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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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평가: 외형적 갈등 완화, 내면적 견제의 지속

 
2023년 주요국(dominant power)들은 국제질서 주도권을 향한 각축에 있어 지나친 갈등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세력 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권위주의 세력 간 대립 구도는 여전했지만, 이들은 경쟁이 직접 충돌로 격화되는 상황을 피하려 했는데, 이는 2023년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 간 정상회담에서도 잘 나타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양국 간 주요 관심사에 대해 “우리는 서로 연락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연락이 오면 그것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진전입니다(We should pick up the phone and call one another and we’ll take the call. That’s important progress)”라고 했고, 시진핑 주석도 “지구는 두 국가가 성공을 이룰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습니다(Planet Earth is big enough for the two countries to succeed)”라고 공존을 강조했다. 2023년 7월 블링컨(Antony J. Blinken) 미국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Janet Yellen) 재무부 장관의 잇단 중국 방문에서도 갈등을 관리하고자 하는 양국의 의지가 내포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직접 충돌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지원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공화당을 중심으로 대반격에 필요한 대규모 군사 지원에는 소극적이었으며, 러시아도 특별 군사작전을 전면전으로 전환하지 않았고, 대규모 지상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을 비롯한 주요국 간 경쟁이 가치와 체제 문제로 비화된 만큼 갈등의 근본적 해소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실제 주요국들은 직접 충돌을 자제하면서도 각기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권을 강화함으로써 상대방을 견제했다. 이에 따라, 주요국들은 자국 중심 연대(Coalition)를 구축함으로써 경쟁국을 압박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이 경향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2023년에만 국한된 것으로 볼 수 없으나, ‘신종코로나바이러스(COVID-19)’ 팬데믹 후 일상 회복에 들어서고 정상들 간 회동으로 연대가 뒷받침되면서 더 부각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전통적 동맹 및 우방국과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와 같은 다자안보협력체가 존재하지 않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있어서는 쿼드(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QUAD), 미국-영국-호주 간 3각 동맹 ‘오커스(AUKUS)’ 등 소다자안보협력체를 통해 핵심 동맹국들의 연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왔고, 이 노력은 그대로 진행됐다. 5월 19일~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외교·안보 분야 쟁점, 공급망 및 기간 인프라 강화와 같은 경제안보 문제, 인공지능(AI)거버넌스 확립, 기후변화 및 에너지, 환경 등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 이슈에서의 협력 등 다양한 사안들이 논의됐는데, 그중 상당수는 미중 전략경쟁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계된 것들이었다.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G7 회원국들은 “남중국해에서 무력이나 강압에 의한 현상변경 시도를 강력히 반대한다(We strongly oppose any unilateral attempts to change the status quo by force or coercion)”는 입장을 표명했고, 중국-대만 간 양안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한편, 중국 인권상황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이는 모두 중국의 현행 정책에 대한 비판적 성격을 띤 것들이었다. G7 국가들이 공급망을 훼손하는 적법하지 않은 영향력 행사, 스파이 행위, 불법 지식 유출 등의 악의적 행위에 대항하는 전략적 협의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공동성명이 중국의 경제 발전이 글로벌 경제에 기여함을 강조하고, 중국과 공존 의지를 동시에 강조하기는 했지만, G7 공동성명은 미중 전략경쟁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1 이 분위기는 7월 개최된 NATO 정상회의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2022년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한편, 중국 대외정책에 대한 견제 의지를 시사했던 NATO 회원국들은 2023년 7월 리투아니아 빌뉴스(Vilnius)에서 열린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도 중국의 “공언된 야망과 강압적 정책(stated ambitions and coercive policies)은 NATO 회원국들의 이익과 안보, 가치에 반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제휴가 ‘규칙 기반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를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점을 거론했다.2미국은 중국과의 군사적 갈등 위험성을 관리하려 하면서도 비군사 분야에서 중국 견제는 더 세련화 하는 것을 지향했다. 이 분위기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은 2023년 11월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이었다. 미국은 중국에 군사대화 채널 복원을 요구했지만, 경제 및 환경 등 이슈에 대해서는 양보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시사했다.

미국 중심 지역 소다자안보협력도 결속을 이어갔다. 올해 3월 13일에는 미국 샌디에고에서 최초로 미국-호주-영국 간 AUKUS 대면 정상회의가 개최됐고, 5월 20일에는 쿼드 정상회의가 히로시마에서 열렸다. 그러나 지역 차원 소다자안보협력 움직임에서 2023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이다. 2023년 초 한일관계 개선을 계기로 미국은 오랜 숙원인 동북아 지역에서의 한-미-일 협력 구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됐고, ‘캠프 데이비드 정신(The Spirit of Camp David)’ 합의를 통해 한-미-일 안보협력은 단순한 정상 간 만남 차원을 넘어 전통안보, 경제안보, 신흥안보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각종 대화가 상시 개최될 수 있는 제도화 기틀을 마련했다. 인도-태평양과 대서양 지역 동맹국들 간 협력을 촉진하려는 미국의 시도도 이어졌다. 빌뉴스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에는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4개국(Asia Pacific 4, AP4)의 비(非)NATO 국가 정상들도 초청받았는데, 이들은 모두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 지도자들이었고, 2022년 NATO 정상회의에도 참가했다.3

 

