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뉴스통신] 2020-12-29
North Korea could conduct ICBM test early next year: think tank
[아시아뉴스통신] 2020-12-29
North Korea could conduct ICBM test early next year: think t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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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책연구원은 12월 24일(목), 차두현 수석연구위원ㆍ양욱 한남대 겸임교수ㆍ홍상화 연구원의 이슈브리프 ‘재래전력을 통한 북핵 억제는 가능한가?’를 발표했다. 이 이슈브리프는 지난 10월 10일의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보여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발전을 감안할 때, 우리 정부가 표방해 온 “재래전력을 통한 북핵 억제”가 실제로 가능한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두현 박사 등은 우리의 북핵 억제 방안이 (1) 핵무기와 핵전쟁이 지니는 속성의 간과, (2) 급조된 이후 오히려 퇴보한 ‘3축체계’ 개념, (3) 『국방개혁 2.0』 상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북핵 억제 능력 확보, (4) ‘자주’ 구호하의 대미의존 심화의 모순, (5) 핵능력 확보 없는 북핵 대응의 실질적 한계 등의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위협을 제대로 억제하려면 ‘거부적 억제’(deterrence by denial)와 ‘응징적 억제’(deterrence by punishment)가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데, 우리 자체의 능력 확보에 대한 의지와 능력도 제한되어 있고, 동시에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공약의 신뢰성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효과적 억제가 가능하겠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연구진은 결론적으로 이제는 재래전력으로 북핵을 억제할 수 있다는 기존의 공언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우리 자체의 핵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한국이 활용 가능한 핵능력” 카드는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전술핵 재반입이나 핵공유 중 하나의 조치는 실현되어야 “재래전력을 통한 북한 핵 억제” 전략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제언하고 있다.
*보고서 관련 문의:
차두현 수석연구위원 02) 3701-7310, 21lancer@asaninst.org
2018년의 대화국면 이후 북한 비핵화가 다시 난항을 겪으면서 북한 핵위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실험은 없었지만, 북한은 2020년 3월에만 4차례에 걸친 단거리발사체 발사를 감행했고, 그들의 ‘전략타격력’을 10월 10일의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과시하였다. 설혹 미북 비핵화 협상이 다시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북한 핵능력 해체 이전까지는 북한 핵위협을 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2020년 7월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경두 前 국방장관은 재래전력으로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책은 무엇인가”라는 질의에 대해 정 前 장관은 한∙미 간에 맞춤형 억제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미국의 핵우산이 보장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우리 군의 재래식 무기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의 국방력을 건설해 나가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핵무기를 재래식 무기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냐”는 보충 질문에는 “파괴력 있는 첨단무기들을 보유하면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1
재래전력에 의한 북한 핵위협 억제는 박근혜 정부의 ‘3축체계’ 개념에서도 제시되었는데, 이는 자체 핵개발이나 전술핵 재배치와 같은 대안 대신 ‘킬체인’(Kill-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Korea Air and Missile Defense), ‘대량응징보복’(KMPR, Korea Massive Punishment and Retaliation) 구축을 통해 첨단 재래무기체계로 북한 핵위협에 대응하겠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문재인 정부 들어 ‘전략적 타격체계’(킬체인, KMPR), ‘한국형 미사일방어능력’(KAMD) 등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으로 바뀌었다.2
재래전력만으로 북한 핵위협에 대한 대응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동안 끊임없는 의문이 제기되었는데, 핵무기가 주는 파괴력, 심리적 타격, 그리고 이를 이용한 전략적 협상능력 등을 재래무기로 상쇄할 수 없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말은 ‘자주국방 능력 강화’를 외치지만, 사실상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없다면 무력화될 수밖에 없는 대응개념이다.
