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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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3월 11일, ‘코로나19(COVID-19’를 ‘판데믹’(pandemic)으로 공식 선언하였다.1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발생이 보고된 2019년 12월말 이후 100일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였다. 2020년 3월 20일의 WHO 상황보고서(situation report)를 기준으로 173개국(각국에 귀속된 ‘령’ 지역 포함) 234,073명의 확진자가 확인되었으며, 지리적으로도 거의 전 세계를 포괄하고 있다. 전파속도나 심각도에서 기존의 에볼라나 메르스, SARS, H1N1(신종인플루엔자) 등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초의 ‘스페인 독감’(Spanish flu) 이후 최대의 ‘판데믹’으로 불릴 만하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세계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세계화에 따라 국가 간 인력 이동이 양과 속도 모두에서 증대된 것이 역설적으로 빠른 감염병 확산을 촉진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세계화 관점, 그리고 ‘신안보’ 개념을 고려할 때, 판데믹은 국가 간 협력의 촉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감염병 자체가 특정 국가의 악의나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며, 모든 국가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공통의 위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코로나19’와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는 국제관계의 현상은 이와는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국가 간 최초 감염원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 상호 이동의 통제, 정확한 정보의 공유에 대한 소극성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전례 없이 빠른 확산성과 만만치 않은 치사율로 인한 공포에서 오는 일시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그 이전으로 복귀가 가능할까? 이제는 ‘코로나19’ 그 자체의 위험성에 못지않게 이 감염병이 불러올 새로운 세계와 국제질서에 주목할 때이다.

 

‘新안보’ 개념의 등장

 

1990년대 초반, 탈냉전시대가 개막되면서 국제질서와 안보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동ㆍ서 두 블록으로 나뉘어졌던 세계가 하나로 재편되면서 국가 간 상호의존은 급격히 증대되었고, 안보분야에서도 종래의 군사적 경쟁ㆍ갈등 이상의 이슈들이 관심을 얻기 시작하였다.2 군사충돌ㆍ국지전ㆍ전면전 중심의 전통적 안보과제에 더하여 테러ㆍ마약ㆍ불법이민ㆍ대량난민ㆍ국제범죄ㆍ해적 등이 국가의 안전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요인이라는 인식이 늘어난 것이다. 또한, 환경오염ㆍ기후변화ㆍ자원제약(수자원 등)ㆍ감염병 확산과 같은 全지구적 문제 역시 부각되었다. ‘위협’이라고 부르기는 한계가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점점 늘어났다. 도시화ㆍ노령화ㆍ다문화융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안보를 바라보는 시각이 반드시 국가나 정부 위주일 필요는 없다는 인식 역시 강화되었다. ‘복지국가’ (welfare state) 개념의 등장과 국가와 정부의 역할 확대가 맞물려 시장 불안과 재해ㆍ재난 등 국방의 영역을 넘어선 사회불안까지 국가가 치유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높아졌다. 물리적 안전 이외에 국민의 불안감까지를 경감ㆍ해소하는 ‘안심’ 기능 역시 강조되었다. 전통적인 ‘국가안보’에 ‘사회안보’(societal security)의 개념이 접합된 것이다. 1994년 ‘국제연합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lan, UNDP)의 이니셔티브를 전후하여 ‘인간안보’(human security)의 필요성 역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즉, 인간 개개인의 소외나 빈부격차, 그리고 각종 차별의 철폐까지를 국가안보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3

이러한 다양한 이슈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안보개념 역시 더욱 확장되고 초점 역시 변화되어야 했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非전통안보’(non-traditional security), ‘포괄안보’(comprehensive security) 등의 용어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新안보’라고 불리는 개념 역시 새로운 안보개념에 기술혁신, 사이버 안전 등의 분야가 추가된 것으로 전체적인 취지는 동일하다.4 새로운 안보개념이 등장하면서 많은 이들의 믿음은 국가 간 경쟁보다는 협력의 동기가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 속성상 포괄안보나 非전통안보는 특정 국가가 다른 국가를 겨냥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경우에 따라 그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ㆍ정보화로 인해 국가들 간 교류나 정보의 교환이 질과 양 모두에서 급격히 증대되었다는 점 역시 이러한 믿음을 강화했다. 국가 간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이 강화된 만큼, 국제관계에서도 양자/다자간 갈등보다는 공통의 과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강화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新안보’ 개념의 등장과 함께 ‘非국가행위자’(non-state actors)의 역할 확대 역시 기대되었다. ‘新안보’ 개념 자체가 전통적인 국가의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으며, 정부의 기능만으로는 충분히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rporations, MNC), 국제 비정부 기구(International NGO), 국제기구, 영향력있는 개인이나 사회단체 등이 개별 국가의 이익에 대한 집착을 넘어 공통의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경제적 이익이나 다국적 네트워크, 보편적 윤리에 따라 행동하므로 정부 차원 대응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란 것이 ‘新안보’ 개념에 입각한 신념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포괄적 안보’ 혹은 ‘非전통안보’ 분야에 대한 국가간 협력은 곳곳에서 장애에 직면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주요 국가들이 ‘新안보’상의 이슈들을 ‘공통의 이해관계’라고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제적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를 골자로 한 『파리협약』과 관련하여 미국이 2017년 6월 1일 탈퇴를 선언한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적 기후변화의 관리보다는 “미국 국민의 보호”가 더 중요한 이익이라고 본 것이다.5 많은 국가들이 포괄적 안보에 속하는 안보이슈들의 중요성에 원론적으로 공감하면서도 그것이 당장의 급박한 국가이익 우선순위를 조정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문제 해결의 속도와 정도에 대해 국가별 이견을 확대시켰다. 주요 국가들 간의 전략적 경쟁과 이로 인한 상호 견제 심리 역시 ‘新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6