그림 1.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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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그러나 이 연대결성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2023년 10월에 발생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미국의 중근동 지역 구상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트럼프(Donald J. Trump) 행정부 말기 후 미국은 ‘아브라함 협정(The Abraham Accords)’을 통해 이스라엘과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이슬람 국가들 간 화해 및 협력을 촉진했다. 이를 통해 중근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관여 부담을 줄이고 이란, 시리아 등 반미 국가들을 견제하려 했고,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간 협력 역시 지원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생하자, 카타르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적극 지지했고 아랍에미리트(UAE)는 팔레스타인에 20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하마스(Hamas)를 직접 옹호하지는 않았으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고, 사우디아라비아도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물론 UAE,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가 직접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아브라함 협정’의 동력을 상당 부분 약화시킬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는 이란, 시리아 등이 분쟁 초반부터 하마스나 헤즈볼라(Hezbollah) 등 반(反)이스라엘인 동시에 반미 성향을 띠는 세력들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결속을 과시한 것과 비교되며, 향후 중근동 지역에서 미국-이스라엘 협력을 근간으로 한 연대결성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 국가들을 미국 중심 연대에 동참시키려는 미국의 노력도 부분적 성공에 그쳤다. 미국은 전체 동남아 국가들에게 미국 중심 연대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 확신을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2023년 9월 바이든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미-베트남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CSP)’로 격상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와 같이 미국은 아세안 전체보다는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 같은 국가들과의 양자관계를 중심으로 아세안 회원국들을 자신이 주도하는 연대에 끌어들이려 했다.

중국도 미국 중심 연대결성을 비판하며 자신들 나름의 연대결성에 몰입했다. 2023년 중국은 시진핑 1인 지배 체제하에서 미중관계가 안정화되고 있음을 강조하며 미국 주도 반중 연대의 균열을 시도하는 한편, 미국 리더십 문제와 경제협력 필요성을 제기하며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 협력관계를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4 중국은 미국의 우방 및 동맹 네트워크 강화에 대해 경제력을 활용한 세력 확대에 주력했는데, 2020년 말 출범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RCEP은 아세안 주도로 추진됐지만 중국은 이를 적극 지지함으로써 사실상 주도자 역할을 했다. RCEP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많은 국가가 참가하는 다자협력체로 전 세계 GDP의 29%를 차지하고 있고, 2019년을 기준으로 중국은 RCEP 전체 GDP의 44%를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RCEP에는 한국, 일본, 호주를 포함한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도 참가하고 있다. 이에 더해 중국은 2021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의 후신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에 대한 가입의사를 밝히며 지역 다자경제협력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는 한편, 미국이 불참하고 있는 공백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5 중국은 2014년부터 자신들이 주도해온 경제개발 협력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서도 연대결성 효과를 노리고 있다. 2023년 10월 중국은 2017년과 2019년에 이은 세 번째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베이징에서 개최했는데, 이 포럼은 140개국에서 4천여 명의 대표단이 참가했고, 정상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를 파견한 국가도 90여개국에 이르렀다.6

중국은 다자협력을 표방하지만 사실 미국 견제를 위한 협력체도 주도했는데,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가 그 대표적 예이다. SCO는 테러리즘과 분리주의, 그리고 극단주의를 ‘3대 악(Three Evils)’으로 규정하는 협력체이다. 외형상 이에 동조하는 모든 국가들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고, 미중 전략경쟁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인도, 파키스탄 등이 참가하고 있지만, 사실상 미국에 대항하는 국가 간 연합 성격이 강하다. 또 이들이 표방하는 ‘3대 악’은 소수민족 독립이나 저항운동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중국 대내정책의 정당성 강화를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2023년 7월 온라인으로 개최된 23차 SCO 정상회의의 특이점은 이란이 정식 회원국이 됐다는 점인데, 이란의 정식회원국 승격은 2022년 정상회의에서 이미 결정됐지만, 미국과 이란의 대립 상황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상징성을 지니는 것이었다.

 

그림 2. 2023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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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러시아도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적 연대를 결성했다. 러시아는 서방과 관계가 악화된 후 미국의 지배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며 문명의 공존을 전제로 하는 다극 체제를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유라시아경제 연합(Eurasian Economic Union, EAEU), SCO,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 협력체인 브릭스(BRICS) 등의 회원국을 확대하고,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고자 한다. 러시아는 안보에서 주도적 지위를 확보하고 다극 체제의 한 축으로 발돋움하고자 하며, 금융과 정보 분야에서 서방에 대응하는 미디어 체제를 구성하고 탈달러화를 지향하는 국제통화체제를 도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특히 구(舊)소련 연방에 속해 있었던 국가들에 대한 장악력 유지를 위해 2002년부터 ‘집단안보조약기구(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 CSTO)’를 운영해오고 있다. 특히 벨라루스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등 전략 및 군사적 연대를 더 강화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갈등을 겪거나 러시아의 조정력에 불만을 품은 우크라이나, 조지아, 아제르바이잔이 CSTO를 탈퇴했고, 2020년부터 시작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분쟁에서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자 CSTO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흔들리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2023년 11월 벨라루스에서 개최된 CSTO 정상회의에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함으로써 러시아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노력했다. 또 러시아는 북러 정상회담 후 북러 간 밀착관계를 강화하면서 10월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Lavrov) 외무장관의 북한 방문과 동시에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함으로써 중국과 전략적 연대 강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주목할 것은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 의존도가 커지는 것을 반길 수 없는 입장이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은 가운데 러시아는 북한과 관계 회복을 통해 한편으로는 탄약과 포탄의 공급망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태평양(Asia–Pacific) 지역에서 러시아의 지분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를 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의 경쟁적 연대결성 움직임에 대해 한걸음 물러나 중립 태도를 보이고 있는 국가들도 주목받고 있다. 앞서 지적한 ‘글로벌 사우스’가 그 대표적 예이다. 이들은 주요 미-중 혹은 미-러 간 갈등 현안에 있어 어느 누구의 편도 확실하게 들지는 않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자신들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했다. 2023년에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대체로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중 전략경쟁에 있어 중립 입장을 견지했고, 이를 통해 주요국들과 선별적 협력을 강화할 뿐 연대결성에 동참하는 것에는 소극적 입장을 취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는 데에 집중하지 않은 지역도 있는데, 아세안이 그 대표적 경우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아세안 혹은 동남아 지역은 점차 중요성을 상실해가는 듯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세안 회원국 전체보다는 일부 국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아세안의 불안감을 자아냈고, 중국도 이 공백을 적절히 공략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이는 아세안에 대한 무관심보다는 우선순위 문제로 판단되며, 이로 인해 아세안은 미중 전략경쟁과 연대결성에서 다소 물러나 있는 모습이다.

