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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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권위주의 국가에 대응하는 서방 국가들의 연대는 더욱 강화됐다.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암묵적 지지는 유럽 내에 대중 불신을 야기했을 뿐 아니라, ‘책임 있는 대국’을 추구하는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훼손했다. 확대되는 대러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높아진 대만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중국 정부에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 유연한 태도로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전쟁에 접근하고 있다. 중러 협력에 관한 외교적 수사를 통해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경제∙군사적 지원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서방과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의 핵 사용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러시아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며 중국이 국제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추구하는 중국의 전략적 목표를 고려할 때, 중국이 향후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미국과 서방 국가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색이 짙어질 경우, 중국은 적극적으로 러시아를 지원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서방 국가와 중러 간의 대리전(proxy war; 代理人戰爭)으로 인식하는 중국은 결코 러시아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이는 중국의 인식과 정책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러시아의 핵 사용에 반대하는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이것을 북핵 문제와 연계해 중국의 책임과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둘째,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한중 간 이견으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며 외교적 명분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셋째, 중러 양국의 군사적 압박 가능성을 인식하고 해군력을 강화하는 한편, 한미일 간 대응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중국이 직면한 도전

 
중국은 현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를 미국 주도의 패권 질서로 인식하고 자신이 주요 행위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를 다극체제 구축을 위한 중요 협력국으로 인식하고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해 왔다.1 특히, 크림반도 합병 이후의 대러 제재,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견제 등을 계기로 중러 양국은 정치, 군사, 경제적 협력관계를 한층 더 강화하며 미국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2022년 2월 4일 중러 정상회담에서는 “제한 없는 협력(no limits partnership)”에 합의하기도 했다.2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에도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지지와 지속적인 경제교류를 통해서 암묵적으로 러시아를 지원해 왔다. 예를 들어, 중국은 2022년 3월 유엔 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된 ‘우크라이나 침략 규탄 결의’나 ‘인도적 상황 결의’에 기권하였고, 4월 7일에 통과된 ‘러시아의 인권이사국 자격 정지 결의’에 반대했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속에서도 중국은 2022년도에 러시아산 원유, 석탄, 천연가스를 대규모로 수입하며 러시아와의 경제 교류를 지속했다.3

그런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단기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장기화되면서 중국은 다음과 같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1.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서방 국가의 연대 강화
 
바이든(Joe Biden) 행정부가 대서양 동맹의 회복을 공언했지만, 2021년 미군의 일방적인 아프가니스탄 철수, AUKUS 창설에 대한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반발로 서방 국가들 간의 연대가 흔들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반중 연대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라는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대러 제재, 우크라이나 지원 등에서 긴밀하게 공조하며 협력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강화했다. 그 과정에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에 가입을 신청하며 NATO가 확장되는 양상도 나타났다.4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에 대한 미국과 NATO 회원국의 입장차를 좁히고 NATO 국가들이 미국의 대중 인식에 동참하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로 미국은 중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협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이유로 NATO 국가들은 미국과는 다른 대중 인식을 나타내기도 했다.5 그러나 2022년 6월에 개최된 NATO 정상회담은 중국이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를 훼손하고 NATO 회원국들의 이해와 안보, 가치에 도전한다는 것에 합의했음을 드러냈다.6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권위주의 국가의 위험성을 경고해 왔던 미국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서방 국가의 연대 강화는 향후 서방 국가들이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더욱 강화할 것을 시사한다.