 

‘코로나 19’가 증폭시킨 ‘新안보’ 공동대응의 혼란

 

‘新안보’의 키워드는 공통의 위협(위험)인식, 협력, 그리고 상호신뢰 등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키워드들은 별 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물론,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新안보’ 추진환경의 변화는 이미 이전부터 감지되었던 것이며, ‘코로나19’로 인해 유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新안보’ 개념 등장 당시의 기대가 상당부분 깨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국제관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7

첫째, ‘코로나19’가 최초 발원지였던 중국을 넘어 확산해 가는 과정에서 각 국가들은 협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각개약진의 형태를 보였다. 국가주의가 국제주의를 압도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각 국가들이 취한 입국제한조치이다. 세계화 과정에서 비자면제 등을 통해 자유로운 출입국을 보장해오던 추세가 역전된 것이다. 물론, 감염병 예방을 위한 일시적인 조치라고는 하지만 그동안의 세계화 조류에 충실한 대응을 보였던 국가들이 고립과 불이익을 당하는 모순적 현상도 발생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이다. 한국은 ‘코로나19’와 관련된 신속대응과 선제적 대응과 투명성 있는 정보공개, 그리고 비교적 온건한 입국관리 조치를 취했음에도 3월 19일 기준 125개국으로부터 입국제한을 당했다.8 세계화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 간 교류나 연대 대신 ‘절연’과 차단 기제가 작동하였다.

국가별 상호 협력을 명시한 조약이나 제도, 관행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3월 초를 기점으로 코로나19의 여파가 유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EU는 비EU국가들로부터의 ‘필수적이지 않은 여행’(nonessential travel)을 30일간 금지하는 조치를 검토했고, 이는 실제로 EU 회원국 정상들에 의해 3월 17일자로 승인되었다. 이 입국금지는 EU 회원국들에 대해서는(BREXIT중인 영국 포함) 적용되지 않는 것이나, 각 회원국은 방역 및 국경관리에 있어 공통의 기준보다는 각자의 방침을 적용하는 양상을 보였다.9 2015년 12월 1일 한ㆍ중ㆍ일이 채택한 『동북아 평화 협력을 위한 공동선언』에는 3국간의 보건ㆍ의료 협력이 명시되어 있었음에도 3국이 취한 조치는 개별적이었으며, 한ㆍ일간에는 상호 일시적 입국통제가 맞교환되었다.10

미국 역시 사실상 동일 사회ㆍ경제ㆍ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와의 국경을 일시(30일) 폐쇄하였다. 물론, 입국제한은 감염병 차단을 통한 자국의 안전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新안보’ 상의 접근에 충실했다면 국가들 간의 입국제한은 일방적 조치보다는 상호 조율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감염지로부터의 인력유입 제한은 감염국가의 자발적 유출억제와 감염우려국가의 유입관리가 협력적으로 이루어질 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으나, 이번의 경우 그러한 지혜가 발휘되지 못했다.

둘째,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 국가들의 책임 있는 행동보다는 일방주의와 상호경쟁이 만연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입국제한’은 아쉽기는 하지만, 예상보다 급속한 ‘코로나19’ 확산에도 영향을 입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감염병 확산을 놓고 벌어진 주요국가들 간의 책임 전가성 발언ㆍ조치들이다. 감염병 유행에 있어 감염지가 중요한 것은 확산관련 정보의 파악을 위한 것이지 특정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ㆍ중 간에 벌어진 ‘발원지’ 논쟁은 감염병이라는 ‘新안보’ 위협을 ‘공통의 해결과제’ 가 아닌, ‘특정 국가의 책임’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로 이어졌고, 이는 국가 간 불신을 부채질했다.

이와 관련,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질서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미국과 중국 모두 ‘코로나19’ 사태에서 다른 국가들의 대응에 도움을 주거나 ‘최적 사례’(best practice)를 보여주기보다는 자신들의 국내적 후유증 수습에 급급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등장이후 보여준 ‘미국 우선주의’와 국제적 문제에 대한 기여의 축소 경향을 이번 사태에서도 그대로 드러내었다. 중국 역시 국내 감염병 관련 정보의 은폐와 늦장 공개의 의혹에 직면하면서 국제적 확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오히려, 이 국면에서 미ㆍ중이 보인 것은 수년전부터 수면 위로 떠오른 전략경쟁의 연장이었으며, “미국에 의한 외부 감염”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론전을 통한 이미지 관리에 급급했던 것이다.

