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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19년이 지나고 2020년이 펼쳐졌다. 지난해 교훈을 바탕으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때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작년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 정착이라는 큰 꿈으로 시작했지만 새해는 북한의 전략도발과 한반도 긴장 고조가 우려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반성과 성찰 없이는 성장도 없다.

지금 우리 정부의 외교에는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에 기반을 둔 가치 외교를 지향하는 것 같지만 정부의 행보는 그렇지 않다. 지난해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부의 원칙이 너무도 쉽게 변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1월의 탈북민 강제북송이다. 좁은 배 안에서 별다른 몸싸움의 흔적도 없이 16명이나 살해했다는 북측 주장을 믿고 이들에게 보장된 법적 절차를 간략히 한 채 강제로 돌려보낸 것은 우리 헌법과 우리가 가입한 고문방지협약의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다.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것도 문제인데, 국가안보실 1차장의 핸드폰이 기자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될 뻔했다.

비핵평화를 지향하는 것 같지만 현실에선 좌충우돌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비핵화의 방법론이 보이질 않는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전에는 단계적 비핵화 해법을 지지하는 듯 했다가 하노이 결렬 이후에는 어떤 합의든 하기만 하면 좋다는 식의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을 제시했다. 그러다 미국이 빅딜을 이야기하니 또 한 번 입장을 바꾸는 안타까운 현상을 목격했다. 이런 방식의 접근으로는 북한 비핵화를 이루어낼 수 없다. 어떤 방식의 비핵화를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에게 휘둘리기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고 그 사이 북한은 핵보유를 공고화 할 것이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안보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것 같지만 물음표가 제기되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한 2018년 이래 한미동맹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를 이끌기 위해 소진한 협상카드로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계속해서 핵능력을 강화하고 있는데도 한미 양국은 억제력 관련 논의가 부실하다. 북핵 대응을 위한 협의체인 ‘확장억제정책협의체'(EDSCG)가 가동된 지 2년이 지나고 있다. 비공개로 개최하며 북한의 핵능력 진화를 평가하고 어떻게 억제력을 유지할 것인지 논의해도 될 텐데 감감 무소식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또 어떠한가. 정부의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소동을 겪었다. 다행히 입장 번복으로 인해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미일 안보협력의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주변국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말하지만 중국과 일본을 대함에 차이가 있다. 지난달 23일 한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한국 정부가 홍콩사태와 관련해 마치 자신들의 입장에 동조한 것처럼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제대로 된 항의를 못했다. 반면 일본과는 역사문제를 이유로 냉각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어진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분위기 전환에는 성공했지만 과연 강제징용 해법을 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외교는 급변하는 환경 변화에서 발생하는 현안 대응이 늘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자칫 방향성을 잃게 되면 국익에 큰 손실이 따른다. 따라서 신중하게 외교 원칙을 수립하고 그 추진에 있어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싱가포르가 우리보다 훨씬 적은 인구와 GDP를 가지고서도 동남아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이유다. 유럽의 네덜란드와 같은 통상국가, 북유럽 3국과 같은 평화와 인권 국가들도 결국은 이러한 원칙을 오랜 기간 추진해 왔기에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한 것은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흐름을 타며 글로벌 국가로 성장했고, 한반도 비핵화를 꾸준히 추진하면서 한미동맹을 통해 안보를 튼튼히 했으며, 주변국과의 지리적·역사적 난제들을 때론 참고, 때론 지혜로 극복해가며 관계를 발전시켜온 덕분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근거 없이 막연한 기대만으로 이 원칙들을 바꾸고자 한다면 그로 인해 다가올 불확실성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원칙이 있어야 기교도 가능하다. 야구에 빗대어 설명하면 투수의 직구에 힘이 있을 때 변화구가 더 위력을 발휘하는 이치다.

 

* 본 글은 1월 8일자 디지털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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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