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835 views

근래 들어 동남아시아 군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몇 가지 상황들이 이런 관심을 높이는 원인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자기주장을 강화함에 따라 중국과 갈등을 가진 동남아 국가의 군사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 한 원인이다. 동남아 일부 국가들이 과거 10~20년 사이 국방비 지출을 꾸준히 높이면서 동남아에서 군비 경쟁이 등장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도 있다. 최근에는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산 무기 구매에 관심을 보이면서 국내에서도 점차 동남아 군과 국방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 정부도 국방, 방산협력을 동남아 국가와 협력의 중요한 부분으로 꼽는다.

동남아의 군비 확장과 군사력 강화 움직임은 특정 위협에 대한 대비라기보다는 일종의 군사력 정상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중국과 남중국해에서 갈등, 안보 위협이라는 요소가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이 군비 확장을 통해 중국의 위협에 맞서기는 쉽지 않다. 동남아 국방비 증가, 군비 확대가 추구하는 바는 최소한의 자기 방어를 위한 군사력 정상화 혹은 적정 국방력의 확보이다. 동남아 국가들은 냉전의 보호막 속에서 외부 위협에 대비한 적극적 의미의 국방력 확장보다는 경제성장에 국가 자원을 쏟아부었다. 외부의 위협보다 국내 정치불안정에 대한 대비 혹은 국내 정치적 개입에 더 몰두했던 동남아 군은 무기 체계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하는 데 크게 신경 쓸 이유가 없었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경제성장의 결과로 국방력에 투자할 자원이 생겼다는 점도 원인이 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에서의 대응능력 확보, 자국의 국력 과시, 최소한의 방어력 확보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향후 한동안 동남아 국가들의 군에 대한 투자, 국방력 강화 노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표 1. 동남아 국가의 국방비, 무기 수입, 상비군 수 비교1

표1

* 라오스 국방비는 2013년, 베트남 국방비는 2017년 통계

 

2000년대 이후 동남아의 국방비 지출 확대, 군사력 강화 추세

 
2000년 이후 동남아 국가의 군사력 강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미-중 전략 경쟁이 시작된 이후 미-중 경쟁이 가장 뜨겁다는 동남아 지역의 군사력 강화 추세는 더욱 관심을 끈다.2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동남아 국가들의 군비 확대 추세는 명확하다. 경제 규모 대비 국방 예산 지출을 파악할 수 있는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이 가장 눈에 띈다. 절대적인 국방비 지출의 증가 추세도 중요하다. 방산기술이 높지 않은 동남아 국가는 대부분 무기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무기 수입액 증가 추세도 중요한 지표가 된다.

2000년부터 2021년 사이 20년간 대부분 동남아 국가에서 국방비 절대액은 크게 증가했다. 특히 같은 기간 동아시아 전체와 한국은 각각 4.1배, 3.6배의 국방비 증가를 보인 데 반해 인도네시아는 7.3배, 캄보디아는 7.9배, 베트남은 6배 등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캄보디아의 경우 원래 국방비가 크지 않아 7.9배 증가한 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은 반면, 인도네시아의 경우 동남아 국가 중에서 국방비가 큰 편에 속했던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7.3배 증가가 눈에 띈다. 이런 증가세에 힘입어 인도네시아는 2021년 기준 동남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는 국가로 뛰어올랐다.

베트남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베트남의 국방비는 2000년 10억 달러에 미치지 못했고 동남아 국가 중에서 7위에 머물렀으나 2021년까지 국방비가 6배 증가한 결과 50억 달러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국가가 되었고 동남아에서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는 국가가 되었다. 싱가포르의 국방비 증가 규모는 다른 국가에 비해 크지 않은 2.6배이지만 원래 국방비 지출이 많았던 상황이었고 2021년에는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100억 달러 이상을 국방비에 지출하는 국가 되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도 2000년대 이미 10억 달러가 넘는 국방비를 지출하던 국가였는데, 꾸준히 국방비를 지출한 결과 2021년에 2.5~3배 정도의 국방비 지출 증가를 보였다.