본 이슈브리프는 현재 우리 군의 재래전력을 통한 북핵 억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특히 한국형 ‘3축체계’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북핵 대응에 있어서 그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결국 자체 핵능력의 뒷받침이 없거나 미국의 강력한 확장억제 공약이 부재한 상태에서 재래전력만으로 북한 핵위협에 대응하겠다는 것은 공허한 구호에 가깝다. 자체 핵무장의 현실적 어려움을 고려했을 때, 미군 전술핵 재반입 혹은 한∙미 간 핵공유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조치는 실현되어야 재래전력과 핵능력의 연계를 통한 북핵 억제 전략도 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1) 핵무기와 핵전쟁이 지니는 속성의 간과
무엇보다 핵무기 자체가 기존의 재래식 무기체계의 우위를 무위로 돌리는 존재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측은 그렇지 않은 측에 대해 전략적 우위에 있다고 확신하게 되며, 이를 평시에도 수시로 활용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아무리 뛰어난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핵무기를 보유한 측의 위협 의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아직까지 핵무기의 파괴력을 능가하는 재래무기체계는 개발되지 않았으며, 핵위협을 막을 무기는 핵무기 외에는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중론이다.3
(2)급조된 개념, ‘3축체계’
‘3축체계’는 그 자체가 충분한 검토와 보완과정을 거치지 않은 개념이었다. 먼저 ‘KAMD’는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노무현 정부 당시 시작된 계획인데, 이는 사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킬체인의 경우, 이명박 정부가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을 거치면서 2012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이후 해당 능력을 2015년까지 갖추겠다고 천명하였지만, 이 또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마지막으로 KMPR은 박근혜 정부 시절 2016년 8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북한의 핵공격에 대한 응징∙보복 능력까지 갖춘다는 차원에서 제시된 계획이다.
‘3축체계’란 용어가 표방된 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2016년) 였는데, 이는 미국의 ‘nuclear triad’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원래 ‘triad’란 용어는 ‘3원핵전력’(전략폭격기, ICBM, SLBM)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2001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 Nuclear Posture Review)에서 공격능력, 방어능력, 인프라의 동시확보라는 ‘新3각체계’(new triad)의 개념으로 발전되었다.4 즉, 3각체계는 상대방의 핵위협에 대해 공∙수 모두 안정적 능력을 확보한다는 발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반드시 핵수단이 아니고 비핵수단을 통해서도 대응이 가능하게 한다는 개념이라는 점은 맞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핵능력 확보를 전제로 융통성 있는 전력운용을 지향한 것이지, 재래전력만으로 핵위협에 대응한다는 개념은 전혀 아니다.
(3) 한국형 ‘3축체계’의 허점
‘킬체인’의 경우, 단순히 ‘핵∙미사일을 선제적으로 탐지∙타격’하는 정도로 인식되어 왔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의 확보를 전제로 한다. 무엇보다 위치를 파악하기 힘든 돌발표적을 탐지∙타격하는 ‘긴급 표적처리’(DT: Dynamic Targeting)가 가능해야 한다. 즉, 적(북한)이 이동식 발사대를 이용하여 핵무기를 발사할 경우 이를 즉각 탐지하여 파괴함으로써 사용의지를 봉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뛰어난 정보∙감시∙정찰(ISR: Intelligenc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 체계의 확립과 함께 충분한 타격수단이 확보되어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한국군이 신속하고도 지속적으로 DT를 할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DT를 하기 위해서는 공격 징후 탐지 즉시 그 정보를 타격자산들에 전달하여 조기 타격이 가능한 체계를 갖추어야 하며(자체 정보자산 대폭 증가), 북한의 촘촘한 방공망을 돌파하여 미사일 기지나 이동식 발사대를 타격해야 한다(타격자산의 여유). 