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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제재 해제가 다급한 북한정권

2월말 하노이에서 있었던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북한과 미국은 서로에게 결렬 책임을 전가하는 기자회견을 각각 가졌다. 흥미롭게도 미·북 간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부분은 비핵화 과정을 위한 대북제재 철회 수준에 관해서였다. 미국측은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직접 나서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북한은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부상이 직접 외 신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북한은 11개의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중에서 5개의 해제만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북한이 철회를 요구한 5개 결의안은 2016년 이후 안보리가 통과한 북한경제를 강력하게 압박하는 경제제재 조치들이다.

북한이 비확산과 군사적 압박에 초점을 맞춘 이전 결의안을 놔두고 경제 제재 조치 해제를 요구한 점과, 최근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강하게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북한 당국이 느끼는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과 무관치 않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북한 경제는 2017년 명목GNI(Gross National Income)가 전년 대비 -3.5% 감소했다. 2017년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임을 감안하면, 2018년 북 한경제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되고 올해는 더욱 경제상황이 악화되었을 것 이다.

북한경제가 직면한 어려움은 북한의 식량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보고가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월 유엔의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북한의 ‘곡물 작황 식량 상황 보고서’와 이보다 앞서 북한 주재 유엔 상주조정관실에서 발표한 ‘2019년 북한 필요와 우선순위 보고서’는 북한의 식량생산이 전년도에 비해 9% 감소하고 인구의 43%가 여전히 식량부족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이 보고한 보고서와 최근에 보고된 아동영양실태 조사, 그리고 최근 보고된 북한 쌀가격 동향을 보면 실제로 북한경제가 식량난에 직면 한 것인지, 그리고 북한 식량 부족 문제가 제재로 인한 것인지는 의문시된다. 이상기후로 인해 2018년도 북한의 식량생산은 대폭 감소했지만 평양과 접경지대 쌀 시세는 현재 안정적이다. 심지어 유엔의 2017년 아동영양실태 조사보고서를 살펴보면 2012년 대비 북한 아동들의 영양실태가 호전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과는 제재의 유효성 여부를 떠나 주민생활 수준을 유 지하는 북한 당국의 경제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현 대북제재 상황

그렇다면 제재 조치와 북한 민생, 특히 식량수급 상황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데이터를 살펴보면 2016년부터 유엔 안보리는 5개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들은 결의안 2270호, 2321호, 2371호, 2375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7년 11월 말 통과된 2397호이다. 2270호는 사상 처음으로 민생 부분 제외를 조건으로 북한의 수출을 차단했으며, 2321호와 2371호는 각각 신규 및 기존 북한과의 합작사업을 금지하여 개성공단 재개를 사실상 막았다. 2375호는 처음으로 북한의 정제유 수입을 제한했으며, 후속 결의안인 2397호는 북한의 정제유 수입쿼터를 50만 배럴로까지 줄였다.

특히 2397호는 북한이 농수산물과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해 얻는 수입을 차단하고 기계류, 전자기기, 철강재, 건축자재 및 철도와 자동차를 포함한 거의 모든 운송수단의 북한으로의 반입을 봉쇄하였다. 2397호로 인한 효과는 엄청났다. 이전까지의 결의안이 북한의 수출만을 겨냥했다면 2397호는 북한의 수입까지 본격적으로 차단하였다. 그 결과 북한의 수입은 2018년부터 크게 위축되었다. 2018년 8월 중국 해관(세관)의 보고에 따르면 올 8월까지 중 국의 대북수출은 38%, 수입은 88.1%가 감소하였다. 아직 2018년 전해에 해당하는 북·중 무역 통계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2018년 상반기 추세는 그대로 유지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수출과 수입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조치는 인도주의적 지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한한 적은 없으나, 북한의 수출입과 운송, 송금 등을 포괄적으로 제한한 경제제재 조치로 인해 인도적 지원의 수송과 금융지원 등은 사실상 2017년을 기점으로 끊기다시피 하였다. 이로 인해 2012년부터 2018년 사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대북지원은 연 1억1천7백만 달러에서 1천7백만 달러까지 감소하였다.

