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한국 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현재 경색된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1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 동안 미국에 한미정책협의단(4.3-4.11)을 파견한 것에 이어 두번째로 한일정책협의단(4.24-4.28)을 파견하는 등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岸田文雄) 일본 총리 또한 일본을 찾은 한일정책협의단과 만나 “한일관계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일”이라고 언급하며2 양국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그러나 강제징용문제, 수출규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후쿠시마오염수방출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사도(佐渡)광산 유네스코등재 문제 등 산적해 있는 갈등사안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가 크기 때문에 단기간 내 문제 해결과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론도 강경하다. 역사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 모두 강경한 인식을 보이고 있으며,3 한국 신정권 출범에도 일본 내의 기대는 높지 않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시행된 NHK 여론조사(3.11-3.13)에서 “한국 대통령 선출 후 향후 한일관계”에 대하여 일본 응답자의 59%가 ‘변하지 않을 것이다’, 25%가 ‘좋아질 것이다’, 4%가 ‘나빠질 것이다’고 응답하였고,4 산케이신문과 FNN 공동여론조사(3.19-3.20)에서도 “앞으로 한일관계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3.7%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하였다.5 그러나 현재의 악화된 한일관계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고,6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손실을 고려할 때,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

더욱이 지속되는 갈등으로 인해 경제, 안보 등 양국간 협력분야에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미중경쟁 심화 속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지속되는 북한 핵·미사일 도발, 그리고 감염병,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 초국경적 위협 등 한일이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차기 정부에게는 경색된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갈등사안의 해결책을 마련하며, 미래지향적 협력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되짚고, 현재의 한일관계 현황을 진단 및 분석한 후, 차기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1. 한일관계는 왜 중요한가?

 
한국과 일본은 왜 잘 지내야 하는가? 그리고 현재의 악화된 한일관계를 왜 개선해야 하는가? 보다 근본적으로 한일관계는 왜 중요한가? 한일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한일관계에 대한 이와 같은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중요성은 경제와 안보 등 보다 실리적 이유에 기반한다.

먼저 경제적인 이유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볼 때, 무역의존도 약 63%에 달하는 한국 경제에 일본은 주요 수출국 5위(5.2%)이자, 주요 수입국 3위(9.5%)에 해당한다. 즉,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있어 일본이 주요 무역대상국이라는 의미이다. 일본 경제에 있어서도 한국은 중요하다. 일본경제의 무역의존도는 약 28%로(2019년 기준) 한국보다는 낮지만, 한국은 일본 무역의 5.3%(총계 3위, 주요수출국 3위6.6%, 주요 수입국 4위 4.1%)에 해당하며,7 미국에 이어 일본의 2대 무역흑자국이다.8 또한, 한국은 일본의 강점산업인 정밀화학, 첨단산업, 반도체, 부품, 소재 등의 안정적인 시장이자, 일본 사회의 고령화로 향후 경상수지의 감소를 고려할 때, 무역흑자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치는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가깝고, 높은 여행수요를 갖는 한국은 일본의 관련 산업 및 지방 소도시 경제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9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중요한 교역대상국이자, 경제협력국이다. 양국 경제는 ‘고부가가치 부품과 완제품 생산’ 이라는 공생관계를 40여년간 유지하여 왔으며, 일본 부품업체들과의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한국은 첨단산업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며 한일양국은 함께 발전할 수 있었다. 과거의 한국경제는 시장규모는 크지만 기술 난이도가 높지 않은 범용제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일본경제는 시장규모는 작지만, 오랜 기술이 축적된 제품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여 왔다.10 앞으로의 한일경제는 탈탄소화, 제3국 투자, 차세대 산업 육성, 서플라이체인 안정화, 경제안보협력 측면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한일관계 악화에 경제계가 우려를 표하고,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 기반한다.11