셋째, 신뢰할 만한 국제적 레짐의 부재라는 현실로 인해 국제적 공동대응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동안 전통안보 문제와 관련해서 UN 등 국제기구의 권능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이는 북한 핵개발 대응, 국제 평화유지ㆍ강제 활동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반면, 보건이나 인도적 지원 등의 분야는 비교적 국가 간 이견의 여지가 적으며 관련 국제기구들의 활동 역시 지지를 받아온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코로나19’사태가 진행되면서 일종의 국제적 종합상황실 역할을 해야 할 ‘세계보건기구’(WHO) 자체가 논란의 한 중심이 되었다. 특정 국가에 편향된 상황 해석, 적시에 이루어지지 않는 정보 제공11, 너무 늦은 ‘판데믹’ 경보에 대한 논란 등이 WHO를 둘러싸고 제기되었다. WHO의 수장인 거브러여수스(Tedros Adhanom Ghebreyesus) 자체가 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의 사무총장 선출 배경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며, 특정 국가의 ‘발원지’ 이미지 차단을 위해 그가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축소해석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구속력은 없지만 그의 사임을 청원하는 인터넷 청원이 3월 들어 35만에 달할 정도였다.12

넷째, 급속한 감염병 확산과 지역적 확대에 따라 각 국가들마다 ‘공포’가 증폭되었으며, 이는 일종의 ‘포비아’를 만들어내었다. 일부 주요 국가들의 정보 왜곡ㆍ통제 등은 세계화ㆍ정보화 시대의 정보공유와 맞물리면서 과장된 공포를 만들어내었다. 그동안 기존 언론매체 뿐 아니라 인터넷/SNS 등을 효과적으로 통제해왔다는 중국조차도 완전한 정보관리에 실패했다. 문제는 중앙의 정보관리 실패가 민간의 자유로운 정보 공유 효과를 이끌어내지도 못 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우한에서의 최초 감염 정보를 과소평가하거나 혹은 무시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실시간 전파되는 중국 내부의 민간정보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중에는 정확한 정보도 있지만, 일부는 과장되거나 왜곡이 의심되는 것도 존재하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최초 숙주(宿主)에 대한 논란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후 정부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적시에 공개하지 못 하는 가운데, 민간 분야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정보 확산이 일어나면서 국가별 가짜뉴스나 여과되지 않은 미확인 정보가 무분별하게 유포되었다. 일본에서 발생했던 “마스크와 휴지의 재료가 동일하다”는 소문과 이에 이은 휴지 사재기 현상은 그 대표적 경우이다.13 각 국의 공포는 다른 국가로부터의 유입자에 대한 인종적 혐오와 연결되기도 하였다. 즉, 특정 국가나 특정 인종이 감염병의 확산자일 수 있다는 잘못된 편견이 이들 국민ㆍ인종에 대한 증오와 연결되었던 것이다.14

다섯째,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시기에 발생한 국제적 유가하락,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은 ‘新안보’ 개념상의 이슈가 다양한 복합적 위기를 창출하게 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코로나19’와 국제시장의 혼란이 상호간의 인과관계(causal relation)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즉, ‘코로나19’로 인해 향후 세계적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지나친 억측에 가깝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세계적으로 심각성을 지니는 ‘新안보’상의 위험이 복합적으로 맞물릴 경우, 위기의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국제 정치ㆍ경제적 문제점들이 특정 ‘新안보’ 상의 위협(위험)과 함께 발생하는 사태가 도래하면, 국제체제 및 세계적 차원에서 심각한 수준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여섯째, ‘新안보’ 문제의 해결에 있어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非국가행위자들의 역할은 오히려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거의 나타나지 못했다. 이는 앞에서 지적한 국가주의와 주요 국가들의 일방주의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지만, 예상보다 큰 규모의 ‘新안보’ 위협 앞에서는 비국가행위자의 기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非국가행위자들은 여전히 정보와 자원 측면에서 각국의 정부에 비해 열세에 있었으며, 국제적 협력을 위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전으로의 회귀는 가능할까?

 

이전에 전 세계를 휩쓸었던 주요 감염병이 그러했듯이, ‘코로나19’ 역시 시기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통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된 이후 세계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新안보’와 관련된 국제적 협력 환경은 개선될 것인가의 의문이 제기된다. 현재까지의 추세는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그 이전의 상태도 또 반세계화의 역풍도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