북한의 수입을 차단한 것은 수출에 대한 제재와는 다른 차원에서 북한경제에 영향을 끼쳤다. 북한은 현재 김정은의 치적사업으로 중요한 건설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중장비와 철근 등 건축자재의 상당 부분을 외부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2397호는 북한의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100% 해외에 의존하는 석유제품은 북한의 산업활동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수출제재가 북한 정권의 외화수입을 제한한다면 수입에 대한 제재는 북한내 산업 활동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현 대북 제재 체제의 영향은 주로 산업 부문에 집중되었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2017년도 북한 GNI에 따르면 대북제재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경제분야는 광업(-11%), 제조업(-6.9%), 중화학공업(-10.4%), 그리고 건설업(-4.4%)이다. 농림어업분야는 -1.3%만 하락하여 제재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북제재와 북한의 만성적 식량 부족

농업분야는 북한 GNI 중 22%를 차지한다. 따라서 농업생산이 감소하면 이는 곧바로 북한 경제성장률로 연결된다. <표1>을 보면 식량생산이 감소한 다음해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은 반대의 경우다. 식량생산이 2015년 대비 15% 가량 증가하면서 북한의 경제성장률도 지난 10년간 최고 수준인 3.9%에 이르렀다. 그러나 2018년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최근 9년 기간 중에서 가장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 된다. 2018년 생산 수준은 전년 대비 9%, 2016년 대비 16% 감소하였다. 세 계식량기구는 이를 2018년도에 있었던 여러 기후 이상의 영향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한다. 2018년 여름 북한 곡창지대의 기온은 평년보다 평균 11도 높았고, 이후 태풍 솔릭의 영향을 받았다. 북한은 붕괴된 수치 인프라를 방치하고 경작 면적을 지나치게 확장한 나머지 자연재해에 취약한 상태이다. 거의 매년 일어나는 홍수로 인한 피해는 이를 방증한다.

<표 1> 북한의 연도별 식량생산(단위: 백만톤)과 경제성장률 2012~2018

표 1. 북한의 연도별 식량생산(단위_백만톤)과 경제성장률 2012~2018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피해가 계속 되는데는 북한 당국의 무관심이 있다. 북한 농업생산량이 90년대 이후 계속 정체된 이유는 북한 당국이 농업분야에 대해 무관심하고, 그 결과 만성적 투자 부족으로 인해 자연재해에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투자 부족과 자연재해로 인한 북한 식량 생산의 변동성은 왜 북한이 주기적으로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하는지를 잘 설명한다.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지난 10년 간 평균적으로 5백만 톤 중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식량자족 수준에서 매년 평균적으로 약 1백만 톤의 식량 생산량이 항상 부족한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황은 대북제재보다는 북한 당국의 계속되는 무관심과 방치에 더 기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실패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식량사정은 악화되지 않고 도리어 원만하게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감소하는 식량 생산과 호전되는 영양실태

북한 식량 상황의 심각함을 호소하는 유엔 보고서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확인된다. 유엔아동기금(UNICEF)과 북한 당국은 1998년 이후부터 비정기적으로 북한 전역에서 발육부진과 저체중 등 아동영양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2017년에 실시되어 2018년에 발표된 아동영양실태 조사에 따르면 북한 아동 중 발육부진을 겪는 비율은 2009년 5.2%, 2012년 4%, 그리고 2017년 3%로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보통 발육부진 비율이 5% 이하이면 영양부족사태가 개선된 것으로 취급된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2009년을 기점으로 상당히 증가했으나 단 한 번도 식량 부족 문제가 해결된 적이 없고, 동시에 북한 아동들의 영양실태는 점차 개선되었다는 사실이다. 외부의 식량 및 인도적 지원은 2008~2009년을 기점으로 북한 당국의 결정으로 인해 크게 감소했기 때문에 외부 식량지원이 북한 아동영양실태의 최근 개선에 기여했을 가능성은 낮다.

