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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평화안전보장연구소(RIPS) 대표단 라운드테이블

3월 27일(목), 일본 평화안전보장연구소(RIPS: Research Institute for Peace and Security) 대표단이 아산정책연구원을 방문해 비공개 라운드테이블 회의를 가졌다. 대표단은 원내 전문가들과 함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한-미-일 협력, 북핵문제, 한일관계, 인태전략 등 다양한 이슈를 논의했다.

일시: 2025년 3월 27일(목) 16:00-17:30
장소: 아산정책연구원 2층 회의실

[동아일보] ‘아시아통화기금’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관세 전쟁으로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의 통상정책이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여건을 악화시키고 해외 자본의 투자를 위축시켜 통화의 가치 하락과 금융시장의 불안을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인도네시아, 태국, 그리고 한국을 강타했던 아시아 금융위기는 지역 경제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당시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환율 급등과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고,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였다. 당시 위기 대응을 위해 IMF가 개입했지만, 강력한 긴축을 요구하는 정책이 IMF 관리 체제에 돌입한 국가들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국내 경기 회복을 더디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아시아 지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경우 일본 정부가 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1997년 ‘미야자와 플랜’을 바탕으로 ‘아시아통화기금(Asia Monetary Fund·AMF)’의 창설이 논의됐지만, 미국의 반대로 좌절됐다. 당시 미국이 반대한 이유는 IMF에 비해 관대한 조건을 보장하려는 AMF 구상이 미국의 정책 기조와 부합하지 않았고, 당시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꺼렸다. 1998년 1월 당시 존 매케인 미 공화당 상원의원도 정몽준 의원과의 만남에서 “왜 미국은 AMF 구상에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하면서 미국이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것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현재는 여건이 많이 바뀌었다. AMF 제안 당시 미국은 ‘이지 머니(easy money)’로는 아시아 국가 금융위기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어렵고 오히려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던 듯한데, 이는 지원 조건의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 질서 유지에 있어 미국의 부담을 줄이고, 그 대신 동맹이나 우방국들의 기여를 확대하기를 원하고 있다. AMF의 창설은 이러한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서도 유용하다. 현재 아시아 금융시장은 미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 국제 경제 등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이고, IMF만으로는 아시아 국가들의 늘어난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 중국은 이러한 틈새를 파고들 것이고, 증대된 영향력을 외교적이고 전략적인 압력 수단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중국은 2023년 4월 열린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중국 중심의 AMF 창설을 제안하는 등 아시아 금융질서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려 노력 중이다. 한국, 일본 등이 중국과 함께 참여하는 AMF가 창설된다면 미국은 동맹국들의 기여를 통해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 아시아 국가 간 통화 스와프 확대 및 역내 통화 사용을 촉진해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인 금융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이제 우리는 AMF의 창설과 관련해 더 분명하고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 AMF의 최초 제안국이었던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AMF의 구성과 역할을 보완하면서도 발전 단계와 전략이 각기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국내외적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 본 글은 3월 28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매일경제] 미국의 바뀌는 여론과 중동정책

이달 초 갤럽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축적된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40%는 이·팔 갈등을 자국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여겨왔다. 또 50~60%는 이스라엘에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미국 정계 내 유대계 영향력, 복음주의 기독교도의 친이스라엘 정서, 중동 내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 등이 그 배경이다.

그런데 최근 조사 결과는 좀 달랐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이·팔 갈등을 자국 안보 위협으로 본 미국인이 52%로 늘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당시 미국인과 미국·이스라엘 이중국적자 45명이 죽거나 인질로 잡혀갔다. 더 눈에 띄는 변화는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 여론과는 별개로 미국인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동정’ 여론이 이례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고 이스라엘의 지나친 군사 대응으로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 위기가 악화하자 이스라엘인에 대한 동정 여론은 2020년대 초 55% 내외에서 2025년 46%로 떨어졌지만,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동정 여론은 25% 안팎에서 33%로 올랐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유권자의 태도 변화로 이어졌다. 아랍계·무슬림 유권자 일부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지원과 휴전 협상 실패에 실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로 선회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는 아랍계가 밀집한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42%를 득표했지만, 카멀라 해리스 후보는 36%에 그쳤다. 지난 대선 당시 바이든 후보가 이 지역에서 압승을 거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유고브가 아랍계를 상대로 벌인 조사에서도 이·팔 갈등을 잘 해결할 후보로 트럼프는 39%, 해리스는 33%의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돈이자 둘째 사위의 아버지인 레바논계 마사드 불로스는 선거 기간 아랍계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인 지원 유세를 펼쳤고 이후 중동 문제 선임 고문으로 발탁됐다.

한편 유대계 유권자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유대계는 75% 안팎이 꾸준히 민주당에 투표해왔으며, 이번 대선에서도 79%가 해리스 후보를 선택했다.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지지하는 유대계 미국인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강경 보수 정부에 비판적이다. 2020년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유대계 유권자 73%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뚜렷하게 변한 미국 여론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팔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움직임이 벌써 감지되고 있다. 올 2월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의 회담 직후 미국이 가자지구를 인수해 팔레스타인 주민을 내보낸 후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강한 반발이 일자 3주 뒤 계획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고 한 달 후에는 가자지구에서 아무도 추방되지 않을 것이라며 태도를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대한 관심을 두는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관계 정상화의 중재 역시 이런 변화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수교를 자신의 대표 업적인 아브라함 협정의 완결판으로 여기며 성사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하지만 사우디는 이슬람권 정서와 국제 여론을 고려해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수립 없이 수교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미국 내 높아진 팔레스타인 동정 여론도 사우디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이런 흐름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처럼 일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만을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본 글은 3월 25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