하지만, 이에 필요한 자산을 단기간 내에 확보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며, 이는 2015년까지 ‘킬체인’ 구축을 표방하면서도 실현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KAMD의 경우,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을 통해 북한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요격한다는 것이지만, 이 또한 현재 북한의 미사일 능력 발전을 고려할 때 허점이 많은 접근이다. KAMD 자체가 북한의 핵무기 운송수단이 ‘노동’이나 ‘SCUD’ 수준일 때에는 실현 가능한 개념이었지만,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능력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2019년 이후 북한이 계속 발전시켜온 북한형 ‘이스칸다르’(KN-23)나 북한판 ATACMS(Army Tactical Missile System), 초대형 방사포 등을 요격하기에는 현재의 한국형 미사일 방어시스템으로는 무리이다. 신속한 발사, 단기간 내에 다량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무기체계의 도입, 그리고 다양한 발사각도와 궤적 이용 등을 특징으로 하는 최근의 북한의 탄도미사일 능력을 감안하면 우리의 대응 수단 역시 획기적 증강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확보되었다는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증강된 미사일 능력은 이미 2020년 10월 10일의 노동당 창건 기념 75주년 열병식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KMPR 역시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개념인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KMPR은 킬체인과 KAMD가 실패했을 경우 상대방에 대한 응징을 통해 더 이상의 공격을 단념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입히는 피해보다 자신들이 입을 손실이 더 크다는 인식을 유도하는 것이다. 즉, 단순히 상대방에게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감내하기 힘든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더 이상의 도발이나 공격을 못하도록(deterrence by punishment, ‘응징적 억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응징적 억제에는 공격을 주도한 적의 지도부에 대한 타격이 포함된다. 그러나 핵을 보유한 상대에 대해 재래전력을 이용하여 감내하기 힘든 정도의 피해를 입히는 것, 그것도 상대방이 우리에 비해 훨씬 더 타격이 크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4) 문재인 정부의 접근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 군은 ‘전략적 타격체계’라는 개념을 통해 킬체인과 KMPR을 동시에 구현하고, ‘한국형 미사일방어능력’을 통해 KAMD를 실현한다고 하였으나, 실질적인 개념상의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없다. 오히려 북한을 자극할 만한 용어의 회피라는 측면에서 사용된 측면이 강하다. 이 경우, 억제의 요체가 상대방에게 두려움과 심리적 부담감을 강화시키는 것인데, 이러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더욱이, 북한의 위협에 더해 미래의 위협(주변국 상정)에도 적용 가능한 개념으로 이를 사용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위협의 근원(주체)이 바뀌면 능력과 대응태세 모두 달라져야 하는데, 북한을 겨냥한다는 인상 회피에 주력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에 비해 압도적인 전략능력을 지닌 주변국에 대해서는 ‘3축체계’ 구축 자체가 막대한 예산의 지속적인 투입을 필요로 하는데, 이에 대한 세부 계획도 존재하지 않는다.
(5) 『국방개혁 2.0』 상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북핵 억제
재래전력으로 북한 핵위협에 대응하겠다면 북한의 핵능력 발전에 상응하는 재래전력 상의 획기적인 증대라도 있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방개혁 2020』이 시작되던 2006년과 『국방개혁 2.0』이 표방된 2018년의 『국방백서』를 비교해 보면, 한국군은 장갑차 300여 대와 야포 700여 문, 지대지 유도탄 발사대 40여 대가 늘어났을 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비록 장비의 세대교체로 전투력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북한 지상군 전력 110만여 명 대비 우리의 병력은 36만 5천 명으로 오히려 감소하였다. 지상군의 공백을 메울 항공전력 측면에서 F-35 40대 추가, AH-64 아파치 36대 도입 이외에 눈에 띄는 증가를 확인하기 힘들며, 『한∙미 미사일 협정』 개정으로 탄두중량 제한이 없어지고 사거리가 800km까지 증대되었지만(2017년), 이를 반영하는 미사일 전력 발전 또한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3축체계’로 명명하든 다른 이름으로 개편하든 간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맞춤형 전력발전이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제시되지 않았다. 특히, KMPR은 그 미래 자체가 불투명한 것이 현실이다.
