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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성인이 되어 꾸었던 악몽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북한 주민이 되어 무시무시한 독재 권력의 감시 체제하에서 헤매던 꿈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깼던 기억이 생생하다. 70년대 초 유신독재 시절 학생운동과 관련해 경찰에 쫓겨 다니던 기억과 중첩되기도 했다. 투사의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내 삶의 존재론적 기반이 됐다. 대부분의 국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중남미,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유럽 도처에서 권위주의 포퓰리스트들이 득세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급기야는 민주주의의 모범국이랄 수 있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고, 그 후 상식과 기본관념을 흔드는 일들이 터져 나왔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틀을 깨려는 시도들이 행해졌고, 대통령 스스로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폭동을 사주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이러한 미국 상황은 한국 정치에도 상당한 심리적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진보와 보수 양 진영 모두에서 ‘묻지마’부대가 특정 정치인을 추종하며 민주제도와 절차들을 쉽게 무시하고 극단적 방향으로 치달았다. 민생 관련 정책 토론과 경쟁은 뒷전으로 밀리고 정당은 무력해졌다. 국민을 위해 잘하기 경쟁보다 상대 당이 못하기를 기다리면서, 거대 양당은 극단적 대결 속의 공생관계 속에 안주했다. 어느 대법원 수장의 행태는 1950년대 서슬 파랬던 김병로 대법원장 시대보다 훨씬 초라해져 버린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24년에는 세계인구 41%가 살고 있는 40개국에서 선거가 있고, 11월 5일에는 미국 대선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의 바람이 폭풍으로 변할지 아니면 사그라들지, 대세가 내년에 결정될 것이다.

미국의 권위 있는 시사저널 애틀랜틱은 ‘만일 트럼프가 승리하면(If Trump Wins)’이라는 신년 특집을 출간했다. 그 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작성자였던 데이비드 프럼은 트럼프가 승리하면 벌어질 일들을 예측했다. “자신이 기소된 모든 재판을 중단시키고, 자신을 위해 2020년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했던 모든 사람을 사면할 것이고, 법무부로 하여금 자신의 적과 비판자들을 조사하게 할 것이며, 공무원 독립을 중단시키고, 자신의 지시 이행을 거부한 연방 관리들을 해고할 것이며, 만일 시민들이 저항하면 군대를 동원해 진압해 버릴 것이다.”

유럽과 중남미 민주주의를 20여년간 연구해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엘 지블렛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최근 저서에서 민주주의는 과거처럼 군부 쿠데타로 무너지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절차를 밟아 당선된 잠재적 독재자들에 의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극단주의자들을 배제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중요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정당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결단이 필요한데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건강해지려면 헌법도 중요하지만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헌법을 받쳐 줘야 하는데 그 규범의 핵심은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관용과 이해,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국가 전체를 위해 당파적 이해를 스스로 절제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의 지적 하나하나로부터 우리 한국의 정당들은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까?

그런데 잠재적 독재자, 극단주의자, 포퓰리스트들은 어떻게 선거에서 승리하는가? 2016년 트럼프의 당선과정을 보면 답이 나온다. 그는 세계화 과정에서 피해를 보고 낙오된, 그러나 제대로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분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당선됐다. 이런 패턴은 세계의 다른 지역이나 한국에서도 대체로 비슷하다. 그렇다면 해답은 단순해진다. 민주적 집권 세력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시민들의 분노를 올바른 정책 실현으로 잠재우고 통합의 틀 안으로 품어내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수많은 법안을 통과시키고 외국 기업들을 끌어들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산층을 강화하려는 것이 그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살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중소기업 관계를 효율성과 호혜성에 기반을 둔 상생 관계로 혁신하고, 첨단 기술력 육성에 매진하고,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중소상공인들을 지원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며, 노동 개혁을 추진하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그래서 중산층과 중도의 마음을 끌어당기면 될 것이다. 결국 이념이 아니라 민생에 매진하는 것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이다.

1871년 통일을 달성한 독일의 명재상 비스마르크는 국익을 앞세워 냉철한 현실주의(Realpolitik) 외교를 펼쳤다. 이로써 국력을 키워 나갈 안정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사회보장시스템을 과감하게 구축해 소외계층을 끌어안아 통합으로 이끌었다. 2024년 이후 불안한 세계정세 속에서 민주주의, 안보, 번영을 추구하는 한국에 150여년 전 그의 전략이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 본 글은 12월 16일자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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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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