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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정부의 중동정책 핵심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합의 복원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을 것이다. 2018년 트럼프 정부는 3년 전 주요 6개국과 이란이 체결한 다자 핵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고강도 이란 제재를 부활했다. 미국의 대이란 최대 압박 정책으로 인해 핵합의를 지지한 이란 개혁파의 입지는 급격히 줄었고 강경 보수파가 득세했다. 보혁 경쟁은 자취를 감췄고 작년 2월 총선에서 군부 강경파가 성직자 그룹 원리주의파에 승리했다.

강경파의 이해관계는 제재 완화를 통한 이란의 정상 국가화가 아닌 반미 구호를 앞세운 이슬람 혁명의 역내 수출과 밀접하다. 이란 성직자 체제의 핵심 군조직 혁명수비대는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반군, 가자지구 하마스, 시리아와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를 프록시 조직으로 육성하고 있다.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을 돕기 위해 내전에 참여하면서 역내 친이란 무장조직의 결집에 박차를 가했다. 작년 12월 강경파가 장악한 의회는 20% 우라늄 농축 재개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올 1월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해협에서 우리 선박을 나포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따른 한국의 원유 수출 대금 동결을 비난했다. 바이든 정부와의 핵합의 복원 협상을 앞두고 주도권 선점 기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6월 실시될 이란 대선에서 강경파 계열의 당선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2015년 버락 오바마 정부가 핵합의를 주도했을 때 이란엔 온건파 계열 대통령, 외무장관, 대도시 국회의원이 존재했지만 현재 권력층은 강경파 일색이다.

다음으로 바이든 정부의 중동정책은 민주주의와 인권 및 동맹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러나 중동 동맹국 가운데 민주주의 모범국은 거의 없다. 바이든 정부는 터키와 이집트에 권위주의 퇴행을 지적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인권 개선을 압박하며 후퇴하는 이스라엘 민주주의도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혼란이 지나간 후 국가 실패를 틈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부활할 경우 연합전선을 조직할 동맹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때 민주주의 기준은 사치에 가까울 것이다. 또 바이든 정부는 신생 민주주의 튀니지, 취약국가 레바논과 이라크에 재정 지원을 해야 하고 알제리와 수단의 민주화 시위대에도 도움을 줘야 하며 트럼프 정부가 중단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지원도 재개해야 한다.

한편 바이든 정부는 작년 트럼프 정부의 중재로 성사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데탕트를 지지할 것이다. 아랍에미리트(UAE)를 선두로 바레인, 수단, 모로코가 이스라엘과 수교해 맺은 전략적 연합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우선 과제로 다루지 않지만 역내 갈등 일변도의 관성을 깨는 외교적 성과였다. 이에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가 예루살렘으로 옮긴 미국대사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팔레스타인의 비난을 감내할 것이다.

바이든 시대 중동정책의 최대 난관은 무엇보다 역내·외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관계에 있다. 2013년 현 이집트 대통령인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이 쿠데타로 무슬림형제단 정부를 몰아냈을 때 오바마·바이든 정부는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며 이집트 원조를 중단했고 사우디가 이집트의 재정 공백을 메워줬다. 사우디와 UAE는 무슬림형제단에 반대하고 이란은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한다. 이란은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알아사드 정권은 무슬림형제단에 반대한다. 터키는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지만 알아사드 정권에 반대한다. 사우디·UAE는 알아사드 정권에 반대한다. 하마스는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며 반미이고,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나 친미다. 여기에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 중국의 부상, 시리아·예멘·리비아 내전의 대리전 양상이 굳어지고 있다. 바이든의 중동정책이 성공하려면 큰 운이 따라야 할 듯하다.

 

* 본 글은 12월 01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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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