 

표 2. 동남아 국가의 2000년 대비 2021년 국방비 증가 규모3

표2

* 라오스는 각각 2000년, 2013년, 베트남은 2003년, 2017년 국방비

 

국방비 절대 액수 증가 못지않게 GDP 대비 국방비의 증가도 의미 있다. 국방비의 절대액은 국가의 경제규모와 대체로 연동된다. 반면 GDP 대비 국방비의 규모는 특정 국가가 가용한 자원의 제약 속에서도 국방비 지출에 얼마나 많은 자원을 배분했는가를 보여준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 GDP 대비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면 나름 국방비를 증가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점을 시시한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0여년간 평균을 볼 때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동아시아 지역 전체인 1.53%에 뒤처지는 동남아 국가는 인도네시아(0.74%), 라오스(0.38%), 필리핀(1.12%), 그리고 태국(1.37%)으로 나타났다. 그 외 6개 국가는 싱가포르가 주도하는 가운데 모두 동아시아 평균을 크게 웃도는 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율을 보였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여년간 말레이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싱가포르의 GDP 대비 국방비는 동아시아 전체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을 크게 앞선다(그림 1 참조). 싱가포르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평균으로 GDP의 4.2%를 국방비에 할당했다. 동아시아 평균은 1.4%였고, 남북 대치상황인 한국도 2.4%에 불과했다. 브루나이 역시 국방비의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2000~2010년 사이 평균적으로 GDP의 3%를 국방비에 할애했다. 말레이시아, 베트남 역시 한국에는 못 미치지만 동아시아 평균을 뛰어넘는 GDP의 2%, 2.1%를 각각 국방비에 지출했다.

 

그림 1. 2000-2011, 2011-2021 동남아 국가의 GDP 대비 국방비 비율4

그림1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을 단위로 보면 일반적인 추세는 지속된다. 여전히 싱가포르와 브루나이는 동아시아 평균은 물론 한국의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인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싱가포르와 브루나이는 GDP의 3%를 국방비에 지출했다. 2011년 이후에도 베트남은 GDP의 2.24%를 국방비에 지출해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지출에 비해 소폭이지만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증가시켰다. 이런 소폭 증가보다 의미 있는 것은 베트남이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상당한 정도로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런 노력이 10~20년간 꾸준히 유지될 때 그 결과는 상당한 국방비 지출 확대 및 군사력 증가로 이어진다.

동남아 국가의 군비 증가, 군사력 강화는 무기 수입에서도 드러난다. 동남아 국가의 방산 기술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따라서 주요 무기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상비군 숫자가 큰 인도네시아, 미얀마, 태국, 베트남에서는 경상비가 국방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군대 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에서 국방 예산 규모와 증가는 주로 무기 수입에 의해 결정된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0년대 이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 시차를 두고 동남아에서 무기 수입을 주도했고, 베트남은 50만 명이 넘는 군 규모에도 불구하고, 무기 구입에도 상당한 예산을 투입해왔다. 전 기간에 걸쳐 싱가포르는 비교적 고른 무기 구입 패턴을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2010년을 전후로 한 시점에서, 인도네시아는 2010년대 중반 즉, 조코 위도도(Joko Widodo) 대통령 집권 시기 이후 무기 수입에 많은 지출을 했다. 베트남은 특히 2010년 초 미국의 피봇 정책이 등장하고 미국과 베트남의 전략적 협력이 강화된 시점과 무기 구매가 급증한 시점이 일치한다.

 

그림 2. 2000년대 이후 동남아 주요국의 무기 구입 규모(백만 달러)5

그림2
 

무기 수입의 절대액 못지않게 동남아 군비 증강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어느 무기 수출국이 동남아 시장에서 지배적인가의 문제인데, 절대적으로 강한 국가는 없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의 자료를 인용한 한 보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동남아 국가의 무기 도입선을 보면 러시아가 100억 달러를 팔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이 약 79억 달러, 프랑스가 35억 달러, 독일이 28억 달러, 중국이 26억 달러, 한국이 21억 달러, 영국이 13억 달러치의 무기를 동남아에 판 것으로 나타난다.6 러시아가 1위이기는 하지만 어느 특정 국가에 압도적으로 편중되어 있지 않다.

