하면서 위협의 수위를 높여나갔다. 잇단 미사일 발사는 그간 북한에 유화적이었던 당시 여당 후보에게 불리할 터였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자국에 유화적인 한국 내 ‘진보’ 세력을 포용할 여유 따윈 없었다. 미·북 회담의 실패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분풀이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전술핵으로 대남 우위를 확실히 담보하고 난 후에야 한국 내 친북 유화 정치 세력에 대한 배려도 가능했을 것이다.

 
북한의 거짓 공세와 대응
 
우리 군은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에 대하여 초기에는 시원한 대응이 어려웠다. 비록 대선 국면에서 강경한 이미지를 보이면서 당시 여당에 대한 지지표를 얻고자 했지만, 여전히 정권은 친북 유화적인 리더십 아래였다. 목을 걸지 않는 한 정확한 평가와 대응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정권 교체가 확정된 이후에 군은 자신감을 갖고 과감한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22년 3월 24일 북한의 ‘화성-17’ ICBM 발사였다. 북한은 2월부터 잇단 시험발사를 통해 화성-17의 발사 성공을 기록하고자 했다. 북한은 3월 16일 발사에서 불과 16㎞ 상공에서 미사일이 산산조각 나는 실패를 기록했다. 당시 폭발은 평양에서 목격되고 잔해까지 시내에 떨어질 정도였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북한은 열흘도 지나지 않은 24일에 재발사를 하여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합참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면밀히 검토했다.

북한이 공개한 영상과 발사 당일의 기상 상황이 다른 점 등 몇 가지 정보 분석을 바탕으로 북한의 화성-17 발사가 거짓임을 밝혀냈다. 북한은 발사 실패를 감추기 위해 화성-15를 대신 발사하고 화성-17의 성공을 알렸다. 김정은까지 나서서 뮤직비디풍의 영상을 과시하면서 사기극을 기록하고자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은 같은 해 11월 18일에 시험발사를 다시 실시했고, 이로써 당시의 발사가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합참의 적극적인 대응 노력
 
북한은 전술핵 위협을 높이기 위해 모든 힘을 쥐어짰다. 2022년 9월 9일에는 핵무력정책법을 발표하면서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공세적인 핵 교리를 소개했다. 그리고 9월 말에는 이를 입증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전술핵 운용부대가 일련의 실전훈련에 나섰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비질런트 스톰 연합공군훈련을 통하여 사상 최대의 항공 전력을 과시하면서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은 대응군사작전을 한다면서 연일 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전투기를 동원하면서 대항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11월 2일 미사일이 한 발이 우리 영해 내로 떨어지자, 공군은 즉각적으로 SLAM-ER 미사일과 SPICE-2000 정밀유도폭탄을 날리면서 보복했다. 전혀 대응할 수 없었던 북한은 다음 날 발표를 통하여 울산 앞 공해상에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합참은 이것이 거짓임을 밝혔다. 전술핵으로 최대의 압박을 가했지만, 뒤로 물러나지 않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북한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핵 협박이 먹히지 않자, 12월 26일 소형 무인기를 보내어 서울 상공을 어지럽혔다. 비록 초기의 보고체계 혼란으로 신속한 대응에서는 늦었지만, 합참은 신속히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우리 군도 북한 방면으로 무인기를 침투시키면서 더 이상 북한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전문성에 대한 믿음이 중요
 
이후 북한의 잇단 도발에도 우리 합참은 정확한 상황 판단과 적절한 정보 전달을 통해 북한의 인지전 시도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정찰위성 발사를 위한 북한의 ‘천리마-1’형 로켓 발사에서도 합참은 해군 함정들을 전진 배치하면서 로켓의 궤적 추적과 잔해 수거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북한의 발사는 실패했지만, 합참의 발 빠른 판단과 해군의 유능한 대응으로 우리 군은 로켓의 잔해를 신속히 발견해 공해상에서 인양에 나섰다.

그간 중국은 동경 124도 선을 넘는 우리 해군 활동을 견제해 왔다. 그러나 해군은 단호히 작전구역으로 선포하고 해당 수역을 신속히 장악하여 인양 작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판단이 늦었다면 중국 해군이 수역을 장악하고 인양에 나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듯 중요한 것은 우리 군이 얼마만큼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느냐다. 군을 경시하고 지휘부를 하인처럼 부리려는 정권에서라면 군은 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문민 통제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군사 작전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재량권을 부여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은 안보에 있어 더욱 중요하다.

 
* 본 글은 이코노미조선 496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양욱
양욱

외교안보센터

양욱 박사는 군사전략과 무기체계 전문가로서 20여년간 방산업계와 민간군사기업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군사기업 중 하나였던 인텔엣지주식회사를 창립하여 운용했다. 회사를 떠난 이후에는 TV와 방송을 통해 다양한 군사이슈와 국제분쟁 등을 해설해왔으며, 무기체계와 군사사에 관한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연구위원이자 WMD 센터장으로 북한의 군사전략과 WMD 무기체계를 분석해왔고,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국방부, 합참, 방사청, 육/해/공군 등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군사혁신론과 현대전쟁연구 등을 강의하며 각 군과 정부에 자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