 
2.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위한 새로운 동력 필요
 
중국은 일대일로(BRI: Belt and Road Initiative)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프라 구축, 경제 교류 등을 내세우며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모색했다. 2012년 ‘16+1 체제(중국-중동부 유럽 국가 간 협력; Cooperation between China and Central and Eastern European Countries)’7 구축, 2017년 그리스의 ‘중국-중동부 유럽 국가 간 협력’ 참여, 2019년 이탈리아와의 일대일로 협력 양해각서 체결 등은 유럽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일조했고, 이는 EU가 미국의 중국 견제에 동참하는 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8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이 러시아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유럽 내에서는 중국에 대한 불신이 확산됐고 이에 따라 중국과 유럽 국가 간의 협력관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쟁 중단을 위해 러시아를 설득해 달라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에 대해서 중국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우크라이나에서 반중 정서가 확산되고 우크라이나와의 관계가 악화됐다.9 2022년 8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조하며 ‘중국-중동부 유럽 국가 간 협력’에서 탈퇴했다.10 동유럽 국가, 발트 3국(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의 국가에서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안보 불안이 확산되는 상황에서11 중국은 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한편, 협력관계 유지와 신뢰 회복을 위해서 새로운 동력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3.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국가 이미지 실추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미국이 자국의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냉전적 사고방식을 되살리고 진영 간 대립을 유도함으로써 국제사회에 혼란과 분열을 심화시켜 왔다고 주장하는 한편,12 이런 미국과 달리 중국은 오히려 국제질서의 수호자로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견지하고 전 세계의 전략적 안정을 보호하고 있다고 강조해 왔다.13 이를 통해서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외교적 명분을 확보하고 다자주의를 내세우며 자국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주요 협력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미국에 대한 중국의 비난이 무색해졌을 뿐 아니라, 러시아와 같이 중국도 잠재적인 국제질서의 파괴자, 혹은 수정주의 세력(revisionist power)으로 인식될 위험성이 높아졌다.14 또한, 국제사회가 긴밀한 중러관계를 근거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책임 있는 대국’을 표방하는 중국의 이미지도 타격을 받았다.15

 
4. 대러 경제 제재의 확대로 인한 경제적 압박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존도를 근거로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그러나 식량 및 에너지 비용의 상승,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는 지속되었고 더욱 강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인 지난 2월 24일 미국은 러시아의 철강, 광업, 금융 분야를 포괄하는 추가 제재를 발표했는데, 중국 기업도 제재 명단에 포함됐다.16

이미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고 기술 등 특정 분야에서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추진하면서 중국 경제가 받는 압박은 높아졌다. 중국은 국내 경기를 회복하고 타국과의 경제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제로코로나’ 정책까지 폐기했지만, 미국 및 서방 국가들의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은 이런 중국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비록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러시아의 대중 의존도를 높여 중러관계에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게 할 수 있지만, 중국 경제에서 미국 및 서방 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중국은 중러관계와 자국의 경제 회복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5.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문제의 연계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한 우려가 국제사회에서 부각됐다. 미국 국방부는 2022년 11월 29일 중국 군사력에 대한 연례 보고서(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를 발간하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강조하며 중국을 압박했다.17 2022년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확대,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등으로 미-대만 관계는 더욱 강화됐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외교적 활동 공간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도 나타났다. 2022년 9월 우크라이나 의회 외교위원회장인 올렉산드르 메레즈코(Oleksandr Merezhko)는 러시아 제재에 적극 참여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대만을 “진짜 친구(a true friend)”라면서 의회에 대만 친선 코커스(Taiwan Friendship Caucus)를 설립했고,18 대만은 이에 화답해 2022년 10월 대만-우크라이나 국회우호협회를 설립했다.19 리투아니아에 이어 우크라이나가 대만과의 교류를 확대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중국’을 위해서 대만을 고립시켜야 하는 시진핑(習近平) 정부에게 정치적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중국의 대응과 그 함의

 
상술한 바와 같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긴밀한 중러관계로 인해서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다음과 같이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1. 러시아에 대한 정치적 지원과 제한적 경제 지원으로 서방의 압박 회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중국은 중러관계의 협력과 발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2023년 3월 7일 친강(秦剛) 외교부장은 양회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세계 다극화와 국제관계 민주화에 동력을 제공하고, 글로벌 전략 균형과 안정을 보장할 것이다. 세계가 불안정할수록 중러관계는 부단히 발전해야 한다”면서 중러관계 발전을 위한 중국의 의지를 재확인했다.20 2023년 3월 20일 3연임 이후 첫 해외 일정으로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은 ‘신시대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에 대한 중러공동성명(中華人民共和國和俄羅斯聯邦關於深化新時代全面戰略協作夥伴關係的聯合聲明)’에 합의했는데, 국제정세가 어떠하든지 중국은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를 장기적으로 발전시키고 패권주의에 반대해 다극화를 추진해 나갈 것을 강조했다.21

그러나 상술한 외교적 수사와는 달리 러시아를 실제로 지원하는 문제에서 중국은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2022년도에 러시아산 원유, 석탄, 천연가스를 대규모로 수입했고, 전쟁으로 높아진 유가와 가스 가격 덕분에 2022년 중러 간 양자 교역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다.22 그러나 다른 국가와의 교역량과 비교했을 때 중국이 러시아에 대해서 경제적 지원을 확대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2022년 중국 기업의 대러 수출액은 전년 대비 12.8% 증가했지만, 동 기간 20대 교역국에 대한 중국의 수출액도 대부분 10% 증가했다. 호주와 인도에 대한 수출액은 약 20% 이상 증가하며 중국의 대러 수출 수치를 넘어섰다.23

