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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해진 남·북·미 3자 입장 
文정부 ‘두 토끼’ 다 놓친 형국 
美 신뢰 없인 對北 영향력 상실

北 필요에 의한 회담이 바람직 
비핵화 개념과 범위 공개한 뒤
한·미 공조로 김정은 견인해야

지난 한 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 북한 정치국 및 최고인민회의 등을 통해 북핵(北核) 문제를 둘러싼 남·북·미 간의 견해차가 확실히 드러난 시간이었다. 여전히 대화와 협상의 여지는 있지만, 미국은 빅딜을 견지할 것이며, 북한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버티기로 갈 게 명확해졌다. 문 정부가 중재안으로 생각했던 ‘굿 이너프 딜’이나 ‘조기 수확(early harvest)’은 설 곳이 없게 됐다. 반대로 한국은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됐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두 마리 다 놓치는 형국이다.

문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접근을 추구하고 있다. 대북 특사 이야기도 나온다. 문제는, 북한이 한국의 정상회담 제의에 응할 것인지와 남북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수용할 만한 북한의 입장 변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다. 지금 상황으로는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과 이를 위한 준비에 호응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예의주시했을 북한은 문 정부를 통한 미국 설득은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기존 빅딜 입장을 강조하면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과 같은 한국 정부가 생각하고 있었을 복안들을 거의 모두 거부했다. 합의한 것이 있다면 톱다운 방식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뿐이다. 백악관이 발표한 정상회담 관련 자료에는 양국 정상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 of the DPRK)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permanent peace)에 관해 논의(discuss)했다’고 기술돼 있다. “의견을 같이했다”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설명과는 차이가 있다.

또 하나, 북한이 4차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은 무기 구매 이야기다. 얼마 전 F-35A가 한국에 인도됐을 때 북한은 이를 극렬히 비난했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은 항공기에서 미사일까지 한국이 많은 무기를 구매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은 약 15조 원에 이르는 미국산 무기를 사게 되는 것이고, 이는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의 철저한 이행을 통한 남북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북한으로선 수용할 수 없는 것이어서 남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작다.

우리의 필요보다는 북한의 필요에 의해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형식과 절차를 밟는 게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다. 미·북 모두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고 상대방에 대해 관망하는 자세인 만큼 일정 기간은 이미 확보된 것이고, 그 기간 중 긴장이나 위기가 고조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시점을 염두에 두고 정상회담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위한 여건 조성이 우선이어야 한다. 미국의 신뢰와 협력을 받지 못하는 한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된다. 북한으로부터 오지랖 넓다는 비난을 받는 중재가 아니라, 미국과 협력해 북한의 전략적 결단과 비핵화로의 길을 가야 할 시점에서 한·미 공조 강화를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성공적인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미·북, 남·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 가려면 한·미 양국 간 신뢰가 튼튼하고 공조가 긴밀히 이뤄져야 하고, 북한이 이를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핵화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우리의 명확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강조해야 한다. 또, 용어의 정리가 필요하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라고 하는 데 비해, 문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쓴다. 북한 비핵화가 더 정확한 말이고 북한에 의한 악용을 방지할 수 있다.

비핵화의 대상에는 물질·무기·시설·인원이 포함돼야 하고, 신고와 검증 역시 명확히 반영돼야 한다. 이러한 비핵화 조치들은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이라는 접근법으로 통일해야 한다. ‘굿 이너프 딜’ ‘조기 수확’은 자칫하면 다른 형태의 스몰딜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단계에서 주고받을 내용을 만들고, 그 틀 안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도 포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시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즉,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만들고 준수해 한·미 간 이견 발생을 방지하고, 이를 근거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시험하고 견인해 가야 한다.

 

* 본 글은 4월 16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