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정책硏, ‘중국-대만 관계에 대한 대만인 인식과 그 함의’ 아산리포트 31일 발표

보도자료 - Press Re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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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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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책硏, ‘중국-대만 관계에 대한 대만인 인식과 그 함의’
아산리포트 31일 발표

 
아산정책연구원은 3월 31일(월), 이동규 연구위원∙강충구 책임연구원∙김지연 연구원의 아산리포트 “중국-대만 관계에 대한 대만인 인식과 그 함의”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국민당과 민진당의 대중국 정책과 중국-대만 관계와 관련한 대만인의 인식을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대만 관계를 전망하고 한국에 대한 정책적 함의를 도출한다.

집필진은 대만인 인식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만 민주화 이후 대만인 정체성이 계속 증가했지만, 동시에 대만해협의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응답과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증가했음을 지적하면서, 국민당과 민진당의 대중국 정책이 중국-대만 관계에 대한 대만 대중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중국이 대만 정당과 대만 대중 간의 인식 괴리를 활용해 대만 독립노선을 취하는 민진당을 압박하는 한편, 국민당과 대만인을 회유하는 이원화 정책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본 보고서는 위의 분석을 기반으로 다음과 같은 정책을 제언한다. 첫째, 한국 정부는 중국-대만 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 미국이나 중국의 대만 정책 외에도 대만 내 정치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국 정부는 민진당 및 국민당과의 비공식 교류를 확대하는 한편, 한국-대만 간 학술 교류를 격려해야 한다. 둘째, 대만인 인식과 대만 정치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한국 중심의 입장을 세우고 이를 전달해야 한다. 한국은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를 강조할 때, 현상유지와 양안 경제교류를 선호하는 대만인 인식의 증가를 활용해 중국의 반발을 불식시켜야 한다. 또한, 미국 및 일본과의 협력 과정에서도 이러한 대만인 인식을 강조함으로써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보다 북한의 군사위협이 더 시급한 문제임을 부각하고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을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에 집중시켜야 한다. 셋째, 중국의 대대만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에 대한 중국의 회유와 강압에 대비해야 한다.

 
*리포트 관련 문의:
이동규 연구위원 02)3701-7346, dglee@asaninst.org
강충구 책임연구원 02)3701-7343, ckkang@asaninst.org
김지연 연구원 02)3701-7360, jykim22@asaninst.org

아산리포트_중국-대만 관계에 대한 대만인 인식과 그 함의_앞표지

중국-대만 관계에 대한 대만인 인식과 그 함의

요약

 
1980년대 대만 민주화 이후 대만 내에서는 자신을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으로 인식하는 ‘대만인 정체성’이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와 COVID-19 팬데믹 사태는 대만인의 반중 정서와 중국 위협 인식을 높였다. 2024년 총통 선거에서 독립노선을 추구하는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 이하 민진당)이 승리하고 3연속 집권에 성공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입법원 선거에서는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 이하 국민당)이 승리하며 국민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확인됐다. 이것은 대만인이 대만 문제를 바라볼 때, 대만인 정체성 외에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본 리포트는 대만 내부의 관점에서, 즉 대만 정당의 양안 정책과 대만인의 인식을 분석하고 대만의 국내 정치 변화와 대외정책을 전망한다. 이는 대만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2장은 1980년대 대만 민주화 이후 대만 정치에서 주요 대립요인으로 작용하는 대만인 정체성과 통일-독립 논쟁 배경을 살펴보고 이를 기반으로 국민당과 민진당의 양안 정책 특징을 분석한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퇴각한 국민당은 중국공산당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진당과의 차별성을 내세우기 위해서 ‘92 컨센서스(1992 Consensus)’1를 기반으로 중국과의 경제협력과 인적 교류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대만 본토 출신 인사들을 주축으로 창당된 민진당은 대만 독립노선과 탈중국화, 대만인 정체성 고양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대중 경제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교역 다변화와 미국의 대중 강경책 편승을 특징으로 하는 양안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민당과 민진당은 서로 상충되는 양안 정책을 시행해 왔는데, 이것은 어느 당이 대만 집권당이 되는지에 따라 대만의 양안 정책, 더 나아가 대외정책의 방향이 전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3장은 대만인 정체성, 통일-독립 인식, 양안 경제교류, 정당 지지도를 중심으로 중국-대만 관계와 관련한 대만인의 인식을 분석한다. 분석 결과 대만 민주화 이후 대만인 정체성이 계속 증가했지만, 동시에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응답과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정당 지지도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는 대만 유권자들의 관심이 대만인 정체성이나 통독 논쟁에서 현실 문제 해결로 옮겨가는 추세를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각 정당의 양안 정책이 양안관계에 대한 대만 대중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는 민진당과 국민당이 대만 대중의 필요와 요구보다는 정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상호 차별화된 양안 정책을 추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만인 인식 조사 결과는 향후 각 정당이 선거 승리를 위해서 기존의 양안 정책을 점진적으로 조정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또한, 이것은 중국이 대만 정당과 대만 대중 간의 인식 괴리를 활용해 대만 독립노선을 취하는 민진당을 압박하는 한편, 국민당과 대만인을 회유하는 이원화 정책을 강화해 나갈 것을 시사한다.