한편 개별 국가의 수입 행태를 보면 다양한 도입선을 기본으로 하면서 국가별 편차가 드러난다. 필리핀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수입 무기의 85%를 미국에서 조달했다. 반면 베트남은 같은 기간 98%의 무기를 러시아로부터 조달함으로써 극단적 차이를 보인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미국 무기는 1%에 불과하며 서유럽(51%)과 러시아(40%)가 말레이시아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태국도 유사하게 미국으로부터는 12%를 조달한 반면 서유럽(40%), 기타 국가(39%)의 구성을 보여준다.7 동남아의 큰 손인 싱가포르는 미국으로부터 41%, 서유럽으로부터 53%의 무기를 도입해 절대적으로 미국, 서방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동남아는 중국과 군비 경쟁을 하려는 것일까?

 
동남아 국가의 최근 20여년간 군비 증강, 특히 2010년대 이후의 군비 증강 추세에 중국 위협론이 자주 등장한다. 간단히 말하면 중국의 군사력 강화와 자기주장 강화가 지역 전반에 안보 위협으로 등장하고 이에 대한 대비로 동남아 국가가 군비를 증강한다는 주장이다.8 중국의 경제적 성장, 군사적 성장에 따라 중국의 잠재적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국가들이 정말로 중국의 성장한 군사력이 자신들에게 안보적 위협이 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 의미에서 군사적 현대화, 군비 강화를 추진하고 이것이 중국과 군비 경쟁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콜린 그레이(Colin Gray)에 따르면 군비 경쟁은 다음의 네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고 한다. 첫째로 반감을 가진 두 개 이상의 복수 적대 세력의 존재가 필요하고, 둘째로 이 적대감을 가진 세력들이 상대방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거나 상대방이 도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군대를 조직화하는 경향이 있어야 한다. 셋째로는 이를 통해 질적, 양적 군사적 경쟁이 촉발되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이런 경쟁이 군사 능력의 급속한 양적 확장이나 질적 개선과 동반되어야 한다.9 동남아와 중국은 서로 반감을 가진 적대세력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아래서 보는 바와 같이 동남아 국가의 군비 증가가 중국을 효과적으로 억지하지도 못하고, 동남아의 군사적 확장이 중국의 군사적 확장을 따라가기도 어렵다. 군비 경쟁의 정의로 볼 때 동남아 국가의 군비 확장은 중국을 상대로 한 군비 경쟁으로 보기는 무리가 있다.

동남아 국가에 대한 중국의 안보 위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는 것은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이다. 중국에 의한 동남아 국가 배타적 경제수역 및 영해 침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해상 위협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력은 해군과 공군력일 것이다. 아세안에 포함된 동남아 10개국 해군력은 병력으로 모두 합하면 21만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공군력은 이보다 적어 16만 5천 명 수준이다.10 그에 반해 중국의 해군력과 공군력은 각각 26만 명, 40만 명이다. 병력 수에서 동남아의 총합은 중국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병력 수의 차이는 중국의 해군항공대(Naval Aviation) 2만 6천 명, 해병 3만 5천 명, 중국무장경찰부대(China People’s Armed Police Forces) 소속인 해안경비대(China Coast Guard)를 합하면 더욱 벌어진다.

해군력에서 공해에서 전투가 가능한 함정수(principal surface combatant)는 동남아 10개국이 약 36척, 중국은 84척이다. 순찰과 근해 전투용 함정(patrol and coastal combatants)은 동남아가 940여 대로 720여 대인 중국을 앞서지만 근해에서나 작전 가능한 작은 함정들이 대부분이다.11 보급, 지원함(logistics and support)의 경우 중국이 184대, 동남아 10개국이 97대이다. 공군력에 있어서도 동남아 10개국 정찰기 합이 82대인데 반해 중국은 543대를 보유하고 있다. 전투기와 훈련기도 중국은 각각 1,000여 대가 넘는 반면 동남아의 합은 각각 442대, 513대 수준이다. 동남아 10개국을 합쳐도 중국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기 체계의 차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방 지출이다. 2021년 통계로 볼 때 동남아 10개국 국방비 지출의 합은 420억 달러 수준인데 비해 중국의 2021년 국방비 지출은 거의 3천억 달러에 달한다. 약 7배의 차이가 난다. 이런 상황에서 동남아 국가가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군비를 빠르게 증가시킨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차라리 미국을 끌어 들여 군사적으로 중국과 균형을 맞추는 것이 비용이나 효과 측면에서 동남아 국가들에게 더 바람직한 전략이다.

