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1,687 views

2017년은 김정은이 육성 신년사를 발표한지 5년이 되는 해이다. 매년 조금씩 전년과의 차이를 드러내 왔듯이, 김정은의 금년 신년사 역시 예년과는 다른 몇 가지의 특성을 지니고 있고, 이는 선대(先代)와는 차별화된 김정은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의미한다.

첫째는 선대에 대한 언급의 빈도이다. 2013년 25회, 2014년 11회에 걸쳐 나타났던 김일성/김정일 명칭은 2015년에 들어 사라졌으며, ‘장군’ 혹은 ‘수령’ 등의 우회적 표현만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이러한 간접적인 언급마저도 줄어들었다. 2017년에는 사실상 직ㆍ간접적으로 선대를 언급한 표현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름은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화석화(化石化)되었다. 새로운 수령으로서의 ‘홀로서기’를 시도하되, 선대의 역사적 유산(주체사상)은 계승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표 1. 최근 5년간의 북한 신년사(공동사설) 내용 비교

표1. 최근 5년간의 북한 신년사(공동사설) 내용 비교

둘째, ‘선군’이란 단어의 격하된 자리매김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던 ‘선군’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2017년에 들어 신년사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대신, ‘선군혁명의 병기창’과 같이 국방 분야에 특화된 부분에 국한되어 사용되었을 뿐이다. 즉, 고위 장교단의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하면서도 국방과 사회적 동원의 중추인 인민군 전체의 충성심은 담보하고자 했다.

셋째, 김정은식의 새로운 단어 명명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국가 비전이라 할 수 있었던 ‘강성대국’ 혹은 ‘강성국가’ 대신 ‘사회주의강국’이란 단어가 도처에 등장(5회)함으로써 김정은식 브랜드네임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하였다. ‘자강력’ 혹은 ‘자강’이란 표현 역시 마찬가지이다. 2016년에 들어 처음 등장하였던 ‘자강’의 개념은 2017년 신년사에서는 언급 횟수가 5회로 대폭 증가했다. ‘당의 영도’와 같은 표현 역시 당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당의 두리에 뭉쳐”와 같은 표현으로 변화되었다. 결국 자신의 언어와 고유한 수사(修辭)를 통해 당ㆍ정ㆍ군을 장악한 ‘수령’으로서의 상징성을 높이려고 했다.

대외관계 부분에서 큰 변화는 없다.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현 정부와는 대화에 대한 의지가 없으며, 현 정부와 추구하는 점이 비슷한 정치 세력과도 대화ㆍ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우회적 논리를 신년사에 담았다. 관심을 끄는 “대륙간탄도로케트(ICBM: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시험 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라는 주장은 미사일 시험발사가 임박했다기 보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을 끌고 핵국가로서 지위를 인정받는 미북대화에 관심이 있음을 의미한다. 즉 미사일 시험발사 여부는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키워드의 변동은 2017년의 북한이 이제는 과거와는 차별화된 ‘김정은 2기’의 시발점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과거의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김정은 자신의 구상과 전략대로 대내외정책을 구사해 나갈 것이며, 이를 통해 권력 기반을 더욱 확고히 다지는 한편, 다양한 외부 도전을 헤쳐 나가겠다는 다짐이 2017년 신년사에 담긴 메시지의 근간이다.
 

선대로부터의 정통성을 바탕으로 자기 스타일의 강화

2016년 5월의 제7차 노동당대회 총화보고에서 나타났듯이 북한 사회의 핵심 지도 이념이라 할 수 있는 ‘주체사상’은 김정은에 의해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재해석되었다. 이는 선대로부터의 혈연적 계승자라 할 수 있는 김정은 자신의 정통성을 은근히 강조하는 동시에, 정치 이데올로기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판단된다. ‘선군정치’의 자리매김 역시 분명해졌다. 주체 없는 선군, ‘김일성-김정일주의’에 기반을 둔 수령의 영도가 배제된 선군은 그 자체가 무의미함을 암시한 것이다.

‘자강’에 대한 강조는 주체사상의 일부인 ‘경제에서의 자립’을 연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북한이 현재 처한 대외관계에서도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자강’의 개념은 2016년 신년사에서 처음 등장하였으며, 신년사 직후 북한은 4차 핵실험, 그리고 이에 이어 6차 장거리로켓 발사 실험을 감행하였다. 결국 이는 UN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2270호에 입각한 대북 제재로 이어졌다. 2016년 9월 9일 5차 핵실험의 결과 더 격상된 제재를 의미하는 UN 안보리 결의 2321호가 채택되었다. 이러한 국제 제재 속에서 정권ㆍ체제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내부적으로 역량에 집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등 주변국들의 도움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오히려 경제ㆍ외교적 종속을 불러오고, 주변국들이 반드시 이에 호응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내부 역량의 동원이나 결집을 모색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결국 ‘자강’의 강조로 이어졌다.

