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상대 ‘위안부 손배소’ 승소
판결 인정 않는 日 항소 안 할 듯
2015 위안부 합의 인정한 정부
구체적 해법 내놓고 협의 나서야
“곤혹스럽다.” 지난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판결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은 현재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인식에서 보이는 것처럼 올해도 한·일 갈등의 해결은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8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 주었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원고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으며, 이에 대해 14일 이내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으면 1심 결과가 최종 결과가 되고, 그 시점이 바로 내일(23일) 0시이다. 당초 ‘주권면제’(한 나라의 법원이 다른 나라를 소송 당사자로 재판할 수 없다)’ 원칙을 들어 재판을 부인해 온 일본 정부가 항소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 한·일 관계에 또 한 번의 파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판결 이행을 위한 자산압류, 현금화 절차 등은 지난 2018년 10월 강제동원 판결 이후의 과정과 유사하게 진행될 것이나, 위안부 문제가 주는 외교적 충격과 영향은 강제동원 문제와 다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강제동원 문제와 달리 위안부 문제는 부족하게나마 지난 수십여년간 양국 정부에서 그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대 각 정부의 노력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양국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인데, 사안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주권면제’원칙, 그리고 판결에 따른 일본 정부재산 압류 등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될지 국제법적으로 다소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 사안은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판결 당일, ‘2015 위안부 합의’를 “상기한다”는 외교부의 고민을 담은 애매한 표현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입을 통해 “인정한다”로 명확해졌으나, 여전히 불투명한 부분이 많다. ‘합의’를 파기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형해화(形骸化)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합의’의 인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제 해결을 위한 어려움이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입장이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난 수년간 이 문제는 사실상 방치됐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한·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우리 정부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신중하고, 신속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첫째,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직접적이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과거사 문제는 단기간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중장기적 해법을 모색하면서 관계 회복을 위한 우회적 방법이 아닌, 갈등의 핵심에 직면하고, 실질적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지 표명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둘째,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논리적 일관성이 필요하다.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으나,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역대 우리 정부가 기울여온 노력을 바탕으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리와 일관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논리를 넘어서는 외교적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셋째, 갈등 사안에 대한 분리 대응이 필요하다. 현재 한·일 간에는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동원 문제, 수출규제 등 다양한 갈등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일각에서는 모든 갈등 사안을 한번에 풀 수 있는 양 정상의 결단력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각 사안의 전개과정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양 정상의 결단을 위한 양국의 국내정치적 기반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가능한 부분부터 하나하나 풀어나가 점진적인 관계 회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2021년 01월 21일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