다만, 중국을 맞상대로 한 군비 경쟁이라는 측면이 아닌, 제한적인 의미에서 중국의 위협이 동남아 국가의 군비 증강을 일부 설명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압도적인 해군력과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해상 민병대(militia)를 앞세워 동남아 국가가 지배하고 있는 남중국해 섬들을 사실상 점령하거나, 중국 어선이 동남아 국가의 배타적경제수역을 침입하는 경우 동남아 국가들도 이를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최소한의 필수 군사력(minimum essential force)’ 혹은 ‘최소한의 신뢰할 만한 억지력(minimum credible deterrence)’을 갖추고 중국에 대응해 주권과 영해를 수호하려는 의지는 보여야 한다.12 중국 해군 혹은 해경과 동남아 국가 해군이 대치를 하는 상황에서 동남아 국가의 해군력이 지나치게 왜소해 보여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동남아 국가 군비 증강, 특히 해군과 공군력 증강은 이런 차원에서 최소한 중국의 군사적 활동에 대해서 의미 있는 저항 정도 혹은 항의 정도는 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추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남아 군의 발전을 지체시킨 정치 개입

 
동남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남중국해에서 분쟁을 가진 국가에게 이 분쟁은 가장 중요한 안보 위협인 것은 맞다. 최근 군사력 강화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도 이 분쟁이 제공한다. 그러나 동남아의 최근 20여년간 국방비 지출 확대, 군사력 강화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배경을 봐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동남아 군의 특성, 동남아 국가의 역사적 경험이 군의 현대화를 오랫동안 지체시켰다. 2000년대 이후 동남아 군비 확장은 특정 위협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 지연된 현대화에 대한 반작용이다.

일견 동남아의 군 현대화가 지체되었다는 말은 설득력이 커 보이지 않는다. 동남아 몇몇 국가는 군이 매우 강력한 세력이다. 군의 존재가 강력하다면 경제적으로 충분치는 않아도 군의 장비, 무기 체계 강화에 일정한 노력을 했을 것이고 현대화를 위한 갑작스러운 군비 증강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동남아 군의 역사와 경험은 이런 일반적 추론과는 좀 다른 궤적을 보여왔다.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미얀마의 군은 동남아에서 대표적으로 강력한 군으로 통한다. 규모도 상당할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집단이다. 그러나 군이 강하다는 것과 군사력이 강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동남아 맥락에서 전자는 정치 참여로 인해 큰 국내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군의 현대화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즉, 동남아에서 군은 군을 결속시키기 위한 내부 이익인 조합적 이익(corporate interests)을 위해 국방비를 증강하고 군사력을 확장하는 일반적인 민군관계(civil-military relations)의 도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네덜란드 식민지배 시기 식민지배를 위한 도구로 창설된 인도네시아 군은 수카르노(Sukarno)와 하타(Hatta)가 주도한 독립 운동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통해 민족주의 정당성, 정체성을 확보했다.13 이후 인도네시아 군은 1966년부터 시작된 수하르또(Suharto) 시기 정권 안보 수단으로 기능했다. 헌법에 명시된 이중기능(Dwi Fungsi, dual function) 조항을 통해 국가 안보는 물론이고 사회발전에 대한 책임까지 지는 역할을 부여 받아 합법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해왔다. 미얀마의 군 역시 아웅산(Aung San) 장군이 이끄는 독립 운동 과정에서 역할을 기반으로 독립 이후 버마족 민족주의의 수호자로 정당성을 강화했다. 1962년 버마족과 소수종족 사이 종족 갈등의 국면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치권력을 장악한 버마군은 2015년 아웅산 수찌(Aung San Suu Kyi)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선거에서 이겨 집권하기까지 53년간 군부통치를 유지해왔다.

