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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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통제하는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단체 하마스(Hamas)가 이스라엘에 전례 없는 대규모 기습공격을 감행해 이스라엘인 1,400여 명을 살해하고, 240여 명을 인질로 잡았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격멸을 즉각 선포해 가자 지구에 보복 공습을 하고, 하마스가 인질을 풀어주기 전까지 식량과 연료 공급을 차단하는 전면 봉쇄를 시행했다. 나아가 27일 ‘두 번째 독립전쟁’을 천명해 가자 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팔레스타인 주민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섰고, 가자 지구 내 인도주의 위기는 고조됐다.

하마스의 도발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의 최대 정파인 파타흐(Fatah)와 급진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주도권 경쟁 및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이란 간 3각 갈등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수니파 대표국이자 이슬람 성지의 수호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수교를 시도하자,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이슬람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하마스가 자신의 존립 근거가 흔들릴 것을 우려해 사활을 건 무력 투쟁을 벌인 것이다. 하마스 입장에서 역내 데탕트가 이뤄지면 자신의 최대 라이벌 파타흐가 팔레스타인 통치의 정당성과 경제 이익까지 독점하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조직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하마스가 아닌 파타흐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다. 하마스로서는 현상을 뒤흔들어야 할 동기가 강했다. 하마스는 2022년 11월에 출범한 이스라엘 극우 연립정부의 사법부 무력화 시도에 따른 이스라엘 내 최악의 국론 분열과 안보 공백, 이들의 대(對)팔레스타인 강압 정책에 따른 무슬림의 분노도 계산에 포함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향후 다른 국가들까지 개입하는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란과 이집트 등 주변 권위주의 국가들이 혹시 모를 내부 불안정에 긴장하며 정권 수호에 급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인한 경제 파탄과 히잡 강제 착용 반대 시위에 따른 국내 여론 악화로 전쟁 개입이 부담스럽다. 이스라엘이 지상전에서 하마스 세력을 어느 정도 제거한 후에는 파타흐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가자 지구의 통치권을 이양 받고, 평화유지군이 치안을 돕는 방안이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논의 중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비롯한 강경파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통제를 시사했지만 이번 하마스 공격을 막지 못한 이들은 국내외 정치 기반을 완전히 잃어 퇴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가자 지구의 미래는 전적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달려있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 미국이 중재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데탕트 협상도 다시 열릴 전망이다.

우리 정부의 대(對)중동 정책은 하마스의 테러 행위를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을 향한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며 아랍과 이스라엘의 데탕트를 지지하고 있다. 2024년부터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게 될 한국은 인권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및 법치에 입각해 중동 불안정과 인도적 위기를 해소할 독자적이고 책임있는 기여 방안을 개발하면서 글로벌 중추 국가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하마스 기습공격의 배경: 

파타흐-하마스 주도권 경쟁 및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이란 갈등

 

1987년에 설립된 하마스는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출발했다. 하마스 구성원은 가자 지구 토착 세력으로 급진 이슬람주의 슬로건 아래 PLO의 최대 정파인 파타흐의 서구식 국가 건설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반대한다. 하마스의 목표는 대(對)이스라엘 무장투쟁을 통해 이스라엘을 궤멸하고, 이슬람 가치에 기반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영토는 신이 무슬림에게 하사한 유산이므로 무슬림 외에 그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따라서 하마스가 끊임없이 이스라엘에 도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1 하마스는 수니파 조직이지만 이란의 후원을 받는 친이란 프록시 단체다.

