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주요국과 중국의 밀착이 예사롭지 않다. 둘의 협력은 경제를 넘어 외교 안보 분야까지 빠르게 확장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걸프 산유국에서 중국 기업이 경전철과 고속철, 태양광 발전소, 공항, 항만 시설을 새로 구축하고 해저 케이블과 위성항법 및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포함한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에 전방위로 뛰어들었다.
미국의 제재로 경제 위기에 처한 이란에도 중국은 최대 원유 수출국이다. 올해 3월에는 중국이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동의 불안정한 정세가 자국의 경제 발전에 방해될까봐 개입을 꺼리던 과거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나아가 사우디와 UAE, 카타르는 중국산 무인기와 탄도미사일을 대거 구매했다. 중국은 UAE에 군사시설을 짓고 있으며 올 8월 양국 공군은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 연합훈련을 시행했다.
셰일 혁명에 성공해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 미국과 달리 중국은 걸프 산유국에 독보적인 에너지 수출국이며 이들 나라가 사활을 건 탈석유 산업 다각화 개혁의 핵심 협력국이다. 또 2011년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아시아 중시 정책을 발표한 이래 중국은 중동 주요국에 미국의 탈중동 이후를 대비할 외교 다변화 대상국이다. 한편 2013년 일대일로 전략을 천명해 거대 경제권을 세우려는 중국에 중동은 전략적 교두보 지역이다.
중동의 지배층은 중국에 미국 주도 질서의 균형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강화를 외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중동 정부들에 내정 불간섭과 과감한 인프라 건설을 제시하며 윈윈 모델을 내세웠다. 디지털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은 자국 표준에 따라 별 제한 없이 중동 여러 나라에 5G 네트워크와 최첨단 보안 감시 기술을 보급했다. 중동 엘리트는 원조를 주는 국가에 인권 보고서를 제출케 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에 지쳤지만, 탈정치를 앞세운 중국에선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이에 중동의 많은 정부가 중국의 신장웨이우얼 무슬림 탄압에도 내정이라며 침묵한다.
중동 시민도 중국을 미국보다 더 좋아한다. 2022년 ‘아랍 바로미터’가 중동 12개국 시민을 대상으로 벌인 강대국 인식조사에 따르면 11개국에서 중국 호감도가 미국을 앞질렀다. 2차 세계대전 이래 중동의 민주화 지원이라는 대원칙이 무색하게 미국은 잦은 정권 교체로 일관성 없는 중동 정책을 펼쳤다. 반면 중동에서 정치·군사 개입의 역사가 거의 없는 중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비롯해 제3세계 문제에서 늘 약자 편에 섰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중동은 미국을 버리고 싶지 않다. 미국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미국과의 경제 협력은 더 강화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중국에 대해선 낮은 인프라 품질과 유지 관리 소홀, 현지화 외면과 뇌물 관행을 지적했다. 중동 정부 입장에선 무엇보다 미국이 제공하는 안전 보장을 중국이 대신 할 수 없다. 미국은 사우디, UAE,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등에 기지를 두고 있으며 미군 4만여 명이 합동 훈련을 위해 주둔 중이다. 미 중부사령부의 지역 본부가 카타르에, 제5함대가 바레인에 있다. 미군은 최근 사우디에 첨단 무기 개발센터를 짓고 친이란 프록시 조직인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에 함께 대응하고 있다.
미·중의 첨예한 경쟁이 중동에서도 뜨겁다. 민주주의, 투명성, 자유시장경제, 법질서의 가치로 무장한 미국과 미국의 압박에 맞선 중국 사이에서 중동 여러 나라가 장단기 실익을 따지며 숨 가쁜 밀고 당기기 작업에 한창이다.
* 본 글은 12월 12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