지난 3월 중러 정상회담에서 ‘시베리아의 힘(power of Siberia) 2’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 합의가 결렬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경제 제재로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러시아는 회담 전부터 중국과의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건설 사업에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반영하듯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은 시진핑과의 회담 직후 러시아와 중국이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24 그러나 중러 공동성명은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서 “연구와 합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것(make efforts to advance work on studying and agreeing)”이라고 명시하고 있다.25 중국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러시아의 상황을 활용해 자국에 유리하게 합의를 진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이와 같이 유보적 입장을 보인 것은 러시아와의 경제교류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와 같은 중국의 행위는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서방 국가 및 국제사회의 감시와 압박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비록 중국의 대러 지원이 러시아를 만족시킬 수 없을지라도, 경제 제재 속에서 러시아는 중국의 ‘균형 잡힌 입장(balanced position)’을 높이 평가하며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26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도 중국의 대러 지원을 의심하고 경제, 군사적 지원을 경고할 뿐 실제적인 제재를 가할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중국의 대러 접근법은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유지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러시아의 핵 사용에 반대하며 러시아와의 차별성을 부각
 
2022년 9월 21일 푸틴 대통령은 동원령을 선포하며, 자국의 영토가 위협을 받으면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을 언급하며 핵을 사용할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27 이후 중국은 러시아의 핵 사용 위협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3년 2월 21일 발표한 중국의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 개념 문건(全球安全倡議概念文件; Global Security Initiative Concept Paper)’에는 중점 협력 방안의 하나로 “핵전쟁은 이길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a nuclear war cannot be won and must never be fought)는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문구가 명시됐다.28 이 문구는 2022년 4월 21일 개최된 보아오 포럼에서 시진핑 주석이 발표한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에는 없던 내용이다. 시기적으로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에 제기된 이후에 해당 문구가 추가됐다는 점에서 이것은 러시아의 핵 사용 위협에 대한 중국의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23년 3월 중러 공동성명도 핵보유국의 자국 영토 밖 핵무기 배치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중러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사흘이 지난 3월 25일에 푸틴 대통령이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핵 사용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던 중국의 입장이 무색해졌다. 푸틴의 전술핵 배치 선언 이후에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 기자회견을 통해서 2022년 1월 핵보유 5개국 정상들의 ‘핵전쟁 및 군비경쟁 방지를 위한 공동성명(Joint Statement of the Leaders of the Five Nuclear-Weapon States on Preventing Nuclear War and Avoiding Arms Races)’을 언급하며 핵 전쟁에 대한 우려를 재차 드러냈다.

북핵 문제 해결에서 중국이 보여왔던 태도를 고려할 때, 러시아의 핵 사용 위협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 중국이 러시아의 핵 사용에 반대하며 비확산 체제(non-proliferation regime)를 지지하고 있음을 드러냈지만, 외교적 수사일 뿐 러시아를 저지하기 위한 실제적 행동을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핏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런 태도는 고도로 계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즉, 내부적으로는 자신의 우방국들의 핵위협에 대해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외부적으로는 국제질서를 파괴하는 러시아와는 달리 중국은 비확산 체제 등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기 위한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중국은 자국이 비록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일지라도 미국 등 서방이 주장하는 대로 국제질서를 위협하지 않을 것을 선전하는 한편,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안보 불안을 느끼는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일종의 기대감을 제공하고 협력 확대를 모색하려 할 것이다.