또 하나 흥미 있는 것은 김정은이 신년사 말미에서 시도한 나름의 겸손 이미지 부각이다. 김정은은 “우리 인민을 어떻게 하면 신성히 더 높이 떠받들 수 있겠는가 하는 근심”으로 책임감을 느끼며,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해를 보냈다는 표현을 썼다. 지난 4년간 김정은 정치의 특성 중 하나로 거론된 ‘공포정치’를 떠올리면 상상할 수 없는 표현이며,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방식이다. 이는 자애로운 지도자상의 부각을 통한 또 다른 ‘김정은 스타일’의 정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권력 엘리트들에 한해서 구사했다고는 하지만, ‘공포’와 ‘분할통치’는 본의 아니게 김정은을 냉혈의 지도자로 인식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을 기점으로 자신의 권력 기반이 반석에 올라선 만큼, 이제 김정은은 과거와 같은 초월적인 곳에서 군림하는 수령이 아닌, 인민의 주위에 함께 하는 친근한 수령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핵 능력에 대한 확신, 그러나 자제되어야 할 확대해석

2016년 중 북한은 대량살상무기(WMD: Weapon of Mass Destruction) 개발에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한 차례의 장거리로켓 발사와 두 차례의 핵실험 이외에도 여덟 차례의 무수단미사일 발사실험과 여러 종류의 탄도미사일 성능 개선, 그리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발사 실험 등을 감행했으며, 이는 2017년 신년사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즉, ‘수소탄’ 실험, 다양한 공격 수단(탄도미사일)들의 시험 발사 등을 통해 “사회주의강국 건설 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갈 수 있는 위력한 군사적 담보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는 결국 북한이 이미 ‘핵 강국’ 반열에 올라섰음을 대내적으로 선포하는 동시에 이제는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대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다만, 일부 매체에서 지적하듯이 “대륙간탄도로케트(ICBM: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시험 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에 이른 것을 비롯하여…”라는 대목을 조만간 ICBM이 발사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다소 무리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 언급은 2016년의 전반적 군사 능력 강화 업적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등장했으며, 반드시 미래의 지향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북한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전에 미국의 대북정책 우선순위를 격상시키는 차원에서라도 자신들의 WMD 능력 카드를 선제적으로 보여줄 충분한 동기가 있다. 김정은이 장거리로켓을 ‘주체적인 실용위성(2013년 신년사)’으로 언급했던 것과는 달리 ‘대륙간탄도로케트’란 표현을 사용한 것 역시 분명히 이러한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위의 언급만으로 특정 WMD 무기 체계(ICBM)를 조기에 발사하겠다는 예고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2016년의 경우 신년사에서는 별 다른 예고가 없이도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 실험이 잇달아 이루어졌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시험 발사 여부는 신년사의 특정 어구가 아니라, 북한이 평가하는 전략적 손익계산과 대외 여건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강국(dominant power)’ 북한에 대한 자기 최면

대체적으로 그동안 김정은의 육성 신년사는 북한을 압박해오는 제국주의적 책동, 즉 미국으로부터의 압살정책에 대한 단호한 응전 및 대응을 포함했으며, 금년도 신년사에서도 이는 그대로 반영되었다. 다만, 단순한 소극적 대응을 넘어 적극적인 대결의 의지가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힘으로 우리 국가의 평화와 안전을 지켜낼 것이며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도 적극 기여할 것입니다”란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전반적인 맥락상 “그 어떤 강적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동방의 핵 강국, 군사 강국”으로 성장한 북한이 이제 기존 강대국들과 함께 세계 질서를 놓고 경쟁하는 위치가 된 것임을 공언한 것이다.

김정은의 자기 존대나 ‘강국 북한’에 대한 자기 최면의 표현은 기존 신년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김정은의 의식은 2016년의 제7차 당대회 총화보고에서도 일부 나타났는데, 그는 미국을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대 세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의 자주화를 가로막는 핵심 걸림돌로 지목한 바 있다, 이는 이제 북한이 국제적 의제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객체적 입장을 뛰어넘어 WMD 능력을 바탕으로 세계 질서를 주도해나가는 의제설정자(agenda setter)가 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김정은이 생각하는 강국의 원형은 1960~1970년대의 북한 이미지로부터 창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만들어 온 김정은의 외모나 통치 스타일은 선대 중에서도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김일성)의 그것을 많이 닮아 있었다. 김정은이 2016년 중 신설한 당위원장, 국무위원장 직위 역시 김일성 시대와 매우 유사하다. 김정은은 북한이 상대적으로 융성하였던 시기의 회복을 통해 자신의 강국 이미지 건설에 다가가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금년 신년사 중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부르던 시대가 지나간 력사 속의 순간이 아닌 오늘의 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란 어구가 이를 암시한다. ‘세상에 부럼(부러움) 없어라’는 1961년 김일성 시대에 탄생한 노래였고, 이는 당시 사회주의공화국으로서 북한이 이룬 성취에 대한 찬가(讚歌)였다.
 