태국의 군은 독립을 유지했던 현 짜끄리(Chakri) 왕조 시대 근대화 개혁의 산물로 태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932년 태국이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이후 지금까지 약 20회의 걸친 군사쿠데타로 늘 정치권력을 장악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력 기관으로 행세해왔다. 1932년 이후 구성되었던 50여 개가 넘는 내각 중 절반 이상이 군사정권이었다.14 베트남의 군 역시 미국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중국과 제3차 인도차이나반도 전쟁 과정에서 승리를 기반으로 국내 정당성을 확보했다. 현재는 베트남 공산당의 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기반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본 몇몇 동남아 군은 강력한 정당성에 기반해 정치,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거나 직접 권력을 담당해왔다는 점에서 강력한 군이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군은 외부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기능보다 국내 정치적 참여, 정권의 안전, 권위주의 레짐의 유지를 위한 국내 정치세력의 억압이라는 국내적인 기능에 몰두했다. 군사정권, 권위주의 정권 유지를 위한 국내 반대세력의 탄압, 민주화 요구의 탄압은 발전된 무기체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강력한 군의 정치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장비의 현대화나 무기의 첨단화 혹은 적어도 국가의 규모와 경제적 크기에 걸맞는 장비 및 무기의 유지에도 최소한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국방예산 역시 부패구조로 인해 전력증강을 위해서보다는 다른 용도로 전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탈냉전 이후, 민주화 이후 군은 형편없는 무기 체계를 가진 군으로 남게 되었다.

 

냉전기 안보 우산과 갈등 부재로 인한 군사력 강화 지체

 
동남아 지역의 상대적 갈등 부재와 미국에 의해 제공된 안보 우산이라는 변수가 앞서 언급한 국내 지향적 군이라는 변수와 맞물려 동남아 군의 현대화를 더욱 지체시켰다. 동남아 국가는 미국이 제공한 안보 우산 속에서 자국의 군 현대화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했다. 제한된 경제적 자원 속 엘리트들은 늘 국방, 안보(guns)와 경제성장(butter) 사이 자원 배분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의 안보 우산은 동남아 국가가 국방보다 경제성장에 더 많은 자원을 돌릴 수 있는 환경이 제공했다. 냉전이 가져온 이런 특수한 구조 속에 동남아 국가는 적정한 군사력 유지, 군 현대화를 위한 투자보다는 경제성장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또한 1967년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의 성립 이후 동남아 지역에는 중요한 군사적 갈등이 없었다. 이런 갈등 부재 상황으로 인해 동남아 국가는 군사력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했다. 미국(혹은 공산블록의 경우 소련, 중국)에 의한 안보 공공재 제공과 군사적 갈등의 부재라는 소극적 의미의 평화가 동남아 군사력이 뒤떨어지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은 독립과 함께 냉전 질서에 편입되었다.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등은 일찍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블록에 포함되었다. 인도네시아 역시 비동맹 노선을 걸었던 수카르노가 축출되고 수하르또가 들어선 1966년부터 철저한 반공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 중에서 필리핀과 태국은 미국의 동맹 국가로 미국이 냉전 기간 제공한 안보 공공재의 덕을 보았다. 필리핀은 수빅만(Subic Bay) 해군기지와 클라크 (Clark) 공군기지를 중심으로 해양에서 미국의 동남아 지역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미국은 필리핀이 필요로 하는 물자와 훈련을 제공했다.15 태국 역시 미국의 동맹 국가로 베트남 전쟁 기간 중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미군의 작전 수행을 위한 공군기지를 제공하는 등 후방 지원 기지로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미국으로부터 훈련과 물자를 제공받았다.16