안보적으로도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요한 협력 파트너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북인식과 북한문제 해결의 우선순위의 차이는 있지만,12 양국 모두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하며 역내 평화와 안정을 지켜야 할 과제를 갖고 있다. 한미일협력은 한국 및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통해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고, 동북아 지역에서의 세력균형을 이루려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지만, 한국과 일본에게도 중요하다. 일본에게 북한 핵위협은 발생가능한 실질적 위협이며, 통일된 한국의 반일정서 심화는 잠재적 위협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미일동맹을 기반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에 보조를 맞추면서 한미일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또한 북한문제 대응에 한미일공조를 기반으로 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실천가능한 모든 방안을 취해야 하고, 한미일 협력을 통한 억제력 강화도 그 중 하나이다. 더욱이 한반도 유사시 한국에 병력과 장비를 보낼 수 있는 유엔군사령부 후방기지가 일본에 있어 유사시 원활한 지원과 협조를 위한 한미일 공조관계가 필수적이다. 여기에 부상하는 중국의 위협에 대한 대응, 그리고 감염병, 환경, 재난 등 신흥안보에 대응을 위한 한일협력 체제 구축은 불가피하다.

마지막으로, 가치적 측면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지향하는 바가 같은 협력 파트너이다. 한일 양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국가 존립의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수호하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국가들(like-minded countries)과의 연대는 필수적이다. 더욱이 미중갈등의 고조,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더욱 엄중해지는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국익에 기반한 전략적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가운데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Free and Open Indo-Pacific)’과 ‘쿼드(QUAD)’ 등 국가간 연합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일본의 AUKUS(Australia, United Kingdom, United State의 3자 안보파트너십) 참가가 거론되는 등 안보환경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이 그동안 유지해온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이 이제 한계에 도달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한국은 새로운 안보환경 속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두며, 주변국들과의 협력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안보와 경제, 가치의 이익을 공유하는 일본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지나친 미국·일본 편중이 한미일 vs 북중러 신냉전 구도를 확대시킬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하나, 협력이익을 공유하는 한일관계를 재설정하고, 국익을 실현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다.

 

2. 현재의 한일관계: 진단과 과제

 
한일관계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지난 50여년간 많은 갈등과 대립을 겪어왔지만, 지금처럼 정치와 경제, 경제와 안보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사안이 복합적으로 연계되고, 양국 감정이 악화되었던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양국의 입장이 대립하는 강제징용문제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양국 경제와 안보의 불안정성을 지속시키고 있는 수출규제문제와 GSOMIA,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후쿠시마오염수 방류 문제 등 갈등현안이 산적해 있고, 무엇보다 양국의 깊은 반일감정과 혐한정서, 그리고 양국 정부의 강경대응을 지지하는 여론 등 정부의 의지와 의욕만으로는 넘어서기 어려운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여전히 많다.

문제는 이처럼 양국관계가 악화되어 가는 동안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였고, 관계개선을 위한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일관계는 국내정치적으로 악용되었고, 국민들의 반일감정과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였다. 한국 정부의 역사와 역사외(歷史外) 문제를 분리하겠다는 투트랙(two-track) 기조는 지켜지지 않았고, 양국 정부가 공식 인정하였으나, 사실상 형해화된 ‘2015 한일위안부합의’로 일본군‘위안부’문제는 해결되지도, 해결되지도 않은 모호한 상태로 남아 피해자들의 고통만 가중되었다. 또한, 2018년 한일관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온 강제징용문제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당초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며, 민사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면서도, 일본과의 협의를 시도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보다 큰 문제는 대법원 판결 이후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제 해결의 대표성을 갖는 기구조차 설립되지 않았다는13 것이다. 일본 정부 또한 ‘한국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고압적인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갈등의 원인과 본질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고, 일본내 다른 의견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한일간 이해의 폭은 좁아지고, 갈등의 골은 점차 깊어졌다.

 
■ 11년째 중단된 한일정상회의
 
2022년 4월 현재, 다자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회의를 제외하고, 양국 정상간 상호방문에 의해 이루어진 한일정상회의는 11년전인 2011년 교토에서 개최된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회담이 마지막이었다.