1964년에 결성된 PLO는 여러 아랍 국가를 떠돌며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을 벌이다 1993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협정을 맺었다. 평화협정은 팔레스타인의 자치 합의 및 이스라엘과 PLO의 상호 인준을 담았다. 이듬해 PLO가 무장투쟁을 포기하는 대신 서안 지역과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수립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새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역사적 협정에서 ‘평화와 영토의 맞교환’을 통한 ‘두 국가 해법’에 합의했음에도 이스라엘 강경파는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유대인 불법 정착촌을 건설하고, 이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시위를 과잉 진압했으며 가자 지구를 봉쇄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파타흐와 하마스로 분열해 각자 세력 기반을 다지는 데 연연했다.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가 132석 중 74석을 확보해 45석을 얻은 파타에 승리하자 파타흐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둘의 다툼은 유혈 사태로 번졌다. 파타흐의 수장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새 총리를 독단적으로 임명했고, 이에 반발한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무력으로 장악했다. 파타흐와 하마스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그들의 군경과 보안 기구는 각자의 거점 지역에서 반대 세력을 거세게 탄압했다. 해외 원조금의 배분을 둘러싼 부패 네트워크로 악명 높은 파타흐는 반정부 언론과 시민단체를 억압한다. 하마스는 여기에 더해 반대 세력을 서슴없이 감금하고 고문한다. 매년 전 세계 200여 나라의 민주주의 현황을 측정한 ‘프리덤 하우스’ 지수(0~100 스케일)에 따르면 2023년 서안 지역은 22, 가자 지구는 11로 두 곳 모두 시민의 정치 권리와 자유 수준이 매우 낮다. 비교 관점으로 살펴보면 중동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이스라엘의 지수는 77,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지수는 83이다.2

하마스의 이번 ‘알아크사 홍수’ 기습 작전은 불도저와 행글라이더를 이용한 비정규전 방식을 혼합해 하이브리드 전쟁 양상을 띠었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기존의 정규전과 비정규전이란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 테러, 일반 범죄, 사이버 공격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작전을 복합적으로 전개하는 특징을 갖는다. 중동에서는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2차 레바논 전쟁을 계기로 등장해 최근 미래 전쟁을 이해하는 개념 틀로 자리 잡았다.3 하마스는 패러글라이더와 드론까지 이용해 육해공을 동시다발로 침투하며 이스라엘의 방어망을 뚫었다. 원격감시 조기경보 체제를 갖춘 1조 5,000억 원의 ‘스마트 철책’은 하마스의 사제 폭탄과 불도저에 무너졌고, 감시탑도 드론이 투하한 폭탄에 망가졌다.

이후 오토바이와 SUV 차에 탄 하마스 대원들은 이스라엘 남부의 공동 농장 키부츠 여러 곳과 음악 페스티벌 현장에 쉽게 침투했다. 하마스는 도발 직후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인 동예루살렘 내 알아크사 모스크를 이스라엘로부터 지키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 공격을 감행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그들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 따라 도발을 했다. 하마스는 오랜 경험으로 자신의 선제공격이 이스라엘의 대대적 반격으로 이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무력 보복으로 발생한 팔레스타인 사상자를 국제사회에 약자와 희생자로 포장할 소재로 인식하고 있다.

하마스 도발의 결정적 원인은 최근 미국의 중재로 진행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의 관계 정상화 협상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재정 위기와 국내 젊은 층의 빠른 인식 변화 등에 직면해 왕실 수호 전략으로서 파격적 개혁 정책을 시행 중이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역내 정세 안정과 이스라엘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이런 사우디아라비아에 최대 걸림돌은 앙숙인 이란이라는 존재이고, 이란은 이스라엘의 주적이다. 2020년 이란 의회는 20% 우라늄 농축 재개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시리아 내전의 승기를 바탕으로 가자 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인민동원군, 예멘의 후티 반군, 시리아의 군소 민병대 등 프록시 조직을 적극 후원하며 역내 헤게모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을 맺는 조건으로 미국의 철저한 방위 조약과 이스라엘의 대(對)팔레스타인 유화책을 요구했다. 이란 핵 개발과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부터 자국 안보를 지키는 동시에 이슬람 성지 수호국으로서 팔레스타인 대의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마스 입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간 데탕트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자신의 최대 라이벌 파타흐가 팔레스타인 통치의 대표성과 정당성, 나아가 경제 이익까지 독점하게 된다. 나아가 미국과 유럽연합이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 하마스는 존립의 이유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하마스에게는 세계의 이목을 끌어 존재를 각인시키고, 팔레스타인 지배권을 노리는 것이 가자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생존 전략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 정보 실패의 원인: 

극우 포퓰리스트 정부로 인한 최악의 국론 분열과 대(對)팔레스타인 강압 정책

 