감소하는 식량 생산량과 호전된 아동 영양실태라는 모순에는 북한 당국이 유엔에 보고한 공식 식량 생산량 외에도 추가적 식량 생산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당국은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개인 농사를 허용하였다. 작은 토지만을 활용하기 때문에 소토지로 불리는 개인 농업은 공식 식량 생산 통계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상당수의 북한 주민은 개인이 소유한 소토지에서 생산한 식량에 의존하며 일부는 장마당에 잉여 생산분을 판매하기도 한다. 일부 연구는 이러한 소토지 경작에서 나오는 추가 생산분이 국가배급을 사실상 대체한 것으로 본다(정은이, 2014).

북한의 공식통계가 식량 생산량의 전부가 아니라는 또 다른 증거는 북한내 쌀 시세가 최근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데일NK에서 추적하는 북한내 쌀 시세 동향을 보면(표2) 올해 들어서 쌀 가격이 지역에 따라 지난해 말 대비 최대 15% 가량 하락했다는 점이다. 북한 주민들이 소토지에서 생산하는 개인 식량이 주로 옥수수와 감자 등 부식물이라서 부족한 쌀은 수입에 의존해야 하며, 다행히 식량 수입은 국제사회 제재 위반 사항이 아니다. 유엔에 따르면 올해 북한 당국은 식량 부족량의 20만 톤만을 해외에서 수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따라서 북한 당국 외에도 장마당 쌀 장사꾼들이 외부에서 쌀을 수입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표 2> 최근 쌀 시세(단위: 북한 원/1 Kg)

표 2. 최근 쌀 시세(단위_북한 원_1 Kg)

최근 발간된 유엔 보고서들은 북한이 상시 식량 부족 국가임을 강조하며 인도적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대북제재의 장기화는 식량위기에 대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킨다. 하지만 현재 북한 식량 상황을 살펴보면 북한 당국과 주민이 각자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식량 생산을 제한하는 가장 큰 요인은 대북제재 보다는 자연재해를 막는 투자에 대해 무관심한 북한 당국이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개인 식량 생산을 장려하여 식량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채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공식적으로 확산되는 소토지 활용과 장마당 쌀 시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식량 수급의 안정화 등은 당국의 ‘친시장적’ 정책이 성공적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북한 당국의 정책은 제재국면에서 더욱 유효하다. 2017년 대북제재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농업 생산은 -1.3%만 위축되었고, 가장 최신 조사에 의하면 북한의 아동영양실태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외부의 우려와는 달리 국제사회의 제재조치로 인해 북한의 식량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이 상시적 식량 부족 국가임에는 틀림없다. 소토지 활용과 장마당만으로 더 많은 식량을 공급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더 많은 자본과 기술이 투입되어야만 한다. 이 부분은 분명 대북제재가 완화될 때만 가능하다.

 

* 본 글은 월간북한 5월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고명현
고명현

외교안보센터

고명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선임연구위원이다. 고 박사는 외교안보 이슈에 대한 계량적 접근을 바탕으로 북한체제의 지속 가능성 및 장기 전략, 제재 및 수출통제, 사이버, 한반도 안보 환경 등을 연구한다. 최근 연구 저서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제재 변화를 분석한 "Not Under Pressure: How Pressure Leaked of North Korea Sanctions" (2020)와 러시아의 대북 석유 수출선을 파헤친 “The Rise of Phantom Traders: Russian Oil Exports to North Korea” (2018) 등이 있다. 고 박사는 미 컬럼비아 대학교 (Columbia University)에서 경제학 학사 (1999) 및 통계학 석사 (2001)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 랜드연구소 (RAND Corp.) 산하 대학원인 Pardee RAND Graduate School에서 정책분석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2010) 미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UCLA) 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2015년 뭔헨안보회의(MSC)의 '젊은 리더' (Young Leader)로 선출되었던 고명현 박사는 現 미국 신미국안보센터 (CNAS)와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RUSI)의 객원연구위원이자 한국 국방부 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