 

[그림1] 한일 정상회담 (박정희정부-문재인정부)
그림1

출처: 외교부. 「외교백서」, 「월간외교일지」, 신문자료 등 참조하여 필자 작성

 

한일간의 소통을 강조하며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에 의해 처음으로 합의된 ‘셔틀외교’는14 그 동안 역사갈등이 부각될 때마다 재개와 중단을 반복해왔다. 이에 대해 수많은 문제제기와 셔틀외교 복원에 대한 제언이 있었고,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또한 G20 정상회의 계기 개최된 아베 총리와의 한일정상회의에서 한일정상간 셔틀외교 복원에 합의하였으나,15 결국 본격화되지 않았다.

이처럼 지난 11년간 양자간 상호방문에 의한 정상회의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은 경색된 한일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정상간 양적 교류의 증가가 반드시 긍정적인 이유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며, 이로 인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만남의 횟수가 곧 두터운 신뢰와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협력사안과 해결해야 할 갈등 사안이 산적해 있는 이웃국가와의 정상간 정식교류가 11년째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또한, 진지한 만남없이 진솔한 대화는 이루어지기 어렵고, 지속적인 소통없이 신뢰를 쌓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정상간 소통의 부재가 가져올 폐단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국내 여론과 정치상황에 민감하고, 사실상 청와대-관저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한일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정상간 신뢰와 소통에 회동조차 없었다는 것은 진지하게 반성하고, 우선 개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 갈등현안: 진단 및 과제
 
1) 강제징용문제
 
강제징용문제는 현재 한일갈등의 핵심사안이다. 다양한 갈등 사안들 가운데서도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지만, 동시에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강제징용 판결에 의한 현금화 조치가 이루어질 경우, 일본의 강력한 보복조치와 이에 대한 한국의 반발이 이어지면, 한일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갈등의 시작은 지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민주주의의 3권 분립 원칙에 따라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나, 일본 정부는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강제징용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이다. 16 이후 한국 정부가 일본측에 다양한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17 일본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한국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강제징용문제가 한일갈등의 뇌관으로 등장하며, 지난 3년여간 정치권,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었다. 아래가 그동안 제시된 주요 방안들이다.
 

●화해(안): 강제징용피해자(원고)와 일본기업(피고)의 화해

●한국기업+일본기업(한일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 조성 및 피해자 보상,

●한국기업+일본기업(소송판결자 보상)+한국정부(그 외 피해자 보상)

●일본기업(소송판결자 보상)+한국정부(재단설립을 통해 그 외 피해자 보상)

●한국정부+한국기업(정부 산하 재단 설립 및 기업 출연)+일본기업(자발적 참여)

●한국기업+일본기업+한국정부+일본정부

●한국기업+일본기업+한국정부+양국 국민의 자발적 성금

●대위변제(안): 한국정부 先배상, 後구상권 청구

●기금설치(안): 국회특별입법에 의한 설치

●기금/재단 설립(안): 민간차원 설립

●사법적 해결: 중재(안),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안) 등

 
그러나 갈등의 근본 원인이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봉합된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인식 문제에 있고,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일본이 이를 따를 가능성은 없다. 한국 또한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고,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곧 한국대법원 판결에 대한 한국과 일본 정부의 주장이 양립할 수 없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이 더욱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한계를 감안하며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일관계 전반이 역사문제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다음의 사항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피해자 구제’를 위한 ‘실현가능성’있는 현실적인 방안 마련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이상적이지만, 생각이 다른 다양한 집단을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를 갖는다. 그렇다면 판결이 난 피해자들을 우선 대상으로 하여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실현가능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이상적 구호 아래 피해자들은 재판에서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방치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지난한 과정에서 ‘先 피해자구제, 後 정부해결’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피해배상금을 한국 정부가 먼저 지급하고 일본측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대위변제, 기금설립 등을 폭넓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본기업의 직접 배상뿐만 아니라, 교육, 장학, 기림 사업 등 간접 배상 또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둘째,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 과정의 ‘투명성’과 ‘개방성’이 필요하다. ‘2015 위안부합의’가 비판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고, 밀실합의 속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5 위안부합의’는 국내에서 상당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처럼 사안의 민감성을 이유로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정부 차원의 밀실협상과 이에 따른 “갑작스러운 결과 발표”는 ‘2015 위안부합의’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양측의 공식적인 대화채널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문제해결을 위한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민관협력’을 통한 사회적 논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강제징용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재판 당사자의 문제이지만, 현재 한일 갈등의 주요사안으로 한일관계 전반을 압도할 만큼 파급력이 큰 국가적 사안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필수적이며, 보다 원만한 문제 해결에 도달하기 위해 국내적 논의의 활성화 및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 언론, 정부관계자 등이 함께 논의하는 사회적 논의의 장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2) 수출규제문제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는 국내의 반일감정을 크게 자극하였고, 이는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관광 보이콧 등 반일시위로 이어졌다. 수출규제가 시행되고 2년여가 지난 현재 수출규제로 인한 실질적인 피해는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었으나,18 한일경제관계의 불안정성은 여전히 남아있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현재 한국은 수출규제문제에 대해 일본이 제기한 의혹을 모두 해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수출규제조치 철회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WTO 분쟁해결 절차를 재개한 상태이다. 이와 같은 조치는 한국이 취할 수 있는 합당한 대응 조치이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수출규제문제가 사실상 강제징용문제에 대한 보복적 성격의 조치였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유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WTO를 통한 분쟁해결은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WTO 절차의 실효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19