본 리포트는 위의 분석을 기반으로 다음과 같은 정책을 제언한다. 첫째, 한국 정부는 양안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 미국이나 중국의 대만 정책을 관찰하는 동시에 대만 내 정치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대리전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민진당과 국민당의 양안 정책은 상호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24년 총통 및 입법원 선거에서 대만 내 정치구도 변화의 가능성이 나타났다. 그런 만큼 미국과 중국의 인식과 정책뿐 아니라 대만 내부의 변화와 향후 정책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한국 정부는 민진당 및 국민당과의 비공식 교류를 확대하는 한편, 한국-대만 간 학술 교류를 격려해야 한다.

둘째, 대만인 인식과 대만 정치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한국 중심의 입장을 세우고 이를 전달해야 한다. 대만 문제가 한국의 국익과 연결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대만 문제는 내정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대만해협과 관련된 발언만 해도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미일 안보협력의 범위를 대만해 협으로 확대하려고 하고, 대만도 이에 편승해 대만해협 유사 사태 시 한국의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중요한 해상교통로인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를 지지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중국의 반발을 야기해 한중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안보협력의 초점이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를 향하도록 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현상유지와 양안 경제교류를 선호하는 대만인 인식의 증가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를 지지하고 강조할 때 이러한 대만인 인식을 근거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거나 미국의 정책에 동조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중국의 반발을 불식시켜야 한다. 또한, 미국 및 일본과의 협력 과정에서도 이러한 대만인 인식을 강조함으로써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보다 북한의 군사위협이 더 시급한 문제임을 부각하고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을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에 집중시켜야 한다.

셋째, 중국의 대대만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에 대한 중국의 회유와 강압에 대비해야 한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영향력 작전(influence operations)에 대한 우려와 경각심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드 사태와 COVID-19 팬데믹을 계기로 반중 정서가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중 간 경제 및 인문 교류, 국내 정치의 분열, 중국의 영향력 작전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해 이러한 작전에 취약한 상황이다. 양안관계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이 대만에 대한 회유와 강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사례 연구는 한국이 향후 중국의 영향력 작전에 대비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목차