 

연대결성 경쟁의 특징

 
최근에 이뤄지고 있는 주요국들의 연대결성은 군사 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맹’과 구별되고, 연대 참여 국가들은 그 결속으로 인한 배타적 수혜를 기대하거나, 연대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손해를 우려한다는 점에서 일반적 협력관계와도 구별된다. 우선 주목을 끄는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대결성 움직임으로, 이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첫째, 기존의 포괄적 다자협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소다자협력을 모색하고 활성화하는 일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은 유럽 지역에서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회원국 및 NATO와의 강화를 꾀하고,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NATO와 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유럽 외 지역에서는 3자 혹은 4자 형태 소다자협력을 통해 미국 우방 및 동맹국 간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이미 쿼드, AUKUS 등으로 현실화했고, 2023년에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Camp David Trilateral Summit)를 기점으로 동북아 지역 내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이와 함께,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 동맹 및 우방국들과 NATO와의 연계도 강화하고 있다. 즉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 지역의 연결을 모색함으로써 결국은 전 세계 동맹국들을 네트워크화하려고 하고 있다.

둘째,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대립 구도를 강조한다. 미국은 연대결성에 있어 과거에 비해 공통의 가치와 체제를 강조하는 추세이고,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형성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 구도 강화로 이어졌다. 이를 단순히 바이든 행정부의 특징으로 보기 힘든 것이, 이미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미중 전략경쟁에서 체제 문제를 거론했고, 중국과 러시아를 ‘수정주의(revisionist)’ 세력으로 간주했다. 2023년에도 이 가치 연대를 강조하는 움직임은 그대로 유지됐고, 이는 미국이 동맹 및 우방국들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그대로 강조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자신들의 권위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민주주의, 인권, 국제질서 등의 개념에 있어 나름의 정의와 정당성을 내세우며 반패권을 주창하여 가치 대립은 더 뚜렷해지고 있다.

셋째, 경제 분야에서는 포괄성, 개방성보다 일정한 자격 요건을 요구하는 ‘클럽형’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은 안보 협력을 넘어 포괄적 협력을 지향하고, 동맹국들에게 ‘경제안보’ 협력을 강조하며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과 같이 호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다자협력체에는 소극적이다. 플랫폼 성격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를 주도했지만, RCEP과 CPTPP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 경우이다. ‘칩4(Chip4)’ 등을 통해 동맹이나 우방국 중 특정 분야에서의 공급망 재편을 위한 연대는 강화하는 추세에 있다. 이는 미래 성장동력을 주도할 핵심 분야에서 중국 및 러시아 등의 추월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나아가 군사 분야에서 질적 우위를 바탕으로 미국의 주도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러나 이 미국의 접근법은 선별적이고 변형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우며, 이는 미국의 연대결성에 잠재적 장애요인이기도 하다. 미국이 포괄적 다자주의에 참여하는 것에 여전히 소극적 자세를 보이는 것 역시 미국의 연대결성이 안고 있는 약점이다.

이에 대해 중국도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결성을 모색하고 있고, 이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포괄적 다자경제협력체 주도로, 중국의 방대한 시장과 자금력을 활용한 것들이다. 중국은 CPTPP에도 참가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는 등 경제 다자협력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 미국의 우방 및 동맹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는 한편 미국이 주도하는 ‘Chip 4’나 IPEF에의 가입을 견제하고 있다. 또 ‘일대일로’ 회의를 통해 자신들이 경제 이니셔티브를 지고 있는 개발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인도-태평양 지역 및 중동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장악력 강화를 노리고 있다. 둘째, 권위주의 국가 간 연대 강화이다. 중국은 SCO를 활용해 미국의 우방이나 동맹에 속하지 않은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에는 중재 역할을 일부 시사하면서 기본적으로 중러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북러 간 밀착 후 북-중-러 3각 연대의 구성 가능성에도 이를 공식 부인하지 않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셋째, 공식 ‘동맹’은 아니지만, 해외 국가들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과 안보협력을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움직임을 지속 확대했다.

