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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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지 60여일이 됐다. 그러나 아직 트럼프의 외교 독트린은 구체화되지 않았고, 파편적이며, 트럼프가 주창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공포와 조소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가 지난 30년간 세계정세와 국제경제질서에 대해 행한 발언과 지금까지 임명한 외교-안보 관련 인사들의 배경을 살펴보면 트럼프의 외교 전략이 보이는 것보다는 정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와 그의 보좌진이 가진 큰 그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리 잡은 다자간 질서를 미국 우선주의로 대체하고, 냉전 이후 미국의 최대 전략적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을 경제와 안보 양 측면에서 견제하는 것이다. 이런 큰 틀 안에서 대북 정책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대외정책의 근간인 다자간 질서를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와 군비 확장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미국 우선주의는 기본적으로 국제규범에 기반 한 외교관계를 국력에 기반 한 권력관계로 바꾸는 것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미국의 동맹관계, 안보전략, 통상질서, 인도적 지원, 인권정책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대외정책 자체가 달라지며, 미국이 주도한 세계질서 덕에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었던 한국은 미국 대외정책의 수혜국에서 피해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가 내세운 정책변화 중에서 어쩌면 가장 급진적이며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그 위협의 잠재력만 감지될 뿐 구체화되지는 못했다.

트럼프의 또 다른 외교기조는 국방력 강화이다. 미국의 국방력 우위는 여당인 공화당에서 오랫동안 주창해 온 정책이자 2차세계대전 이래 미국의 모든 정권이 유지해온 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국방정책은 한 가지 점에서 이전 정책들과 다르다. 바로 핵전력의 대대적 현대화와 증강이다. 재래식 전력 면에서 미국에 밀리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협적인 변화이다. 미국은 창이라고 할 수 있는 핵전력과 방패인 미사일 방어체제를 동시에 강화하여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 간 공포의 균형을 유지했던 상호확증파괴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개념까지 폐기하려고 한다. 미국의 핵전력 증강과 미사일 방어 체제 완성은 냉전 이후 꾸준히 진행되어 온 핵감축의 끝과 군비경쟁의 재시작을 의미하며, 이는 핵전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중국에겐 중대한 안보위협일 수 있다.

미국 외교기조의 큰 틀이 변화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도 변화하게 된다. 미국의 국방력 강화는 북한에 초점을 두었다기보다는 향후 미-중(러)간의 대결에서 미국의 전략적 우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이전 미국의 대북정책이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대북압박이었다면, 앞으로는 중국을 군사-경제적으로 압박하여 북핵 문제 해결을 도모할 것이다. 미국의 국방력 강화와 이로 인한 미-중간의 대립이 한국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정책변화는 중국에 대한 압박 지점을 현저히 넓혀 북한의 핵개발을 막는데 무기력했던 미국의 대북정책에 변화를 불어넣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국방력 강화 기조가 현실화 되면 중국이 치르는 지정학적 비용이 높아지게 된다. 북한이 핵실험을 처음 시작한 2006년부터 근 10년 동안 중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과소평가했고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적절히 대응하기보다는 의미를 축소하고 북한 대신 파장을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중국의 안이한 대응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드 배치로 인해 간접적으로나마 중국 또한 그 동안의 정책실패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로 인해 한중관계는 역대 최악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 대한 제재 수위 또한 전례 없이 높아졌다. 북핵과 사드 사이에 중국이 겪는 안보 딜레마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여기서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인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는 한편, 중국의 안보 딜레마에 대해서도 대화를 강화해야 한다.

 