 
요약
 
I. 들어가며

II. 국민당과 민진당의 양안 정책
   1. 통일-독립 논쟁과 대만의 정치 구도
   2. 국민당 양안 정책의 특징
   3. 민진당 양안 정책의 특징

III. 중국-대만 관계에 대한 대만인 인식 조사
   1. 대만인 정체성
   2. 통일-독립 인식
   3. 양안 경제교류
   4. 정당 지지도

IV. 대만인 인식이 대만 문제에 주는 시사점
   1. 정당-대만인 간 인식 괴리
   2. 중국 대만 정책의 이원화

V. 정책 제언

참고 문헌

본 보고서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92 컨센서스’는 1992년 11월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兩岸關係協會)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海峽交流基金會)가 합의한 것으로 대만과 중국 양측이 ‘하나의 중국(一個中國)’은 인정하지만 ‘중국’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을 허용(各自表述)’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것은 정통성 문제를 둘러싼 양안 갈등을 유보하고 양안 교류의 단초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국민일보] 어떤 국제질서를 꿈꾸는가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위기를 경험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상호 단절과 각자도생의 경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남중국해 분쟁 등에서 보여준 강대국 일방주의와 약육강식, 증오와 불신을 먹고 자라난 각종 지역분쟁,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 모두에서 발생하는 민주주의의 위기, 국제적 리더십의 부재 등은 정보화, 세계화, 자유화로 요약될 수 있었던 기존 국제질서를 훼손해 왔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국제질서의 대격변 속에서 우리도 가치에 충실하기보다 ‘실용적’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랜 동맹국도 냉엄한 국가 이익의 기준을 들이밀고 있는 마당에 굳이 우리가 일부 주변국과 척지면서까지 자유민주주의, 인권, 규칙 기반 세계질서 등의 가치를 목소리 높여 주장할 필요가 있느냐는 논거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존에 꿈꾸던 세계질서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현재와 같은 혼돈과 불신에 편승하기만 하면 우리의 ‘실용’적 이익이 보장되는가. 아니 최소한 현상유지 정도는 가능한 것일까.

우리의 근현대사는 자유를 향한 열망의 과정이었고, 그 희망을 놓지 않은 우리의 의지와 국제사회의 지원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뤘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우리의 경제 발전과 민주화 과정을 함께한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정체성을 부정하면서까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러·우 전쟁과 관련해 우크라이나 책임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유로마이단(Euromaidan) 운동과 친서방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등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논거를 받아들인다면 6·25 전쟁에서의 ‘북침론’이나 우리의 원인제공론도, 중국의 항미원조 주장도 수용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한·러 관계를 고려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지지를 자제해야 한다면 1950년 당시 우리를 도운 16개 참전국과 6개 의료지원국의 행동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린란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심에 대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누구도 이런 강대국 시각 위주의 일방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다. 독일의 반나치 운동가였던 마르틴 니묄러의 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First they came)’는 권위주의적 억압과 야만을 방관한 피해가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지적했고, 이는 국제정치에서도 다르지 않다.

가치나 체제가 다른 국가들과는 대립과 단절을 추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천명을 통해 지금 평양이 하고 있는 행동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 중견국이고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목표를 표방한다면 최소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질서에 대한 애착과 수호 의지는 보여주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접근을 이념 위주 접근이고 진영 논리라고 평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냉전적 사고방식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위기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이미 유럽연합(EU)을 포함해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많은 국가가 결속과 협력의 필요성을 외치고 있다. 지금일수록 우리가 지향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능력을 키우고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y)과의 연대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미국 역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위상과 번영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면에서 정책 재검토의 시기를 거칠 것이다. 그동안은 우리가 흔들리는 동맹국을 확신시키고 우리의 역할을 확대, 강화한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자유주의 국제질서도, 동맹도 지켜나갈 수 있다.

 

* 본 글은 3월 31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중앙SUNDAY] 내전은 승자독식 대통령제에서 발생하는 경향 있다

두 달 남짓밖에 안 되었지만, 트럼프 2기의 출범은 전 세계에 안보, 경제, 민주주의 차원의 심각한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안보 차원을 보자.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을 멀리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같은 권위주의 지도자와 밀착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즉각적인 우크라이나 철군을 요구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을 러시아, 북한, 벨라루스와 같은 편에 서서 반대했다.

