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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원유 70% 이상 호르무즈해협 지나 / 해협 봉쇄 땐 직격탄… 北 도발도 대비해야

이란 군부의 최고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이 이라크 바그바드 국제공항에서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막기 위한 방어였다고 했지만 이란 최고 지도자는 가혹한 보복을 선언했다. 중동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 상황은 미국 매파와 이란 강경파 사이의 양국 대결 구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폭사한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지난 10여년간 공들여 육성한 중동 내 이란 프록시 조직이 복수를 천명하고 나섰다. 시리아와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가자지구 하마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중동 내 미군 기지와 관련 시설은 물론 미국의 동맹·우방국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를 표적으로 삼을 것이다. 이미 이란 프록시 조직은 아랍 산유왕정의 유전시설, 호르무즈 해협 통과 상선을 여러 차례 공격한 바 있다.

프록시 조직은 비대칭적·비전통적 방법을 이용한 저강도 소규모 공격을 즐겨 이용한다. 역량이 약하지만 그래서 잃을 것도 적은 쪽의 틈새 전략이다. 사이버 공격이나 드론 테러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까지 합세한다면 중동의 혼란은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벌써 알카에다 연계 조직인 알샤바브가 케냐에서 미군기지를 공격했다. 솔레이마니 사망 이틀 만에 일어난 일이다. 알샤바브는 수니파 극단주의 조직이기에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는 오히려 대척점에 서 있다.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은 사이버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충원돼 명령체계나 중앙 지도부의 통제 없이 산발적·독자적 테러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소수가 가상공간에서 사회에 대한 불특정 분노를 결집하면서 테러의 불가측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가장 강력한 라이벌 관계인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 이후 모두의 자제를 촉구하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대국 이란의 군부 최고 실세가 제거됐지만 역내 이란 프록시 조직의 활거와 극단주의 테러조직의 부상이라는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란과 부쩍 밀착해온 터키마저 침묵하는 이유는 곧 다가올 혼돈의 미래를 두고 편익계산에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새해 벽두 이라크에서 일어난 이란 정예부대 사령관의 사망 사건이 우리에게 미치는 가장 큰 걱정은 미국 주도의 연합체 동참 촉구와 파병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정부 역시 긴박하게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었다. 지금까진 호르무즈 해협 호위연합체 파병 요청이었지만 이란의 보복전이 시작될 경우 미국 주도로 더욱 큰 규모의 대테러 다국적 연합전선이 조직될 수 있다. 중동 전역에 걸쳐 동시다발적 테러 공격과 지루한 국지전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로 중동 내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 파병 지역의 위험은 빠르게 가중되는데 파병의 압박은 높아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주저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미국의 고마움을 모르며 방위비 분담에 소홀하다고 비난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불 능력이 떨어지는 동맹과는 관계를 쉽게 깨뜨릴 수 있다고도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트럼프 시대 우발적 변화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동맹 역할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이고 독단적 판단에 맞서 우리의 레버리지(지렛대)를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 대비가 시급하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 물량의 7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다. 만약 해협이 봉쇄된다면 한국 경제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미국의 관심이 중동에 가 있는 사이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도 큰 만큼 이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이제 정부는 중동 사태가 가져올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한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경제·안보적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1월 7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