따라서 이 문제는 실무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에서 동시접근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하였듯, 수출규제문제는 강제징용문제와 연관되어 있어 강제징용문제 해결방안도 고려되어야 하나, 양 사안의 연관성에 대해 일본 정부에서 (적어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는 만큼 문제 해결이 불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실무급에서는 지속적으로 일본이 제기하는 모든 의혹들을 해소하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고위급 차원에서 협상과 대화를 통해 수출규제 이전의 상태로 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에 더하여,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양측의 경제사회적 손실 및 향후 발생가능한 유사 피해 등에 대해서도 꾸준한 조사와 연구 및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3) 한일군사정보호협정(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은 현재 ‘조건부연장’ 상태에 놓여있다. 지난 2019년 한국 정부의 파기 선언과 종료 유예까지의 상황을 돌이켜 볼 때, 한일간의 GSOMIA가 파기될 가능성은 낮다고 여겨지나, 한국 정부가 “언제든 종료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만큼 언제든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다.

2019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 발표(7.1)에 따라 한국 정부는GSOMIA 종료를 결정하였으나(8.22), 일본의 반발과 미국의 우려 및 재고 압박으로 GSOMIA 협정 종료 통보 효력 정지를(11.22) 결정하였다. 2016년 11월 23일에 체결된 GOMIA는 매년 갱신되며, 협정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종료 3개월전인 8월 23일까지 이를 상대국에 통보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이제 “GSOMIA 협정을 1년마다 연장하는 개념은 현재 적용되지 않는다”며20 원하면 언제든 종료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2019년 이후 2022년 현재까지 별도의 조치없이 유지되고 있다. 2019년 한국정부의 GSOMIA 파기 선언 후 미국과 일본의 강력한 반발이 일었던 상황을 돌이켜 볼 때, 당시와 같은 GSOMIA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은 낮지만, GSOMIA는 ‘강제징용(역사)-수출규제(경제)-GSOMIA(안보)’로 연계되는 현재 한일갈등의 주요 사안이고, 안보적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만큼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렇다면 한일GSOMIA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한국은 이미 일본을 포함한 35개국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고 있으며, 한일GSOMIA를 통해 한일은 상호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은 정찰기 등으로 수집한 군사분계선 일대의 감청, 영상정보와 탈북자 등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일본은 정보수집위성, 지상 레이더, 이지스함, 조기경보기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공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에서 한일 GSOMIA에 부정적인 이유는 뿌리깊은 반일감정, 일본과의 안보협력에 대한 거부감, 군사분야에서 일본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GSOMIA 체결 이후 일본이 제공하는 정보의 효용성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고, GSOMIA 종료가 안보협력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21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 Trilateral Information Sharing Arrangement)를 통해 GSOMIA가 대체 가능하다는 점22 등이 그 이유로 제시된다.