1) 더욱 심화되는 미ㆍ중 전략경쟁: 체제우월성 경쟁으로의 격화
 
‘코로나19’의 ‘판데믹’ 상황이 진행됨에 따라 지난 1월 20일의 1단계 미ㆍ중 무역분쟁 협상안 이후 다소 소강기에 들어섰던 양국간 전략경쟁이 다시 점화될 가능성이 있다.15 이번 감염병 확산 사태를 통해 미ㆍ중은 확연히 다른 처방을 택했다. 이는 양국의 체제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각자의 대내외 환경 상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중국이 철저한 중앙통제를 강조한 반면, 미국은 사태가 심각하기 이전까지는 국가보다는 사회체제의 역동성에 의존했다.16 문제는 양자가 서로 이러한 차이점을 상대방에 대한 우월성 혹은 위협인식의 근거로 활용했다는 것이다.17 즉, 미ㆍ중 전략경쟁의 이면에 내재한 정치ㆍ경제 이데올로기적 거부감이 더욱 증폭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ㆍ경제적 타격을 입은 중국을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중국 역시 현재의 상황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이것이 전략경쟁에서의 후퇴로 비추어지며, 결국은 시진핑 주석과 중국 공산당의 권력기반을 위협하는 사태를 우려하게 될 것이다. 초기에 SNS 차원에서 제기된 ‘코로나19’ 발원에 대한 ‘음모론’ 수준의 이야기들이 이제는 정부 지도자들 선에서 나오고 있다. 전통적으로 ‘대국’ 인식 하에서 명분이 있어야만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던 중국이 발원의 근원지로 미국을 겨냥한 것은 현 사태를 그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역시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전면에 나서 중국 발원론을 거듭 재확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를 통해 미ㆍ중은 양립하기보다는 무한 경쟁이 불가피한 체제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상대방에 대한 적의(敵意) 역시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구체적인 조치로 나타나는 경쟁의 재개일 뿐이다. ‘코로나19’ 이전의 미ㆍ중 전략경쟁에 주로 무역 분야에서 돌출되었다면, 이제 양자간의 경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모델’과 중국이 주창하는 ‘아시아모델’(혹은 ‘非서구모델’)간의 충돌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18.

2) 폐쇄적 국가주의의 범람 위험과 국제 거버넌스에 대한 갈구
 
‘코로나19’ 확산에서 각국들의 각개약진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감염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대처기준을 제공하는 신뢰성 있는 레짐(regime)의 부재도 한 몫을 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WHO는 세계적인 보건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1월 30일 WHO가 “여행 또는 무역제한을 권장하지 않는다”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국가들이 타국(특히 중국)으로부터의 입국통제를 강화하였다는 사실은 그만큼, 해당 국가들이 WHO의 상황해석과 판단에 의문을 제기했음을 반증한다.19 또한, 각 국의 감염의심자 대처(확진자 검사), 보호장구 착용(마스크 등), 확진자 발생후 대응의 프로세스가 각각 달랐던 것 역시 WHO가 제대로 된 국제적 기준을 조기에 제시하지 못했던 데에 기인한다. 코로나 확산의 경험은 앞으로도 각국이 주요 감염병 유행시 WHO의 조치나 발표를 신뢰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WHO에 대한 불신은 해당 기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20세기 이후 누적되어 온 각종 국제 레짐에 대한 재편 운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존의 제도나 기구들이 국제적 차원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 한다는 인식이 강화됨에 따라, 국가들은 시간이 감에 따라 새로운 레짐이나 기존의 것의 혁신을 강하게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레짐의 신뢰성을 제고하거나 국제적 거버넌스 체계를 정립하는 일 역시 그리 쉽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 새로운 레짐을 구성하거나 기존 레짐의 기능을 회복하려면 레짐의 형성에 기여한 국가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거나, 다른 국가들이 그 역할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하는데 이것이 형성되기가 매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기존의 레짐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새로운 레짐의 창설 역시 여의치 않은 상황은 국제적 의제를 주도할 만한 국가의 부재로 인해 그 심각성이 더해질 것이다. 국제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장서서 이를 주도하는 국가들과 이에 대한 여타 국가들의 지지가 있어 가능하다. 또는, 주도국이 없이도 그 부담과 책임을 공유할 복수의 국가들이 있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에서 세계는 그런 국가를 찾아내지 못 했다. 아니, 오히려 두드러진 것은 폐쇄적 국가주의였다. 미국은 트럼프 등장 이후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이 공백을 파고든 것이 중국이었다. 중국은 미국이 포기하거나 무시했던 가치들, 즉 ‘자유무역’이나 ‘국제/지역 평화’의 가치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최초 발생으로 자국이 국제적 문제의 중앙에 놓이게 되자 중국이 보인 행동은 ‘책임 있는 대국’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감염병 확산과 관련된 정보를 조기에 세계와 공유하는 것을 주저하였고, 다른 국가들이 중국으로부터의 여행객에 대한 이동통제 조치를 취하는 것에 반대했다.20 자국 내에서의 사태가 상대적으로 안정화된 이후에 중국이 보인 것은 교훈과 경험의 공유보다는 이미지 제고였다.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3월 13일 시진핑 주석은 쿠테흐스 UN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중국 인민의 힘든 노력이 세계 각국의 전염병 방제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벌어줬고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21 진의야 어쨌든 간에 코로나 폭풍에 휘말린 세계가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이기 힘든 메시지였다. 아마 ‘코로나19’ 진정 국면 이후 중국은 대대적인 공공외교를 통해 이미지 제고에 돌입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중국이 성공적으로 이미지의 회복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코로나19’ 확산의 과정에서 여타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사정 역시 비슷하게 나타났다. 러시아는 사태초반 중국으로부터의 확산차단을 막는 데에만 급급하였고, 영국과 프랑스 역시 ‘코로나19’가 자국의 문제가 되자 국제협력에는 별 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안정적인 국제질서를 갈구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이를 실현하기 어려운 여건이 지속되는 딜레마는 앞으로 상당기간 국제사회의 과제로 남을 것이다.