1973년 10월 6일 유대교의 속죄일 욤 키푸르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다. 이전의 세 차례 중동전쟁에서 크게 이겨 자신감에 취한 이스라엘 정부와 군은 정보국 모사드의 경고를 무시했고 허를 찔렸다. 이후 끈질긴 반격 끝에 이스라엘은 결국 승리를 얻었지만, 욤 키푸르 전쟁은 리더십의 대실패로 기록됐다. 50년하고도 하루가 지난 2023년 10월 7일, 유대교 명절이 끝난 새벽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전례 없는 치밀한 기습공격을 벌여 2,000여 발의 로켓을 동시에 쏘고 무장대원 수천 명을 이스라엘 본토 안으로 침투시켰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정보국을 상대로 교란술과 기만책을 썼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일은 꽤 흔하다. 2023년 5월, 2022년, 2021년, 2014년에도 수백에서 수천 발, 다른 해에도 수십 발씩 발사했다. 단, 다른 때는 로켓 도발 전에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고 팔레스타인에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정치 구호를 집중적으로 외치며 분위기를 띄웠지만 이번엔 아무 전조도 없었다. 게다가 단시간에 로켓 수천 발을 동시 발사해 아이언돔의 요격 역량을 무력화했다. 무엇보다 전례 없던 건 하마스 대원이 초기 방어선을 뚫고 이스라엘 영토에서 인질까지 생포한 일이다. 하마스는 장기간 신중하게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이고, 이스라엘은 정보부의 참담한 실패를 인정했다.

이제껏 하마스와의 분쟁에서 우세를 점해온 이스라엘은 오만했고, 미세한 경고를 놓쳤다. 이스라엘의 신호 감청 8200 부대는 지난 1년간 하마스에 대한 감청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4 이는 명백한 리더십 실패고, 결정적 원인은 국내 정치 혼란에 있었다. 2019년부터 2022년 사이 이스라엘에서는 보수와 중도·진보 모두,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총선이 다섯 차례나 치러지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뇌물수수와 배임, 사기 등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보수의 아이콘 네타냐후 총리의 거취를 둘러싸고 배타적 유대 민족주의와 법치주의로 유권자가 극명히 갈리면서다.

결국, 2022년 11월 다섯 번째로 실시된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극우 성향 연립정부를 구성해 총리로 복귀하고,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사이 위험한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새 정부는 재판 중인 네타냐후 총리를 보호하려고 사법 개혁이란 구실 아래 사법부의 독립성을 무력화하는 입법을 강행해 시민사회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새로운 입법에 따르면 법원과 검찰총장의 권한이 약화되면서 행정부의 정책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이 축소된다. 여기에는 극우파가 추진하는 불법 유대인 정착촌 확대 등에 대법원이 위헌 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제동 장치를 마련하려는 의도도 포함됐다.

2023년 1월 사법부를 약화하고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연립정부의 사법정비안 발표 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조직됐고, 거의 모든 계층의 사회 구성원이 이에 동참했다. 특히 공군과 특수부대, 정보국 소속 예비역 1만여 명이 정부의 사법 장악 시도에 항의하며 복무 거부에 서명했고, 현직도 예비역의 집단행동을 지지하면서 군 중추의 이탈에 따른 안보 공백이 우려됐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마저 사법 장악안의 철회를 요구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국방장관 해임을 전격 결정한 후, 3주 만에 철회했다. 이스라엘 최대 노조인 노동자총연맹이 총파업을 결정하고, 중앙은행 총재는 국가 신용등급 하락을 경고했으며 대통령도 입법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7월 네타냐후 정부는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속전속결로 표결에 부쳐 결국 의결했다. 야당 의원들은 네타냐후 측이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표결을 보이콧하고 퇴장했다. 최악의 국론 분열로 이스라엘은 국가 마비의 위기에 빠져들었다.

또 네타냐후 정부가 대(對)팔레스타인 강경 정책을 시행하면서 서안 지역과 가자 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 사상자가 크게 늘어 20여 년 만에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5 이스라엘 내 아랍계 시민과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계 거주권자의 인권 상황도 열악해졌다. 2023년 4월 정부 내 대표적 극우파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동예루살렘 방문을 강행해 무슬림 대다수는 크게 반발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가 성지로 여기는 동예루살렘은 제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이 장악했으나 성지 관리와 운영은 요르단이 맡고 있으며 무슬림만 성지에서 기도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경찰이 알아크사 사원에 진입해 내부에서 항의 농성을 하던 팔레스타인 주민을 끌어내며 충돌이 일어났다.