주요국들 간 연대결성 경쟁에서 ‘글로벌 사우스’는 나름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만, 과거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 NAM)과는 차이를 보인다. 과거의 비동맹국가들이 경제력 면에서는 큰 영향력을 갖지 않았던 것에 비해 ‘글로벌 사우스’는 세계 경제 측면에서 미국 및 서방,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다수 포진한 BRICS는 2002년 당시 미국 GDP의 4분의 1에 불과했지만, 이미 총 경제규모에서 G7에 필적하며, 20년 내 G7을 추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7 과거 냉전 시대에는 비동맹의 향배가 냉전 구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연대결성 대결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선택은 무시 못할 변수가 될 것이다. 비동맹운동이 반서방 비사회주의에 가까웠다면, ‘글로벌 사우스’는 정치적 면에서 확실한 정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 및 권위주의 양측과 모두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주요 국제관계 쟁점에 있어 무조건 중립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국가에 따라 유동적이다. 즉 단일 단위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행보는 특정 협력단위에 의해 집단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데, 이 역시 비동맹운동과의 결정적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가 나타내고 있는 느슨한 결집력은 2023년 8월의 BRICS 정상회의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글로벌 사우스’가 BRICS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한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모두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국가들이다. 2023년 BRICS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BRICS를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연대로 발전시키려는 포석으로 회원국의 대폭 확장을 지지했는데, 이는 BRICS가 경제협력 이상의 협력체로 변질되고,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꺼려한 인도와 남아공의 반대에 부딪쳤다. 결국, 2023년 BRICS 정상회의에서 가입이 확정된 국가는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UAE 6개국에 한정됐고, 이들 중 미국과 대립하는 국가는 이란 정도에 불과했다.

지역 차원에서는 작은 연대가 생겨나고 있고, 지역 나름의 고민도 부각되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퇴조하고 있지만,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과거 적대관계였던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들이 협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중국에 대해서도 ‘COVID-19’ 방역, 공동 경제협력 프로젝트의 추진, 외교관계 강화 등을 통해 협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탈(脫)미를 지향한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아세안은 ‘아세안중심성(ASEAN Centrality)’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독자적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만, 중국과 미국의 신뢰성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다. EU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미국과 결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의 잠재력을 포기하지도 않은 모습이다.

주요국 간 연대결성 대결은 정치·군사적 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경제 분야에서는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연대결성 경쟁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배타적 구획 및 협력권을 설정하는 경쟁이 발생하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이 연대는 우주분야까지 확대될 수 있다.

연대결성 대결은 많은 국가들에게 선택의 딜레마가 되고 있고, 이는 한국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국가와 연대를 확실하게 선택하기에는 적지 않은 비용 문제가 발생하고, 주요국 간 대타협에 따라 연대 대결의 환경이 변할 수 있다는 것도 변수이다. 연대 충돌이 해당 지역 안보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북러 간 군사적 밀착이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북한의 도발을 야기하여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북-중-러 3각 협력이 강화될 경우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그 대표적 경우이다.

 
▮ 2024전망: 더욱 심화되고 확대될 연대결성

 
2023년 11월 15일~17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23년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은 미중 간 경쟁이 지나친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한편, 기후변화, 마약퇴치, 인공지능 문제 등에서 협력해 나갈 뜻을 표명했다.8 이는 미중 연대결성 경쟁이 외형적으로는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능케 하지만, 실질적으로 양국이 전통안보와 첨단기술 및 공급망 문제에 있어 적지 않은 시각차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2024년 연대결성 경쟁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방어, 대만해협과 한반도에 대한 안보공약 유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비롯된 중동 분쟁의 확대 방지 등과 같이 만만치 않은 도전에 단독으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을 중심으로 한 연대를 더 활용하려 할 것이다.

우선, 미국은 기존의 소다자협력의 역할과 기능을 더 확대하려 할 것이다. 동북아에서 한-미-일의 3각 안보협력에 있어 북한 위협 대비에 더하여 대만해협 및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더 강조하게 될 것이고, 공급망 등 경제안보에 있어서도 3국 협력의 결속을 다져갈 것이다. 인도의 반대로 제약이 있겠지만 쿼드도 기존 신흥안보 분야 협력 중심에서 전통안보 협력으로 역할 확대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기존 연대의 회원국 확대를 위한 노력도 가속화될 것이다. 핀란드의 가입에 이어 스웨덴을 정식 NATO 회원국으로 확대하는 노력과 함께, AUKUS 등도 잠재 가입국들의 참여를 독려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더해 미국은 필요할 경우 특정 분야에서 연대를 창설할 것인데, 이는 지리적 범위에 국한되지 않는 기능적 연대에 중점을 둘 것이다. 여기에는 정보, 군수, 방산, 그리고 신흥 기술 분야, 우주 등 다양한 영역이 포함될 수 있다. 정보 분야는 이 신규 연대의 대표 영역으로, 미국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기존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전통 핵심 그룹과 쿼드, 한-미-일 3국 협력, 미-일-필리핀 협력 등 다양한 정보 공유 협력관계를 구축했는데, 이 협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 연대를 추구할 수 있다.

중국도 이에 대항해 국제질서에서 미국 리더십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자국 기술력과 경제력을 기반으로 개도국 및 권위주의 국가들과 협력체를 확대함으로써 지역별로 자국 중심 권위주의 연대를 구축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중국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아랍국가들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아랍국가와 정치적 연대를 더 강화하려 할 것이다. 중국은 특히, 글로벌 복합위기와 경제침체 속에서 경제발전에 대한 개도국들의 수요가 더 커진 상황에서 미국과 차별성을 부각하며,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 각 지역을 중심으로 개도국들과 연대를 맺으려 부심할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견제가 심화되면서 자체 혁신기술 발전을 모색해 온 중국은 2024년도에 디지털 격차 해소에 대한 개도국들의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자국의 혁신기술을 활용해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남태평양, 남미 지역에 자국의 혁신기술은 물론, 관련 정책과 표준을 전파하며 중국식 체제를 확산하고, 개도국과의 협력체 내에서 자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높이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도 이 연대결성 경쟁에 때로는 중국과 협력하며, 때로는 독자적으로 뛰어들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보다는 전후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준비기간을 가지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전쟁 장기화가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피로도를 증가시켜 서방 연대가 약해지기를 바라며, 다가오는 미국 대선과 EU 국가들의 각종 선거 결과가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유라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활동 영역을 보장하는 다극적 국제질서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연대결성 경쟁에 몰입할 것이고, 특히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협력 강화를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경우 연대를 활용한 군사적 거래에 더욱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종전 혹은 정전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지상전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대한 대규모 미사일 공격이나 공습을 감행할 수 있는데, 2024년 3월 예정된 선거를 앞두고 이를 시행해 국내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할 것이다. 이로 인해 단기적이지만 2024년 초반 북러 간 군사적 밀착 및 연대결성이 더 강화될 수 있다.