그러나 GSOMIA는 북한위협에 대응하는 방식 중 하나이자, 다양한 정보자산을 활용하여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필요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을 갖는다. 즉, 한일 양국의 정보능력을 상호 보완하여 정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욱이 GSOMIA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제시되는 TISA의 경우, 북한 핵·미사일 관련 정보로만 한정되어 있고, GSOMIA는 이보다 넓은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23 무엇보다도 한일간의 직접 공유가 아닌 미국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정보의 신속성과 효용성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24 나아가 GSOMIA는 국제법적 구속력을 지닌 국가간의 약속이지만, TISA는 국제법적 효력이 없다. 더욱이 TSIA가 정보공유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GSOMIA는 정보의 보안조치에 무게를 둔 것으로, GSOMIA 없이는 고급정보가 공유될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25 뿐만 아니라, GSOMIA에는 동북아 국제질서 유지를 위한 한미일 공조를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한일GSOMIA 유지 여부는 반일감정이나, TSIA 등 대체제 여부를 놓고 판단할 사항이 아닌 한국의 안보상의 이익을 기반으로 판단해야 하다. 이에 따라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다’는 현재의 불안정한 상태를 벗어나 한일/한미일간의 안정적인 협력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4) 후쿠시마오염수 문제
 
후쿠시마오염수 문제는 일본 정부가 2023년부터 약 30년간 해양방류를 결정한만큼 향후 2-3년 이내 발생가능한 폭발적 갈등사안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동 문제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어 있고, 국내외적 반발이 큰데다, 당장의 피해 규모와 정도를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응이 쉽지 않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후쿠시마오염수 문제는 한일 양자 갈등 사안은 아니다. 오히려 오염수 방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모든 국가들의 문제이고,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을 포함한 일본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해양 오염, 해양 생태계 보존 등과 관련된 해양, 환경 문제이자, 원자력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원자력 안전 등 초국경적, 비전통안보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지난 해 4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오염수 방류 결정 이후 국내에서 시민단체, 환경단체 등을 중심으로 격렬한 반대 시위와 지방정부 및 의회의 반대 성명 등이 있었던 것을26 통해 볼 때, 실제 방류가 일어날 경우, 반일감정이 고조되어 양자갈등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이것이 곧 한일관계의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비록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이 과학적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고, 한국인 전문가가 포함된 IAEA 조사단이 일본을 방문하여27 안전성 검증을 하는 등의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지만, 이 문제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 정부의 미흡한 대응, 자료의 불확실성에 따른 신뢰 저하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한국 정부 또한, 이미 이 문제에 대해 관계부처 TF 설치 및 운영, 방사능 감시체계 구축, 국제공조 등 다양한 대응을 하고 있지만,28 동 문제가 양자 갈등 사안으로 여겨질 경우, 한국의 뿌리깊은 반일감정, 생명과 건강, 안전에 대한 국민적 우려와 불안감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에게 있어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기억과 연관되는 사안이므로 자칫 한일 양자간 감정적 갈등이 될 소지가 높다. 따라서 이 문제가 새로운 한일 갈등 사안이 되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후쿠시마오염수 문제는 한일 양자 갈등 사안이 아닌 인간의 생명, 안전, 건강과 연관되는 비전통안보·인간안보의 문제로 접근하여 초국경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인접국 및 관련국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연구 및 공동보도 등을 통해 과학적·전문적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신뢰감을 구축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일본 정부가 주변국의 우려와 불안을 불식시키고, 성실한 정보 공개와 안전한 핵폐기물 관리 및 처리를 위한 약속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요구와 이에 대한 일본의 부응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5) 일본군‘위안부’문제
 