트럼프의 외교 기조

 
트럼프 외교독트린의 목적은 경제와 안보 논리의 결합을 통해 동맹체제와 경제질서를 개편하여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다자간 질서1를 대체하는 것은 미국 우선주의, 즉 “America First”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단순한 고립주의 (isolationism)가 아니다. 트럼프는 다자간 질서에서 나오는 결실을 다른 국가들과 공유하지 않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독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미국 우선주의를 트럼프는 국방력 증강을 통해 뒷받침하려고 한다.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 이 기조는 기존 동맹 관계와 다자간 질서를 재편성 하는데 적용되며, 그 목적은 미국의 편익을 극대화하려는데 있다. 일단 미국은 양자간 관계에서 자신의 우위를 십분 활용해 상대방에게서 양보를 얻어내어 상대방과의 “윈-윈”이 아닌, 승자독식 체재를 지향한다. 기존 동맹국들은 자국 방위에 필요한 비용을 더 지출하던지 아니면 미국에 경제적 편익을 제공해야 한다. 트럼프는 다자간 질서를 지탱하는 근간이 다자간 자유무역체재에 있다고 본다. 그는 자유무역주의를 준수하는 미국을 다른 국가들이 이용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자유무역체재를 해체하는 게 도리어 미 국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대한 보복성 관세 부과를 주장하는 피터 나바로 (Peter Navarro)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교 (UC Irvine) 교수가 신설된 국가무역위원회 (National Trade Council: NTC)의 위원장으로 내정되고, 거대 석유기업인 엑손모빌 (Exxon Mobil)의 렉스 틸러슨 (Rex Tillerson)이 미 국무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다자간 자유무역체재를 미국 중심의 무역질서로 재편하려는 트럼프의 철학을 반영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그가 생각하는 대중정책에서 좀 더 구체화된다.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정책목표는 다자간 질서를 이용해 중국을 통제하는 것 보다는 중국이 스스로 톡톡히 덕을 봤다고 인정한 다자간 질서, 특히 국제무역질서를 뒤집어 아직까지 무역의존도가 큰 중국경제를 압박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통상을 통한 공세적 압박을 언급한다. 나바로는 본인의 저서2에서 중국과의 “균형무역”, 중국산 수입품에 적용되는 관세의 상향 조정, 그리고 중국의 통화조작국 지정을 주장한다. 트럼프 자신도 중국을 통화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45%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였다.3 미국이 이러한 위협을 실제로 옮길 경우 중국 연 GDP 성장률은 6.7%에서 5.4%로 떨어질 것으로 블룸버그 통신은 추정한다.4 이와 더불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의 지적재산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략할 것이다.

다만 나바로가 주창하는 중국에 대한 통상 압박은 쉽지 않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중국의 환율 조작국 지정은 최근 몇 년간 위안화 가치가 달러 대비 꾸준히 상승했기 때문에 국제사회와 미국 금융계의 동의를 얻기가 어렵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징벌적 관세를 매길 경우 중국은 WTO에 미국을 제소하는 방식으로 국제사회에 강하게 어필할 수 있다. 세계 경제 규모 1위와 2위 간의 무역전쟁은 당사국들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게도 경제적 피해를 끼치게 된다. 미-중간의 무역전쟁은 한국경제에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대중수출의 상당 부분이 부품과 소재 분야여서 실질적으로 우회적인 대미수출이기 때문이다.

국방력 증강: 미 보수층에는 오바마의 소극적인 대외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경쟁국들이 더 이상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번 트럼프 정부의 정책개발을 담당한 헤리티지 재단 (Heritage Foundation)은 이미 오래전부터 오바마의 국방예산 감축 조치가 미 국방력을 훼손했기 때문에 군비를 다시 증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실제로 트럼프가 약속한 국방력 증강은 헤리티지 재단이 준비해 놓은 국방정책의 기본안을 충실히 따른다.5 이 기본안은 크게 재래식 전력 강화와 핵전략 수정 부분으로 나뉜다.

재래식 전력 강화는 2013년 오바마 정부가 강제한 5천억 달러 수준의 국방예산 강제 감축 조치 (sequester)를 사실상 폐지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아래서 미 육군 병력은 48만에서 54만으로 증원되고, 미 해군은 현 272척인 함대 규모에 78척의 새로운 전투함과 잠수함을 추가하고 미 공군은 전투기를 100대 이상 추가로 늘릴 계획이다. 이러한 군사력 증강은 향후 10년간 5천억에서 최대 1조 달러 가량의 추가적 군비 지출로 이어질 전망이다.6 이미 트럼프는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2018년도 국방예산을 540억불 증액할 것을 약속하였다.