야심찬 목표이자 아킬레스건,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경제ㆍ사회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16년 발표되었으며, 2016~2020년에 추진될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계획)’에 대한 비상한 관심이다. 1987~1993년의 ‘제3차 7개년 계획’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이 다개년 계획은 만약 성공하기만 한다면 ‘핵보유국’ 지위 획득과 함께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는 가장 큰 업적의 하나로 평가될 수 있다. 문제는 상황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점이다. 제7차 당대회에서 이 계획에 대한 설명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개괄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2차 년도인 2017년에도 가시화된 목표 대비 실적이 도출되지 못 한다면, 이 계획 역시 기존의 다개년 계획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실패로 끝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최대 변수는 2017년에도 지속되거나 오히려 강화될 대북제재이다. 중국이 북한체제 위기에 대한 우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의 전략경쟁으로 인해 제재 동참에 미온적이라고 하더라도 기존과는 달리 의미 있는 성장을 유도할 지원을 할 수 있을까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신년사 역시 이러한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 산업 분야에서의 생산성 향성에 대한 독려는 예년과 유사한 표현이 반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5개년전략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민총돌격전을 힘차게 벌려야 합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실무선에서 구현해야 할 당ㆍ정ㆍ군의 관료들에게 주는 부담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김정은은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앞세우는 데 5개년전략수행의 지름길이 있습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북한이 비교 우위를 지니는 과학기술 분야의 집중적 육성ㆍ활용을 통해 경제개발을 촉진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하였다. 다만, 이러한 김정은의 자신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 “뜻밖의 자연재해로 큰 피해를 입은 함북도지구들에 대한 피해복구전투에서도 당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온 나라가 떨쳐 일어나 짧은 기간에 기적적인 승리”를 일구었다는 그의 역설은 오히려 작년 하반기 발생한 수해복구 진척률의 부진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7차 당대회와 마찬가지로 강조된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를 뿌리 뽑기 위한 투쟁” 역시 북한의 내적 성장 동력의 장애 요인들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다.
 

남북한 관계와 김정은식 북풍(北風)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 대남 전략의 특징 중 하나는 한국의 국내 정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보다 직설적으로는 한국 내에서 이른바 ‘북풍(北風)’ 논란으로 인해 강경한 대북정책을 구사하는 정부가 등장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완전한 김정은 시대의 개막이 이루어진 2013년 이후 북한이 한국의 주요 선거일에 직ㆍ간접적 도발을 감행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2013년 3차 핵실험의 경우에도 한국에서 새 정부 출범이 이루어지기 직전 단행되었다. 오히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한국 내에서 자신들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면 이를 매체를 통해 적극 반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2016년 10월 한국 국내에서 전직 외교장관의 회고록과 관련된 대북정책 논쟁이 발생하였을 당시 북한이 10월 24일 조평통 대변인의 <조선중앙통신> 질의ㆍ응답을 통해 “(2017년 당시 한국이) 무슨 ‘인권결의안’과 관련한 의견을 문의한 적도, 기권하겠다는 립장을 알려온 적도 없다”고 강변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오히려 2017년 신년사를 통해 북한은 자신들의 무력 과시를 통해 한국 내에서 反북한 정서가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들과의 대화ㆍ협상이 가능한 세력의 조건을 제시하는 행태를 보였다. 김정은은 현재 한국 내의 사태가 독재와 강대국 의존적 정책뿐만 아니라 “사대매국과 동족대결을 일삼아온 보수당국에 대한 쌓이고 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또한 “제도전복과 ‘변화’에 기대를 걸고 감행되는 불순한 반공화국모략소동과 적대행위들은 지체없이 중지되여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2016년 중 한국발 ‘북한 급변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민족의 근본리익을 중시하고 북남 관계의 개선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와도 기꺼이 손잡고 나아갈 것입니다”란 김정은의 언급은 예년과 별다를 바가 없는 수준이다.