말레이시아는 좀 다른 성격의 안보 공공재를 확보했다. 말레이 반도에서 식민통치를 했던 영국은 1957년 말레이시아에 독립을 부여하고 정치적으로는 말레이 반도를 떠났다. 그러나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이어진 말레이시아의 ‘비상 상황(Malayan Emergency)’으로 인해 영국 군은 말라야 반도에서 공산주의 게릴라 소탕을 위해 1960년대까지 주둔하면서 말레이시아 군에 필요한 지원과 훈련을 제공했다.17 1957년 말레이시아가 독립을 하면서 영국과 말레이시아는 영-말라야 방위조약(Anglo-Malayan Defence Agreement, AMDA)을 맺었고 이 조약에 기반해 말레이시아는 영국으로부터 안보와 관련된 지원을 받았다. 1971년 이 조약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영국, 호주, 뉴질랜드 사이 5개국방위협정(Five Power Defence Arrangements, FPDA)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반공블록에 포함된 개별 국가들이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로부터 안전 보장, 안보 공공재를 받으면서 자국 국방력 발전, 군사력 발전에 자원을 투입할 강력한 유인이 작동하지 않았다. 냉전 시기 동남아에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중국과 소련 등 공산주의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미국 등 서방 국가는 비공산 동남아 국가가 필요로 하는 군사적 지원과 보장을 아끼지 않았다. 동남아 국가는 이런 안전 보장하에서 자국의 자원을 국내적 안정과 정치적 지지 확보를 위한 경제성장에 투자할 수 있었다. 나아가 냉전 전략하에서 미국의 시장은 이들 반공 동남아 국가에 활짝 열려 있었다. 군사력, 군의 현대화에 투자할 자원을 경제성장에 투자한 아세안 5개(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국가는 이 시기 빠른 경제성장으로 1990년대에는 중진국 혹은 선진국 대열까지 올라섰다.

이런 외부의 안전보장과 짝을 이루어 동남아 국가들로 하여금 군사력 강화에 덜 관심을 가지게 만든 변수는 역내 군사갈등의 부재다. 아세안이 창설된 직접적인 배경 중 하나는 역내 국가 간 갈등이었다. 아세안은 창설 이후 역내 갈등 방지와 국가간 신뢰 제고를 아세안의 최고의 성과로 꼽는다.18 물론 베트남 전쟁이라는 상황이 있기는 했지만 베트남 전쟁은 아세안 입장에서 아세안 외의 일로 간주할 수 있다. 제1~3차 인도차이나 전쟁 모두 당시 베트남은 아세안 회원국이 아니었다. 베트남과 갈등을 일으켰던 국가도 아세안 외부의 세력이었다. 따라서 이 세 번의 인도차이나 전쟁은 기술적으로 동남아에서 아세안이 아닌 국가들이 일으킨 전쟁이다. 적어도 대륙부의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가 아세안에 포함된 이후 아세안 회원국들 사이 역내 군사적 갈등은 없다.

아세안이 이 지역 갈등 방지에 직접적으로 효과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의 성립 이후 역내 군사적 갈등과 긴장이 없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더 중요하게는 이런 군사적 긴장과 갈등의 부재가 외부의 군사적 공공재와 맞물려 아세안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군사력 유지, 강화에 소홀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웃한 주변,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 없을 때 굳이 큰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국방력 강화, 군사력 현대화에 관심을 가질 유인은 매우 적을 수 밖에 없다.

 

최근 동남아 군비 확대의 직접 요인: 경제성장, 탈냉전, 군의 성격 변화

 
냉전의 보호막 아래서 상대적으로 군사적 갈등이 부재했던 동남아 지역에서 국가들은 국방력보다는 경제성장에 우선순위를 두었고 그 결과는 군사력 낙후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해군 함정 중 3분의 1은 실제로 해양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운 정도라는 평가가 있다. 인도네시아 공군이 보유한 전투기 중 F-5는 이미 34년째 운용 중이고, 호크(Hawk) 53 훈련기, T-34 훈련기도 각각 32년, 33년째 운용 중이다. 보잉사의 737을 개조한 737 해상초계기(Maritime Patrol Aircraft, MPA)도 32년째 운용 중이다. 수송기의 경우는 더 형편없는 상황이어서 C-130 수송기는 40년, F-27 수송기는 38년, 그리고 KC-130B 탱커(Tanker)는 53년째 사용하고 있다.19 필리핀 공군의 마지막 운용 가능한 전투기도 이미 2005년에 퇴역해 운영 가능한 전투기가 한 대도 없는 실정이었다.20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군의 장비들은 도입된 지 평균 35년이 넘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21