재래식 전력 강화보다 더 급진적인 변혁은 미국의 핵전력 증강이다. 향후 강화될 미사일 방어체제와 함께 미 핵전략의 첨단화는 러시아를 압박하고 특히 상대적으로 왜소한 핵전력을 보유한 중국의 핵억지력을 붕괴시킬 수 있다. “핵 없는 세상”을 꿈꾸었던 오바마와는 달리 트럼프는 미 핵전력의 절대 우위를 강조한다. 그는 미 핵자산 현대화의 일환으로 냉전 이후부터 거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던 미국의 육해공 공격 수단인 핵 트라이어드 (triad), 즉 대륙간 탄도탄 (ICBM), 전략폭격기, 그리고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SLBM)의 첨단화를 계획하고 있다. 2017년 현재 미국은 6,800여개, 러시아가 7,000여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7 트럼프는 일방적 핵감축을 중단하고 러시아를 능가할 정도로 핵무기 보유대수를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핵전력의 양적 증강만큼이나 중국과 러시아에게 위협적인 변화는 미국의 핵전략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일단 트럼프는 “핵 모호성 (nuclear ambiguity)” 방침을 유지할 예정이다. 핵 모호성은 미국이 생화학 무기 등으로 공격을 받았을 때 핵사용 및 선제 핵공격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방침인데, 오바마는 “핵 선제 불사용” (No First Use)을 통해 핵 모호성 방침을 사실상 폐기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핵 전문가와 한국 등 우방의 심각한 반대 때문에 철회할 수 밖에 없었다. 트럼프의 핵 모호성 방침 유지는 미국의 핵우산, 즉 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에 대해 한국과 일본 등 우방이 그동안 가졌던 의구심을 떨치는데 도움이 된다.

중국과 러시아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한 변화는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간 핵 균형을 유지해 준 상호확증파괴 정책의 실질적 폐기이다.8 미국은 냉전 이후 “공포의 균형”이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위협으로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을 항상 언급했다. “불량 국가”는 자국민의 생명을 경시하기 때문에 핵억지력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방의 이성적 반응에 기대야 하는 상호확증파괴만으로는 미국을 방어하기 불충분하기 때문에 불량 국가들의 핵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바로 이 “방패”가 미사일 방어 체계이다. 미사일 방어 체계가 완성되면 미국이 핵으로 다른 핵보유국을 선제공격하더라도 상대방의 반격은 미사일 방어 체계에 막히게 된다.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면 상호확증파괴 개념이 폐기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미국은 미사일 방어 체계의 규모를 가장 빠르게 확장하는 방법으로 해상 이지스 함을 택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 해상요격미사일 방어체계를 강조했는데, 이는 이지스 레이더를 탑재한 구축함과 SM-3 미사일로 조합된 요격시스템을 지칭한다. SM-3는 한국에 배치될 사드와는 달리9 사정거리가 긴 대신 최고 요격 고도가 높아 북한의 IRBM부터 ICBM까지 대응 가능하다. 현재 미국과 일본은 요격능력과 사정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린 SM-3 블록2A 공동 개발을 완료하고 배치 시작 단계에 들어간 상태이다. 탄도 미사일 방어 체제의 방점을 SM-3와 이지스 레이더의 조합인 해상요격미사일 시스템에 맞추면 향후 미사일 방어체제가 미국과 일본 중심으로 완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우선주의와 국방력 증강을 통틀어 트럼프 정부는 “힘을 통한 평화”10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 두 기조는 상호 대립적이다. 미국 우선주의는 기존 동맹 체제에 대한 개편을 의미하지만, 미국의 국방력 강화 기조의 토대는 전통적 동맹과의 협력 강화이다. 게다가 미국의 안보동맹과 다자간 질서가 미국의 패권을 보장한다는 인식은 미 제도권과 재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반대로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내에서 가장 비주류적인 외교 개념이어서 이를 실제로 구체화할 수 있는 인재들은 제도권 전문가 집단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인재난으로 인해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상당 기간 동안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의 도전은 두 정책기조간의 모순을 빠른 시일 내로 해소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북정책