일본군‘위안부’문제는 한일 양국 정부가 2015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 내용」29을 ‘양국간의 공식 합의’로 인정하고 있는 만큼 당장의 정부간 갈등이나, 외교분쟁 사안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지난 2021년 1월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위안부’ 소송에서의 원고가 승소하였고, 4월 소송은 패소 후 항소함에 따라 양국의 대립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1월 소송은 당시 일본 정부가 ‘주권면제’를 이유로 항소하지 않아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는데, 이에 따라 한국내 일본 정부 자산의 현금화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한일관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대립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 다만, 실제로 현금화 조치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일본정부가 주권면제를 이유로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으며,30 이에 따른 강제집행 절차는 국내 매각 가능한 일본 정부 자산을 찾는 것부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현금화 조치가 일어날 경우, 일본의 보복조치에 대한 대응과 국내외 반발여론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우리 정부가 ‘2015 위안부합의’가 ‘위안부’문제의 진정한 해결이라고 볼 수 없으며, 피해자들의 명예 및 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을 약속한 만큼32 이를 위한 노력 또한 필요하다. 일본군‘위안부’문제는 ‘2015 위안부합의’의 불완전성을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해법이 제시되거나, 의미 있는 노력과 성과를 이루지 못해 사실상 방치되었고, ‘화해·치유 재단’ 해산 후 약53억원과 여성가족부에 예치된 103억원의 사용처 및 사용방법 등도 결정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 ‘위안부’문제 관련 민관회의가 개최된 바 있으나(국무조정실 주재, 2021.6.4., 외교부 주재, 1차: 2021.7.7., 2차: 2021.7.28.),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지는 않다. 국내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고문방지협약(CAT, Committee against Torture) 국가간 절차 회부 촉구도33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양국이 ‘2015 위안부합의’를 공식합의로는 인정하고 있는 만큼 정부간 외교분쟁 사안이 될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다. 따라서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는, ‘2015 위안부합의’를 이행하면서 ‘위안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와 존엄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현금화 문제 등 향후 발생가능한 갈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에게는 ’위안부’문제가 ‘2015 위안부합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고노담화’ 및 ‘무라야마담화’ 정신을 기리고, 정부 차원의 명확한 반성과 사죄 표명,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현재 간헐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위안부’문제 관련 민관회의를 발전시켜 사회적 대화기구로 만들고, 정례적인 논의를 지속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현재 참석자, 주요 논의사항조차 공개되지 않는 비공개회의 형태를 넘어서 회의록 공개, 공개회의 개최 등을 통해 보다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 대한 역사교육 노력 또한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한일 역사교과서에 올바른 역사를 기술하고, 교육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학 등과 연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한일 학생들간 토론의 장을 만들고, 역사문제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과 참여, 갈등 해결을 위한 방향을 고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6)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문제
 
지난 2월,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추천하면서 한일관계에 새로운 갈등사안으로 부상하였다. 다만,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문제는 강제징용문제나 ‘위안부’문제와 같이 피해당사자에게 사법적 판결이 내려지는 사안이 아니고, 한국 혹은 일본이 아닌 국제사회에서 외교전을 펼친다는 점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갈등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고수하는 행태는 한일관계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한일간의 역사문제를 ‘역사전쟁’으로 치부하는 아베 전(前) 총리 등 자민당 강경파와 한일역사문제에 우호적이지 않은 일본국내여론을 고려할 때, 심각한 갈등사안이 될 수 있다.

일본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사도광산을 추천하며 16-19세기로 기간을 한정하였고,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34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절차에 따르면, 사도광산의 경우, 먼저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는 서류 심사와 현지 실사를 실시한 후, 2023년 5월 평가결과를 유네스코에 권고하는 과정을 거쳐, 6월~7월경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ICOMOS의 평가결과에 따라 보류나, 반려, 등재불가를 받더라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등재될 수 있다. 통상 21개 위원국의 만장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이나, 2/3 찬성으로도 가결될 수 있다.35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사도광산 등재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문제가 되고 있어 일본은 위원국 2/3의 찬성을 얻는 전략을 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한국은 이미 가동된 민관합동TF를 보다 활성화시키는 것은 물론, 언론 및 학계 등과 함께 국제사회에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노역을 인정한 다양한 일본의 역사사료를 발굴하고, 이를 정부 및 민간 차원에서 국내외로 전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군함도에 이어 사도광산까지 일본의 선택적 역사를 기반으로 한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위한 유사한 사례가 지속 발생하고 있는 만큼 중장기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3. 앞으로의 한일관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2.0시대’ 실현을 위한 정책제언

