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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임 에르도안이 내세운
新오스만주의와 민족주의는
물과 기름처럼 길항적 개념
그걸 연결시킨건 포퓰리즘
 
지난달 결선투표까지 간 접전 끝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튀르키예 대통령이 52.1% 득표율로 3연임에 성공했다. 6개 야당 연합의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 대표는 47.8%를 얻었다. 에르도안은 2003년 총리직에 오른 후 2차례 개헌으로 제왕적 대통령직까지 거머쥐었고 앞으로 최대 2033년까지 일인 권력을 확보하게 됐다.

사전 여론조사는 에르도안의 패배를 점쳤다. 물가상승률 85%의 참담한 경제, 장기 집권과 공안 통치, 낯 뜨거운 가족 비리, 올 2월 대지진 당시 드러난 무능 행정에 비춰 수긍이 갔다. 그런데 유권자 절반이 왜 그를 택했을까?

포퓰리즘, 그 막강한 마법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이 온 국민 편 가르기에 앞장서 증오를 조장하고 팍팍한 삶에 지친 마음에 공포를 불어넣었다. 선거 유세에서 야당 후보가 테러리스트 쿠르드계와 내통하고 동성연애자를 옹호하는 서구 첩자라며 공격했다. 언론은 국제금융기관의 음모로 경제 파탄이 왔다고 선동했다. 선심성 퍼주기도 잇따랐다. 작년 말부터 최저임금을 55%, 기초연금을 두 배 인상하고 정년 제한을 폐지했다. 선거 직전엔 전기요금 인하와 천연가스 무상 제공을 단행했다.

에르도안은 두 가지,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되찾자는 시대착오적 신오스만주의와 포퓰리스트의 단골 메뉴인 배타적 민족주의를 줄곧 부르짖었다. 그러나 튀르키예에서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가치다. 이슬람주의자 에르도안이 다민족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의 향수를 소환하는 건 어색하진 않다. 하지만 튀르키예 민족주의는 1923년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가 오스만의 칼리프제를 폐지하고 세운 세속주의 국민국가의 국시다. 무엇보다 이슬람주의와 쿠르드 민족주의를 튀르키예 공화국 통합의 적으로 규정한다. 1차 대전에서 패한 오스만제국의 술탄 정부가 연합국의 영토 분할에 속수무책이자 아타튀르크 장군이 독립전쟁을 일으켜 현재의 튀르키예 땅이나마 지켰다. 이후 강경세속주의를 앞세운 튀르키예 민족국가가 탄생했다. 에르도안은 정계에 입문한 1970년대부터 아타튀르크 정신을 지킨다는 군부의 갖은 탄압을 받았다. 소속된 이슬람 정당이 세 차례 해산됐고 본인이 투옥되기도 했다.

그런 에르도안이 집권 10여 년 후 이슬람주의자를 짓밟던 아타튀르크 코스프레에 나섰다. 튀르키예 민족주의를 외치며 자신을 21세기 국부로 묘사했다. 모순되고 당황스러운 돌변이었다. 당시 불거진 에르도안의 권위주의 행보에 따른 유권자의 외면이 배경이었다. 권력 사유화에 집착한 에르도안이 당내 온건파를 대거 축출하자 2015년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했다. 다급해진 에르도안은 변신했다. 극우민족주의 민족운동당과 연합을 맺고 2017년 제왕적 대통령제 개헌을 51%로 통과시켰다. 민족운동당은 튀르키예 민족 우월주의와 외국인 혐오를 외치는 네오파시즘 정당이다.

돌연 골수 민족주의자가 된 에르도안은 인구의 20%에 달하는 쿠르드계를 테러리스트로 악마화하고 시리아 난민 370만명을 쫓아내겠다고 선언했다. 집권 초기 쿠르드족의 권익 보호와 시리아 난민 수용을 역설하며 선한 무슬림의 덕목을 강조하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번 선거는 튀르키예의 심각한 분열을 또 드러냈다.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등 대도시와 쿠르드계 및 고학력 전문직은 야당, 지방과 저소득층은 여당에 투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0년간 그랬듯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47.8%와 합의점을 찾지 않을 것이다. 포퓰리스트 대통령은 일인 체제야말로 국민의 뜻이라며 안으로 철권정치, 밖으로 팽창주의 정책을 이어갈 것이다. 이번엔 그 정도가 더할 수 있다.

 
* 본 글은 6월 28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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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