 
현재 트럼프 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한 총체적 재검토 과정에 들어가 있다. 모든 대안을 고려하겠다는 취지대로 전술핵 재배치 및 선제공격부터 북한과 협상 제안까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90년대 첫 북한 핵위기 이후 새로운 북핵 해결 방안을 모색하지 않은 미 정부는 없다. 따라서 이번 정책 재검토를 통해 혁명적으로 새로운 해결법을 도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선제공격과 전술핵 재배치까지 고려하는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이전 행정부에 비해 더 공격적이나, 기본적 골격은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미사일방어체계를 중심으로 한미일 안보동맹을 공고히 하여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대북제재를 강화해 북한의 돈 줄을 막고, 북한과의 군비경쟁을 촉발해 정권과 경제를 아노미 상태로 몰아넣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전 행정부와는 달리 중국을 압박하는 부분을 포함시켜 대북압박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현재 트럼프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대중압박 조치 중 하나는 “세컨더리 보이콧” (2차 제재) 이다. 미 의회도 2차 제재를 지지한다. 2016년 초 의회를 통과한 대북제재강화법안 (North Korea Sanctions and Policy Enhancement Act of 2016)은 이미 2차 제재의 법적기반을 닦아 놓았다. 다만 이 법안은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기업들을 미 행정부 재량에 따라 개별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해 놓아 정치적 고려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 대중압박의 강도를 높이려면 북한과 거래한 중국기업들을 자동적으로 제재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미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기업에 대해 미국의 시장, 금융, 및 기업에 대한 접근을 금지하는 조치이다. 그러나 이 제재는 관할권을 둘러싸고 주권 침해와 국제법 위반에 대한 논란이 있는 일방적인 조치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2차 제재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실제로 금융제재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이 취하는 일방적 제재의 효과는 상당하다.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인해 북한이 입을 피해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2차 제재 조치를 중국기업에 취할 경우 생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에게 있어 북중무역은 연 60억 달러 규모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경제관계이다. 고로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실행할 경우 중국은 경제적 여파보다는 주권 침해 관점에서 대응할 것이며, 사드 배치 관련해 중국이 비관세장벽과 국내 규제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을 제재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미국과 미국에 동조하는 국가들의 기업을 제재할 것이다. 중국의 보복 가능성은 중국 시장과 중국의 투자가 아쉬운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에겐 매우 효과적인 제지책이다. 게다가 유럽연합은 세컨더리 보이콧과 같은 역외적용 (extra territorial claims) 제재에 대해 회의적이다.11 결국 국제사회의 적극적 동참을 이끌어 내기 어려워 대중압박 카드로서 세컨더리 보이콧의 효과는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로 인해 미국의 대중 압박 수단은 결국 핵전력 증강과 미사일 방어체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첫 조치는 미사일 방어체계 중심의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12 이미 작년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 협정(GSOMIA)이 맺어졌고 사드는 올해 내 배치될 예정이다. GSOMIA가 체결됨에 따라 미국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한국과 일본간의 정보교환을 양국이 직접적으로 할 수 있게 되어 북한 탄도미사일에 대한 미사일 방어 체계의 반응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된다. 향후 한미일 삼국이 보유한 SM-3 블록2A가 탐재된 이지스 함들의 데이터가 연동되면 강력한 미사일 방어 체계가 완성되게 된다.

이 경우 중국은 상당한 안보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의 ICBM 발사 움직임에 대해 트럼프가 발사는 있을 수 없다고 트위터로 언급한 것13은 북한 ICBM 요격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14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ICBM을 요격한다면 성공여부를 떠나 중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중국이 보유한 핵탄두 수는 260여개 불과한데 미국은 SM-3 블록2A만 350여대 이상 배치할 계획이며,15 미국의 요격미사일 수가 중국의 대륙간탄도탄 수보다 많아지면 중국의 핵 억지력은 크게 위축된다.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ICBM 전력을 증강하고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 중이다. 중국은 2016년 최신 고체연료 ICBM인 둥펑-41를 배치했고, 여기엔 중국 최초로 미사일 방어 체계를 교란하도록 각개 목표가 다른 10개의 다탄두 발사체 (MIRV: 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 가 탑재될 예정이다. 참고로 둥펑-41이 배치된 흑룡강 성은 사드 레이더의 탐지반경16 안에 있다. 사드 배치가 현실화되기 전부터 미국과 중국은 조용히 북핵과 미사일 방어 체계를 둘러싼 알력다툼을 시작했었던 것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미-중 간 전략적 경쟁 구도 안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미국의 국방예산 증액은 공격적이다. 트럼프는 2018년 국방예산을 10%가량 증액했으며,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중국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17년 국방예산을 2016년과 마찬가지로 7% 증액하였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국방예산과 핵전력, 그리고 미사일 방어체계를 확장해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미국의 대중압박이 가시화되는 지점 중 하나가 북한이다. 따라서 미국이 군사적 해결책을 추구할수록 중국이 느끼는 압박 수위 또한 높아질 것이다. 관건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을 어떻게 북한에 대한 협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지이다.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면서 동시에 북핵 문제에 대한 협조를 얻어내려면 군사와 외교가 병행되어야 한다. 문제는 현 트럼프 정부는 제대로 된 외교안보라인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트럼프 외교안보라인의 이러한 인재난은 세부 정책 분야로 내려 갈수록 더 심각하다. 미국의 한반도와 대중관계를 담당할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Assistant Secretary of East Asian and Pacific Affairs)외에도 북핵 문제 등을 다루는 고위급 인사들은 국무부와 국방부, NSC, 그리고 정보부처 (DNI, CIA)등 기관에서 사안에 따라 5~8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7 그러나 이들은 아직까지 임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는 백악관 전략수석인 스티브 배넌 (Steve Bannon)이 대표하는 미 우선주의 세력의 인재풀(pool)이 기존 외교안보 전문가 집단을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생기는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외교안보라인의 미완성은 대북정책에 대한 미 국방부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행정부의 첫 수장이 틸러슨 국무장관이 아니라 매티스 국방장관이라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당장 내일 있을 수 있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과 사후 대처는 미 국방부와 한반도를 관할하는 미군의 태평양 사령부 (Pacific Command)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당분간 미국의 대북정책은 국무부가 아닌 국방부가 주도하게 되어 외교적 수단보다는 군사적 압박과 중국에 대한 견제가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결론: 한국에 대한 함의