바이든 정부 역시 이스라엘 극우 정부의 민주주의 퇴행 행보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민주당원 대다수는 네타냐후 정부의 국내 민주주의에 반하고 ‘두 국가 해법’에 어긋나는 정책을 비판했고, 미국 유대인 커뮤니티에서는 반(反)네타냐후 여론이 급증했다.6 결국, 이스라엘은 오랜 기간 국시로 이어온 자강론의 결실이 포퓰리즘을 선동하고 국민 편 가르기에 앞장선 한 정치인의 이기심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나가며: 전쟁 전망과 전후 시나리오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양측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하고, 가자 지구 내 인도주의 위기가 대두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협상과 중동의 데탕트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급히 현지를 찾아 긴장 완화를 위해 적극 노력했음에도 전쟁은 이어지고 있다. 중동 전역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도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을 내면서 중동 데탕트는 깨진 것이라는 해석마저 나온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주요국이 지지를 밝힌 대상은 하마스가 아닌 팔레스타인 주민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정계에서 존경받는 원로인 투르키 알 파이잘 왕자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살상 행위가 이슬람 교리에 위배된다고 강하게 비난했고 이는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 지도부의 입장을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진다.7

미국과 이스라엘 역시 이번 무력 충돌로 데탕트가 깨지면 테러리스트에게 굴복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욱 바이든 정부가 내세웠던 중동 정책의 3대 기조, 즉 이란 핵합의 복원, 역내 민주주의와 인권 및 동맹 가치 강화, 아랍-이스라엘 데탕트 확산 가운데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보인 사안이 없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수교 협상에 더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정상화 빅딜의 직접 수혜자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이스라엘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따라서 군사적 긴장이 누그러지면 중동 데탕트를 향한 미국의 중재와 중동 주요국의 움직임은 다시 부상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무력 충돌이 하마스와 이스라엘이라는 당사자가 아닌 다른 국가들까지 개입하는 5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주변국 대부분은 혹시 모를 자국 내 반정부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정권 생존 지키기에 급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측면 지원하고, 서안 지역 일부 급진주의 조직이 하마스와 연대를 선언하며 반이스라엘 전선을 확산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적극 후원해 온 이란 강경파 지배 연합은 미국의 고강도 제재가 불러온 심각한 경제 위기와 히잡 강제 착용 반대 시위에 따른 국내 여론 악화로 전쟁 개입이 부담스럽다. 이란 내 이어지는 민생고 항의 시위에는 지방 보수층과 저소득층이 적극 참여해 강경파의 지지층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집트는 이번 충돌 과정에서 가자 지구와 맞닿은 라파 국경을 열어 인도적 차원에서 아랍 형제인 팔레스타인 주민을 잠시라도 대피시키라는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의 제안을 거절했다. 가뜩이나 인기 없는 권위주의 정권인데, 팔레스타인 주민의 유입으로 혹시 모를 불안정한 상황이 생길까 봐 그 가능성을 사전에 바로 차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사실상 최초의 이스라엘-이란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8 이스라엘과 이란은 오랫동안 그림자 전쟁을 해왔고,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이미 이스라엘 북부 전선에서 교전 중이다. 예멘의 후티 반군이 대이스라엘 투쟁을 선언해 최근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과 순항미사일을 발사했고, 이라크의 친이란 인민동원군 일부도 시리아로 집결했다. 결국 이란이 자랑하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인 친이란 프록시 조직이 함께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에 나서는 모양새다. 전쟁의 분수령은 헤즈볼라의 전면전 개시 여부이다. 만약 이란이 곤경에 빠진 하마스를 돕기 위해 헤즈볼라를 참전시켜 전례 없는 합동작전에 나선다면 미국의 개입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로선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전면전에 나설 징후는 낮지만 가자 지구 전쟁의 향방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자국 핵시설 공습을 억제하기 위해 헤즈볼라를 지원해 온 만큼 쉽사리 참전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동시에 하마스의 궤멸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한편 러시아는 전쟁 초기 중립 태도를 보였으나 점차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을 비난하며 팔레스타인 편에 서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은 미국 주도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도 공격용 무기 대신 레이더 장비만 제공했으나 러시아는 드론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를 공급하는 이란과 밀착했다. 