(6) ‘자주국방’ 구호 하에서 실질적 대미 의존 증대의 모순
북한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능력 발전의 핵심 중 하나는 정보 탐지 자산(sensor) 및 해석∙전달 능력의 확보이다. 적의 공격징후 탐지 및 타격을 위해서는 감시정찰위성, 정보위성, 통신위성, 무인정찰기, 항공정찰자산 간의 유기적인 연계가 필수적이다. 즉, 이들 자산들이 실시간으로 연계되어 정보를 공유하는 동시에 필요시 각 타격체계에 순차적으로 공격명령을 하달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개별 자산들의 확보도 역부족이며, 이들을 입체적으로 연계하는 체제도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미국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정보 분야의 대미 의존성 강화). KAMD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 미사일의 발사 징후 포착 단계에서부터 발사 직후, 그리고 비행 및 하강 단계에서의 정확한 궤적 파악 능력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이 능력 역시 현재로서는 상당부분을 미국에 의존해야 한다. 적 전쟁지도부의 타격을 포함하는 KMPR에 있어서도, 북한과 같은 정보폐쇄체제에서 지도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적정보(HUMINT: human intelligence)와 같은 자산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미국의 고급정보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렇듯 탐지후의 타격체계에 있어서도 우리 자산이 충분치 못하면 주한미군이나 아∙태 지역 내의 미국 자산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그만큼 우리의 발언권(선제공격 등에 있어서)이 제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7) 핵능력 뒷받침이 없는 북핵 대응의 한계
‘3축체계’가 제대로 되려면 ‘거부적 억제’(deterrence by denial)와 ‘응징적 억제’가 동시 실현되어야 하는데, 이는 핵능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선제타격을 해도 이것이 봉쇄될 것이라는 인식을 상대방에게 심어주는 한편, 일단 이를 뚫고 공격을 해도 우리에게 입히는 피해보다 응징으로 인한 자신들의 피해가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어야 한다.5 미국이 이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3원 핵전력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필요에 따라 일단 재래전력으로 대응하다가도 이것이 불충분하면 언제든 핵을 동원할 수 있는 태세가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억제가 가능하다.
우리 스스로의 핵능력이 없다면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공약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신뢰성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다. 그동안 미국은 확장억제 관련 수단의 구체화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를 명시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북한의 핵능력이 지속 발전되어 온 현실에서 미국이 자국에 대한 핵공격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확장억제 공약을 지킬 것인가 하는 전통적 의문이 제기된다. 확장억제 공약의 신뢰성이 불투명할 경우, 재래타격전력의 효율적 이용에 필수적인 고급 정보 제공 및 센서 체계의 지원 역시 유사시 유동적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 시기 동안 우리는 미국의 대한 안보 공약이 때에 따라서는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동맹을 중요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으로 이러한 우려가 줄어들 여지가 생겼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없어진다고 보기에는 무리이다.
우리는 그동안 국제적 비확산의 유지와 평화 이미지의 제고,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명분 하에서 핵능력의 확보를 선택가능한 대안에서 배제해왔다. 그러나 핵능력을 갖추지 못한 국가가 재래전력만으로 핵위협을 억제하겠다는 것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상적이고 공허한 구호에 가깝다. 무엇보다 핵위협의 주체(북한)가 이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이다. 재래전력을 통한 핵위협 억제가 그나마 효과를 발휘하려면 핵능력의 뒷받침이 있거나, 혹은 동맹국의 핵능력 제공에 대한 약속이 분명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나 우리 자체의 군사력 건설 계획에서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확실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일정수준의 핵능력을 갖춘다는 목표를 상정 가능한 대안의 하나로 간주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단계이다. 단, 이것이 반드시 한국의 핵보유일 필요는 없다. 우리 스스로 자체 핵개발을 통해 핵능력을 갖추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여러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대안으로 ① 미군 전술핵 재반입, ② 한∙미 간 핵공유, ③ 혹은 구체적 확장억제 수단에 대한 한∙미간 합의, ④ 관련 작전개념과 계획의 개발, ⑤ 유사시 핵사용을 전제로 한 지휘체계 구축과 운용능력 확보를 위한 교육∙훈련 등의 대안들을 적극 고려하고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핵능력의 자체 확보가 어렵다면 최소한 “한국이 활용할 수 있는 핵능력”은 카드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파괴력이 획기적으로 증가되고 사거리도 확장된 과 탄도미사일의 개발과 양산, 그리고 배치 등의 방법도 고려하여야 한다. 특히, 전술핵 재반입이나 핵공유 중 하나의 조치는 실현되어야 “재래전력을 통한 북한 핵 억제” 전략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는 평화를 저해하는 조치가 아니다며 평화의 실현과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뉴시스] 2020-12-24
[Viewpoint] 2020-12-24
[동아일보] 2020-12-24
[미래한국] 2020-12-24
[문화일보] 202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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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책연구원이 12월 18일(금), 고명현 선임연구위원의 리포트 ‘사이버공간의 신지정학’을 발표했다. 리포트는 빅데이터와 정보통신기술이 어떻게 강대국 간의 갈등, 특히 미-중 간의 지정학적 경쟁을 격화시키는지를 조명한다.