 
윤석열 당선인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21세기의 새로운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재확인을 시작으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시대’를 열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을 공언하였다. 여기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 시대’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되살리고, 현재적 의미에서 계승·발전하여 새로운 한일관계를 열겠다는 의지이자 차기 정권의 대일외교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한일관계의 이정표를 제시해 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되새기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열겠다는 포부와 의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20여년이 지난 현재는 1998년 당시와 비교하여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가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총리의 의지, 양국 대외정책에서 상대국의 높은 위상, 북한 핵도발 및 아시아 금융위기 등 외부환경으로 인한 양국협력의 필요성 증가 등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2022년 현재는 양 정상이 한일관계 개선의 의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양국의 정치환경과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 지난해 10월, 보수온건적 성향의 기시다 신정부가 들어섰지만, 자민당 내에서도 강경우파인 아베 전 총리가 자민당 내 가장 큰 파벌의 수장으로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자민당 외교부회 등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한국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36 한국 또한 신정부가 발족하더라도, 171석(2022.4.28기준)의 거대 야당이 포진하는 여소야대 상황이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전국동시지방선거 (6.1), 일본에서는 여름 참의원선거 등 국내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민감한 한일관계 이슈가 우선 순위에 놓이기는 어렵다. 일부 정치인들이 선거를 틈타 반일/혐한 여론을 자극하여 국내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양국 정부 모두 상대국에 대한 우호적인 행보에는 오히려 소극적일 수 있다. 또한,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일본의 입장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이다. 일본은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강제징용문제 등 갈등 사안은 한국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일본의 협조와 호응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한편, 2022년 현재의 한일관계를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과 여건이 다르다는 것 또한 큰 도전과제이다. 1990년대와 달리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미중갈등 심화 속 국제사회가 양분되는 신냉전적 구도가 형성되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가 위협받는 상황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을 동맹으로 하는 한국과 일본은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유사한 고민에 놓여있으면서도 상이한 대중국 인식과 대북정책 등으로 인해 동일한 행보를 보이기 어렵다. 일본이 미일동맹을 외교의 기축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면, 한국은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협조, 중국과의 경제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일본과 같은 행동을 취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한편, 한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발전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과 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기존의 수직관계였던 한일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화하며,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도가 한일협력이 아닌, 일본의 한국견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일관계가 부진한 가운데, 일본이 미일동맹을 축으로 역내 소다자 외교를 활성화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QUAD 등에 한국 참여에 대해서는 적극 호응하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그 예이다.

이처럼 변화한 국제정세와 양국의 지위, 그리고 역사-경제-안보문제 등 사안의 복합연계, 강제징용문제 판결에 따른 식민지배 합법성 여부의 정면충돌, 한국의 반일정서와 일본의 혐한정서 심화, 역사문제에 강경한 양측의 여론 등 관계개선을 위한 국내외적 여건이 현저히 달라졌다는 점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시대’ 실현이 직면한 현실이며, 이를 돌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한일관계 개선은 ‘밀어붙이기’식 접근이 아닌, 기초부터 쌓아가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3월 28일, 윤석열 차기 대통령은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일본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양국의 정치지도자와 관료, 국민들이 강력한 힘으로 한일 양국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밀어붙이면 다른 문제들이 대화를 통해서 잘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고37 말했다.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당선인의 의지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한일관계 개선은 단기적 일괄해결의 ‘밀어붙이기’식의 접근보다는 ‘단계적 접근’을 위한 기초를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한일간의 오랜 갈등 사안인 역사문제를 단기간내 완벽한 해결, 완전한 청산을 이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간 역대 모든 정부에서도 한일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양국 갈등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역사문제 해결과 국가간 화해는 오랜 시간 축적된 노력의 산물이지, 한 정권에서 일괄타결하여 단기간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과거사문제의 완전한 해결 보다는 역사문제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고 완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단계적으로 신정부의 외교철학과 대외정책 비전, 그리고 그 안에서 일본의 전략적 위치 설정과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노력은 한국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을 대상으로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발표되기 앞서 김대중 대통령이 아사히신문, 세카이 등 일본 언론사들과 인터뷰 등을 통해 대외관계 전반에 대한 입장과 대일외교에 대한 소신을 밝힌 사례38 등을 참고해 볼만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일관계의 청사진 속 신정부의 대일외교의 비전을 밝히고, 국내외적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역사문제 해결은 ‘포괄적 타결’이 아닌, ‘포괄적 협력’의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역사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현재의 한일갈등의 주요 사안인 ‘강제징용문제’, ‘수출규제문제’, ‘GSOMIA’ 등을 일괄 해결하는 이른바 ‘그랜드바겐’ 등 포괄적 타결 또한 숙고되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역사와 역사외 문제를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의 한계가 드러나고, 현재의 한일관계가 역사, 경제,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성격의 갈등 현안들이 일괄타결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강제징용문제 등 역사문제를 ‘주고받기식’ 거래의 일환으로 치부하는 듯한 접근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39 윤석열 당선인이 후보 시절 한일관계의 해법으로 “모든 문제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랜드바겐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언급한 이후, 우려의 목소리가40 높아졌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실용과 실익 속에서 원칙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인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현재의 갈등사안에 압도되어, 갈등의 해결을 한일관계 개선의 입구에 놓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현재 한국과 일본이 함께 협력해야 할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 협력’을 통해 역사문제의 점진적 해결을 도모하고, 관계 개선을 이루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셋째, 한일정상간 셔틀외교 복원과 고위급 회담의 정례화를 통한 신뢰회복을 이뤄야 한다.
 