지난 9월에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 이란 군사 시설을 공습하자 러시아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규탄했다. 향후 이스라엘이 우크라이나에 공격형 무기를 지원할지, 시리아 영공에서 추가 공습 작전을 벌일 때 러시아가 어떻게 반응할지가 양국 관계를 결정지을 갈림길이 될 것이다. 중국 역시 초기엔 양측 모두의 폭력 중지를 요구하며 중립적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 이스라엘의 지상전이 과도하다며 비난에 나섰다. 이어 자이쥔 중동특사를 요르단에 파견해 중재 노력까지 기울이고 있으나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물론 주변국을 움직일 만한 뾰족한 수단은 없어 보인다. 북한은 이번 전쟁이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범죄행위에 따른 결과라며 팔레스타인에 도움을 줄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이스라엘에 가해진 하마스의 무차별적 공격을 규탄하고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의 무사 송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인도적인 교전 중지, 이스라엘의 국제법 준수 등을 강조했다. 또 민간인 피해자를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약속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에 기반한 정치적 해결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제거 작전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스라엘 인질을 최대한 구하면서 많은 하마스 대원을 사살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소수 급진주의 세력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단호한 작전 과정을 지켜본 가자 지구의 다음 세대가 다시 복수를 다짐하고, 이스라엘은 남은 세력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가자 지구 봉쇄를 이어갈 수 있다. 또다시 급진주의 추종 세력이 선제공격으로 도발하면 이스라엘이 맹렬한 기세로 공습하는, 지금까지와 비슷한 충돌 상황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 2006년 발발한 파타흐와 하마스의 유혈 충돌로 무기한 연기된 선거가 하루빨리 시행되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파타흐-하마스 간 갈등 일변도의 장기 관성에 획기적 전환점으로 작동하지 않는 한 정치적 무기력에 빠진 이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참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현재 논의되는 대안은 하마스를 궤멸시킨 다음 파타흐가 이끄는 서안 지역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가자 지구 통치권을 이양하는 방안이다.9 이때 파타흐가 안정적으로 통치를 시작하도록 이집트와 요르단 등 주변 아랍국가가 평화유지 병력을 파견할 수도 있다. 관건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16년 동안 하마스 통치하에 있던 가자 지구를 성공적으로 통치할 수 있을지다.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2021년 팔레스타인 정책조사연구소가 서안 지역과 가자 지구의 성인 남녀 1,270명을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당면한 과제는 부패(26%), 빈곤과 실업(22%), 가자 지구 봉쇄(20%), 이스라엘의 점령(16%), 서안 지역과 가자 지구의 분열(12%) 순이었다. 응답자의 84%는 파타흐가, 72%는 하마스가 부패하다고 답했다. 또 58%는 하마스가, 53%는 파타흐가 두려워 비판할 수 없다고도 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뒤로하고 2020년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을 비롯한 아랍 4개국이 이스라엘과 수교한 아브라함 협정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53%)이 자신의 지도부에 책임이 있다고 봤다.10 즉 파타흐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역시 주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2006년에 발발한 파타흐와 하마스의 유혈 충돌로 무기한 연기된 총선 및 수장 선거가 하루빨리 시행되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파타흐-하마스 간 갈등 일변도의 장기 관성에 획기적 전환점으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11월 15일 유엔 안보리에서는 15개 이사국 중 12개국의 찬성, 미국과 영국, 러시아 3개국의 기권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교전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최종 채택됐다. 결의안은 인도주의 관점에서 가자지구의 교전을 즉각 중단하고 하마스와 또다른 급진주의 조직인 이슬라믹 지하드 등이 잡고 있는 인질을 무조건 석방하라는 촉구를 담고 있으며 국제법 준수와 어린이 등 민간인 보호를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미국, 영국, 러시아의 이견을 두고 다른 이사국은 결의안에서 ‘휴전’은 ‘교전 중단’으로 바꾸고 인질 석방의 ‘요구’는 ‘촉구’로 완화해 조정안을 마련했다. 결의안의 내용은 이미 우리 정부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 밝힌 공식 입장과 비슷하다. 한편 이에 앞서 10월 27일 유엔 긴급 총회에서는 요르단의 주도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됐으나 우리 정부는 해당 결의안에 하마스의 테러와 인질 억류를 규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아 기권했다. 한국과 일본, 영국, 독일, 호주, 캐나다, 우크라이나 등 45개국이 기권하고 미국과 이스라엘 등 14개국이 반대했으며 중국과 북한은 찬성했다.