물론 동남아 국가는 군사력 강화를 미루고 경제성장에 매진한 결과 빠른 경제성장을 거두었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은 1990년대 최고의 경제성장기를 보냈다. 1997~98 아시아경제위기를 맞아 한때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이내 회복했다. 이때의 빠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2000년대 들어 뒤처진 국방력을 보완하려고 나섰다. 일반적으로 빠른 경제성장은 국방력 강화를 동반한다.22 동남아 국가의 경우 1990년대 빠른 경제성장 이후 국방력을 확장할 수 있었으나 경제위기로 다소 지체되었고, 다시 회복된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군비 증강, 군사력 강화, 군사적 현대화에 나선 것이다. 이 양상이 앞서 확인된 2000년대 이후 국방비의 증가, GDP 대비 국방비의 증가, 무기 수입 증가 등의 현상으로 나타났다.

2012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는 당시 인도네시아의 빠른 군비 증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답은 간단하다. 인도네시아가 가진 것(국방력)은 주변 국가에 비해 훨씬 뒤처져 있다. 우리는 단지 이 차이를 줄여서 우리의 주권을 보호하고 평화를 유지하려는 것 뿐이다. 지난 15~20년간 우리 군의 현대화는 경제적인 이유와 다른 긴급한 우선순위 때문에 마땅히 이뤘어야 하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23 이런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언급은 동남아 군비 증강이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미뤄졌고 경제적으로 성장한 이후 다시 추진되고 있음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는 한 가지 변수가 더 추가된다. 군의 성격 변화가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가 이에 해당한다. 인도네시아 군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국내 즉, 국내 권위주의 통치의 유지 혹은 분리독립 운동의 저지를 통한 영토적 완결성 확보가 군의 주 목적이었다. 반면 1998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민주화된 인도네시아 군은 국내보다 외부의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는 방향으로 군의 우선순위를 재설정하기 시작했다.24 과거 국내 반대 세력 억압에 우선순위를 두었던 군은 보다 진화한 무기나 고도화된 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구식무기와 수적 우위만으로 충분했다. 국내 분리 독립 세력에 대한 억압 역시 외부의 적과 전쟁을 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무력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민주화 혹은 국내 분리 독립 운동의 약화 이후 동남아 군이 이런 국내 임무에서 벗어나 외부의 위협을 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무기 체계와 군사력이 약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와 연관된 또 하나의 특징은 최근 동남아 국가의 군사력 강화가 주로 공군과 해군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25공군과 해군력 중심의 군사력 강화는 동남아 군의 방향 전환과 연관이 있으며 최근 군비 증강의 중요한 특징이다. 한 예로 SIPRI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동남아 국가가 사들인 무기의 52%는 해양 작전과 연관된 무기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항공기, 관련된 미사일, 레이더까지 포함하면 해양에 관련된 무기 수입이 전체 무기 수입의 89%까지 증가한다.26 과거 육군의 주된 임무가 국내 반란, 반대 세력에 대한 대응이었고 이런 이유로 육군을 중심으로 한 군사력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 군의 임무가 국내적인 사안에서 대외적인 사안으로 전환되면서 특히 해양부 동남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해양 문제, 해양 안보에 보다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군사력의 현대화 역시 이와 연관된 해군, 공군력 위주의 군사력 강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육군에 밀려 제한적이나마 이루어진 육군의 현대화 추세에도 따라가지 못했던 해군과 공군의 전략 강화의 시급성이 대두하면서 급격히 군비 지출이 늘어나게 되었다.

 