 
트럼프의 외교기조는 한국에게는 양날의 칼과 같다. 중국을 노리는 미국 우선주의는 수출과 중국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치명적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공세적 국방정책은 지지부진했던 북핵 문제 해결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게 기회이다. 현재 북한경제의 대중의존도는 90%에 육박한다. 북한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선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이 2006년 첫 핵실험 이후 4차례나 더 핵실험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10년 넘게 지속했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은 대화를 통해 중국에게 대북압박을 촉구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미국의 군사적 압박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유효하다. 사드 배치로 인해 한중관계는 역대 최악이지만 중국의 대북제재 수위 또한 역대 최고이다. 중국이 대북제재 수위를 높여 북한을 압박하는 이유는 단순히 미국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협했고 중국이 이에 굴복해서가 아니다. 계속된 북한의 대미도발로 인해 미국이 핵전력과 미사일 방어체계를 확장한 결과 중국의 핵억지력이 무너질 지경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에 보내는 경고라고 봐야 한다.

향후 동북아시아 정세는 미-중 대립의 가속화와 중국의 전략적 딜레마의 심화로 특징될 것이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독립변수는 북한이다. 북한의 핵개발이 미국을 자극하여 중국의 안보에 지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은 수년전부터 경고되어왔다. 중국으로선 이론적으로만 제기되었던 상황이 한국에 사드가 배치됨으로서 비로소 현실화된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대안 없이 북한정권을 포기할 수도 없다. 이 경우 중국은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고 동북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과 마주보게 된다. 따라서 중국의 대북제재 강화는 한국의 사드배치에 대한 보복조치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괘씸죄이다. 중국은 북중관계와 한중관계를 각각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파탄 낼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의 제재는 못할 것이다.

북한을 포기할 수 없는 중국의 딜레마에 대해 미국은 당분간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와 국방력 강화 기조를 통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압박에 굴복하여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협력 할 것이냐는 점이다. 압박은 중국의 딜레마를 심화시키고 거부감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한국만이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한국은 견고한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중국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는 한편,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에 가져올 손익에 대해서도 전략적 대화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중국이 북한 없는 한반도에 대해 품은 우려를 풀어주고, 필요할 경우 중국이 수용할만한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중국이 우려하는 통일한국과 미국과의 군사동맹에 대해 유연한 접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통일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유지하되, 주한미군의 규모, 구성, 배치 등에 대해서는 해당 시점의 안보상황을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려할 수 있다. 이렇게 북한 나아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딜레마와 우려가 풀리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협력 확보는 용이해질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여기서 여기서 다자간 질서는 자유무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제경제질서와 다자주의 제도 (multilateralism)을 의미한다.

  • 2.

    Peter Navarro and Greg Autry. ”Death by China: Confronting the dragon-a global call to action” Pearson Prentice Hall, 2011

  • 3.

    그러나 미국이 일방적으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징벌적 관세를 부과할 경우 중국은 미국을 WTO에 제소할 수 있다.

  • 4.

    Bloomberg. “Debate: Can China Survive Trump?” 2017.1.16. (https://www.bloomberg.com/view/articles/2017-01-16/can-china-survive-a-trump-led-trade-attack)

  • 5.

    Time. “Donald Trump Proposes Larger Military With Less to Do.” 2016.9.8.
    (http://time.com/4482334/donald-trump-military-foreign-policy/)

  • 6.