문제는 그 다음 반통일세력의 척결을 주장한 부분에서 우리 지도자에 대한 실명이 여과 없이 등장하였다는 점이다. 과거 북한이 일반 매체는 모르더라도 최고 지도자 수준의 언급에서는 한국이나 미국 국가 지도자를 직접 거명하여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정부에 대한 김정은 나름의 제척(除斥)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즉, 현재의 한국 정부 임기 내에는 진정한 대화에 대한 의지가 없으며, 현 정부와 추구하는 점이 비슷한 정치 세력과도 대화ㆍ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우회적 논리를 신년사에 담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과거의 북풍(北風)보다 더욱 세련된 대남 메시지들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미ㆍ북 대화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 저자세 배제

김정은의 육성 신년사 발표 후, 국내 언론을 중심으로 그가 트럼프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점을 주목한 바 있다. 이는 솔직히 의미 없는 관심이다. 지금까지 김정은뿐만 아니라 김일성 시대의 육성 신년사에도 특정 국가의 특정 지도자를 거명해 대화나 협상 의지가 표명된 적은 없었다. 대체적으로 지난 4년간 김정은의 육성 신년사는 ‘외세의 침략책동’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자위적 조치를 역설하거나, 제도통일(흡수통일) 철회나 한ㆍ미 연합훈련 철폐 등을 요구하는 수준에서 대외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이를 고려할 때, 김정은이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여 어떤 요구 조건을 내건다는 것 자체가 북한의 초조함을 반영하는 것이며, 앞에서 언급한 김정은의 자기 존대를 감안할 때 그가 이를 택할 이유가 없다.

다만, “미국은 조선민족의 통일의지를 똑바로 보고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을 동족대결과 전쟁에로 부추기는 민족리간술책에 더 이상 매달리지 말아야 하며”라는 어구는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내용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새로이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사실상의 주문으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이를 통해 김정은은 한ㆍ미 동맹(민족이간책)의 이완을 중심으로 한 對한반도 정책의 변화를 우회적으로 촉구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나름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고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미국을 제외한 여타 주변국들은 북한의 신년사에서 언급된 적이 매우 드물며, 이는 김정은 시대에도 공통되는 특성들이었다. 신년사에서 중국 문제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북ㆍ중 관계의 미묘한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북한이 도처에서 강조한 ‘자강’의 개념은 미국에 못지않게 중국을 겨냥한 포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전히 중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결코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베이징의 입맛대로 움직일 의향이 없는 것이 평양이라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는 특정 단일 종주국에 절대적인 복종이나 의존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회피하였던 북한의 전통적 특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북한의 선택

여타의 신년 메시지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북한의 신년사는 그해 중점을 둘 각 분야별 정책들에 대한 윤곽을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기회이다. 즉, 한 해 북한의 전반적 포석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전반적인 맥락 면에서 2017년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은 이제 선대의 후광에만 기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언어 자신의 비전을 가지고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신년사에서 ‘병진정책’의 표현이 사라지기는 하였지만, ‘핵무력’의 강화를 위한 의지는 도처에서 나타났다. “우리식의 위력한 주체무기들을 더 많이 개발ㆍ생산하여 선군혁명의 병기창을 억척같이 다져야 합니다”라고 언급한 부분이나,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국방력과 선제공격능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입니다”란 역설은 이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국제 제재하에서 또한 중앙집중적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어정쩡한 공존 속에서 구조적으로 ‘병진정책’이 실제로 가능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이 딜레마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2017년 중 미ㆍ북 관계 개선을 위한 보다 적극적 승부수를 던질 수 있다. 2017년 트럼프 취임 이전에라도 이러한 선택은 가능하며, 제반 여건상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2~3월의 한ㆍ미 연합훈련 기간을 겨냥할 수도 있다. 북한이 ‘핵무력’ 강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것이 “우리의 문전앞에서 년례적이라는 감투를 쓴 전쟁연습소동을 걷어치우지 않는 한”이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2017년의 남북 관계는 매우 암울한 상황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며, 이는 김정은의 신년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김정은은 한국에서 대화나 협상에 보다 호의적인 정부가 탄생하기를 기다리면서 현재의 정부보다는 차기를 목표로 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송하려 할 것이다. 일부의 평화공세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제스처의 성격이 강하며, 도발적 행태 역시 한ㆍ미의 정책조정 틈새가 극대화될 수 있는 시기를 택할 수 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한 2013년 2월은 오바마 행정부 2기의 출범 초기이자, 한국에서의 신정부 출범 직전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태도와 선택에 흔들리기보다는 우리의 입장을 견고히 가져가며 대응해야 한다.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닌 진정한 변화를 위한 대화를 위해 굳건한 대비 태세를 유지하여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