 
3. 평화적 중재자를 자처하며 국가 이미지 개선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인 지난 2023년 2월 24일 중국 외교부는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중국의 입장(關於政治解決烏克蘭危機的中國立場, 이하 중재안)’을 발표했다. 이 중재안을 통해서 중국은 각국의 주권 존중, 냉전식 사고 폐기, 정전 및 종전, 평화회담 추진, 인도주의 위기 해결, 일반인 및 전쟁포로 보호, 원자력발전소 안전 유지, 전략적 위험 감소, 식량 운송 보장, 일방적 제재 중지, 산업공급망 안정 확보, 전후 재건 추진 등 우크라이나 전쟁을 해결하기 위한 12개의 방안을 제안했다.29 시진핑 주석은 이것을 근거로 러시아 방문 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회담을 추진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중재안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철수 등 전쟁 당사국의 요구를 포함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 없이 중국이 그동안 강조해 온 원칙적 입장만을 나열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실제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적 중재를 모색하려고 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무기를 제공하며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고려할 때,30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제 중재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로 나선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23년 3월 10일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함으로써 중동 국가들에게 미국이 아닌 중국이야말로 역내 평화와 안정을 모색하는 중재자임을 각인시키고,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를 볼 때,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한 것은 그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선전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고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기 위한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향후 전망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직면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 유연한 태도로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전쟁에 접근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행위는 중국은 러시아와 거리를 두고 국제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추구하는 중국의 전략적 목표를 고려할 때, 중국이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미국-NATO 중심의 서방 세력권이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막기 위해 중국 및 러시아와 벌이는 일종의 대리전으로 인식하고 있다.31 즉, 중국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지역 분쟁이 아니라, 향후 국제질서의 향방을 놓고 서방 세력권과 중러 등 신흥세력권이 충돌하는 전환기적 사건인 것이다. 여전히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추진하는 중국에게 러시아는 포기할 수 없는 협력국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러시아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서방의 요구대로 러시아를 지원하지 않고 러시아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더라도 중국이 얻을 것은 크지 않다. 미국은 이것을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승리로 선전하면서 서방 국가들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강하게 추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이 제시한 중재안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철군 없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휴전에 도달하는 것을 요구한다는 점을 볼 때,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일부를 점령한 현 상황에서 전쟁이 마무리되는 것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러시아의 완전한 승리가 아닐지라도 최소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의 한계를 부각하고 중재 및 전후 재건 과정에서 중국의 외교력과 경제력을 기반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할 토대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서방 국가의 지원으로 러시아가 자국의 영토로 선언한 점령지(헤르손주, 자포리자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에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중국은 현재와 다르게 러시아에 대해서 우회적으로 무기를 지원하거나 경제 교류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러시아를 지원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 대한 정책적 함의

 
상술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이는 중국의 인식과 정책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러시아의 핵 사용에 반대하는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이것을 북핵 문제와 연계해 중국의 책임과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중국은 2022년 1월 핵보유 5개국 정상들의 ‘핵전쟁 및 군비경쟁 방지를 위한 공동성명’에 합의했고, 이를 근거로 러시아의 핵 사용에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중국 책임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러시아가 핵과 관련한 발언이나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반대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한편,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동일한 목소리를 내도록 요구해야 한다. 즉, 핵 선제 공격 여지를 열어놓은 북한의 “핵무력정책법” 등에 대해서 중국의 비판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 노력을 통해서 국제사회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높일 뿐 아니라, 중국이 북핵 문제에 참여해야 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둘째,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한중 간 이견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염두하고 대비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인도적 지원을 할 뿐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지만, 한국이 미국과의 협의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32 그간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및 서방 국가의 군사 지원을 비난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 공식화될 경우 중국이 이를 빌미로 한국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전쟁을 부추긴다면서 한국을 비난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비해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는 한편, 러시아 침공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홍보하며 외교적 명분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셋째, 중러 양국의 군사적 압박 가능성을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2023년 3월 중러 공동성명을 통해서 중러 양국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역외 군사력에 반대하며 양국의 공동 대응을 시사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중국은 이를 기반으로 러시아와 공동으로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려 할 것이다.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해서 중국이 러시아와 협력해 공동으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남중국해, 서해 등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의 합동훈련 등 군사적 압박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국은 자체적으로 해군력을 강화하는 한편, 한미일 간의 대응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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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
이동규

지역연구센터, 대외협력실

이동규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이다.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정치전공으로 국제지역학석사 학위를, 중국 칭화대학(清华大学)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중국정치외교, 한중관계, 동북아안보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일대일로: 보건 실크로드와 디지털 실크로드의 확장과 그 함의”, “중국공산당의 정치개혁은 퇴보하는가: 시진핑 시기 당내 민주의 변화와 지속성”, “중국공산당의 이데올로기 전략으로 본 시진핑 사상”, “냉전시기 한중관계의 발전요인과 특수성: 1972-1992년을 중심으로”, “개혁개방 이후 마르크스주의 중국화 연구” 등이 있다.