    Forbes. “President Trump Is Likely To Boost U.S. Military Spending By $500 Billion To $1 Trillion.” 2016.11.9. (http://www.forbes.com/sites/charlestiefer/2016/11/09/president-trump-is-likely-to-boost-u-s-military-spending-by-500-billion-to-1-trillion/#4b5237cd4108)

  • 7.

    Arms Control Association. “Nuclear Weapons: Who Has What at a Glance“ 2016.8.10.
    (https://www.armscontrol.org/factsheets/Nuclearweaponswhohaswhat)

  • 8.

    Dodge, M. “The Trump Administration’s Nuclear Weapons Policy: First Steps.” The Heritage Foundation. 2016.11.13.

  • 9.

    THAAD는 대신 최저 요격 고도가 낮아 IRBM뿐만 아니라 북한이 대규모로 보유한 스커드 등 다양한 형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적합하다.

  • 10.

    The Washington Post. “Trump to focus on ‘peace through strength’ over Obama’s ‘soft power’ approach.” 2016.12.29. (https://www.washingtonpost.com/politics/trump-to-focus-on-peace-through-strength-over-obamas-soft-power-approach/2016/12/28/286770c8-c6ce-11e6-8bee-54e800ef2a63_story.html?utm_term=.dedf147acd1d)

  • 11.

    전혜원. “EU 제재 정책의 현황과 시사점” IFANS 주요국제문제분석 2016-23

  • 12.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적, 위협적 행동에 ‘아주 엄청난 대가가 따를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한미-미일) 양국 간은 물론 (한미일) 3국 간의 긴밀한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연합뉴스. “트럼프정부 사드 배치개시 ’북핵불타협‘ 천명…’힘을 통한 평화‘” 2017.3.8.

  • 13.

    “North Korea just stated that it is in the final stages of developing a nuclear weapon capable of reaching parts of the U.S. It won’t happen!”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계정. 2017.1.2 (https://twitter.com/realDonaldTrump/status/816057920223846400?ref_src=twsrc%5Etfw)

  • 14.

    CNN. “North Korea sends message to Trump amid threat to fire missile ‘at any time.’” 2017.1.12. (http://edition.cnn.com/2017/01/09/asia/north-korea-trump-nuclear-missile/)

  • 15.

    U.S.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 “Missile Defense: Ballistic Missile Defense System Testing Delays Affect Delivery of Capabilities.” GAO-16-339R.

  • 16.

    전진배치 (Forward Based Mode) 모드로 전환할 경우. 현재 주한미군은 사드 레이더를 탐색거리가 짧은 종말 (Terminal Mode) 모드로만 사용하겠다고 천명한 상태이다.

  • 17.

    미 국무부의 경우 군비통제•국제안보 차관 (Undersecretary of State for Arms Control and International Security Affairs)과 그 밑으로 국제안보 비확산 (International Security and Nonproliferation) 담당 차관보와 군비통제-검증-준수 (Arms Control, Verification, and Compliance) 담당 차관보가 동북아시아 문제를 담당하게 된다. 미 국방부에선 국방정보부 (DIA)의 보고를 받는 정보 담당 차관 (Undersecretary for Intelligence)과 아시아 태평양 안보 담당 (Asia Pacific Security Affairs) 차관보가 간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bout Experts

고명현
고명현

외교안보센터

고명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선임연구위원이다. 고 박사는 외교안보 이슈에 대한 계량적 접근을 바탕으로 북한체제의 지속 가능성 및 장기 전략, 제재 및 수출통제, 사이버, 한반도 안보 환경 등을 연구한다. 최근 연구 저서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제재 변화를 분석한 "Not Under Pressure: How Pressure Leaked of North Korea Sanctions" (2020)와 러시아의 대북 석유 수출선을 파헤친 “The Rise of Phantom Traders: Russian Oil Exports to North Korea” (2018) 등이 있다. 고 박사는 미 컬럼비아 대학교 (Columbia University)에서 경제학 학사 (1999) 및 통계학 석사 (2001)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 랜드연구소 (RAND Corp.) 산하 대학원인 Pardee RAND Graduate School에서 정책분석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2010) 미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UCLA) 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2015년 뭔헨안보회의(MSC)의 '젊은 리더' (Young Leader)로 선출되었던 고명현 박사는 現 미국 신미국안보센터 (CNAS)와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RUSI)의 객원연구위원이자 한국 국방부 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