3) 적당한 ‘국제적 거리두기’(international distancing)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성행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나타난 주요한 특징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의 강화였다. 즉, 감염병 확산 차단을 위해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일정부분 격리시키는 것이 그나마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 ‘거리두기’는 상대방에 대한 적의나 악감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본적으로 누가 나를 감염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불신을 깔고 있다. 미ㆍ중 전략경쟁의 강화, 신뢰할 만한 국제레짐의 부재, 국제적 지도력의 공백 등이 연결되면서 각 국가들은 다른 국가와의 교류ㆍ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 이상으로 잠재적 위험성이 크다는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는 일종의 ‘국제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국제적 거리 두기 정책은 다양한 방향으로 구현될 것이다. 첫 번째는 정보와 인력의 자유로운 교환에 대한 제한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많은 국가들이 외교적 문제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주요 감염국들로부터의 입국제한을 선택했다. 그 실효성 여부는 젖혀두고라도 이러한 처방이 틀린 방안이었다는 것이 확실히 입증되기 전까지는 같은 조치가 반복될 수 있다. 물론, 이번의 경우처럼 광범위하지는 않을 것이나, 각 국가들은 타국으로부터의 감염병 확산, 재해ㆍ재난, 난민 유입 등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해당 국가와의 일시적 단절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이미 선례(先例)가 존재한 만큼, 타국으로부터 부정적 파급영향을 입을 가능성이 커질 때에는 협력보다는 격리를 택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또한, ‘코로나19’의 전파 과정에서 여과되지 않은 각종 정보가 유입되면서 공황을 증폭시켰다는 교훈에 따라 경우에 따라서는 타국으로부터의 정보 통제 역시 강화될 수 있다.

둘째는 통합된 국가 혹은 국가연합의 분리 운동이 강화될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U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非EU국가들로부터의 유입통제를 선택했다. 비록 EU 회원국들은 예외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EU의 핵심 작동원리의 하나이며 인력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쉥겐협정』(Schengen agreement)이 일부 훼손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직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있지는 않지만, 영국 내의 BREXIT에 대한 거부감 역시 약화될 수 있으며(절연의 효과를 이미 경험했으므로), 더 나아가 카탈루니아, 북아일랜드 등 여타 지역에서의 분리ㆍ독립 움직임 역시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촉발될 수 있다.

셋째, 주요 국가들의 신뢰성에 적지 않은 타격이 간 만큼, 이들을 중심으로 추진되던 다자/지역 협력 이니셔티브, 즉 일대일로(一帶一路)나 인도ㆍ태평양 전략 참여에 대한 소극성이 강화될 수도 있다. 어느 국가도 자국의 안전이나 이익을 보장할 만한 확실한 신뢰를 주지 못 하는 현실에서는 공연히 무리한 ‘줄서기’를 하는 것보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선 ‘거리 두기’가 유리하다는 판단을 각 국가들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함께 진행된 국제 경제적 혼란 역시 미ㆍ중이 이에 투입할 자원을 더욱 제약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공동대응이 필요한 사안에 직면했으면서도, 그에 대한 협력보다는 일단 자국의 안정에 중점을 둔 접근을 취하는 것은 ‘코로나19’에서 나타난 각국 행태의 대표적인 특징이었으며, 이에는 국내정치적 고려도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실제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관리되는가보다는 “정부의 상황관리를 유권자들이 어떻게 인식하는가“가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아마, 신종감염병으로 인해 全세계가 공통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인식은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수그러든 이후에야 가능할 것이며, 국제적 연대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도 다시 이루어질 것이다. 어느 한 국가도 자체 노력만으로는 ‘新안보’ 위협을 완전히 관리ㆍ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절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분간 대부분의 국가들이 ‘국제적 거리두기’와 ‘적당한 수준의 연대’간의 효과적 배분율을 찾기 위해 고심하게 될 것이다.

4) 역설적으로 재인식될 ‘新안보’ 위협
 
이상의 상황들은 ‘新안보’와 관련된 국제협력에 있어서는 분명 중대한 타격이다. 자국의 이익 확보에 대한 이기주의가 강조될수록 국가 간 연대를 강조하는 ‘新안보’협력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코로나19’는 ‘新안보’ 상의 위협(위험)들이 단순한 이론적 공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19’사태를 통해 체감하게 되었다. 더욱이, ‘코로나19’ 를 통해 감염병이 보건ㆍ의료 분야를 넘어서 매우 심각한 사회ㆍ경제적 파급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전통안보에 못지않은 ‘新안보’ 문제의 심각성을 세계가 공통으로 알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각 국가 차원에서 ‘新안보’ 위협의 관리를 위한 대안 발굴에 고심한 것이다.