국내적으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의 지지율 하락에 직면하고 있는 일본은 외교적으로 큰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미국과 협력 및 미국 중심 연대를 바탕으로 기존 정책에 대한 내실을 다지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중에서도 외교안보 분야에서 주목되는 분야는 군사안보, 경제안보, 사이버안보 등으로 볼 수 있는데 특히, 군사안보에서 일본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확립해 나가기 위해 파트너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고, 자국의 방위력을 증강하는 목표를 실현하고자 할 것이다.

2024년 중동에서는 미국의 중동 개입 축소에 대비한 새로운 연대결성 양상이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직접 관여나 개입보다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 관계 개선을 통한 지역 정세 관리라는 ‘아브라함 협정’ 체제를 이어가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미국의 개입 축소는 사우디아라비아, UAE, 요르단 등 전통 우방국가들의 불만과 불안을 증폭시킬 것이고, 이들은 이스라엘, 튀르키예, 이집트, 이란 등과 기존의 갈등 관계를 넘어 새로운 연대 구축을 위한 치열한 탐색전에 나설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따른 군사적 긴장이 누그러지면 중동 데탕트를 향한 미국의 중재와 중동 주요국의 움직임은 다시 부상할 것인데, 중동 주요국들은 중국과 관계를 강화한다고 해서 미국과 관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도 이 지역 내 반미 연대의 중심을 자처하면서도 직접 반미 움직임에 나서는 국가들을 지원하는 것은 자제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동 지역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어느 국가들도 확실한 연대결성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고, 지역 국가들 간 복잡한 이합집산이 이어질 전망이다.

아세안은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 AOIP)’을 활용한 협력 기회를 찾는 데 더 매달릴 것이다. 모든 협력의 핵심에 AOIP에서 언급한 4대 협력분야, 즉 해양협력, 연계성, 지속가능개발목표, 경제 및 기타 개발을 내세우겠다는 아세안의 방침은 지속될 것이나, 문제는 아세안 내부 결집력이나 외부 협력 동기 면에서 충분한 동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아세안 입장에서 ‘글로벌 사우스’를 아세안의 이익을 위한 또 하나의 네트워크로 활용할 필요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아세안이 ‘글로벌 사우스’의 일부 혹은 협력자로 정체성을 강화하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한다면 이는 기존 강대국 사이에서 아세안이 펼치는 헤징(hedging) 전략과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EU 국가들의 고민도 계속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미국과 동맹관계는 상당 부분 회복됐으나, 미국 대통령 선거와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 등 미국 국내 정치 동향에 따른 불확실성이 있어 대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은 EU 국가들과 미국 간 관계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EU는 중국과 계속하여 경색 국면을 유지하고 있고, 중국의 위협이 러시아의 위협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 중국과 협력관계를 포기할 수 없는 동기이다. 이에 따라 EU 국가들은 그동안 ‘탈동조화(decoupling)’에서 ‘탈위험화(de-risking)’로 대중국 전략을 변환해왔고, 중국과 경색 관계도 일정 부분 관리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후에 러시아와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EU 내 단일한 원칙이 설정돼 있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2024년 EU 국가들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과 관계를 새로 설정해 가면서 ‘열린 전략적 자율성(open strategic autonomy)’을 추구할 것으로 판단된다. 즉 미국과 협력을 기본으로 하되, 미국 중심 연대에 무조건 협력하기보다 일정한 EU의 목소리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EU 역시 ‘글로벌 사우스’와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협력적 연대를 꾸준히 추구할 것이다. 또 EU 가입국 확대와 대내 결속 강화를 통해 EU 자체의 발언권을 강화해 나가는 데에도 더 신경을 쓸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각국의 연대결성 관련 전략 및 정책 전망을 중심으로 할 때, 2024년은 다음과 같은 현상들이 두드러질 것이다.

 
1. 세계의 축소판, 동북아의 연대 각축
 
동북아 지역은 2024년 연대결성 경쟁이 가장 뚜렷이 부각되는 지역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라는 변수가 있지만, 미국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마련된 3국 협력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려 할 것이고, 3국이 지닌 가치와 체제의 공통점을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미-일 3각 연대와 북-중-러 협력의 대결은 외형적으로 더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이 연대 간 대결을 가장 반기는 세력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미 2022년 제8기 6차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현 정세를 ‘신(新)냉전’으로 규정한 김정은으로서는 기존 북러 밀착관계에 중국을 끌어들임으로써 연대 간 충돌의 최대 수혜를 얻으려 할 것이고, 이를 통해 핵능력 고도화와 ‘핵보유국 지위 획득’, 그리고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 미북 협상 국면의 재개를 노릴 것이다.

