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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2일 자 ‘조선칼럼’에서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러시아와 북한 간의 무기 거래가 가져올 위험을 지적하며, 남북 군사합의와 비핵화 공동선언 폐기를 제시했다. 러·북 간 무기 거래는 핵무기가 사용되는 제2의 6·25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으므로 우리의 대응은 더 강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러·북 간 밀착이 세계 평화가 아닌 갈등과 파괴를 불러왔다는 점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금년 7월, 북한이 ‘전승절’이라고 부르는 정전협정 체결 70년을 맞아 푸틴이 김정은에게 보낸 축전에는 “6·25전쟁 당시 옛 소련이 적의 패배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과거 구(舊) 소련은 6·25전쟁에 참전하거나 북한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소련은 북한군의 창건 과정부터 고문단을 보내 1만명 이상의 북한군에게 군사 및 기술 훈련을 시켰고, 항공기, 탱크, 야포 등 각종 무기를 제공했으며, 남침 역시 스탈린의 최종 승인하에 이루어졌다. 소련의 참전은 1994년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한 문서에서 처음 확인됐지만 그 이후 러시아는 언급을 회피했는데, 푸틴은 축전을 통해 소련이 북한을 도와 6·25전쟁에 참전했음을 시인한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이 남침하자 23시간 만에 미국에 의해 유엔안보리가 소집되어 북한군의 38선 이북으로의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유엔안보리 결의 82호를 채택했다. 6월 27일의 안보리 결의 83호는 유엔 회원국들이 “국제 평화와 지역 안전을 회복하기 위해” 한국을 지원할 것을 권고했고, 7월 7일의 안보리 결의 84호를 통해 미국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결성되어 북한군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소련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 ‘유엔군’에 대항해 싸우는 모순을 저질렀다.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전세가 북한에 불리해지자 스탈린은 주저하는 마오쩌둥을 설득하여 10월에 중공군이 참전하도록 했다. 6·25전쟁에서 한국군 전사자는 14만명, 한국 민간인 피해는 사망, 부상, 행방불명 등 100만명에 달했다. 유엔군도 4만700여 명이 사망하고 10만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6·25전쟁은 소련이 배후에서 북한과 중국을 조종하여 발생한 것이고, 수많은 한국군과 민간인, 그리고 유엔군의 희생에 책임이 있다.

러시아는 2000년대 이후 전개된 2차 북한 핵 위기 국면에서 북한의 변함없는 후원자였다. 북한이 6차례나 핵실험을 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을 높이는데도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북한의 편을 들어 유엔 차원에서의 대북 규탄 결의안이나 제재 결의안을 막았다. 2022년 3월 북한이 ‘화성-17형’ 대륙간탄도탄을 발사하여 자신들이 공언한 모라토리엄(핵실험 및 ICBM 시험 발사 유예)을 위반하자 미국은 5월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을 상정하였지만,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거부권을 행사했다. 북한의 ‘화성-18형’ 발사에 대응하기 위해 소집된 금년 7월의 유엔안보리에서도 제재 격상은커녕 비난 결의안마저 채택되지 못한 것도 러시아와 중국 때문이었다. 8월 모스크바 국제안보회의에서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한반도와 아·태 지역의 긴장의 책임은 미국과 이에 동조하는 한국과 일본에 있다고 하면서 북한을 감쌌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평양과 모스크바 간에 이루어져 온 위험한 거래가 더 노골적인 수준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북한으로부터 대규모의 포탄과 군수물자를 제공받으면 이는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북한과의 재래식 무기 거래를 금지한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를 위반하는 것이다. 푸틴은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 개발을 지원할 뜻을 표명했는데, 이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완성을 도와 국제 비확산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궁극적으로 제2의 6·25전쟁을 획책하는 일이다.

러시아가 북한에 인공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혹은 핵추진 잠수함과 관련된 지원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논의되어 왔던 확장억제 조치를 넘어서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등을 추진해야 한다. “힘에 의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두려워할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전술핵 재배치는 한반도 비핵화의 길을 열 수 있다. 즉 북한이 비핵화에 나선다면 우리도 배치된 전술핵을 철수하면 된다.

 
* 본 글은 9월 25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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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