경제 차원에서는 캐나다, 멕시코에 이어 중국, 유럽, 아시아의 중요 무역파트너 국가들의 상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해외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유치하여 제조업을 부활하겠다는 전형적인 중상주의 정책이다. 동맹국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고, 자유무역이라는 국제규범의 혜택을 누리며 경제성장을 이뤄온 한국은 큰 불안과 고민에 빠졌다.

트럼프 2기 출범의 세 번째 도전은 민주주의의 후퇴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배하는 공화당은 의회 상하원 다수 의석을 장악했고, 대법원도 그를 지지하는 보수적 대법관들이 다수다. 그런 상황에서 이달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인들을 추방하지 말라는 연방판사의 판결을 무시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그 판결을 내린 판사의 탄핵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존 G 로버츠 대법원장은 “2세기 이상 동안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의견 불일치를 해소하는 방법은 탄핵이 아니라, 다른 정상적인 사법절차가 있었다”며 공개 반박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논객 로버트 케이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을 공화적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 정치 시스템으로 확 바꾸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 정치가 건국 초기의 민주주의, 삼권분립 등 자유주의적 건국의 아버지들에 반대했던 반자유주의의 흐름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유를 인종 갈등에서 찾는다. 트럼프는 2011년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와 관련한 적법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공화당의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자들이 트럼프 중심으로 뭉치면서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경제적 불평등이 미국 민주주의 약화의 뿌리라고 주장한다. 인종주의도 과거 미국의 노예제가 남부에서 유지될 때 소수의 부유한 백인 농장주들이 부유하지 않은 다른 백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조장한 이념이었다는 것이다. 정체성 갈등이나 문화적 갈등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경제적 이익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의 민주주의 위기도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탈산업화 과정에서 진행된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양극화로 인한 정치적 불만 누적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를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주의자(Trumpist)들이 활용했다는 것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정치적으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세계화, 자유민주주의,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추진해 온 세력과 다양성과 같은 그들의 담론 자체를 몰아내고 있다.

민주주의 후퇴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스라엘에서는 2023년 이래 베냐민 네타냐후 우파 정부가 사법부의 권한을 제약하려 개혁을 시도하다가 국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모범적 민주국가 독일에서는 나치에 동조하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 올해 총선에서 20.8% 득표로 두 번째 다수 정당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이 정당을 미국의 밴스 부통령과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수장이 지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2024년 반이민, 국가주의를 내세우는 극우주의자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National Rally)이 의회선거 1차 투표에서 34%를 확보했다.

스웨덴의 한 연구소(V-Dem Institute)는 2024년 현재 지난 20여 년 이래 처음으로 독재국가들이 민주국가들보다 많아졌다고 발표했다. 지구 인구의 4분의 3이 독재정부 치하에서 살고 있는데 이는 1978년 이래 최고로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는 인구는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강력한 민주주의 후퇴의 광풍이 한국에도 몰아칠 가능성이 몹시 우려된다.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도 사실 위태위태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삼권 분립, 그중에서도 사법부의 독립이 과연 잘 지켜지고 있는지 많은 국민들이 의심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탄핵 남발로 인한 혼란은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념, 지역, 계층, 세대, 젠더까지 겹겹으로 갈등이 중첩되고, 일부 무책임한 소셜미디어들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본산으로 여겨졌던 미국 민주주의의 후퇴가 걱정스럽다. 전시효과를 통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이 민주주의 원칙 준수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을 낮추거나 제거해 버릴 위험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이 제왕적 대통령제와 무한 갈등의 정당정치를 개혁하고 지방자치제를 강화해서 한국 민주주의의 내구성을 튼튼히 해 놓아야 할 때이다. 그래야만 거의 내란 수준에 준하는 극단적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의 길을 열면서 안보, 경제 분야의 도전도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내전은 승자독식 대통령제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정치학자 바버라 F 월터 교수의 경고다.

 

* 본 글은 3월 29일자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