그러나 외형적 대결 구도와 달리 그 실질적 결속 효과는 미지수인데, 이는 무엇보다 북-중-러 협력이 지니는 잠재적 한계점 때문이다. 북한이 미북 협상 대신 북러 밀착을 통해 또 하나의 후원자를 확보하려 했지만,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이 바라는 핵기술 이전은 여전히 부담되는 거래이고, 경제 면에서도 러시아가 충분한 대북 지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북러 간 군사적 거래는 2024년 초반은 가속화될 수도 있다. 다만, 2024년 3월로 예정된 대선에서 푸틴이 다시 집권할 경우, 2030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그가 북러관계에 집중할지도 불투명하고, 중국도 북-중-러 협력이 상징 차원을 넘어 실질적 군사협력관계로 발전하는 데 소극적일 가능성이 크다. 또 중국으로서는 한중 및 중일관계를 통해 한-미-일 3각 협력을 일정 부분 견제하려 할 것인데, 이 역시 북-중-러 협력의 일정 수준 이상의 진전에는 제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점에서 북한 핵개발에 대한 대응은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가장 뚜렷해지는 분야가 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개발을 직접 지원하지 않더라도 이를 저지하거나 북한의 정책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북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대북제재 격상 등과 관련해 한-미-일과 충돌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또 공급망 재편 등 경제안보에 있어서도 한-미-일과 북-중-러 대립 구도는 재현될 것이다.

 
2. 여전히 계속될 지역 분쟁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참가하는 연대결성 경쟁은 결국 주요국들 간 신뢰 약화로 연결되고, 이는 각종 지역분쟁에서 조정이나 타협 가능성을 더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중동 지역에서 정전이나 평화협상 분위기가 조성되더라도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을 것이고, 이로 인해 분쟁이 일시 종식된다고 해도 그 시점은 주요국들의 분쟁 개입 능력이 고갈되어 가는 때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모두 일시에 종료된다고 해도 완전한 해결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인데,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합병’ 지역 인정, 우크라이나의 NATO 및 EU 가입 여부, 우크라이나 내부 정치 상황 등에 따라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가자지구 통치를 둘러싸고 언제든 분쟁이 재현될 수 있다.

2024년 주목해야 할 곳은 대만과 남중국해 지역이다. 이미 2020년대에 들어 주요한 잠재 분쟁지역으로 꼽혀왔던 대만해협 긴장은 2024년 대만 총통선거를 둘러싸고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있고, 중국이 대만에 대한 직접 침공 가능성을 부인하기는 했지만,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이 침해당한다고 판단할 경우, 대만해협에서 고강도 긴장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24년 1월의 대만 총통선거를 전후하여 대만해협에서 2022년 8월 펠로시(Nancy Pelosi)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시 발생했던 수준의 긴장이 재현될 가능성은 있다. 대만해협 내 긴장은 한-미-일 안보협력 관점에서도 중요한 함축성을 지닌다. 2023년 8월 발표된 ‘캠프 데이비드 정신’은 대만해협에서 무력에 의한 일방적 현상변경을 반대하고 있다. 이 원칙을 한-미-일이 어느 정도까지 구현하는가에 따라 중국과 실제 군사 갈등 가능성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미-일 대 중국 및 연대세력과 직접 충돌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외교 갈등의 발생은 불가피할 것이다. 또 북한이 대만해협에서의 갈등을 이용해 도발을 할 경우, 한국과 미국 간 안보공약 우선순위에 대한 미묘한 이견도 발생할 수 있다.

 
3. ‘글로벌 사우스’대한 경쟁적 구애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2024년 중 ‘글로벌 사우스’는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아세안, EU의 경쟁적 연대결성 대상이 될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글로벌 사우스’를 자신들의 연대에 끌어들임으로써 (1) 자신들이 주도하는 연대의 활력을 강화하거나(미, 중, 러), (2) 주요국 간 연대에 있어 지분 혹은 발언권을 강화하거나(EU), 혹은 (3) 독자적 연대로서 자율성을 확보(아세안)하려 할 것이다. 이로 인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주요국들의 협력 노력은 더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3. 글로벌 사우스
그림3

출처: World Economic Forum.
 

그러나 ‘글로벌 사우스’는 일정한 국가군을 통칭하는 것일 뿐, ‘글로벌 사우스’가 하나의 집단으로 방향성을 지니거나 동일한 행동 정향을 택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앞에서 언급한 BRICS 회원국 확대에서 본 것과 같이, ‘글로벌 사우스’는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 잠재력에 있어 일부 공통점이 있을 뿐, 이들 국가들의 친소(親疏) 관계나 대외정책상 성향에 있어 모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사우스’는 2024년에도 주요국들 간 연대결성 경쟁에 있어 특정 연대에 힘을 실어주기보다는 일정 거리를 두는 행보를 지속할 것이다. 따라서, 주요국들의 연대 시도도 집단으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협력을 추구하기보다 ‘글로벌 사우스’ 내 존재감이 큰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중립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쿼드의 일원이기도 하고,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중국과의 국경분쟁에도 불구하고 극한 대립은 자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적 공략 대상으로 떠오를 것으로 판단된다.

