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용어는 어렵다. 늘 상대방이 있는 관계의 특성상 긍정적인 표현 속에 다른 의미를 담기도 하고, 오랜 역사와 관행 속에서 만들어진 고유한 표현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외교 사안을 설명하는 용어들이 정부나 언론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최근 우리 정부가 언급한 ‘굿 이너프 딜’과 ‘스냅 백’이 그 사례로 볼 수 있다. 언뜻 들어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외교 용어는 늘 정확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래야 단순한 수사(rhetoric)를 넘어 용어가 담고 있는 실체에 다가갈 수 있고, 현 상황을 잘 설명한 것인지 아니면 오해만 낳는 부적절한 선택인지 판단이 가능하다. ‘굿 이너프 딜’과 ‘스냅 백’은 우리 정부의 북핵 정책을 보여주고 있지만, 적절한 표현이나 활용은 아닌 것 같다.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은 우리말로 표현하면 ‘충분하게 좋은 거래’다. 하노이 이후 미북 대화의 공백이 길어지자 정부가 새롭게 꺼내 든 협상카드다. 전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하는 것을 전제로 단계적인 합의 이행을 담고 있고, 조기 수확(early harvest)에 정책적 방점이 있다. 낮은 단계의 비핵화와 제재완화 조치라도 먼저 교환해 신뢰를 쌓자는 것이다. 돌아보면 한때 우리 정부가 강조했던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의 새로운 버전이다. 일괄타결을 선호하는 미국과 단계적 해법을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을 절충하려는 시도며,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 하지만 몇 가지 우려사항이 있다.
먼저 ‘충분하게 좋은 거래’ 라는 표현으로 비핵화를 적당히 에둘러서는 안 된다. 북한에 핵무기가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비핵화가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 핵무기가 우리를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검증과정에서 핵무기 한두 개는 찾아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찾아올 수 있는 협상의 ‘위험요인'(risk)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또 다른 계획도 필요하다. 하지만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충분하게 좋다’는 식의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선 안 된다. 이래선 수많은 도전이 놓인 북핵문제를 풀 수 없다.
조기수확이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조기에 해주는 것에 방점을 둔다면 곤란하다. 남북관계 진전을 강조하고 있지만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것도 대북제재 이행에 부담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영변 핵시설을 포기한다거나 나아가 미공개 농축우라늄 시설을 함께 포기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필요하다. 제재 완화는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제재가 일부라도 해제되면 북한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스냅 백'(snap back)은 해제되었던 제재가 다시 복원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 핵합의(JCPOA)와 관련된 내용인데, 이란이 합의에 명시된 의무를 위반할 경우 해제되었던 제재를 다시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합의문에 있는 정확한 용어는 제재의 재부과(re-imposition)다. 이 단어가 일반인에게는 어렵기에 언론에서 툭 치면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인 ‘스냅 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문제는 ‘스냅 백’을 미국을 설득하는 인센티브로 활용하겠다는 식으로 언급한 우리 정부의 인식이다. 이 조항은 이미 이란 핵합의에 있는 것처럼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포함시키려는 내용이다. 더구나 이란 핵합의의 ‘스냅 백’ 조항은 합의 위반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미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도다. 8개의 주체가 다수결로 결정하는데, 이란 러시아 중국이 반대해도, 미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EU와 공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북간 협상에서 누가 위반 여부를 결정하도록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 없이 마치 새로운 아이디어인 것처럼 미국에 제안하며 대북제재 완화를 강조할 경우 ‘북한 편들기’로 비춰질 수 있다.
이번 주면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 달이 겨우 지난 시점이다. 아직 북한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우리 정부가 먼저 서두르는 모습이어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부의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다만 보다 정확하고 전략적 의미가 내포된 용어를 적소에 사용할 때 이러한 성과가 앞당겨질 것이다.
* 본 글은 4월 8일자 디지털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