11월 22일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무력 충돌이 발발한 지 46일 만에 카타르가 중재해 온 인질 석방과 일시적 교전 중단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양측은 4일 동안 교전을 중단하면서 하마스는 생포한 인질 가운데 어린이와 여성 등 50명을 석방하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150명을 맞교환하기로 합의했다. 또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식량과 의약품, 연료를 실은 트럭 300대의 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인질 모두를 데려오기 전까지 전쟁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번 협상에서 애써준 바이든 대통령에 특별히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우리의 대(對)중동 정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을 추구하는 ‘두 국가 해법’ 및 중동 데탕트 과정을 지지하고 하마스의 테러 행위를 규탄하며 팔레스타인을 향한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2024년부터 2년간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게 될 한국은 책임있는 글로벌 중추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중동 분쟁에 대한 안보리 대응에도 적극 참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권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및 법치 등 국제규범과 가치에 입각한 중동 정책을 추진해 역내 긴장과 인도적 위기를 해소할 독자적인 기여 방안을 꾸준히 개발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에서 드러났듯이 이스라엘의 정보국이 하마스의 기습공격 의도를 파악하는 데 크게 실패한 만큼 우리의 대북 감시 체제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Ziyad Abu ‘Amaru, “Hamas: Khalfiyya Ta’rikhiya Siyasiya (하마스: 정치사의 배경),” Majalla al-Dirasat al-Filastiniya, Vol 13 (Fall), 1993. https://www.palestine-studies.org/ar/node/34916
  • 2. Freedom House, Freedom in the World, New York: Rowman & Littlefield, 2023.
  • 3. 박일송·나종남,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 새로운 전쟁 양상?” 한국군사학논집 제71권 제3호, 2015.
  • 4. Ronen Bergman, Mark Mazzetti and Maria Abi-Habib, “How Years of Israeli Failures on Hamas Led to a Devastating Attack,” The New York Times, Oct 29, 2023. https://www.nytimes.com/2023/10/29/world/middleeast/israel-intelligence-hamas-attack.html
  • 5. UN 9387TH MEETING SC/15368, “Surge in Israeli-Palestinian Violence Must be ‘Wake-up Call’ for Global Community to Redouble Efforts towards Achieving Peace, Delegate Tells Security Council,” July 27, 2023.
  • 6. Ben Samuels, “More Than 90 Democrats Warn Biden: Netanyahu’s Actions Undermine U.S.-Israel Relationship,” Haaretz, Mar 9, 2023.
  • 7. Bruce Golding, “Saudi Prince Condemns Hamas Attempt to Block Kingdom’s Normalization of Relations With Israel,” The Messenger, Oct 20, 2023.
  • 8. Itamar Rabinovich, “This Is the First Iranian-Israeli War,”Haaretz, Oct 26, 2023.
  • 9. Anshel Pfeffer, “What Is Israel’s Endgame in Gaza? These Are the Three Key Dilemmas,”Haaretz, Oct 30, 2023.
  • 10. 장지향·유아름,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이슈브리프』, 2022-11. 아산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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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성일광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

성일광 박사는 고려대 아세안문제 연구원 중동·이슬람 센터 정치·연구실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23-)이며 한국 이스라엘학회의 학회장을 맡고 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중동학 석사와 텔아비브 대학 중동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현대 중동사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이슬람주의 단체연구이다. 저서는 『Mamluks in the Modern Egyptian Mind: Changing the Memory of the Mamluks, 1919-1952』 (Palgrave Macmillan, 2017), 『식탁에서 만나는 유로메나』 (책과함께,2023)가 있다. 논문은 “Revolutionizing the past: Representations of the Mamluks in Egyptian school textbooks, 1954–1970” (Middle Eastern Studies, 2022)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