고 위원은 지금이 경제 패러다임의 중심이 탄소에서 데이터로 빠르게 이전하는 전환기이며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의 경쟁국들은 이러한 변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4차 산업혁명에서는 영원한 동맹도 없어 빅데이터인 개인정보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의 갈등도 첨예하다고 고 위원은 말한다. 신지정학은 기존의 지정학적 갈등이 과학기술을 통해 더욱 확대되고 심화되는 것을 말하며 과학기술이 촉매 역할을 하는 신지정학적 갈등은 사이버공간에서 더욱 잘 발현된다고 고 위원은 설명하였다.
고 위원은 첨단기술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의 원인도 짚었다. 중국은 개방된 사이버공간을 중대한 체제위협으로 여기기에 미국이 만든 중앙집중화를 지양하고 익명성을 보장하는 사이버 기술표준과 규범을 국가주도 통제가 용이한 것으로 대체하려 하며, 일대일로 등을 이용해 자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 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미-중 간의 근본적 갈등은 국제기구와 사이버 규범을 둘러싼 충돌과 화웨이 제재 등 미-중 ‘디커플링’의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고 고 위원은 지적하였다. 끝으로 고 위원은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사이버 국제규범의 주도권을 쥐는 쪽에서 패권을 독점한다는 위기의식이 미-중을 실존적 “제로섬” 경쟁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별첨: ‘사이버공간의 신지정학’ 리포트 목차
*보고서 관련 문의:
고명현 선임연구위원 02) 3701-7301, mhgo@asaninst.org
목차
서론: 사이버공간의 신지정학… – 5 –
패러다임의 전환: 탄소에서 데이터로… – 12 –
탄소경제의 종말… – 12 –
빅데이터,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 15 –
개인정보의 경제적 활용과 논란… – 18 –
주요국의 개인정보정책… – 22 –
미국: 데이터 이동의 자유… – 22 –
중국: 국가가 통제하는 개인정보… – 23 –
유럽연합: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데이터 무역… – 26 –
중국과 유럽연합: 디지털 주권의 등장… – 29 –
사이버공간의 이념 갈등… – 32 –
사이버공간의 불안정성: 강대국 간의 갈등… – 32 –
분쟁영역이 된 사이버공간: APT와 정보전… – 35 –
사이버 외교와 국제협력: 사이버 규범 도출의 실패… – 40 –
사이버 외교의 지정학… – 46 –
사이버 규범의 전장: 국제기구와 지역 기구… – 46 –
사이버 외교의 갈등전선: 기술패권… – 52 –
미국의 반격: 수출통제체제를 통한 대중제재… – 56 –
결론: 사이버공간의 지정학화(Geo-politicization) – 61 –
한국에 대한 함의… – 66 –
참고문헌… – 70 –
오늘날 세계는 냉전 종식 이후 최대 격동기를 겪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이를 뒤 이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지난 4년간 국제정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엔 등 미국 스스로 구축한 다자간 국제질서 체제를 현직 미 대통령이 앞장서 훼손하고 한미동맹을 포함해 기존 동맹관계를 부정하는 전례 없는 상황 앞에서 크게 요동쳤다.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면서 미국은 다시 동맹 중심의 외교안보 노선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난 4년간의 혼란이 야기한 국제정세의 여진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미국이 자초한 혼란 외에도 국제사회의 혼란과 갈등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안보 및 경제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권위주의 국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은 오랫동안 축적한 과학기술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대등한 경쟁을 추구하며 러시아는 사이버공간의 개방성을 이용하는 비대칭 정보전을 벌여 서방세계의 자중지란을 유도하고 있다.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 간의 경쟁이 야기한 국제 갈등은 과학기술이 그 촉매 역할을 하여 지정학적 영역을 넘어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는 데 일조한다. 경쟁국과 초격차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맹렬히 추격하는 중국은 둘 다 고도화된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경쟁전략을 추구한다. 