 
4. 각 연대에서의 리더십 문제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등 주요국들은 모두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연대결성에 몰입할 것이지만, 각 연대 내 이들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은 2024년에도 증폭될 것이다. 우선, 미국은 포괄적 다자안보협력체에 대한 소극적 태도,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등에서 나타난 경제적 일방주의, 그리고 미국의 대외 안보공약 보장에 대한 문제 등으로 인한 지도력 부재 논란에 계속 휩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점령지역 합병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종결될 경우 미국은 그동안의 대규모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도력 논란에 다시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또 2024년으로 예정된 미국 대선 역시 미국 지도력에 대한 논쟁을 가열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미 안보 등 주요 사안에서 초당파주의가 실종됐다고 평가되고 있는 미국 현실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고, 그의 재집권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는 만큼 미국 대외정책이 일관성을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2023년 미국은 우방국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서도 약점을 드러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무기 지원 규모나 속도를 놓고 바이든 행정부와 시각차를 드러냈고,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작전을 연기하라는 미국의 요청을 무시하기도 했다. 이를 고려할 때, 리더십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미국이 주도하는 연대 내 결속을 좌우할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리더십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2023년 제기된 국내 경제성장 둔화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연대결성 시도에 변수로 떠오를 것이고, UN 안보리 회원국이면서도 북한 핵문제 등에 있어 오히려 UN의 권능을 약화하고 있다는 평판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또 일대일로 등 경제협력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협력국가들의 경제 위기는 중국과 경제협력이 가져올 해당 국가들의 경제 종속 논란을 증폭시킬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떤 안전장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도 중국 지도력의 관건이 될 것이다. 또 미국과 전략경쟁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의 문제 역시 중요 변수이다. 중국에 대한 EU 국가들의 정책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EU는 중국과 협력으로 인한 경제 이익에 미련을 가질 것이지만, 전략적으로 중국이 미국의 대척점에 서는 자세를 유지할 경우 EU의 협력 동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미국과 전략경쟁을 지속하면서도 갈등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역시 중국의 연대결성 효과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일부의 영토적 이익을 얻기는 했지만, EU 및 NATO 국가들에게는 위협세력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해졌고, 구소련 연방공화국이었던 근외국가(近外國家)들로부터의 안보 우려를 오히려 증폭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결 방향에 따라서는 설사 푸틴이 재집권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정치 구도에 있어서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다. 또 러시아 나름의 경제협력권을 구축하려는 구상 역시 러시아가 각종 경제제재 여파에서 얼마나 회복하는가에 따라 그 성공 여부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연대결성 경쟁에 나서는 주요국들이 모두 예외 없이 리더십 위기에 봉착함에 따라, 연대를 심화하고 확장하려는 주요국들의 의지와 연대 내에서 나름대로 정책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협력 대상국가들의 눈치보기는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연대에 속한 국가들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주요국들의 조치도 가시화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각종 연대에서 우방 및 동맹국들의 기여도에 따라 이들에 대한 협력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려 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안보공약 이행과 첨단 과학기술 협력 수준을 차별화하려 할 것이다. 중국도 경제 투자와 경제보복이라는 양날의 칼을 통해 핵심 연대 대상국가들을 영향권 내에 두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5. 두드러질 민주주의 위기
 
주요국들의 연대결성 경쟁이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가치 및 체제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연대 속에서 민주주의 위기가 초래될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 체제 간 결속과 단결을 외치고는 있지만, 자유, 인권 등의 가치를 강조하는 이 접근은 완전한 민주주의 실현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는 국가들로 하여금 미국과 연대를 주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글로벌 사우스’의 핵심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인도나 아세안 회원국들은 미중 전략경쟁이 체제 논쟁으로 번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듯하고, 이는 미국이 전통적으로 자신의 영향권으로 생각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할수록 확장성에는 한계를 지니게 되는 문제를 극복하려 할 경우, 협력 대상 국가들의 민주주의 훼손을 방치하거나 준(準)권위주의 국가들과 협력을 추진하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된다. 이스라엘이 그 대표적 경우이다. 네타냐후는 과격 우파 연정의 출범 후 사법부 권한을 약화시키려 시도하는 등 반민주적 정책들을 시행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변함없이 이스라엘 정부를 지지했다. 미중 전략경쟁이 가치경쟁으로 확대될 당시 미국이 지적한 것은 결국 국제질서를 훼손하려 하는 ‘수정주의’ 세력들의 행태에는 그들의 정치 체제가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미국이 왜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행정부를 지원해야 하는가를 정당화할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면서 일부에서는 반민주적 우방 및 동맹국들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고민은 2024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미국이 국내정치적으로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민주주의 위기를 가중시킬 수 있다. 이미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부각된 미국 내 진영논리와 극단주의는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재현되거나 오히려 더 격화될 것이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그 상흔은 남을 것이다.

 
6. 핵 우주 분야 군비경쟁의 유발
 
주요국 간 연대결성 경쟁은 결국 군비경쟁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전략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경쟁국에 대해 군사 우위에 설 뿐만 아니라 우방 및 동맹국들을 위한 군수창고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중 전략경쟁이 시작된 후 미국과 중국은 양과 질 모두에서 군비경쟁에 돌입했고, 러시아 역시 미국에 버금가는 군사과학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을 강화해왔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군비경쟁이 핵전력 분야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인 2019년 중거리 핵전력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INF)을 탈퇴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 핵전력상의 우위에 설 것임을 분명히 했고, 러시아는 2023년 11월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omprehensive Nuclear Test Ban Treaty, CTBT) 비준을 철회했는데,9 이는 이제 러시아가 미국과의 핵 군비경쟁에 나설 방침임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핵전력에 관해서 미국과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던 러시아의 핵 군비경쟁 돌입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핵무기의 사용을 위협한 것과 함께, 더 위험한 시대로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다. 중국 역시 핵 군비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미 미국은 중국이 현재 400개 수준인 핵탄두를 2027년까지는 700개, 그리고 2035년경에는 1,500개까지 증가시킬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10 현재 핵 군비통제와 관련해서는 과거 미소 간 ‘전략무기감축협정(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ies, START)’을 대체할 새로운 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2000년대 미국과 러시아 간에 논의되던 새로운 START 협정은 중국의 핵 군비경쟁 가세와 러시아의 CTBT 비준 거부로 인해 단기간 내에 성사될 가능성이 낮아졌으며, 2024년 중에는 핵 군비경쟁 추세가 군비통제의 목소리를 압도할 수 있다.