‘인간안보’(human security)에 대한 재조명 역시 이루어질 것이다. ‘코로나19’는 실제 정부가 취하는 정책의 효율성에 관계없이 얼마나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가가 ‘新안보’ 위협대처에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즉, 국가나 정부가 아무리 이 처방이 안전하다고 해도 국민들이 이를 납득할 수 없다면 사회적 안정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주요한 ‘新안보’ 위협의 발생 시 국내적 우려나 공포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에 더 많은 관심이 두어질 것이다. ‘新안보’ 위협 대처에서 非국가행위자의 역할을 보장하거나 강화하기 위한 개별 국가차원, 혹은 국가 간 협력의 논의 역시 활발해질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정부의 확장되고 강화된 역할은 위기대응에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국내정치적 논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다. 정부에 따라서는 국민들이 가지는 ‘기대’와 ‘책임론’에 과도한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이를 고려할 때, 국제기구나 국제적 NGO 등 非국가행위자들의 기능 활성화를 위한 대안에 대한 논의 역시 향후 활성화될 것이다.

5) 새로이 주목받게 될 분야들: 정보선별과 생물학 테러 위협 방지
 
‘코로나19’ 사태의 교훈을 바탕으로, 국제적으로 교환되는 정보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 역시 각 국가 차원 혹은 양자/다자 차원에서 모색될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왜곡되거나 부정확한 정보가 얼마만큼 큰 사회적 혼란과 공황을 유발할 수 있는지가 확인되었다. 더욱이 이러한 정보는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유입되므로 때로는 정부의 공보나 정보제공보다 신속할 수 있다. 만약 외부의 누군가가 사회 혼란을 목적으로 가공되거나 조작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할 수 있다. 따라서 정보의 옥석을 가리고 정확한 정보를 선별하며, 경우에 따라 이에 대한 대응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의 강화가 필요로 될 것이다. 이는 당연히 사이버 보안 및 정보 보호 분야를 중요한 ‘新안보’ 이슈로 부각시킬 것이다.

생물학 테러에 대한 위험성 역시 이번 사태를 통해 재인식될 수 있다. 이미 적지 않은 학자들이 21세기에 들어 미래의 군비통제 과제중 하나로 생물무기 분야를 꼽았다.22 생물무기는 1975년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의 발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질적인 국제적 통제대상으로 떠오르지는 못했다. NPT나 『화학무기금지협약』(CWC)과는 달리 국제적 집행기구 역시 보유하지 못했다.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무기가 중요한 위협으로 거론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적어도 국가급 행위자라면 생물무기의 개발ㆍ사용은 선택하기 힘든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생물무기는 그 특성상 백신이나 치료제를 보유한 상황에서 사용되지 않으면 사용자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에 대한 타격이 공멸(共滅)로 이어질 수 있는 선택을 아무리 ‘실패한 국가’의 지도부라도 내리기는 힘든 것이다.

그러나, 국가급 행위자가 아닌 테러리스트들이라면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많은 이들이 신종 감염병이 재래무기 이상의 폭발력을 가졌음을 절감하였다. 더욱이 생물무기의 개발은 상대적으로 적은 자원과 공간에서도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공멸의 위험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자기의 목숨까지를 테러수단으로 삼은 ‘뉴테러리즘’의 시대에서 테러 지도부라면 생물무기의 개발ㆍ사용에 대한 유혹이 증대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테러범 자체를 ‘인간숙주’로 한 자살폭탄형 생물학 테러의 위험성에 대해 세계가 점점 더 경계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 되었다.

 

한국에의 함의 : ‘新안보’ 대응을 위한 적극적 접근의 필요성

 

이번 코로나 사태, 그리고 변화된 ‘新안보’ 환경은 한국의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 전반적으로 ‘코로나19’가 팬데믹 상황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세계가 과거의 상황으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21세기 국제관계를 형성해왔던 세계화ㆍ정보화가 전혀 다른 파급영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신종 감염병을 통해 시사되었기 때문이다. 미ㆍ중 전략경쟁, 국가들 간의 복합적인 이합집산 등과 결합되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다가들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라는 ‘新안보’ 이슈는 한국이 가진 중견국 딜레마를 보여준 사태이기도 했다. 사태 초반부터 투명한 정보공개와 국가 간 협력을 지향하는 정책을 전개했던 한국은 상당수 국가들의 입국통제라는 벽에 직면하여야 했다. 신속한 감염우려자에 대한 검사와 창의적 기법의 도입(‘드라이브 스루’ 방식 등)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이 한국의 효율적 대응보다는 ‘증가하는 확진자’ 수에 초점을 맞추었고, 때로는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한국으로부터의 여행객 입국을 차단했다. 자국에 대한 감염 우려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당시 동아시아권의 주요 감염국(한ㆍ중ㆍ일) 중 한국이 상대적으로 편하게 다룰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없이는 나오기 힘든 조치였다.