미국이 첨단 군사력을 통해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인 3차 상쇄전략(Third Offset)을 내세운다면 중국은 “중국 제조 2025”로 상징되는 기술굴기에 집중한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업인 화웨이(Huawei)를 제재하는 것은 시진핑의 역점사업인 일대일로의 디지털 실크로드(Digital Silkroad)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2019년 말 발간한 ‘아산 정세전망 2020: 신지정학‘은 작금의 강대국 간 갈등이 전통적 지정학적 경쟁에서 “과학기술이 창출해낸 새로운 국경”을 따라 확산되는 하이브리드 지정학으로 진화하였다고 말한다. 즉, 기존의 지정학적 갈등이 과학기술을 통해 더욱 확대되고 심화되는 것이 신지정학이다. 신지정학적 현상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사이버공간에서 더 쉽게 나타난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충돌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무력충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대신 갈등의 전선은 확대되고 충돌의 유형은 다양해진다. 현재 과거 냉전 때와 같이 양 진영 간의 완전한 단절은 아직 없지만(Trenin 2014) 절대적 기술우위를 노리는 강대국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기술, 데이터,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싸고 전방위적으로 강대국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이념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사이버공간에서의 갈등을 “실존적 투쟁”으로 간주하는 기류가 강대국 간에 강해지고 있다.
빠르게 분쟁영역화 되고 있는 사이버공간은 강대국 간의 갈등이 확산되는 신지정학이 발현되는 공간이자 동시에 촉매제이다. 전통적인 영토 분쟁이었던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세계의 충돌은 신지정학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한 배경에는 미국과 유럽이 지지하는 개방되고 자유로운 인터넷이 실제로는 정권교체를 위한 심리전 도구라는 러시아의 강한 의구심이 작용했다.1 전통적 우방이던 세르비아와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권들이 서방의 지지를 받는 시민혁명에 의해 전복되자 러시아가 반격 차원에서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렇듯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인류의 사회, 문화, 경제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국가 간 역학관계마저 변화시켰다. 신지정학적 갈등의 구조적 원인은 4차 산업혁명으로 수렴되는 첨단과학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서 찾을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현대사회의 경제 구조를 탄소경제(Carbon Economy)에서 데이터경제(Data Economy)로 빠르게 전환시키며 국가전략의 우선순위도 바꿨고 강대국 간의 핵심적 갈등 요인을 영토와 천연 자원 확보에서 과학기술과 데이터로 변화시켰다. 경제발전의 핵심자원이 탄소 기반 에너지에서 무형의 데이터로 넘어가면서 오늘날 국제관계 갈등은 석유가 아닌 데이터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배경에는 오늘날 인류가 쏟아내고 있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있다. 매일 생성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는 동영상, SNS 메시지, 블로그 등 개인정보, 인터넷 서비스(예: 위치기반 서비스와 온라인 쇼핑) 사용 중 파생되는 메타데이터(metadata), 그리고 이제는 컴퓨터와 각종 네트워크化된 기기들이 서로 통신하면서 만들어내는 센서(Sensor) 데이터 등이 포함된다. 이른바 빅데이터로 통칭되는 이러한 데이터는 연 60% 폭증하고 있으며, 2025년도에는 2020년도 수준의 10배가 넘는 데이터 총량이 생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날 가용가능한 빅데이터의 대부분은 개인정보에서 파생된다. 흔히 빅데이터로 규정되는 온라인 쇼핑, 위치기반정보, 사진과 동영상의 메타데이터가 개인정보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런 종류의 데이터들은 지난 20년 동안 인터넷 기업들의 폭발적인 성장을 뒷받침했다.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인스타그램(Instagram) 등 잘 알려진 인터넷 대기업들의 사업 모형은 모두 개인정보에 기반한다.
