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서문

 
2022년 한 해 우리는 그 이전과는 달라진 세계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COVID-19(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지난 2년간 계속되었던 국제적 ‘거리두기’는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 그리고 전 세계적인 방역 노력으로 인해 차츰 완화되었고, 지구촌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돌아온 ‘일상’은 과거와는 적지 않은 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소통과 교류가 다시 자유롭게 변해 갈 시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루어졌고, 미국과 중국은 국제적 공급망 재편, 첨단 기술 등을 놓고 경쟁의 영역을 확대하였으며 경쟁의 치열함 역시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국제정세는 이미 이전부터 나타나 왔던 현상들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것이기도 하지만, 2022년에 들어 새롭게 부각된 특성도 있습니다.

근래의 국제정세를 한마디로 특징 짓기는 매우 어려운데, 이는 2000년대 이후의 세계에서는 다양한 특성이 어우러져 표출되어 왔으며, 그 방향성을 예측하기도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시각에서 현대 국제관계를 바라보더라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은 주요 국가들의 자국 중심적 국제질서 재편 노력, 경쟁자들에 대한 배타성의 강화와 디커플링(decoupling, 脫동조화), 게임체인저(game changer) 확보를 위한 경쟁, 여타 국가들에 대한 동참의 은근한 강권(强勸), 그리고 중간국가들의 선택의 딜레마 등일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들을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설명하는 일은 현 상황의 평가와 미래 예측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한국과 같은 중견국(middle power)에 있어 국제질서의 변화 맥락(context)을 읽어내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일은 생존 및 번영과 직결된 과제이기도 합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그 방향과 속성을 쉽게 가늠하기가 힘든 국제질서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2015년부터 “아산국제정세전망” 보고서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를 설정해 왔습니다. 전략적 불신(2015), 뉴노멀(2016), 리셋?(2017), 非자유주의 국제질서(2018), 한국의 선택(2019), 新지정학(2020), 혼돈의 시대(2021), 재건(2022) 등이 지금까지 연구원이 다루었던 주제들입니다. 이 주제들은 서로 다른 키워드를 내세웠지만,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모습과 그 함축성, 그리고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각 국가와 지역의 선택을 입체적인 시각에서 살펴보려는 고심을 담고 있습니다.

2023년의 주제로 선정된 ‘복합경쟁(Complex Competition)’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 선택된 주제입니다. 미-중 간의 전략경쟁은 무역, 미래 성장동력의 확보, 국제질서 재편의 경쟁을 넘어 가치와 체제의 경쟁으로 격화되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민주주의 對 권위주의’ 세력 간의 대립으로 변하였습니다. 다른 질서와의 병존을 꾀하기보다는 국제질서 내에서 경쟁자를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려는 시도가 부각되기 시작하였고, 기존에 세계를 하나로 잇는 역할을 했던 경제 문제 역시 이제 안보의 영역에서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경쟁이 ‘투쟁’의 성격을 띠면서 중견국들은 이제 조정 역할보다는 선택을 강요받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으며, 군비경쟁 역시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더욱 치열성을 띠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 산발적으로 나타났던 이러한 현상들은 하나의 추세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이제 세계는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인 경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23년은 이러한 추세와 방향성이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주요국들 간의 군사적 충돌 위험성은 이제 가능성을 넘어 현실적 위험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며, 아직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만해협, 한반도 등이 새로운 분쟁 지역으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특히, 2022년 중 부쩍 증강된 핵위협을 시위하였던 북한은 이제 한국에 대한 핵협박을 일상화하려 할 것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긴장은 더욱 고조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2022년 중 가장 격렬한 격전의 현장이 유럽이었다면 2023년에는 인도-태평양 지역이 분쟁의 중심지로 떠오를 것이고, 이 과정에서 국제 비확산체제 역시 다시 한번 흔들릴 수 있습니다. 미국이 안보공약을 조정하기 시작한 중근동 지역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틈새 공략 역시 가속화될 것이고, 주요 국가들의 대립 속에 세계 경제의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한마디로 2022년보다 더 뜨거운 경쟁, 더 위험한 세계가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 속에서 각 국가들의 해법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특히, 우리가 생존과 번영을 위해 관심 깊게 살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이 보고서는 2023년의 국제정세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으며, 새로운 국제정세를 헤쳐 나갈 해법을 제시하기 위한 우리 연구원 차원의 노력을 담은 것입니다. 이 보고서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국내외적 논의를 위한 값진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끝으로, 보고서 발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연구원 내부 및 외부의 저자 여러분과 실무자들의 노고와 열성에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이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