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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차 판문점 정상회담의 키워드는 김정은이 회담 시작 전 모두 발언에서 수 차례 언급한 ‘잃어버린 11년’과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없는 한반도’임.

● ‘잃어버린 11년’은 10∙4 선언이 체결된 2007년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6∙15 및 10∙4 선언 시대’로 되돌려 복원하겠다는 북한의 의도와 전략이 담긴 것임.

→ 이후 북한은 ‘남북관계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발전,’ ‘공동번영과 자주통일,’ ‘겨레의 소망’ 등을 구호로 내세우고 우리민족끼리 전술을 구사하며 대북제재 무력화와 국제공조 와해를 시도하고 있음.

●판문점선언은 2007년 합의된 10∙4 선언의 내용을 대부분 담고 있는 만큼,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햇볕정책의 연장선에 있으며 판문점선언은 ‘10∙4 선언2.0’이라고 할 수 있음.

→ 마치 10∙4 선언을 기초로 판문점선언을 작성한 듯한 인상을 줄 정도로 10∙4 선언의 내용 대부분이 판문점선언에 반영됨.

● 김정은이 말했다는 ‘선대의 유훈인 비핵화’는 김정일도 생전에 수 차례에 언급한 바 있는 김일성의 유훈이며, 구체적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를 목표로 김일성이 생전에 제시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로 판단됨.

→ 결국 북한의 입장에서 ‘완전한 비핵화’는 ‘완전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 즉 ‘완전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임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며, 전술핵 철수, 연합훈련 중단, 전략자산 전개 중지, 주한미군 감축 주장 등 김일성의 유훈이 하나씩 관철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함.

 

2.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교류 및 경협 관련 사항들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건건이 충돌하는 부작용이 발행하고 있음.

● ‘각계각층의 교류협력 활성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경의선 도로와 철도의 연결’ 등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엔안보리는 물론 개별국가의 대북제재와 충돌하고 정부의 제재 면제 요청이 빈번해지면서 우리 대통령이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핵의 최대피해자인 한국 정부가 오히려 북한 편을 든다는 국제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

→ 11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 한미정상회동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완전한 비핵화까지 제재 유지’라는 공동의 입장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시의 적절하고 성공적인 회담으로 평가되며,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더 이상의 혼란이 없도록 메시지 관리와 정책조율을 정교하게 해야 함.

● 도로·철도 연결과 관련, 역대 정부가 이 사업을 구상하고 준비했지만 지금까지의 대전제는 도로·철도 연결은 남북한이 함께 이익을 보는 상생과 공영의 사업이어야 한다는 것, 즉 그 용처가 분명했다는 것임. 예를 들어, 우리 기업의 생산품을 도로·철도를 통해 만주벌판, 중국대륙, 중앙아시아,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적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논리였음.

●그러나 현 정부의 도로·철도 연결사업은 경제적 타당성과 합리적 이유가 생략된 채 일단 지어주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비핵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임. 경제적 타당성과 합리적 근거가 결여된 사업은 국제 제재의 예외가 될 수도 없을뿐더러 예산 획득과정에서 국회와 국민의 동의를 얻기도 어렵고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 갈등만 부추길 것임.

 

3. 남북경협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적절히 관리되지 못할 경우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책임을 묻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음에 유의함.

● 역대 정부가 남북교류와 경협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다양한 정책을 수립했지만, 노태우 정부 이후 대규모 경협의 중요한 조건은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이었음. 핵을 가진 북한을 경제적으로 돕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고, 북한사회의 개혁·개방없이 진정한 교류협력이 불가능하기 때문임.

● 다만 우리 기업들이 경제활로 모색 차원에서 대북투자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바, 통일대박론으로 국민들의 통일의식을 일깨운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기업들은 새로운 투자처 모색 차원에서 통일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임. 그러나 당시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와 변화를 전제로 남북관계의 발전과 동북아의 미래를 그리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한계를 분명히 했음.