인터넷과 빅데이터로 인해 개인정보의 경제적 가치가 급성장하면서 개인정보 보호는 단순히 사생활 보장의 차원을 넘어 중대한 경제안보적 이슈가 되었다. 2019년 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주자였던 앤드류 양(Andrew Yang)은 인공지능 개발에 투입되는 개인정보 사용에 대한 대가를 개인이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2 이렇듯 개인정보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자원으로 부상하면서 국가적 차원의 데이터 관리와 활용이 중요해졌다. 현재 각국은 사생활 보호라는 인권 차원에서 접근되던 개인정보의 경제적 잠재력을 깨닫고 이를 활용하는 전략을 수립 중이며, 최근 통과된 한국의 “데이터3법”도 사생활 보호보다는 개인정보의 상업적 활용에 방점이 맞춰져 있다.
국가 주도의 개인정보 통제와 배타적 상업적 활용은 중국과 유럽연합이 각각 “사이버 주권”과 “디지털 주권”을 내세우는 배경이기도 하다. 유럽연합이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일반데이터보호규정”(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과 중국의 사이버보안 관련법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데이터의 자유로운 국외이전을 막는다. 이러한 데이터 현지화(Data Localization) 정책은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고 데이터 현지화를 반대하는 미국의 입장과 충돌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사업모델은 개인정보를 비롯한 데이터의 무제한 수집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미국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과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에 데이터 현지화를 반대하는 규정을 삽입하였다.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의 이해와도 상충되는 미국의 데이터 정책은 경쟁국의 반발을 유발해 사이버공간의 주권화와 데이터 경제의 블록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갈등은 미중 관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발현된다. 미국과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유럽연합과는 달리 중국은 주요국가 중에서 가장 폐쇄적인 사이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사이버 정책은 단순히 외부정보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첨단기술 발전이 목적인 산업정책의 성격도 띈다. 중국은 페이스북 같은 세계적 IT 대기업을 자국 시장에서 밀어내고 대신 자국 기업 중심의 빅데이터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였다. 바이두(Baidu), 텐센트(Tencent), 알리바바(Alibaba) 등 주요 중국 IT 기업들은 자국 시장에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을 각각 대체하였고 10년이 지난 현재 원조 미국 기업들을 거의 따라잡은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현재 중국 “카피”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미국 “원조” 기업들 턱밑까지 따라온 상태이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자국 인터넷을 전체 인터넷에서 분리하는 정책을 실행 중이다. 러시아는 RuNet이라는 유사시에 자국 인터넷을 전체 인터넷에서 분리할 수 있는 국내용 인터넷 도입을 완료했으며 중국은 현재 사용되는 인터넷 통신 프로토콜인 TCP/IP 대비 중앙집중적 통제를 용이케 하는 “뉴IP”이라는 새로운 인터넷 통신 프로토콜을 개발하였다. 이 신기술의 범세계적 채용을 위해 중국이 유엔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은 사이버 국제규범을 주도하기 위해 어떻게 중국이 국제기구를 장악하고 공공외교를 활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이버공간의 분리와 국가주권화를 추진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행동은 과학기술과 경제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개방된 인터넷 환경이 절실한 미국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된다. 미국은 사이버 주도권에 대한 도전을 세계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국제규범, 기술, 영역을 연계하는 신지정학적 방식으로 경쟁국의 도전에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2018년 미 백악관이 발표한 “국가 사이버 전략”(National Cyber Strategy)에서 공개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사이버공간을 분열시키고 국제규범을 악용하는 국가들로 규정하였다. 특히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과 산업이 전무하다시피 한 러시아와는 달리 “중국 제조 2025” 등의 계획을 통해 5G, 인공지능, 첨단소재 등 분야에서 신기술을 선점해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중국에게는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사이버공간 분리 행동에 대해 중국기업의 미국 시장 접근과 첨단기술 및 부품 이전을 차단하는 경제-기술적 디커플링(Decoupling)으로 맞대응한다.
