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白頭山)은 단군신화에서 ‘태백산(太白山)’으로 불리는 곳으로 고조선 시대 이래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어 쉽게 갈 수는 없지만, 코로나-19 이전 연(年) 5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백두산을 찾은 것은 이런 백두산의 상징성과 매력 때문일 것이다.
백두산이 ‘백두’가 아닌 ‘창바이(長白)’로 불릴 위험에 처해있다. 중국은 2020년도에 ‘창바이산’ 지역을 세계지질공원(Global Geoparks)으로 등록을 신청했고 2024년 3월 제219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창바이산’ 지역을 새로운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했는데, 우리의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백두산을 중국의 것으로 알게 될 것이다.
지리적 영역이 여러 국가에 걸쳐 있는 경우 공동등재도 가능한데, 유네스코에 등재된 지질공원 중 5개가 공동등재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과 아일랜드는 영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에 펼쳐진 지하동굴인 마블 아치 동굴을, 독일과 폴란드는 국경지역을 가로질러 흐르는 나이세 강 주변을,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는 두 나라 접경지의 카라완켄 산맥 지역을 공동 등재했다. 백두산을 공유하고 있는 북한과는 공동등재를 추진했어야 하고, 명칭도 ‘창바이산’이 아니라 ‘창바이-백두’와 같이 중국과 우리를 동시에 상징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어야 했다.
중국의 단독등재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동북공정에서 중국은 만주 지역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부정한다. 중국은 “현재 중국 영토 내에 있는 모든 민족은 광의의 중화민족이고 그들이 이루어낸 역사적 활동도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자의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창바이산문화론(長白山文化論)’을 제기하고 백두산을 중국화하려고 했다. 중국 정부는 2011년에 6부작 다큐멘터리 ‘장백산’을 제작 및 방영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이고 백두산도 중국의 산이라는 인식을 각인시키고자 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2017년 4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말했는데, 국가 간 상호존중의 정신이 있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한 역사학자에 따르면 우리는 수천년 역사 속에서 931회의 크고 작은 외침을 받았고 이 중 438회가 중국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특히 새로운 왕조가 등장할 때마다 중국은 우리를 자신들에게 복속시키려고 했는데, 우리가 이를 거부할 때마다 침략을 서슴치 않았고 우리는 목숨을 바쳐 싸웠다. 6세기 말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주변국에 입조(入朝)를 명했지만 고구려 영양왕은 이를 거부했고, 598년 수 문제가 30만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지만 임유관 전투에서 강이식 장군이 이끄는 고구려군에게 대패했다. 612년에는 수 양제가 113만 병력으로 고구려를 침공했는데 전군의 길이는 400㎞나 되었고, 발진에만 40일이 걸렸다고 한다. 을지문덕 장군의 지략과 용맹에 의해 수나라 대군은 살수대첩에서 전멸하다시피 했고, 이후 수나라는 국력이 쇠퇴하여 멸망했다. 7세기 중반 당나라는 고구려를 자신의 속국으로 삼으려 했는데, 연개소문이 이를 거부하자 645년 당 태종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했지만 연개소문과 양만춘의 활약으로 고구려는 안시성 전투를 비롯한 대당 항쟁에서 승리하여 당나라를 몰아냈다. 7세기 말 당나라가 신라의 자주성을 부인하고 한반도를 자신들의 일부로 삼으려고 하자 신라는 당나라가 장악하고 있던 요동을 선제공격했다. 이에 당나라가 수십만의 병력으로 침공했는데 신라 문무왕은 이에 맞서 매소성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당나라를 몰아냈다. 993년에서 1019년 사이 고려는 세 차례나 거란의 침공에 맞서 싸웠는데, 1019년 3차 고려 침공에서 강감찬 장군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거란군과 싸워 귀주대첩을 이루어냈고 이후 거란은 고려를 침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모두 한반도를 중국의 일부로 만들려는 중국에 맞서 나라의 운명을 걸고 싸운 전쟁들로 우리나라와 중국이 엄연히 다른 나라라는 것을 증명한다.
‘백두산의 중국화’에 대해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에게 백두산이 한민족에게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상징적인 곳이므로, 중국이 설파하는 ‘창바이산문화론’이 현재의 한중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중국의 단독등재가 관철되었지만 ‘백두산’ 명칭의 병행표기, 백두산 역사에 대한 왜곡의 시정 등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 미래 세대들에 대해서도 백두산의 역사와 상징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중국의 일방적 역사왜곡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본 글은 4월 25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