한일 양국은 2011년 이후 중단된 한일정상간 셔틀외교를 복원해야 한다. 그 동안 한일 정부간 회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한일 갈등 속에서도 국장급 이하의 실무회의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던 것은 정상급 차원의 방향이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상간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스가 정권에 이어 기시다 정권에서도 지난 2021년 1월 부임 이후부터 현재까지 주일대한민국 대사와 일본 외무대신과의 만남이 성사되고 있지 않은 점도 이를 방증한다. 이처럼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정상간 소통부재는 다시 관계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차기 정부에서는 한일 고위급 회의의 정례화를 통해 정상간 신뢰회복,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방향 설정, 실무급 차원의 논의 활성화 등 선순환을 이뤄야 할 것이다.
 
넷째,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TF(가칭)’ 설치 등 민관협력이 병행 추진되어야 한다.
 
한일관계의 정치화 현상을 타파하고, 조직과 구조를 통해 기능하도록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와 동시에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정부관계자 및 정책실무자, 일본전문가, 시민단체, 언론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민관정책협의회 혹은 ‘(가칭)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TF’ 설치를 통해 국내적 이해를 도모하고, 집단지성의 힘을 통한 문제해결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장기프로젝트로서 지난 20여년간 달라진 국제정세와 한일관계를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앞으로의 한일관계 20, 30년을 준비할 수 있는 ‘(가칭) 2050 한일협력” 등 한일공동연구 시행도 고려해 볼만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피니언리더 및 전문가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한일 상호이해 증진과 국내외적 발신을 통한 우호관계 형성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정치, 외교, 역사 분야에서의 갈등사안 뿐만 아니라, 부동산, 경제, 저출산고령화, 복지, 교육, 젠더, 노동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과제를 공유하고 있다. 최근 부상하는 경제안보 또한 한일관계에서 중요한 논의 사항 중 하나이다. 따라서 과거 시행된 바 있는 ‘한일공동연구포럼(1995-2008)’, ‘한일신시대공동연구프로젝트(1기: 2009-2010, 2기: 2011-2013)’ 등에서 교훈을 얻어 보다 발전된 형태의 장기프로젝트를 시행하여 양국간 차세대 정책커뮤니티를 형성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정상간의 신뢰와 소통의 회복, 그리고 민관협력을 통한 실천적 논의는 한일관계 복원의 긍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체되어 있던 한일관계에 차기 정부의 한일정책협의단 파견(4.24-4.28)으로 모처럼의 훈풍이 불고 있다. 여전히 산적한 어려움은 많지만, 2022년은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20주년,41 일본내 한류 열풍을 몰고왔던 <겨울연가> 방영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며, 차기 정부의 임기 중반을 넘어가는 2025년은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로 한일관계 진전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시점들이 예정되어 있다. 이와 같은 모멘텀을 잘 살려 한일관계 새로운 전환을 이끌고, 한층 발전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시대’를 열길 기대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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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