핵 군비경쟁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은 우주 분야 경쟁이다. 이미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앞다투어 우주영역을 군사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에 돌입했고, 2023년 인도 역시 ‘찬드라얀(Chandrayaan) 3호’의 달 착륙을 통해 우주개발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우주개발 부분은 여전히 연합이나 연대 영역이라기보다 각개약진 성격을 띠고 있으나, 향후 동맹국 및 우방국들을 중심으로 우주개발을 위한 연대가 출범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주요국들의 군사 경쟁이 우주영역으로 확대된 이상, 이에 대해서도 동맹 및 군사 연대 논리가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4년 당장 이 연대가 가시화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동맹국 간 우주 영역에서의 연대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인사나 정보 교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7. 신흥안보 분야 국제 협력의 어두운 전망
 
연대결성 경쟁은 그동안 주요국들을 이어주는 끈 역할을 했던 신흥안보 분야 협력에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고, 이 추세는 2024년에도 지속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2023년 11월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통해 기후변화 등에서 협력을 다짐했지만, 마약, 뉴테러리즘, 기후변화, 저탄소 녹색성장, 신종 감염병 등 신흥안보 문제도 공통 과제라기보다 상대방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현재 주요국들이 공감대를 강화할 동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새로운 경쟁적 연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는 분야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사이버 영역이다. 사이버는 그동안 전통적 지정학과 별도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민간 차원에서 적용될 수 있는 시각이다. 정부 차원에서 사이버 영역은 정보 관리와 유포 등에 있어 해당 체제의 특성(민주주의 또는 권위주의)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전통 지정학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사이버 보안 및 정보 공유 등에 있어 체제와 가치가 유사한 국가들 간 연대, 특히 사이버 공격에 취약한 개방형 민주주의 체제 간 사이버 협력은 더 강화될 것이다. 경제안보 분야에서 연대결성 경쟁 역시 2024년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양자 및 다자 차원의 연대결성 노력은 더 강화될 것이고, 이는 경제 블록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2024년에도 지속될 연대결성 경쟁은 여러 선택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뿐 아니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가 자신들의 정권 및 체제 유지에 유리할 수 있다는 계산하에 권위주의 연대 속에서 역할을 더 강화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 역시 권위주의 연대에 적극 참여하려는 북한을 이용해 자신들의 외교 및 군사적 운신폭을 넓히려 할 것이다. 문제는 민주주의 연대를 이끄는 미국이 국내적 분열과 선거 변수 때문에 만족할 만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요 대선 이슈가 될 경기 회복을 위해 미국은 연대 내의 우방 및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대 내에서의 안보 및 군사적 기여를 확대하는 데에는 소극적이면서 동맹국들에게는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비용도 전가하려는 미국의 행동은 NATO를 비롯한 주요 동맹국들로 하여금 연대 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유발할 것이고, 이는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 1. 이 공동성명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G7 Hiroshima Leaders’ Communiqué,” The White House, May 20, 2023.
  • 2. NATO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Vilnius Summit Communiqué,” NATO, July 11, 2023.
  • 3. 2022년의 경우, 조지아도 초청대상국이었다.
  • 4.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는 남반구나 북반구의 저위도에 속해 있는 국가들을 일컫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지리적 위치에 따라 이 지역에 속한 모든 국가들을 통칭하는 데 비해, 다른 쪽에서는 저위도 국가들 중에서도 미래 성장잠재력이 뛰어난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을 주로 거론하기도 한다.
  • 5. TPP는 2015년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브루나이, 싱가포르, 멕시코, 칠레 등이 체결한 다자경제협력체제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적 협력과 통합을 목표로 출범했지만, 이 협력체는 중국 견제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17년 TPP에서 탈퇴했다. 이후 여타 TPP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동일한 협력을 지향하는 CPTPP가 출범했고,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지만 미국은 여전히CPTPP 가입에 소극적이다.
  • 6. “중국 일대일로 정상포럼 하루 앞…각국 대표단 속속 베이징 도착,” 연합뉴스, 2023년 10월 16일자.; “Over 90 countries confirm participation in One Belt One Road summit: Chinese MFA,”TASS. September 7, 2023.
  • 7. BRICS는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화인민공화국(China),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을 통칭하는 단어로서, 기존의 BRICs에 2010년 남아공이 가입하면서 하나의 협의체로 굳어졌다.
  • 8. “Biden, China’s Xi will discuss communication, competition at APEC summit,” Reuters, November 18, 2023.
  • 9. CTBT는 지상 및 지하 그리고 우주 등 모든 영역에서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성격의 조약이다. 핵실험의 금지는 기존의 핵무기를 더 이상 업그레이드하거나 신형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1996년 CTBT 조약안이 준비될 당시에는 이에 참여했으나, 1999년 미 상원에서 이를 비준 거부함으로써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러시아는 2023년까지는 CTBT에 참가한 상태였다.
  • 10. “Pentagon sharply raises its estimate of Chinese nuclear warheads,” Reuters, November 4,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