최근 중국의 거대 IT기업인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간의 충돌 또한 단순히 네트워크 보안을 둘러싼 문제가 아닌 신지정학적인 갈등의 한 예로 봐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의 최대 전략사업인 일대일로 계획(BRI: Belt and Road Initiative)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위상을 이해해야 한다. 5G와 인터넷 네트워크 설비를 생산하고 기업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상당수 중국 IT기업 중에서 유독 화웨이가 미국의 집중적 견제를 받는 데는 화웨이가 중국 국영기업인 차이나 텔레콤과 함께 일대일로의 사이버 버전인 디지털 실크로드를 구축하는 핵심행위자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화웨이와 차이나 텔레콤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통제하는 기업이라고 미 국방부가 지목한 바 있다. 화웨이는 남아시아와 인도양 지역에서 인터넷 기간망인 해저 광케이블 부설과 일대일로 참여국들의 5G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차이나 텔레콤은 디지털 실크로드의 데이터 이동을 뒷받침하는 데이터 센터 구축을 담당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디지털 실크로드는 단순히 중국의 일대일로를 통한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패권을 위협하는 신지정학적 도전인 것이다.
과학기술, 개인정보, 국제규범 등은 지금까지 전통안보와 무관하거나 하위개념으로만 여겨졌다. 이러한 인식은 역사적으로 국가 간 분쟁이 이념, 영토, 또는 석유 같은 자원을 둘러싸고 일어났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랍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고도화된 과학기술이 국가전략을 선도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지정한다. 여기에는 정보통신기술 특유의 유연한 스케일이 작용한다. 정보통신기술은 개인의 세세한 삶부터 초국가단위까지 포괄하는 미세성과 광범위성을 통시에 지닌다.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침투력과 확장성으로 인해 국가안보 취약성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정보전은 미국 정치의 안방까지 깊숙이 침투할 수 있고 프라이버시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개인정보는 빅데이터 기술 덕에 석유를 능가하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10년 사이에 확산된 현상이다. 정보통신기술은 경제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지만 국가 간 패권경쟁의 성격을 바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태동하는 4차 산업혁명과 데이터 경제의 방향과 본질을 이해해야 국제규범을 둘러싼 패권경쟁, 빅데이터와 개인정보를 둘러싼 서방진영 내 갈등, 그리고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의 충돌 등 새롭게 부상하는 갈등전선이 어떠한 지정학적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이버공간과 현실공간의 벽이 사라져 가는 오늘날 사이버공간 안팎에서 다차원적으로 발현되는 신지정학적 현상을 살펴보고 한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서론: 사이버공간의 신지정학
패러다임의 전환: 탄소에서 데이터로
탄소경제의 종말
빅데이터,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개인정보의 경제적 활용과 논란
주요국의 개인정보정책
미국: 데이터 이동의 자유
중국: 국가가 통제하는 개인정보
유럽연합: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데이터 무역
중국과 유럽연합: 디지털 주권의 등장
사이버공간의 이념 갈등
사이버공간의 불안정성: 강대국 간의 갈등
분쟁영역이 된 사이버공간: APT와 정보전
사이버 외교와 국제협력: 사이버 규범 도출의 실패
사이버 외교의 지정학
사이버 규범의 전장: 국제기구와 지역 기구
사이버 외교의 갈등전선: 기술패권
미국의 반격: 수출통제체제를 통한 대중제재
결론: 사이버공간의 지정학화(Geo-politicization)
한국에 대한 함의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