● 현 정부의 동북아 신경제지도 등 경협의 큰 그림은 내용면에서 역대 정부가 제시했던 미래 청사진들과 대동소이하지만 국민들에게 장래의 비전을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준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음. 이는 남북경협에 대한 국민들의 과도한 기대를 유발하여 대북관련 투자 과열을 야기함으로써, 경협이 지지부진할 경우에 손실을 입은 국민들이 정부를 책망하는 사태가 야기될 수 있음에 유의함.

● 안보분야에서 유사한 현상이 발생했는데, 바로 최근 논란이 되었던 삭간몰 미사일기지 해프닝임. 이 사건은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서 북핵과 미사일 폐기에 대해 한껏 부풀려진 국민적 기대가 전혀 그렇지 못한 현실에 직면하면서 빚어진 혼란이었음.

→ 북한의 핵과 미사일 폐기를 규정한 10여개의 유엔안보리결의안과 남북화해를 위해 자체적으로 무기체계 개발을 순연시킨 정부의 조치를 감안할 때, 북한의 행동은 우리의 선의에 반하는 도발적 행위로서 북핵폐기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키는 악재임.

→ 이와 관련, 북한의 미북합의 위반 여부를 둘러싼 국내의 논란과 ICBM과 단중거리 미사일은 별개로 다뤄야 한다는 일부의 문제제기는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음.

 

4. 재래식 군사 분야에서의 신뢰구축 및 단계적 군축은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오히려 한국의 안보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

● 군사분야합의서에 대한 각계각층의 문제제기가 속출하고 있는 데서 드러났듯이,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사항은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남북간의 재래식 군비통제는 오히려 우리 안보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임.

● 세부적,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서 군사분야합의서는 투명성 제고, 상호성 유지, 동등성 달성 등 군비통제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매우 미흡한 합의임.

→ 특히 1992년 당시 치열했던 군사협상에서 남북이 타결하지 못했던 네 가지 사항 가운데 우리의 요구인 수도권 안전보장 문제는 빠지고 북한의 3대 요구사항만(①군사분계선 일대 무력 증강 금지, ②상대방에 대한 정찰활동 금지, ③상대방의 영해·영공 봉쇄 금지) 수용된 것은 큰 문제임.

→ 이는 정부가 북한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야기하고 나아가 합의서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빌미가 될 수 있음.

● 북핵폐기의 기대가 약해진 가운데 정부 주도의 무리한 평화 만들기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보불안을 가중시킬 것이며, 북한 땅에 한발의 핵탄두도 없는 것으로 확인되지 않는 한 긴장완화를 명분삼은 어떤 조치도 북핵으로 난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것과 다를 바 없음.

 

5. 정부는 현재의 북핵문제와 한반도 안보상황이 2007년과 비교할 때 상전벽해의 차이가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2007년의 시점에 고착되어 있는 대북전략의 기조와 정책을 대폭 수정해야 함.

● 2019년 북한 및 통일 문제에서 남남갈등을 줄이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지름길은 관점이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북핵문제 장기화의 불가피성’에 대한 공통의 이해를 바탕으로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며, 정부가 그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함.

→ 정부는 북핵문제를 문재인 대통령 임기중에 대폭 해결하겠다는 성급함을 버려야 하고, 보수층도 군사공격을 해서라도 북핵을 제거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벗어나야 하며,

→ 또한 정부는 핵을 가진 북한과의 남북경협도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하고, 보수층도 인도지원과 교류협력의 물줄기를 끊지 않고 북한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 국가적 차원에서 정부와 국민, 진보와 보수, 여야 모두 함께 북핵폐기와 남북경협의 숨을 고르고 속도를 조절해야 함.

● 이로 인해 생긴 정부의 여력을 북핵에 대비한 범정부 차원의 억지력 강화와 방호태세 구축에 쏟아야 함.

→ 북한 땅에 핵이 존재하는 한 국방부와 군의 일차적 책무는 그 핵이 우리 땅에서 터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며, 행정안전부 등 재난대비 부처의 일차적 책무는 만약 핵이 터졌을 경우에 우리 국민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호태세를 철저하게 갖추는 일임.

 

* 본 글은 12월 05일 국회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전성훈
전성훈

객원연구위원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