한-아세안 국방, 방산협력: 평화를 위한 적정 국방력 지원

 
동남아 국가의 군사적 현대화 추진은 한국에게 경제적인 기회도 되고 이를 통해 한국과 동남아 국가 사이 국방협력, 안보협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마침 한국 정부의 의지와 동남아 국가가 한국 방산에 가진 관심이 점차 만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세계 6대 방산 수출국으로 성장한 한국은 그 이후로 국제 방산 시장에서 계속 주목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폴란드에 대규모 방산장비 수출을 비롯해 유럽 국가와 동남아에서 한국의 방위산업이 시장을 확대해 가고 있다. 2022년 폴란드에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을 수출했다. 동남아 지역에도 200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에 항공기, 잠수함, 함정 등을 꾸준히 수출하고 있다. 동남아 지역에 대한 수출은 특히 2000년대 이후 꾸준하게 진행해 온 노후 방산 물자 공여와 함께 진행되었다. 한국은 필리핀, 캄보디아, 동티모르, 베트남 등에 1993년부터 지금까지 약 30여 척의 노후 함정을 공여해왔다(부록 1 참고). 한국 방산제품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동남아 국가가 군사력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한국의 방산 장비 수출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 중 정치안보 협력은 동남아 국가와 국방 및 방산협력을 중요한 부분으로 상정했었다. 신남방정책 초기 방산을 앞세워 비판을 받았지만 방산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강조를 다소 낮추면서 꾸준하게 추진했다. 현 정부에서 새로 내놓은 아세안 전략인 한-아세안 연대구상(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 KASI) 역시 국방안보, 전략적 협력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 국방안보 협력에서 핵심적 사안 중 하나는 동남아 국가와 방산 협력이다. 방산 협력은 한국만 동남아 방면에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 역시 한국과 국방협력, 방산-과학기술 협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27 한국이 가진 앞선 과학기술,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위협적인 강대국이 아닌 한국의 위상, 한국이 가진 중립적 이미지와 소프트파워 등이 결합되어 군사력 현대화를 꾀하는 동남아 국가들 눈에 한국이 무기 도입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국의 방위산업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파트너로 상정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도 동남아에 대한 방산 수출은 여러모로 장점을 가진다. 방산 수출이 가지는 경제적인 효과가 가장 직접적이다. 무기와 장비 수출 자체도 있지만 항공기, 함정 등에 대한 꾸준한 유지보수 필요성도 경제적 효과를 창출한다. 한국산 방산 수출품은 다른 국가의 수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있거나 품질 면에 있어서 우수하다. 또한 유럽에서 명성을 얻은 신뢰성과 빠른 제품 생산 및 인도의 장점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동남아 국가들이 현재 원하는 수준의 군사력 현대화는 미국이 생산하는 값비싼 첨단 무기가 아니다. 동남아 국가는 적절한 수준의 신뢰할 만한 무기체계를 원하고 이를 공급해줄 수 있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그리 많지 않다. 방산 수출은 향후 군사협력과 한-아세안 국방, 안보 협력을 위한 신뢰구축에도 긍정적 영향을 가진다. 한국이 수출한 무기체계는 당연히 한국과 아세안 국가 사이 무기 체계의 상호운용성 제고에 긍정적이다. 미국의 무기체계와 우수한 상호운용성을 가진 한국 무기 체계와 동남아 국가의 무기 체계 상호운용성 제고는 한-아세안을 넘어서는 전략적 함의도 가진다. 이런 협력에서 생긴 상호 신뢰는 더 높은 차원의 국방, 안보협력으로 발전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28 또한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최첨단 무기와 2선급 무기체계를 혼용(High-Low Mix)해야 할 우리의 입장에서 동남아 시장은 최첨단은 아니지만 일정 수준의 성능을 지닌 무기체계의 생산을 유지하는 데 긴요한 시장이기도 하다.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한-아세안 사이 방산협력, 방산 수출이 전적으로 긍정적인 측면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국방력에 관한 협력이고, 잠재적으로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에 관련된 협력이므로 어떤 주제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사전에 한-아세안 방산협력, 한국의 대아세안 방산 수출은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평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 한-아세안 국방협력, 방산협력은 동남아 국가들이 자신의 국가 규모와 경제력에 걸맞은 적정한 국방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는 ‘적정 국방’을 위한 협력임을 사전에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동남아 국가들이 안고 있는 안보 위협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정도의 군사적 현대화를 위한 협력이 되어야 한다. 동남아 국가의 군사적 현대화를 통한 적정 국방력 확보가 동남아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와 함께 한국과 동남아의 국방협력, 한국의 방위산업 협력이 동남아 국가에서 국내 정치 세력을 억압하거나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은 지 항상 주의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향으로 한국산 무기, 한국의 지원이 오용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부록 1. 한국과 동남아 방산 협력

1) 한국의 대동남아 방산 수출 주요 사례
부록1
2) 한국의 대동남아 국가 노후 함정 인도 실적
부록2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