그러나 동시에 가능성을 보여준 측면도 있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바와 같이 초반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지만 한국의 대응은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에서 다른 국가들이 학습할 만한 가치가 있다.24 더욱이 한국이 ‘코로나19’의 대응과 관련하여 취한 개방적이고 투명한 정보, 그리고 국제적 교류와 소통의 유지는 ‘新안보’ 대응에 있어 다른 국가들도 취해야 할 기본자세인 것은 분명하다. 감염병의 국제적 확산이 분명히 ‘新안보’적인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이 기존의 입장과는 모순된 대응 행태를 보인 데 대해, 한국의 경우 일관성 있는 대응을 했다는 평가가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향후 ‘新안보’ 분야에서 한국이 ‘의제 창출자’(agenda setter) 역할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소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자산이다.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한국이 ‘新안보’ 분야에서 역할을 점차 확장해 나가고,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재에 비해 더욱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지역/국제 차원에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외교를 적극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한국의 신속한 대응은 분명 귀감이 될 만하지만, 동시에 “감염병이 범람한 위험한 국가”로서의 이미지가 상당부분 남을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현 시점부터 한국에 대한 입국제한을 선언했던 국가들을 대상으로 어떤 시점과 전제하에 원상회복을 이룰 것인가에 대해 협의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대응이 일견 상당한 확진자를 양산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감염병의 효과적 통제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며, 해당 국가들의 우려는 일종의 착시(錯視)였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특히, 감염병 대응이 외교적 갈등을 증폭했던 한ㆍ일 관계에서도 해빙을 위한 전략이 구체적으로 세워져야 한다.

둘째, ‘코로나19 관련 대응의 교훈을 공유하고 서로 학습하기 위한 노력도 강화되어야 한다. 현재는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하여 각국(특히 미국과 중국)이 자신의 대응이 최선의 것이었다고 자찬(自讚)을 하고 있는 양상이지만, 모두 나름의 일장일단을 지닌다. ‘코로나19’에 대한 국가별 대응의 차이는 인구밀집도와 의료환경 등이 상이한 국가들 간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국가의 대응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든 실정이며, 지금은 우월성의 과시보다는 지혜의 공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부터라도 이러한 의연한 외교적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셋째, ‘新안보’ 차원에서 한국이 가진 각 사안별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입국통제 논쟁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상대 국가를 설득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감염병 확산에 있어서는 전체 인구 대비 확진자 비율에 따라 입국통제의 수준을 연동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도, 테러나 기후, 불법이민, 여타 이슈에 대해서도 타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국의 조치가 어떤 기준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新안보’ 분야의 다양한 이슈별로 징후목록 및 대응기준을 정립하는 것도 한 방안일 것이다.

넷째, 앞서 지적한 사이버 테러를 통한 공포의 조장, 생물학 테러의 위험성 등을 고려할 때, 정부의 ‘新안보’ 관련 대응체제가 강화되어야 한다. 외교ㆍ안보 부처에 ‘新안보’ 분야를 전담할 수 있는 인력 및 조직을 구비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新안보’ 분야의 특성상 단일 부처의 전문성만으로 다양한 이슈에 대비ㆍ대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복합적 ‘新안보’ 위협(감염병과 사회혼란, 국제적 갈등)에는 효율적이지 못 하다. 따라서 각 부처의 ‘新안보’ 대응 관련 업무를 협의ㆍ조정할 협의체계 역시 동시에 정립되어야 한다.

