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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향한 민주 및 공화 양당의 경선 일정 중 35%의 대의원이 걸린 ‘슈퍼 화요일’을 지나면서 2020년에 이어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가 가시권 내에 들어오고 있다.

트럼프는 2월 초 공화당 경선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충분히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들을 지켜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러시아)이 무슨 짓을 하든지 오히려 부추길 수도 있다”고 하여 나토 회원국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트럼프의 이런 발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7년 11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건설비의 90%에 해당하는 97억 달러를 제공하여 건설한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를 둘러보고 헬리콥터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중 “고층 빌딩들을 봐. 고속도로를 봐. 저 기차를 봐. 이 모든 것을 봐. 우리가 모든 것을 지불하고 있어. 한국이 모든 것을 지불해야 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한국)은 우리에게 삼성 TV를 파는데, 우리는 그들을 보호해준다. 이는 맞지 않는다”며 한국인에 대해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트럼프의 발언은 그가 시장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삼성이 미국에 TV를 팔지 않는다면 미국 소비자들은 더 비싼 일본 TV나 질이 떨어지는 중국산을 사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바탕으로 형체를 갖추어 온 시스템이며, 개인의 이기주의가 상호적 이타주의로 진화해온 과정이다. 시장경제를 무역으로 확장하면 각 국가가 자기의 강점을 지닌 상품을 서로 교환하는 관계가 당연하며 특정 국가만이 이익을 본다는 관념이 나올 수 없다.

트럼프는 동맹이나 우방국들의 상품이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을 마치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대로 높은 관세로 외국 상품을 차단해서 미국 상품만을 소비하도록 유도하면 미국 소비자들은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하면 일시적으로 미국 내 고용은 늘어날 수 있겠으나, 높은 상품 가격으로 인해 미국인들의 삶의 질은 더 나빠질 것이다.

트럼프의 일방주의가 지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미국의 고립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세계적인 주도국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미국 스스로의 역량 못지않게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구축한 동맹 네트워크가 큰 힘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트럼프식 일방주의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미국과 미국인들이다. 트럼프의 잘못된 선택으로 북-중-러의 권위주의 연대가 동북아를 장악하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미국에 대한 핵위협을 더욱 증강할 것이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동맹 등 공급망 재편도 힘을 잃게 될 것이고,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 금융 및 무역질서의 붕괴는 미국 경제를 망치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부상은 적지 않은 미국인들 역시 그의 생각에 동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이제 트럼프식 일방주의의 복귀를 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 동맹을 경제적인 손익으로만 따지는 트럼프의 사고방식을 활용하여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공약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트럼프는 집권 직후부터 2025년 종료되는 11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을 겨냥하여 방위비 분담액의 대폭 증액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증액 요구를 일부 수용하되, 그 반대급부로 점증하는 북한 핵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확실한 보장 조치를 받아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보장 조치에 따라서는 더 나아가 비용 분담도 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기존의 B-61 전술핵무기를 새로운 유도폭탄으로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정했고, 한 기당 업그레이드 비용이 400억 원이 넘게 든다고 하는데, 전술핵무기 업그레이드 비용과 한국 내 저장시설 건설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업그레이드한 30기 정도의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는 협상안을 제시할 수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대응하기 위해 함선의 추가 건조를 추진하고 있지만, 함선 건조 능력 면에서 중국에 역부족인 상태에 놓여 있는데, 우리의 세계 정상급 조선 능력을 활용하여 한미 간 함선 건조 협력을 추진하자는 제안도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

트럼프는 스스로 거래의 달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의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들어주어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만족감을 주면서 우리의 이익도 챙기는 거래의 지혜가 필요하다.

 

* 본 글은 3월 7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