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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년 전, 3월 16일은 격동의 한일 관계사에 또 하나의 분기점을 마련한 날이었다. 3월 6일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고 불과 열흘 만에 이루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12년 만의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52일 만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한국 방문으로 화답하면서 한일 관계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를 포함하여 한일 정상은 2023년 한 해에만 7번 정상회의를 하였고, 양국 간에는 외교, 안보, 경제, 산업, 금융, 과학기술 등 각 분야에서 멈춰 있던 협력이 재개되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이 남아 있지만, 만남조차 불투명했던 양국 정상은 이제 웃으며 악수하고, 양국은 이제 날 선 대립과 비난이 아닌 우호와 협력을 논의한다. 불과 1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이러한 변화를 이끈 것은 한국 정부의 대담한 결정이었고, 참혹한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국제사회에 우뚝 선 한국의 저력이기도 하다. 미미하지만 일본 정부의 호응도 이를 뒷받침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한편이 비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년을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먼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일본은 역사 문제로 여전히 불편한 나라이지만 한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이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의 가치를 지키며,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협력할 수 있고, 협력해야 하는 전략적 파트너라는 의미이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 갖는 이익과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세워질 때, 양국 협력의 방향이 선명해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여러 협력관계 속에서도 역사 문제가 재점화되면 모든 이슈가 덮이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한일 관계의 정치화, 국민 감정을 이용한 상대의 악마화 속에서 한일 관계의 전략적 의미는 터부시되어 왔다. 이제는 냉철한 판단을 기반으로, 한일 관계에 있어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와 방향으로 함께 갈 수 있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과거의 상처를 보듬으며, 미래를 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25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많은 곳에서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와 제언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누군가는 ‘제2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와 같은 빅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관계를 오래 지켜본 수많은 전문가와 오피니언 리더들의 제언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제언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이미 많은 제언들이 있었고, 이미 많은 파고를 넘어온 한일 관계에 새롭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 많은 제언들이 옥상옥(屋上屋)이 되지 않도록 달라진 국제 정세와 한일의 위상 변화를 반영하고, 새로운 세대와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많은 노력들이 모여 2025년이 ‘한일 관계 재도약의 해’가 되길 기대한다.

 

* 본 글은 3월 14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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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 등이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