다섯째, ‘코로나19’를 통해 부각된 ‘新안보’ 이슈들에 대한 지역/국제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력을 주창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코로나19’에서 모순적인 대응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것이 국제적인 공동예방ㆍ대응을 필요로 하는 ‘新안보’이슈의 속성을 바꾼 것은 아니다. 당장은 신뢰할 만한 국제적 레짐의 부족과 국제적 지도력 공백으로 각국이 각자도생과 국제적 거리두기를 선호했고 그러한 경향이 앞으로도 지속되겠지만, 결국은 국제적 연대와 협력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점을 강조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사적이고 추상적인 원칙의 나열보다는 기존의 합의를 실천해나가려는 모습을 앞장서 보여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ㆍ중ㆍ일 3국간 감염병을 포함한 주요 재해ㆍ재난 관련 정보공유체제를 구축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 ‘新안보’ 관련 유언비어나 ‘가짜뉴스’의 범람을 막기 위한 체제의 구축은 정부 단독만으로는 ‘정보통제’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사회의 정보 자기 정화기능을 촉진할 非국가행위자들의 역할에 대한 국가 간 공동연구를 고려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결과적으로 ‘新안보’ 분야 의제창출자로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WHO declares a pandemic of coronavirus disease covid-19,” Washington Post (March 11, 2020).
  • 2. 물론, 냉전시대에도 동ㆍ서 두 진영 이외에 이른바 ‘제3세계’ 역시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블록 대립을 기초로 한 것이라 탈냉전시대에는 하나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 3. 안보개념의 확장은 어떤 면에서는 ‘안보’의 원래 의미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security’는 “우려, 불안, 걱정, 근심 혹은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및 안전(freedom from apprehension, anxiety, or care; freedom from risk; safety)”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Rothschild, Emma, “What Is Security?” Daedalus Vol. 124, No. 3 (fall 1995), p.61.
  • 4. 물론,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新안보’는 ‘화평굴기’를 중심으로 기존 국제질서의 재편을 지향하는 중국식 ‘신안보’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중국의 ‘신안보’개념에 대해서는 차창훈, “‘신안보개념’에서 ‘소프트파워’까지: 중국 외교전략의 변화와 집단정체성 형성,” 한국연구재단 신진연구자 지원사업 연구보고서 (2010.6) 참조.
  • 5.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협약』 탈퇴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 역시 국내총생산과 제조업 일자리의 대폭적 감소였다.
  • 6. 이에 대해서는 “새로운 지정학의 분야, 신안보,” 아산정책연구원(편) 『ASAN 국제정세전망 2020』 (서울: 아산정책연구원, 2019.12), pp. 102-104 참조.
  • 7. 이들은 각자 개별적으로 나타났다기보다는 밀접한 상호연관성을 지니면서 발현되었다.
  • 8. 외교부, “코로나19 관련 우리 국민 대상 입국제한조치 실시 국가(지역) 여행주의보 참조.
    http://www.0404.go.kr/dev/notice_view.mofaid=ATC0000000007689&pagenum=1&st=title&stext=
  • 9. Bojan Pancevski and Laurence Norman, “EU Plans to Ban Entry at Its Borders, but Barriers Rise Within Bloc,” Wall Street Journal (March 16, 2020).
  • 10. 3국 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외교부, 『동북아평화협력을 위한 공동선언문』 2015년 11월 1일.
  • 11. 실제로, WHO가 제공하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및 감염국 현황은 실제로 각국 언론이 취재한 결과보다 항상 늦거나 심각성이 덜한 것이 현실이다.
  • 12. “Over 350,000 sign petition calling for WHO chief’s resignation,” The Korea Times (March 19, 2020).
  • 13. “코로나19 가짜뉴스 때문에…’5만원 돌멩이’ ‘휴지 사재기’,” 『TV조선』 (2020년 3월 6일자).
  • 14. “욕설에 발길질…코로나19 확산 뉴욕서 증오범죄 속출,” 『연합뉴스TV』(2020년 3월 17일자).
  • 15. CSIS의 마이클 그린은 “지금보다 바이러스 확산이 더 심해질 경우”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코로나-19’ 로 인해 ‘국가주의’의 심화, ‘이념경쟁’의 격화, 미ㆍ중 대립의 가속화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마이클 그린, “[글로벌포커스] 코로나19가 바꾸는 세계정치지형,” 『중앙일보』, 2020년 3월 13일자.
  • 16. 미국 내 확진자 수가 늘어난 이후에도 미국의 처방은 주로 확실한 중증 중상자에 중점을 두었으며, 적극적인 정보통제 정책을 취하지도 않았다.
  • 17. 그린의 경우, 한국과 일본에서의 코로나 사태 자체를 민주주의적 체제 탓으로 보고, 이를 중국에 대한 위협의 근원으로 간주한다는 중국 고위급 간부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 18. Kurt Campbell Rush Doshi, “The Coronavirus Could Reshape Global Order,” Foreign Affairs, Vol. 99, No.2 (March/April 2020),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china/2020-03-18/coronavirus-could-reshape-global-order 참조.
  • 19. 문제는 바로 이 권장사항이 역사상 6번째의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PHEIC’)를 선포했다는 사실이다. WHO 스스로 이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면서도 감염병 차단을 위해 이동제한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다고 한 것이다.
  • 20. 더욱이 이 시기 중국 정부는 ‘코로나19’에 대한 효과적 대응조치 역시 정립하지 못한 단계였다. 자체적인 통제전망이 불투명하다면, 다른 국가들이 입국통제를 취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 21. 시진핑 “중국 힘든 노력이 전세계 코로나19 방제시간 벌어줘,” 『연합뉴스』, 2020년 3월 13일자.
  • 22. 이에 대해서는 Michael A. Levi and Michael E. O’Hanlon, The Future of Arms Control (Washington D.C.: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5) 참조.
  • 23. 이 원인에는 생물무기에 대한 통제나 감시가 상대적으로 신약(新藥) 개발 등 민간영역의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주요 국가들의 우려도 작용했다.
  • 24. “트럼프 [미 코로나19 7~8월 끝날 수도…한국 ‘굿잡’ 얘기 알아](종합),” 『연합뉴스』, 2020년 3월 17일자. 다만, 국내 일부의 해석과는 달리 트럼프 발언의 핵심은 미국이 가장 잘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 한국에 대한 일방적 찬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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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