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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 미얀마의 러카인(Rakhaine) 주 몇몇 국경 초소가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미얀마 군은 이 사건을 무슬림인 로힝야(Rohingya) 족 반란군의 소행이라고 규정하고 대대적인 로힝야족 탄압에 나섰다. 미얀마 군은 범인 색출을 빌미로 무차별적으로 로힝야족 마을을 습격했고, 방화, 강간, 살해 등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약 1,500 채의 가옥이 불탔고,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탄압을 피해 난민이 되었다. 이런 군의 인권 유린에 대해서 미얀마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수수 방관하고 있으며, 미얀마가 속한 아세안 회원국과 국제사회는 미얀마 정부에 관련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고 인권 유린을 방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급기야 말레이시아에서는 미얀마를 아세안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은 미얀마를 직접 방문해 미얀마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미얀마 남서부에 위치한 러카인주는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다. 무슬림 로힝야 족은 주로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약 2백만명 정도 되는 로힝야 인구중 130만명이 미얀마에 거주하며 약 50만명 정도가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다. 미얀마 인구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불교도인 버마족과 늘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로힝야인들은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미얀마에 원래부터 거주하던 원주민이라고 주장하며 미얀마 국민으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반면 버마족과 정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많은 로힝야인들이 실제로는 방글라데시나 주변 국가로부터 불법적으로 미얀마에 들어온 벵갈인 (Bengalis)이라고 인식하며, 로힝야인들이 미얀마의 일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로힝야인들의 실체에 대한 역사적 공방이 되풀이 되고 있는 사이에 소수민인 로힝야인들은 버마족 민간인과 군에 의해서 늘 착취당하고 탄압당해왔다. 무엇보다 미얀마가 정치적 자유화를 시작한 이후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2012년 버마족과 로힝야족 사이 큰 규모의 충돌이 일어난 이후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다. 2015년 기준으로 약 14만명의 로힝야족이 난민캠프 신세를 지고 있다. 로힝야 난민들은 방글라데시 등 주변국으로 탈출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반기지 않았던 방글라데시 등은 국경을 폐쇄했다. 주변 아세안 국가들도 로힝야 난민 수용에 한계가 있었다. 2015년 한때 약 8,000명의 로힝야족이 갈 곳 없이 안다만(Andaman) 해상을 표류했다.

아직까지 미얀마 정부는 이 문제에 적극 개입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 미얀마 정부는 1962년부터 이어진 50년 간의 군부 통치를 종식시키고 2016년 탄생했다. 물론 이런 민간 정부의 탄생 이면에는 민주화를 위한 수 많은 미얀마인의 희생과 국제사회의 노력이 있었음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현 미얀마의 대통령은 틴쪼 (Htin Kawe)인데 사실상 정부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찌 (Aung San Suu Kyi)다. 아이러니 하게도 미얀마의 정치적 자유화와 민주화를 외쳤던 수찌는 정치적 자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1년 이후 미얀마 소수민족 문제, 특히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다. 로힝야족 인권 문제가 이처럼 악화된데는 일차적으로 미얀마 민간 정부가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책임이 있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난 현 정부, 민주화 상징인 수찌가 이끄는 현 정부가 로힝야족 문제에 소극적인데는 몇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아직 그 세력이 막강하고 물리적 힘을 독점하고 있는 군부에 의한 로힝야족 인권 유린을 민간 정부가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다. 민간 정부는 군이 다시 전면에 나서 민주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다. 두번째로 수찌 역시 현실 정치인이고, 국민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버마족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서 전향적 입장을 가지기 어렵다. 로힝야 족에 대한 동정적 입장을 취하면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수찌의 정치적 입지는 버마족 사이에서 좁아질 수밖에 없다. 세번째로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서 버마 정부가 적극 개입하면 다른 수많은 소수종족 문제가 한꺼번에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1960년대 미얀마 군부 통치에 빌미를 주었던 소수민족 문제와 그에 따른 혼란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여는 셈이다. 물론 이런 현실적 문제가 미얀마 정부, 그리고 수찌의 로힝야족 인권 유린에 대한 소극적 대처를 합리화 시킬 수는 없다.

로힝야족 인권 문제는 현 미얀마 정부의 민낯을 보여준다. 국제적 관심을 받으면 태어난 민주주의의 신데렐라 속에 감춰진 인권 문제에 눈을 감은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미얀마의 정치적 자유화는 미얀마 민주화 세력이나 수찌 만의 성취가 아니다. 그 이면에 미얀마 군사정부를 압박하고, 미얀마 군사 정부가 정치적 자유를 허용했을 때 미얀마의 지속적인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위해 꾸준히 지원을 한 국제사회의 역할도 컸다. 더욱이 미얀마의 지속적인 민주화 추진과 정치 안정은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지원 없이는 어렵다. 경제적으로 실패한 민주화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로힝야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 악화된다면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하던 국제사회는 더 이상 미얀마를 지원하기 어렵고, 미얀마의 민주화는 좌초될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

* 본 블로그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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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2012년까지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다. 현재 한국동남아학회 부회장, 해양경찰청의 자문위원이고,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최근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적 공간의 등장(2015), 북한과 동남아시아(2017), 신남방정책이 아세안에서 성공하려면(2018),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신남방정책의 역할(2018), 한국과 아세안의 전략적 공통분모와 신남방정책(2019), 비정형성과 비공식성의 아세안 의사결정(2019), 피벗: 미국 아시아전략의 미래 (2020, 역서), G-Zero 시대 글로벌, 지역 질서와 중견국(2020), “Southeast Asian Perspectives of the United States and China: A SWOT Analysis”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